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79
“이곳에 대해 알고는 있었죠?”
“대충은 말이다.”
주산군도를 향해 배를 몰고 있는 천무광은 들려오는 미성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제의 곁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니, 이 주산군도에 대해 모를 리가 없는 그다.
이곳은 천무제의 술법이 가득한 곳이다.
사방에 깔린 안개들은 물론이고 거친 물살까지.
사람이 들어오려는 순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운이 좋아 도착을 한다 하여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무제가 직접 키워 낸 고수들.
어떤 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특별히 의미가 있는 장소는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그저 꼭두각시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지. 다만 수시로 다른 선인들이 찾아온다는 것 정도일까?”
남주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팔선들이 이곳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던 문파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산군도 근처에는 강한 술법이 결계처럼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는 팔선들에게 최대한 기척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무언가를 숨기는 것 하나는 최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천무제이니, 눈치를 못 챌 수밖에 없었다.
“무신도경이 만들어진 곳…….”
“나도 그리 생각한다.”
천무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바라봤다.
짙게 깔린 안개는 여전하지만 파도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마치 천무제의 힘이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또한 불길한 한기가 느껴졌다.
주산군도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추워진다.
이곳은 결코 이러한 한기가 흘러서는 안 되는 곳이었기에, 두 사람의 눈동자는 마치 무언가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흔들렸다.
“틀림없다. 이건 빙정이야.”
그때, 눈치도 없이 유백이 중얼거렸다.
주위를 살피며 기운을 읽고 그것을 해석하고 내놓은 결론이다. 유백은 다른 선인들보다 이러한 것들에 능하였는데, 그가 내뱉은 말이라면 확신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남주련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만년빙정.
선인들조차 제대로 손에 넣는 것이 불가능한 기물.
숨결마저 얼어붙는다는 북해, 극한의 땅.
그곳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절대빙정이라고도 불리는 만년빙정이다.
북해빙궁의 상징이기도 하였으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확인한 자가 없고, 또한 손에 넣은 자가 없다고 알려진 것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남주련이 의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바다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 바닷물을 매만지고 있었던 유백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너무나도 쉽게 답을 내었다.
“류태서일 거다.”
“…….”
“그 녀석의 무예는 극열지기. 그것을 이용한다면 빙정을 손에 넣는 것 또한 가능할 테지. 물론 보관이 용의치 않았을 테지만, 그건 천무제의 작품이려나?”
상황을 읽고 판단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천무제와 류태서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목적마저 깨달았으니 어이없기도 하였고 기가 차기도 했다.
“천환옥을 얻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놈도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가 보구나.”
유백은 피식 웃었다.
머릿속에 천무제를 떠올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선계에서 말이냐? 나도 어렴풋이 듣기만 해서 잘 몰라. 천제의 자리를 찬탈하려다 걸려서 쫓겨났다는 것 정도?”
“하…….”
“그런데도 용케 팔선이 되었네요.”
“멍청하긴, 팔선이라는 건 원래 없어. 그건 천무제 놈이 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만들어 낸 가짜지. 알고 있잖아, 우리가 말로는 선인이라 하지만 선계에 오르지는 못하는 것 정도는?”
유백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본디 팔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지위였다.
우화등선하여 육신이란 탈을 벗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이들이 모두 같은 선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선인이란 본디 오행의 극의를 깨달은 자들.
팔선들은 한 분야에서 극의를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오행의 극의를 깨닫지 못하고 그 헤아림조차 머릿속에 없으니 진정한 선인이라 말할 수 없었다.
남주련이나 천무광 역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그것을 들으니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이 중원에 있는 자들 중 진짜 선인은 천무제 한 명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천일조화공 자체가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오행의 기운을 스스로 불어넣을 수 있을 텐데……?”
남주련의 말에 유백이 박장대소하며 손뼉을 쳤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한참이나 웃음을 터트리던 그가, 표정을 바꾸며 쯧쯧 혀를 찼다.
“선계의 문을 열려는 이유가 뭐겠냐? 천제 놈 목을 쳐 버리겠다는 거다. 그런데 천환옥을 이용하는 데 제 힘을 전부 다 쏟아 버리면 문이 열리는 순간 그냥 죽는 거야, 그놈은.”
유백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남주련을 보며 피식 웃었다. 틀리지 않은 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천일조화공이 아닌 저 자신의 무공을 가르쳐 그것을 익힐 수 있는 이를 찾으면 되는 것 아니었는가?
굳이 무신에게 얽매일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미 그 머릿속을 읽은 유백이 입을 열었다.
“또한 천무제 본인의 힘으로도 열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을 거다. 선계의 문을 연다는 건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까.”
후자의 경우가 조금 더 맞을 거라 유백은 생각했다. 그러다 무신을 만나게 되었고 그가 익히고 있는 완벽한 오행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천일조화공을 보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곧 천무제에게 엄청난 불행을 안겨 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참 웃기지? 오행의 극의를 이루었던 천무제가 무신 한 명을 이기지 못하고 절절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전력이라 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이기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유백은 비웃음을 지었다.
한때나마 팔선의 수장.
그리고 이 중원의 실질적인 황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자.
저 스스로 무림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조종하며 때론 도움을 주거나 죽음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무신은 천무제에게 있어서 위협이었으며 방해나 다름없었다. 하여 혈마를 만들어 내고 중원을 조종하며 그를 배제하려 노력을 하였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이었던가?
무신 단우현은 마치 그런 천무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모든 것을 부수고 죽였으며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짓밟았다.
천무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그 분노가 오죽했을까?
또한 그렇기에 무신을 봉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하여 태공진으로 위장하고 또 그 곁에서 무신을 지켜본 것이다.
“어쨌든 그가…….”
유백은 잠시 뜸을 들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번뜩 든 생각이 있었는데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앞을 바라봤다.
“이제 다 왔구나.”
어느새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주산군도의 모습이 드러났다. 만년빙정의 영향 때문인지 주위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배를 끝까지 댈 수조차 없다.
바닷물이 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주산군도 인근에 있는 바닷물은 꽁꽁 얼어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이루었다.
이것이 고작해야 수개월.
만약 이대로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주산군도 일대는 빙하를 밟고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뒤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사람이 있구나.”
그때,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의아함을 품은 세 사람이 조심스레 주변을 경계하며 앞으로 나섰다. 빙하가 되어 버린 얼음 조각을 밟고 연안으로 올라서며 주변을 둘러봤다.
썩은 뒤 얼어 버린 시신들이 곳곳에 보였다.
단우현의 솜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깔끔하지 못하였기에, 그말고 다른 이가 더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쭉쭉 나아갔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 이내 마을에 도착했다.
이 주산군도를 이루고 있었던, 그리고 천무제가 길러 내었던 이들이 살아왔던 곳. 그것을 증명하듯, 단우현의 솜씨로 보이는 시신들이 곳곳에서 흔적을 드러냈다.
그때, 주변을 확인하던 천무광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하아…… 하아…… 하아…….”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눈에 들어온 모습에 남주련은 기가 찬 듯 헛바람을 집어삼켰고, 천무광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언제나 까불거리며 입담 하나만큼은 천하제일이었던 자.
그런 장삼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헐고 찢긴 백의는 더 이상 옷이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신고 있는 신발 또한 이미 낡고 삭아 버려 도무지 신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흔적 역시 가득하였으며, 그 몰골은 극한지기가 느껴지는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없었는데, 장삼태는 용케도 살아남아 버티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사…… 살려 주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장삼태는 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 어떤 가식 없이 진심으로 내뱉는 말에는, 살고자 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흐릿해진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크게 휘청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천무광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
널브러지려 하는 장삼태를 받아 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온몸이 차다. 이거 곧 죽겠는데?”
“흐음…….”
서서히 다가온 유백이 이리저리 장삼태의 상태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이 찬 정도가 아니라 얼음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실 이러한 몸으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을 테니까.
“끈질긴 놈 같으니라고.”
유백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순간 미약하게나마 천일조화공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장삼태가 익히고 있는 무신도경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주위에는 상당히 격한 싸움을 벌인 흔적들이 있었다.
주위에 살아 있는 이들의 기척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그들과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인 것이라 추측하며 저도 모르게 웃었다.
“무신도경을 익혔군. 그것이 아니라면 벌써 죽었을 거다.”
“살 수 있나?”
“일단 데리고 들어가도록 하지. 불을 피워서 온기를 주고, 먹을 것을 좀 구해야겠군.”
유백의 말에 천무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있는 가장 멀쩡한 집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장삼태가 기특한 것인지 반드시 살려 보겠다는 눈빛이다.
그사이, 남주련은 주위를 둘러보다 한 전각을 바라봤다. 극한지기가 느껴지는 곳. 아마도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원흉이라 생각되는 곳이었다.
저벅저벅-
그곳을 향해 걷고 있는 남주련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면서도 또한 일말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전각 앞에 섰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오래전 느꼈던 감정 그대로를 가슴에 품고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익 하며 굳게 닫힌 문이 조금 열리는 순간.
숨결마저 얼려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것을 뒤집어쓴 남주련은 한순간 온몸이 얼어 가는 것을 깨닫고는 재빠르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문을 조금 연 것에 지나지 않는데, 몰아치는 한기는 모든 것을 얼려 버리고 심지어 집어삼키려 했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킨 그녀가 슬쩍 보이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질끈 눈을 감았다.
“닫아라. 지금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뒤에서 유백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남주련은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고서, 열려 있는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