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0
남주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만년빙정의 힘은 거침없이 강해져만 가고 있었다. 세 사람이 이 주산군도에 도착한 지 벌써 십여 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한기는 더욱 거세졌다.
틀림없이 단우현이 갇혀 있는 그 전각, 그곳 자체가 단우현을, 그리고 빙정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그 힘으로는 더 이상 막아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다면 다가서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다.
또한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는데, 이는 쓰러져 있는 장삼태였다.
어느 정도 몸 상태를 회복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극한지기에 노출이 되어 있다면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게 하거나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우…… 우리 장주님…… 괜찮수?”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눈을 뜬 장삼태가 물었다.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다 할 수는 없다.
내뱉는 말투에서조차 힘겨움이 느껴지고 있으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남주련은 안타까운 마음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하아…… 거, 거짓말 마슈…… 이, 일어나야 하는데…….”
어이없는 실소를 내지른 장삼태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이 드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천무광이 인상을 쓰며 그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누워 있어라. 일어나 봐야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 지랄도…….”
강제로 몸이 눕혀진 장삼태가 천무광을 쏘아봤다.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려는 듯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가야 합니다요…… 이 삼태…… 장주님과 약속했단 말이요.”
“약속?”
“헤…… 헤헤, 두…… 둘 중 누구 하나 뒈진다면 그, 시신 가지고 돌아가기로 말이요. 무…… 물론 내가 될 줄 알았지만 말입니다요…….”
장삼태의 머릿속에는 단우현과의 약속밖에 없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눈 약속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짓눌렀다.
단우현이 데리고 가기만 한다면 누군가 어떻게 해 줄 것이다. 설령 저런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이런 곳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장삼태가 뚝뚝 눈물을 흘렸다.
울컥울컥 치솟는 감정은 목소리까지 떨리게 만들었다.
“우…… 우리 장주님이요…… 있어야 할 곳은 이런 곳이 아니라 호남단가란 말이요.”
그곳에 단우현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곳이야말로 단우현이 있어야 할 곳이며, 또한 그가 있기에 세워지고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한 사람, 한 사람, 단우현의 존재로 인하여 몰려들었고 그 자리를 만들었다.
하여 반드시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곳은…… 망했다.”
천무광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차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고작해야 한 사람이 죽은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정도로 피폐해졌으며, 다른 이들의 소재는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은 천무광조차 몰랐다.
그때, 장삼태가 힘겹게 주먹을 들어 올려 천무광의 다리를 때렸다.
힘조차 없는 그 손길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지만, 그 안에 실려 있는 기세는 천무광조차 놀라게 했다.
“마…… 망하긴 뭘 망해…… 아…… 아직 안 망했다…… 장…… 장주님이 계시는 한…… 그곳은 망하지 않는다고, 개새끼야.”
“여전히 주둥이만 살았군.”
천무광은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라면 한 대 후려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그러한 짓을 하였다간 곱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여 기가 찬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놈 같으니…….”
“호, 호남단가는 말이오…… 절대 망할 리가 없어. 그곳은…… 우리 장주님이 계신 곳이거든.”
“네 장주님 이곳에 계신다. 움직이지도 못해.”
“천무광!”
병자를 상대로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천무광의 목소리는 거침없었는데, 그것은 마치 장삼태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없애려는 듯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뭉개려 했다.
남주련이 앙칼지게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천무광은 그저 콧방귀만 뀌었다.
“우리 장주님이…… 호남단가요…… 그러니까 망한 거 아니지…… 흐흐.”
장삼태가 그러한 말을 하며 오히려 천무광을 비웃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빛을 내었고, 단우현이라는 자에 대한 믿음이 드러났다.
천무광이나 남주련조차 이제는 식어 버린 단우현에 대한 믿음.
마치 처음 단우현을 만나고 그를 따르겠다 결심을 하며, 언제나 그 등을 뒤쫓았던 자의 눈빛.
무엇을 하든 단우현을 믿었으며 그것은 마치 신봉이나 다름없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장삼태의 눈빛이 그러하여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좀 자고 있어라.”
천무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장삼태의 수혈을 짚었다. 흐릿하게나마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그가 어느새 눈을 감고 새근새근 소리를 내자, 천무광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했다. 기력을 소모시킬 때가 아니지.”
그때, 끼익 하며 문을 열고 유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문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한기는 순식간에 온몸을 침투하여 당장이라도 얼려 버릴 것만 같았다.
심히 좋지 않다.
유백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봤냐?”
천무광의 시선이 유백을 향해 돌아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갔다 들어온 유백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슬그머니 다가와 모닥불 앞에 자리를 잡더니 ‘후우-’ 하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얼어 죽을 거다.”
만년빙정의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강했다.
전각의 문을 잠시 여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힘은 이제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완벽하게 단우현을 영원히 가두어 놓으려는 심산이다.
아마도 긴 세월이 흐른다 한들 빙정을 제거하지 않고서야 단우현은 영원히 이 땅에 갇힌 채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요? 방법은?”
남주련이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백이다.
팔선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천무제의 곁을 지켰던 존재이고, 기이한 술법에도 능한 자이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도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한 믿음이 느껴졌는가?
유백이 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니냐?”
“당신이라면 방도를 찾을 것 같으니 묻는 거예요.”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지…….”
유백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더니 ‘하아-’ 하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알 수가 없기에 천무광과 남주련이 묘한 표정으로 유백을 바라봤다.
“제일 좋은 방법은 무신이 직접 빙정을 깨부수고 나오는 거다. 물론 제일 좋지만 불가능하지.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갇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남주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아무리 무신이라 하여도 불가능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만년빙정이라는 것은 선인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신물.
능력이 하늘에 닿아 있는 무신이라 할지라도 그 능력 밖의 일이 있는 것이다.
“빙정은 무신을 둘러싼 얼음덩어리 안에 있다. 용케도 저런 생각을 했구먼. 차라리 밖에 있었다면 부숴 보기라도 할 텐데 말이지.”
“서론은 되었고 본론만…….”
남주련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괜한 이야기를 끌고 있는 유백의 행동에서 기이함을 느낀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결코 좋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싶었기에 재촉하며 닦달하고 또한 귀를 기울였다.
유백은 벅벅 머리를 긁적였다.
쏟아지는 두 사람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또 한 가지는…… 선력을 불어넣는 거다. 안에 갇혀 있는 무신의 힘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게. 그리할 수 있다면 어쩌면 나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랬다간…….”
“우리 모두 죽겠군.”
천무광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선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은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전부 쏟아 낸다는 말이다. 이는 곧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니,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확률은?”
천무광은 거침없이 물었다.
“반반이지.”
반반이라는 확률은 설령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하여도 무신이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것인데, 유백의 판단은 그것 외에는 가능성이 없다 확신했다.
“다른 팔선들까지 합친다면?”
“확실히 가능성은 올라가긴 할 테지만 무리다. 그놈들이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 뭐 좋다고 저놈 구하려고 제 목숨을 바쳐?”
남주련이 신음을 삼켰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남아 있는 이들이라 해 봐야 몇 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라면 가능성이 올라갈 테지만, 무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마저 있으니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세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안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일다경이다.”
“……고작?”
“그래.”
만년빙정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고 있으니, 고작이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다경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엄청나다.
애초에 다른 이들이었다면 들어서는 순간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렸을 테니까.
“…….”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남주련.
유백은 그저 모닥불만을 주시하고 있었고, 천무광은 지그시 눈을 감고 마치 명상에 잠긴 것만 같았다.
정적이 흘렀다.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그 정적 속에 몸을 맡겼다.
이윽고 가장 먼저 그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천무광이다.
“예전에는 불가능했지…….”
“그렇죠.”
처음 천무제에 의해 갇힌 무신을 풀어 보려 무슨 짓이든 하였다. 하지만 애초에 푸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은 다름 아닌 태공진이라는 존재.
본인이 천무제이니 봉인을 푸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또한 힘도 미약했다.
자신들의 힘은 결코 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라는 내 존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이날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
천무광은 이미 결심했다.
어차피 천무제에 의해 한 번 죽었어야 했던 목숨이다. 그것을 류화군의 단환으로 다시금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니, 단우현을 위해 쓰는 것 따위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남주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굳혔다.
“마찬가지예요.”
천무광이 어떠한 답을 낼지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혹은 자신의 마음 역시 그와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쉰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후련해 보였다.
“당신은요? 사실 다른 팔선들 중에서도 가장 무신에게 적의가 많지 않나요?”
“뭐…… 그렇긴 하지.”
유백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과거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은 지난 세월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복수심이라는 마음마저 사라져 버릴 만큼 긴 세월.
또한 천무제를 막을 수 있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오로지 단우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에, 유백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제일 연장자가 도망칠 수는 없지.”
유백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