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1
권무진은 한 무덤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으로 제갈연과 남궁소혜, 그리고 무호가 있었는데, 그들은 향을 피우고 그를 기리며 침묵에 빠져들었다.
긴 시간이라 할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이라 할 수도 있다.
마장강과 함께 지낸 세월을 보자면 그리 많은 추억이 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온 무인으로서의 긍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모습은 누구라 할지라도 그를 우러러봐야 하는 것이었다.
“못난 놈 같으니…….”
권무진은 인상을 썼다.
이미 수개월 전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곳을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기에, 묻어 두고 제대로 장례를 치러 주지도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끌어안고 이제야 조촐하게나마 장례를 치러 주는데, 권무진의 마음속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놈들에게 당할 인간이 아니었는데.
왜 조금 더 열심히 수련하지 않았을까.
왜 조금 더 강해지지 못했을까.
그러한 자괴감이 밀려 들어왔다.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누구도 죽게 하지 않겠다.”
권무진은 다짐하며 술잔을 무덤에 부었다.
평소 마장강이 좋아했던 호연세가의 술로, 떠나는 그를 보내기에 가장 좋은 술이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은 도무지 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괜찮을까요?”
“어르신들 말이냐?”
“네.”
그때, 남궁소혜가 걱정스러운 투로 힐끗 한곳을 바라봤다. 그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동굴 안에서는 사도학과 남궁천, 그리고 비천웅이 무언가를 깨닫고 벌써 수일째 명상에 빠져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것 같기는 하였는데, 좀처럼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괜한 마음이 들어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짧은 한숨을 토했다.
“어르신들은 괜찮을 거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지.”
“적…… 강했지요?”
제갈연이 당시를 떠올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태어나 그렇게 강한 적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오황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제대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의 두려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죽음이 곁에 있는 것이 무인이라 하지만, 손조차 써 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다못해 반항이라도 해 봐야 하지 않는가?
제갈연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주먹을 쥐었다.
“수련이라도 할까요?”
“좋은 생각이지만 당장 그럴 시간은 없는 것 같군.”
권무진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다. 그것을 깨달은 이들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눈빛을 한곳에 주시했다. 수풀이 조금씩 갈라지고 기척은 더욱 확연하게 다가와 귀를 두들겼다.
이윽고 그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제갈연이 환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그래, 역시 이곳에 있었구나.”
나타난 것은 제갈운이었다.
다급하게 다가온 그는 식은땀을 닦아 내고는 숨을 골랐다.
홀로 상황을 파악하러 가기 위해 나선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돌아오지 않았기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제갈운은 생각보다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들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제갈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나둘 이들을 살폈다.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괜한 걱정이 들었는데, 멀쩡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도감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힐끗 마장강의 무덤을 바라보고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이들을 재촉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 * *
동굴 내부로 들어온 제갈운은 주변을 살폈다.
남궁천과 비천웅, 사도학이 한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깨달음이 있었는지 가부좌를 틀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방해가 되지 않게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세 사람이 있는 곳보다는 다소 좁지만, 그래도 수 명이 머물기에는 괜찮은 동공이다.
“그래, 네놈이 돌아왔으니 뭔가 얻은 거지?”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적무성이었다.
그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했다. 다섯 명과 같은 것을 보았는데 세 사람은 깨닫고 두 사람은 그러지 못하였으니,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는 무천풍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뚱한 표정으로 제갈운을 바라봤다.
“일단 저희를 습격한 무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온갖 정보들을 다 확인해 보았는데도 나오지 않더군요.”
“나간 의미가 있었던 거야?”
“하하, 물론입니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삐딱한 목소리에 제갈운이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중원 전도였는데, 여기저기 붓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뭐냐, 이건?”
무천풍이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묘한 시선을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물이 있는 장소를 표시해 놓은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근 저희가 몸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장소들을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안가 같은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제갈운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장소들이 있었다. 군자도 역시 그중 한 곳이기는 하였지만, 거리도 거리였으며 이미 한 차례 사람들에게 공개가 된 곳이었기에 오랫동안 숨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장소를 확인한 것이었는데.
“이미 이곳에 정체 모를 이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흐음…… 결국 뒤를 쫓고 있다는 말이로군. 정말로 우리한테 다른 무언가를 더 얻을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러한 말을 하며 적무성이 힐끗 단소미를 바라봤다.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한곳을 주시하고 있는 아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역시 바뀌지 않았으니 여전히 가장 큰 걱정거리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이미 저희 머리 꼭대기에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이쪽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이쪽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이곳으로 나가 볼 생각이냐?”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제갈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 생활이라는 것이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벌써 이 군자도 쪽을 향해 은밀히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주변에 머무는 주민들조차 동굴 안쪽에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고로 벗어나야 했다.
단소미의 안전을 위해서도 말이다.
“어디로?”
“하남입니다.”
“뭐?!”
깜짝 놀란 것은 적무성이나 무천풍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나 먼 거리인가?
아니,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령 하남에 몸을 숨긴다 하여도 놈들의 추격은 계속될 것이니, 그곳은 또 한 번 난장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끼리 해결할 수 없다면 도움을 받아야지요. 이미 남궁세가와 흑우에게도 몰래 표식을 남겨 놓았습니다.”
현재 호남단가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그들을 대적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뭇가지도 하나를 부러트리는 것과 다수를 부러트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적은 힘이나마 모이면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무림맹과 마교, 사파의 힘을 합쳐 대적한다면 능히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 계획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다섯 사람 때문이다.
천하오황이라 불렸던 이들.
심지어 그들 중 셋은 또 다른 깨달음을 얻고 한 단계를 더 올라서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능히 큰 힘이 될 것이고, 언제까지 숨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면 당연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대 역시…….”
“알고 있을 게다.”
제갈운이 남궁소혜의 말을 듣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한 사람이 생각을 해내었다면 다른 사람 역시 능히 생각을 할 수 있는 문제이다.
고로 여정을 떠나는 것 자체가 도박.
자칫 몇 사람이 죽어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 하여 이곳에 남아 죽을 때를 기다리겠느냐?”
제갈운의 말에 모든 이들이 신음을 삼켰다.
죽고 싶은 이는 없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 단소미만큼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 호남단가 전체 의견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도박이라 한들 걸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남궁소혜가 마음을 먹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주먹을 말아 쥔 그녀는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좋아요. 할아버지들이 눈을 뜨면 즉시 움직이죠.”
“소혜야…….”
제갈연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가장 느낌이 좋지 않은 이가 남궁소혜다. 단소미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연락조차 없는 단우현에 대한 걱정.
그러한 모든 것들이 남궁소혜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니, 현재 가장 불안하고 흔들리는 이가 그녀임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저러한 생각을 하는가?
남궁소혜는 단소미를 잠시 주시하다 이내 제갈연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우린 분명히 잘될 거니까.”
장담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 이미 한 차례 상대의 힘을 겪어 보았기에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이미 알 고 있었다.
‘단 공자는…… 저런 사람들을 상대로 싸워 왔고 이겨 냈어.’
그것은 틀림없다.
또한 단우현 역시 사람이니, 단우현이 해냈다면 남궁소혜나 다른 사람 역시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남궁천 또한 외팔이가 되었을 때의 그 무력감을 이겨 내고, 지금은 검황이라 불렸던 때보다 더욱 성장하여 강해지지 않았던가?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도 적응하며 살아남고 또한 강해지는 법이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고 반드시 해낼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사아아아악-!
기이한 기운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동굴 안쪽에서부터 밀려드는 기세는 대단했다. 청아한 기운과 거친 기운이 서로 뒤엉키고 맞서며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것을 반복했다.
음산한 기운이 그 전체를 아우르기까지 했다.
무언가를 깨달은 이들이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며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빠르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조심히.
이윽고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한 그 순간.
이들은 보았다.
명상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동굴 안은 그들이 뿜어내는 힘에 돌풍이 부는 것 같았으며, 또한 그 힘은 지금까지 느꼈던 그 어느 것보다 강했다.
동굴을 거세게 집어삼킨 그것은 계속해서 주변을 장악하고 압박하며 그들을 짓누르다, 이윽고 천천히 가라앉으며 조금씩 진정되었다.
모든 이들이 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더욱 의아했고 또한 무서웠다.
덜덜 몸을 떨며 침을 삼켰다.
그와 동시에 세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번뜩 눈을 떴다.
푸른 기운이 눈빛에 머물다 이윽고 사라지는 순간, 조금 전까지 가라앉았음에도 강하게 느껴지던 기운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세 사람은 그 어떤 기운도 뿜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갈무리했다. 이제는 적무성이든 무천풍이든 간에 그들을 바라본다 하여도 일절 아무런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가장 먼저 눈을 뜬 남궁천이 웃기 시작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