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2
“그리한다고?”
“예,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사도학의 물음에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세 사람은 깊게 캐묻지 않는다. 이 동굴 안에서 바깥 상황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제갈운은 틀림없이 모든 것을 알아보고 결론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괜찮군. 우리 또한 전부를 지켜 줄 수 없으니……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볼 수 있겠군.”
비천웅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그리되니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천하오황이라 불리는 이들 중 셋이 찬성을 하였고, 다른 두 사람은 그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유인즉, 풍겨 오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던 탓이다.
선기(仙氣)가 느껴진다 할까?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마치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운은 사람을 절로 포근하게 만들었다.
이는 남궁천뿐만 아니라 사도학이나 비천웅 또한 마찬가지다.
깨달음을 얻기 전과는 전혀 다른.
마치 천무광이나 남주련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러한 느낌도 들었다. 물론 엄밀히 따져 보자면 그들보다는 미약한 기운이기는 하였지만, 반선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망할…… 똑같은 걸 봤는데 우린 왜 이래?”
“쯧…….”
무천풍이 혀를 차며 다시금 그곳을 바라봤다.
벽면에 나 있는 흔적.
사방에 보이는 난잡한 것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길게 직선으로 새겨져 있는 그 흔적은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기에는 그게 다다.
다른 흔적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깨달음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남궁천이나 비천웅, 사도학은 언제나 같은 것을 바라보며 비슷하게 해석을 해 온 이들이라 한다면, 적무성이나 무천풍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기에 저것을 보고도 무언가를 깨우칠 수 없었다.
다만 이 동굴 안에서 그들 역시 상당히 실력을 올렸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것이 벽을 허무느냐 혹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한발 앞으로 내딛느냐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탓에 두 사람은 상당히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남궁천이 허허 웃었다.
“뭐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법이라네. 어찌 되었든 제갈운 자네의 생각은 상당히 좋아 보이네.”
“그렇습니까? 하오면 바로 준비를…….”
제갈운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가 되었든 또는 어떤 상황이 되었든 간에, 남궁천에게 받는 칭찬은 그의 기분을 고조시켰다.
오랫동안 곁에서 섬기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검황이 걷고자 하는 길에 자신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말이다.
당장 채비를 할 생각을 하며 등을 돌리려는 찰나.
“하지만 안 가.”
“당연하지 않은가.”
“좋은 생각이지만 내키지는 않군.”
수긍했던 것과는 다르게, 세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 등을 돌리던 이들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제갈운의 생각이 가장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는데, 느닷없이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부정하니 놀란 눈빛이 역력했다.
“우리가 누구인가? 호남단가라네. 그런 우리가 악양을 버리고 어디를 가겠는가?”
남궁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세 사람에게 자부심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는 자신들이 오황이라는 이름으로 이 중원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무신이라 불리는 단우현의 곁에서 호남단가를 지탱하는 절대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호남단가가 무너지고 상황이 좋지 않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금자리.
무림맹이 무너져 그 자리를 빼앗기고 어떠한 꼴을 당했는가?
사파가, 그리고 마교가.
본디 그 보금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자긍심과 긍지를 빼앗기는 것과 동일시되는 일이니,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그놈들이 돌아올 곳 정도는 지켜 줘야지. 안 그래?”
사도학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기실 그것이 가장 큰 것이었다.
단소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 단우현이 함께했던 곳.
그곳을 지키지 못하고 목숨만 살아남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죽어도 그곳에 묻힌다고 다짐을 하고 있는 사도학에게 있어서는, 이 호남 땅을 버리고 도망을 친다는 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 하지만 저희 힘으로는 도무지…….”
제갈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부족하지 않다 하였다. 결국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거부하다니?
모두 죽자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심지어 이 안에는 단소미마저 있다.
저 자그마한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그때, 멍하니 가만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단소미가 쪼르르 다가왔다.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사도학의 품에 포옥 안겼다.
옷자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이 아이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가 물러서는 것만큼 비웃음을 살 일이 또 어디 있겠나?”
그때, 곁에 있던 비천웅마저 사도학의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그 한마디가 힘 있게 들려오자 권무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하여도 호남단가는 물러서 본 적이 없으며 또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이는 자긍심.
단우현이라는 이름 아래 똘똘 뭉쳐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다.
왜 호남단가가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가?
천하제일인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물러선다면 단우현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으니, 그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뜻이었다.
“따르겠습니다.”
권무진이 입을 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한마디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놀란 마음조차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던 제갈연은 물론이고, 남궁소혜나 무호조차 마음속에서 결단을 내린 듯이 반짝 눈을 빛냈다.
“거길 고치려면 상당히 힘들 텐데요. 하아…….”
남궁소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돌아간다는 것은 곧 무너진 호남단가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겠다는 말. 하니, 자연스레 그곳을 다시 지어야 하니 벌써부터 앞길이 막막했다.
제갈연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가주님이 돌아왔을 때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게 똑같이 만들어야 하니까. 우와, 엄청 힘들겠네요.”
그녀마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수긍했다.
그저 남은 이들이 멍한 시선을 보내며 그 상황을 지켜봤다.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뜬금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함께 몸을 숨기고 있었던 홍원창과 하오문주인 구무악이 보였다.
그들은 커다란 상자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제갈운이 할 말을 잃었다.
“구해 오라고 하긴 했지만……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하하하,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소?”
홍원창이 크게 웃음을 지으며 상자를 탕탕 두들겼다.
* * *
사내의 이름은 갈황이었다.
천무제를 따르는 팔선 중 하나이며, 지금 역시 류태서의 명령을 받고 호남단가의 잔당을 뒤쫓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수하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는데, 그 소식이 어찌나 빠르던지 순식간에 포위망을 좁히며 군자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틀림없을 거다.”
갈황은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곳.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
그리고 가장 빠르게 몸을 숨길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한다면, 군자도만큼 완벽한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여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갈황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이번만큼은 틀림없다.
다른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들과는 다르게, 그는 완벽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류태서의 명령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천무제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갈황은 웃음을 지었다.
천무제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또한 그의 목적마저 머릿속에 있으니, 모든 것들이 술술 잘 풀린다면 완벽한 선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갈황에게 있어서 그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이런 중원 땅을 활보하며 다니는 것이 아닌, 실제 무릉도원에서 그 격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또한 천무제에게 잘 보인다면 선계에서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니, 그에게 있어 그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하여 이 일을 맡았다.
물론 류태서의 명령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전부 제외하더라도 이만큼 괜찮은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반선에도 오르지 못한 머저리들을 잡는 일이다. 한 놈이라도 죽었다간 영혼마저 찢어발겨 버릴 것이다.”
갈황이 주위를 둘러보며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지만 그들이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갈황에게는 충분한 일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군자도를 바라봤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천무제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그러한 고조감이 머릿속을 자극했다.
“가자.”
갈황은 배 위에서 몸을 날리며 물을 밟았다.
수상비.
가볍게 발을 내디디며 나아가니 뒤를 따라 수하들마저 수상비를 펼쳤다.
중원에서도 저러한 경공을 펼칠 수 있는 이가 몇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십존 혹은 칠성에 버금가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닌가 판단되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물을 밟고 군자도에 도착했다.
굳이 목표를 찾기 위해 움직일 필요조차 없다. 이미 동굴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삽시간이다.
수많은 이들이 쭉쭉 뻗어 나가는 그 광경은 보는 이가 있다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한 모습이었다.
한 번에 십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경공을, 또한 그 경공 속에서도 수준 높은 초상비를 펼치고 허공을 밟기도 하며 나아가고 있으니 그 얼마나 장엄하고 두려운 모습일까?
무공을 모르는 이들이 보았다면 선인들이 강림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동굴을 향해 접근했다. 한 치 망설임조차 없는 그 움직임에는 자신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결코 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아갔다.
어느새 도착한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갈황은 기이함을 느꼈다.
내부에서 어떤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기척을 없애고 숨어 기습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으로는 기습조차 불가능했다.
“찾아라.”
길은 직선이었으니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다. 또한 주위 흔적을 살펴보았을 때 틀림없이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분명하니, 확실히 놈들이 있다 생각을 하며 나아갔다.
이윽고 그 끝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며 갈황이 인상을 썼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망쳤나?”
수하의 말에 갈황은 헛웃음을 지었다. 흔적들을 확인해 보니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당장 그 뒤를 쫓는다면 잡는 것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남은 흔적을 찾으려는 순간.
무언가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횃불이다.
한쪽 구석에 유일하게 불이 붙어 있는 횃불을 발견했다.
그가 턱짓을 하자 수하가 다가가 그것을 매만졌다. 혹여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경계 어린 시선으로 그 횃불을 벽에서 떼는 순간.
치이이익-!
기이한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무언가가 타는 것 같은 격렬한 냄새가 스며들었고, 그것은 곧 모든 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윽고 갈황이 벽면을 확인한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도망쳐라!”
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온 사방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