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4
갈황은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랫동안 운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밤이었던 것이 낮으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만 인지했다.
그것이 하루인지 이틀인지는 알 수 없다.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선력은 충만하게 몸을 채웠으며 아픈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해지고 찢긴 곳 역시 아물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환골탈태를 하지 않는 이상 고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반선에 오른 이가 환골탈태라니? 이미 그 인간의 탈을 벗었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쾅!
화가 난 갈황이 손을 내뻗었다.
그가 등지고 있던 벽면이 와르르 부서졌다.
움푹 파여 버린 벽은 갈황이 가진 분노를 보여 주었다.
“이 녀석들……!”
갈황은 자존심이 무척 강한 자다.
물론 완벽한 선인은 아니지만 인간을 벗어난 지고한 존재, 즉 반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자신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생각을 하는 자다.
그러한 지고한 존재가 하찮은 이들에게 상처를 입고 죽을 위기까지 겪었으니 그 분노가 오죽할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그때였다.
“당했나?”
그를 비웃으러 나타난 것인가?
안개와 함께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인지 여인인지 모를 모습. 분명 복장은 여인인데 목소리는 사내이다.
얼굴은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는데, 분을 칠하였기에 그 짙은 분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역하게 전해져 왔다.
온갖 치장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의 성별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갈황은 힐끗 시선을 돌려 그 인영을 바라봤다.
“려하군…… 왜 이런 곳에 있느냐?”
“호호호, 상황이 어찌 되고 있는가 싶어 보러 온 게지. 설마 자네가 당할 줄은 몰랐네. 어디, 많이 아픈가?”
려하군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기나긴 손톱이 막 그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번뜩임이 려하군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려하군은 어느새 자리를 옮긴 것인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몸으로 아쉬운 듯 신음을 흘렸다.
“장난도 못 치겠네, 정말…….”
“사내새끼 꼬라지 하고는…… 꺼져라. 여긴 내 일이니.”
“호호호, 그렇게 다치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려하군이 매혹적인 움직임으로 다시금 갈황을 향해 다가왔다.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그의 귀에 입을 대려 하는 순간, 또다시 번뜩임이 일어났다.
“성질머리 하고는…….”
려하군은 또다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갈황의 빠른 손속은 실로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지만, 려하군 역시 만만치 않은 것인지 단 한 번도 그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갈황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와 있냐고 물었다.”
“왜겠어? 류태서의 명령이지. 너를 못 믿겠는지 아니면 조금 더 일을 확실히 하려는 것인지.”
게슴츠레 치켜뜬 갈황의 시선이 매섭다.
류태서가 자신에게 일을 맡겼을 때만 하여도 어쩌면 다른 이들까지 나서지 않을까 생각했다. 류태서는 언제나 차선책을 준비해 놓는 이였으며, 또한 모든 일을 빠르게 끝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것이 하필이면 려하군일까.
내키지 않았다.
사내놈이 여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리고 저 신출귀몰한 경공도.
저것이야말로 귀신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좋지만 방해는 하지 마라. 내 일이다. 만약 손을 대려 한다면 너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호호호, 당신이 나를? 어이없는 소리를 하네.”
려하군이 한참 동안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것처럼 깔깔거렸는데, 이윽고 뚝, 마치 순식간에 흐름이 끊어진 것처럼 웃음이 멈췄고, 눈동자는 갈황을 향해 돌아가며 핏빛을 머금은 입술이 진득하게 미소를 걸었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죽여 줄까, 지금?”
“흥,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저러한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안다.
혈마와 비슷한 무공을 펼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마와는 완벽히 다른 것이 있었는데, 천무제의 직전 제자이며 꼭두각시였던 혈마는 반선에 이르지 못하였고, 그 무공을 보고 베껴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내었던 려하군은 보다 높은 경지를 이루며 반선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꺼림칙하다.
차라리 다른 녀석들이 왔다면 그나마 참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아, 됐다, 됐어. 너와 싸워서 뭐 해? 나만 손해지. 넌 맛없을 것 같거든…….”
“…….”
“그건 그렇고, 알고는 있어? 네가 잠들어 있는 열흘 동안 호남단가 놈들은 다시 악양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짓고 있던데? 호호호, 완전히 네가 죽은 줄 알고 있는 것 같아.”
빠득!
자신에게 그러한 짓을 벌여 놓고 태연하게 유유자적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갈황의 화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려하군이 씩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귀신처럼 다가와 입을 열었다.
“도와줄게. 대신, 나에게 줬으면 하는 애가 있는데…….”
려하군의 목소리가 속삭이며 귀를 파고들었다.
* * *
열흘이란 시간 동안, 무너져 폐하나 다름없었던 호남단가는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너졌던 담장은 어느새 다시금 세워졌고, 전각의 뼈대가 하나둘씩 잡히며 더욱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단우현 혼자서 만들 때와 비교를 하면 상당히 느리다 할 수 있지만, 보다 정교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총동원해 만들기 시작하니, 완성만 된다면 단우현이 만든 것보다 더욱 크고 멋진 집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단소미 역시 한몫 거들었다.
배고픈 이들을 위해 남궁소혜와 함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였으며,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점점 더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무기력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지금 이러한 결정이 옳았음을 또 한 번 느꼈다.
다만 아직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고 점점 더 상태가 좋아진다면 곧 말문이 트이지 않을까 했다.
“그러니까 아, 라고 해 보라고!”
“…….”
또 하나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홍진랑과 주지약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습격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단소미를 위해 그 위험조차 감수한 두 아이다.
어찌 보면 정말로 좋은 친구를 둔 것이다.
홍진랑이 단소미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단소미는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의아한 모습에 홍진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이 씨! 왜 말을 못 해!”
“얼굴 붉히면서 화내지 말라고!”
“…….”
주지약의 앙칼진 소리가 퍼졌다.
단소미에게 언성을 높이는 홍진랑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기가 죽은 홍진랑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땅을 쳐다봤다.
그러한 일들을 눈앞에서 본 단소미가 불안한 시선으로 우물쭈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홍진랑과 주지약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을 깨달은 것인가?
주지약이 방긋 웃음을 지으며 단소미의 손을 붙잡았다.
“곧 좋아질 거야. 소미야! 아저씨도 꼭 찾아올게!”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왕부의 힘을 사방에 풀어 단우현의 행적을 쫓고 있는 중이다. 왕야 또한 이 호남 땅에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호남단가가 주는 영향력이 긍정적이라 할 수 있었기에, 그 모든 권력을 이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찾기만 한다면 데려오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한 주지약의 마음을 느낀 단소미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차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풀이 죽었는데, 이내 주지약의 시선을 깨닫고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해맑게 웃었다.
“정말이지…… 넌 진짜 좋은 애야…….”
주지약이 거칠게 단소미를 끌어안았다.
어찌나 강하게 안았는지 끄으응 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그러한 모습에 홍진랑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엄청나네…….”
단소미에 대한 주지약의 사랑이 엄청나기도 하지만, 그보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있었다.
정파와 마교, 실직적으로 만나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 있었던 자들이 한데 모여 집을 짓고 있다. 무공이라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배웠던 홍진랑은, 그러한 것들이 전부 집짓는 데 사용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흔히 말한다.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무인이라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이들이 몇 되지 않는데,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이름을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손꼽히고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절대고수들이다.
그런 이들이 무공을 이용해 뚝딱뚝딱 집을 짓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열흘 동안 잘도 이만큼 짓네…….’
홍진랑이 기가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안 보이네.”
그때, 주변을 살피고 있었던 홍진랑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것인지 그저 머릿속에 깃든 의문을 입으로 내뱉었다.
“백호랑 백…… 쿠웩!”
홍진랑은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주지약의 손길이 날아들며 홍진랑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여아의 손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서웠다.
커다란 덩치를 지닌 홍진랑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어찌나 아프던지 이마를 감싼 채 주지약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사나운 눈초리가 꽂혔다.
“…….”
하지만 그보다 더욱 홍진랑의 가슴을 후벼 판 것은 다름 아닌 단소미의 눈빛이었다. 조금 전까지 생기발랄했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풀이 죽은 채로 어깨를 떨궜다.
아마도 자신을 지키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백호와 백묘를 보았으니,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도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았다.
뚝뚝-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떠올리는 순간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백호와 백묘도 그렇고 여은월 또한 마찬가지다.
“자, 자, 우, 울지 말고 뚝! 으, 은월이는 괜찮아. 우, 우리 집에서 지금 편히 있는걸! 다 나았어. 같이 온다는 걸 내가 뜯어말린 거야. 진짜라니까!”
주지약이 허겁지겁 단소미의 눈물을 닦아 냈다.
여은월이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짝 눈을 빛내는 것이,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 역시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다, 다음에 데리고 올게. 오늘은 시간이 좀 안 돼서…….”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집에서 도망쳐 나왔기에 여은월을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이기는 했지만, 굳이 거기까지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저 단소미를 다독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그때.
크와아앙-!
어디선가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던 단소미가 번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울음소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보았던 그것이다.
이윽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쌓아 올린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오는 새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백호다.
“배, 백호다! 저, 저놈이 어떻게……?”
놀란 것은 단소미만이 아니다.
남궁천이나 사도학은 물론이고 남궁소혜마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지금까지 어떠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호는 태연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며 단소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등 뒤에는 빼꼼 머리를 내민 백묘가 보였다.
한순간, 단소미의 얼굴이 환해졌다.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달려가 그 아이들을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