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5
모든 상황이 천무제와 류태서가 생각했던 것으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현재 보이는 것들은 구 할 가까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었다.
남은 일 할이 문제이기는 하였는데, 현 상황과 흘러가는 것으로 보았을 때, 딱히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류태서는 그 어느 때보다 조급함을 금치 못했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천무제도 그러하였고, 주산군도로 향한 천무광과 유백, 그리고 남주련 역시 그러했다.
“흠, 이상해. 무언가 불길하단 말이야…….”
조급한 것은 다름 아닌 이 불길함이다.
설령 남주련이나 천무광이 대단히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하여도, 만년빙정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봉인은 결코 풀 수 없다.
물론 유백이 있다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단우현을 얼음 속에 봉인했던 그 술법을 천무제와 함께 머리를 굴려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였으니까.
그렇기에 불길함이 드는 것이다.
류태서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만약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단우현은 천 년이 걸리기는 했으나, 이미 그 봉인을 풀고 나온 전적이 있는 자.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생각을 마친 류태서가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그의 손끝에서 지풍과도 같은 것이 뻗어 나가더니 ‘퉁!’ 하며 방 안에 있는 무언가를 두들겼다.
그 소리가 얕게 퍼져 나가 주변을 휩쓸자, 곧 핏빛 안개가 주위를 휘감더니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마주하는 순간 느껴지는 기백.
핏빛 선혈을 머금은 것 같은 눈동자.
반선에 올라와 있는 이들 중 류태서와 동급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자.
그만큼 강자이기도 하였으며 천무제가 신뢰를 보내는 이이기도 했다.
이유인즉, 혈마의 사형이며 천무제의 직전 제자.
백자량이었다.
“불렀나?”
“허허, 용케 왔군그래. 안 오는 줄 알았다네.”
류태서가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여유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백자량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유인즉 틈을 보이는 순간 서로의 목이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존재는 비등하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류태서의 승리일까?
백자량이 히죽 웃음을 지었다.
“나를 부른 것을 보니 무언가 있긴 한가 보군. 심각한가?”
“주산군도로 간 남주련과 천무광이 말이야. 썩 느낌이 좋지 않네. 아, 유백도 있구먼. 그러고 보니 자네, 유백과 친했지?”
“…….”
백자량의 눈썹이 들썩였다.
과거의 관계는 과거의 관계다.
분명 둘도 없는 친우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등을 돌려 적대를 하니 굳이 그러한 것을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스산한 기세가 퍼져 나갔다.
한 줄기 핏빛이 류태서의 미간을 향해 날았다.
하지만 류태서는 가볍게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 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웃음을 지었다.
“뭐 그런 것이네.”
“세 명의 목이 필요하다는 말이로군.”
“자네는 너무 잘 알아들어 탈이야. 허허허.”
“스승님은 어떠하지?”
“아직 깨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네만, 일어나신다면 제일 먼저 알려 주겠다. 약속하지. 물론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네만.”
류태서가 백자량의 자존심을 긁었다.
굳이 그러한 말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도 서로 견제하고 우위를 다투다 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결코 곱지 않은 것이다.
백자량이 우둑우둑 몸을 풀며 입을 열었다.
“지금 너를 죽여 줄 수도 있는데.”
“참게나. 나는 아직 형님과 해야 할 일이 많네.”
류태서는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갈 만큼 그의 수양이 얕지 않았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식으로 서로를 마주했으니, 굳이 저런 도발에 넘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네가 그것들의 목을 가져오면 형님도 몹시 기뻐하실 게야. 혹시 아는가, 육천공을 알려 주실지?”
“그거참 흥미로운 일이로군.”
백자량의 눈빛이 빛났다.
육천공.
그것이야말로 천무제가 익히고 있는 절대신공이다. 직전 제자라 할 수 있는 백자량조차 익히지 못한 것으로, 오로지 천무제만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그 무공 이상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천일조화공밖에 없으니, 실질적으로 무신이 갇혀 있는 이상 육천공이야말로 천하를, 아니, 천지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했다.
백자량은 류태서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은 세 개면 되는가?”
“두 개가 더 있기는 한데…… 많아야 네 개만 가져올 수 있을걸세.”
“다섯 개 전부를 가져오도록 노력해 보지.”
“허허허, 어디 한번 해 보게나.”
무신의 목을 가져오겠다 호언장담하는 이를 보며 류태서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과 동시에 붉은 안개가 끼며 어느새 백자량의 모습이 사라졌다.
주산군도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참, 성질 급한 자로군.”
류태서가 피식 웃었다.
천무광이나 남주련이 위협이 되기는 할 테지만, 백자량 역시 못지 않은 강자. 셋 중 둘은 죽일 수 있을 테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가끔 주제 파악하지 못하는 게 큰 흠이기는 하다만…….”
류태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로써 다소 안심이 되었다.
* * *
“그게…… 정말입니까요?”
눈을 뜬 장삼태는 남주련을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단우현을 구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어느 누가 보아도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러한 얼음 속에서 사람을 온전히 꺼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설령 온전히 꺼낸다 한들 이미 죽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만큼 이 주산군도를 휩쓸고 있는 극한지기는 엄청났다.
“예, 물론이죠. 천하의 무신이에요. 저런 것에 진다는 건 있을 수 없죠.”
“으하…… 으하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요? 우리 장주님이 누구인데 저런 것에 지겠습니까요? 상상조차 할 수 없습죠!”
장삼태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장삼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존재.
그를 놓고 가거나 혹은 그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저 얼음덩어리를 어찌 가지고 호남단가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러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단우현을 구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삼태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빛을 보내며 가슴을 탁탁 쳤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요? 뭐든 하겠습니다요!”
장삼태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 이 기분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을 살릴 기회이니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그를 보며 온갖 욕을 해 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부터 시작하여 무슨 일을 겪었는지까지.
투덜투덜 구시렁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단우현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당신이 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이곳에서 저분을 지켜 주세요.”
“응? 아니, 저보다 강하신 분들이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요?”
장삼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남주련이나 천무광, 그리고 유백은 장삼태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는 자들이다. 자신의 몸은 본인들이 직접 지키면 되는 것을 가지고, 저들 입장에서 본다면 개미 새끼나 다름없는 이를 향해 어찌 저러한 말을 내뱉는가?
장삼태는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리고 혹…… 실패하게 되면 네놈이라도 이곳을 벗어나라.”
“엑? 시…… 실패?”
“무조건 성공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천무광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여전히 장삼태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단우현에 대한 믿음만큼은 누구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이런 곳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럼 다들 가고 저 혼자만 남는 겁니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대답이나 해라.”
“그야…….”
장삼태는 뜸을 들이며 생각했다.
남주련이나 천무광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
마치 먼 여정을 떠나려 하는 이 같았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찝찝했다. 게슴츠레 눈을 뜬 그가 힐끗 유백을 바라보자, 하품을 하고 있던 유백이 피식 웃었다.
“왜 날 보냐?”
“아니…… 도대체 뭔 일입니까요? 대체 장주님을 살리려면 뭘 해야 하기에 다들 분위기가 이럽니까?”
불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혼자 또다시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삼태의 표정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냥 대답이나 해. 어차피 실패하면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있어 봐야 개죽음이다, 이놈아.”
유백의 말에 장삼태가 인상을 썼다.
개죽음을 당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단우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 역시 싫었다.
당장 거부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유백의 말이 그를 자극했다.
“우리가 들어가서 한 시진이다. 한 시진 안에 저놈이 얼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라.”
“그 말은…….”
장삼태는 그제야 깨달았다.
비장한 표정.
그것은 비단 장삼태만이 아니다. 여유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유백은 물론이고, 천무광이나 남주련마저 어딘지 모르게 굳은 결심과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목숨을 건 것 같은 느낌.
그렇기에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니, 장주님이 살아 돌아와도 두 분이 안 계시면 무슨 소용입니까요?”
“나는 없어도 되는 거냐?!”
유백이 거칠게 소리를 쳤지만 장삼태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삼천이라 불리는 이들은 단우현과 깊은 사이였고 그런 이들이 자신을 위해 죽었다고 한다면 그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내색은 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을 극도로 신경 쓰는 단우현에게 큰 충격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유백은 딱 잘라 말을 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다고 한다면 진즉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만년빙정의 힘이 너무나도 컸으며, 그것은 설령 무신이라 하여도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저것은 천무제조차 감당치 못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도 뭔가 있지 않겠습니까요? 애초에 우리 장주님은 저기에 갇혔다가 나오신 분 아닙니까!”
“저것은 그때와 다르다.”
“닥치라고, 꼬맹이 새끼야!”
장삼태가 거칠게 소리치며 유백을 쏘아봤다.
천무광과 남주련에게 묻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유백이 대답을 하니 괜스레 울화가 치민 것이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 들었다.
천무광은 물론이고 남주련마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필이면 유백에게 저런 말을 하는가?
간덩이가 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머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조금 더 맞을 것 같았다.
“이…… 이 빌어먹을 놈이 감히!”
빠각!
유백의 손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날아간 장삼태가 그대로 벽에 부딪친 채 혼절했다. 정신을 잃은 그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입에는 게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
“후후…….”
천무광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분명 처음 보았을 때에도 저러한 짓을 하지 않았던가? 그 성격이 어디 가지 않으니 재미있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좋은 분이에요. 반드시 살려 주고 싶을 만큼…….”
“살아야지. 살 수밖에 없을 거다.”
단우현은 그 시간이 멈춰 있다.
하지만 장삼태의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 멈춰 있는 시간 속에 있는 이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자신의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남주련도 그러했고 천무광 역시 그러했다.
어쩌면 저 장삼태라는 자가 자신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와는 다르게 많은 이들이 곁에 있을 테니까.
“시작하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욱 위험해지니까.”
“그렇군…….”
유백의 말에 천무광과 남주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할 수 없다.
만년빙정의 힘이 더욱 강해지기 전에, 그리고 천무제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이 지금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명이 아닌가 싶었다.
세 사람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혼절해 있는 장삼태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