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6
그날은 밤공기가 좋지 않은 날이었다.
달빛은 푸르지만 먹구름이 드리워 오고 있었고, 조금씩이지만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서서히 그 양을 더하며 귀를 자극했다.
호남단가는 유난히 조용했다.
급하게 먼저 지어 놓은 건물 안에는 모든 이들이 잠을 자고 있다.
단소미는 남궁소혜와 함께 백호와 백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새근새근 잠을 청하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절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남궁소혜는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면서도 그 손길을 느낀 것인가?
자그마한 신음을 흘린 단소미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아비의 손길이라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남궁소혜의 손에서 그 따스함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남궁소혜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사라지며 서서히 표정이 굳어 갔다. 부드럽게 단소미의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거두며 작은 한숨마저 내쉬었다.
남궁소혜는 기이한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밖에서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를 자극할 때마다 마치 사람이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하였기에 침상 옆에는 검을 놓아두고, 언제라도 그것을 집을 수 있도록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자느냐?”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음성이다.
남궁소혜는 불안한 생각에 손을 뻗어 단소미의 수혈을 짚었다. 이윽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쥐고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
문밖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평소 보이던 그러한 인자한 표정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굳어 있는 그 눈빛과 표정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남궁소혜에게 더 큰 불안함을 안겼다.
그제야 깨닫는다.
주위에는 남궁천만뿐만 아니라 사도학, 비천웅, 무천풍과 적무성까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권무진이 문을 열고 나왔고 제갈연과 제갈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생사투를 앞에 두고 있는 이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가자꾸나.”
남궁천의 말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향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기에 문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온몸은 홀딱 젖어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입으로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입김이 서려 추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뭣들 해? 여기서 또 부술 거야?”
사도학이 그런 상황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기껏 다시 쌓아 놓았는데 다시금 부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다섯 노인이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천웅, 네놈과 이것들은 여기 남아서 소미를 지켜라. 그게 확실하겠지?”
“걱정하지 마라.”
비천웅은 저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에 불만스러운 감정은 없다. 가장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목표가 단소미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사도학의 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감시하거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자들이니…….”
남궁천이 걱정스러운 투로 주위를 돌아봤다.
마교인들이 삽시간에 흩어지며 경계를 섰다.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좌우로 퍼지며 남아 있는 빈 곳들을 메워 나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침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그 안에는 남궁소혜와 비천웅, 그리고 남은 모든 이들이 떠나는 네 사람의 무사귀환을 빌어야 했다.
“너무들 걱정하지 마라. 큰일이 아닐 것이니…….”
그리 말을 하며 남궁천이 몸을 날렸다.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뒤를 따라 사도학이 발을 떼자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적무성과 무천풍이 다른 곳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떠난 곳과는 다른 곳에서 기척이 느껴지고 있다. 그것은 상당히 은밀하지만 두 사람이 다가선 곳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한둘이 아니다.
틀림없이 저들이 이끌고 온 수하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마라.”
적무성이 그러한 말을 중얼거리며 호흡을 골랐다.
이 장원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은 상황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결국 해야만 한다.
부서진 것은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잃은 생명은 되살릴 수 없다.
하여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적무성과 무천풍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서슬 퍼렇게 빛을 냈다.
이윽고 모든 이들이 장원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안은 비천웅과 무천풍이 지키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장원 밖에서 일을 벌일 참인지 다가오고 있는 자들을 기다렸다.
“후우…….”
남궁소혜는 비를 맞으며 호흡을 골랐다.
빗소리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다가오는 이들의 기척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 손에 쥔 검을 빠르게 뽑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와요!”
동시에 권무진과 무호가 튀어 나갔다.
카카캉-!
격한 칼의 마찰음이 들리자, 남궁소혜가 몸을 날렸다.
수풀에 숨어 다가오고 있던 자들.
복면을 쓰고 있지 않아 고스란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드러낸 얼굴 자체가 몹시 기이하여 역겨울 정도였다.
사내로 보이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 몸놀림과 행동은 마치 여인을 보는 것 같았다.
저러한 무공을 익히기 위해 여인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성향 자체가 그런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강해!’
남궁소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강해도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또한 방심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 때문에 마장강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탓인지, 그녀의 검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또한 날카로우며 결코 일말의 방심조차 깃들지 않았다.
격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빗소리와 파공음만이 퍼져 나갔다.
* * *
사도학과 남궁천은 가장 커다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이 앞에 서 있었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애초에 저런 이와 알고 지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겨 오는 기운은 대단하여 절로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지난번 보았던 이들과 동류인가?
남주련이나 천무광과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다.
하지만 그 두 사람과 다른 점은, 명백하게 느껴지는 살심이다.
살기가 미친 듯이 쏟아져 왔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그자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을 냈다.
당장이라도 온몸을 갈가리 찢어발길 것 같은 표정과 기세는 아무리 남궁천이나 사도학이라 한들 오금을 저리게 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가?”
남궁천이 어이없어 하며 사도학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자에게 원한을 산 적이 없었다. 이 정도의 살기라면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눈앞에서 죽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러한 기억 자체가 없었다.
“이 하찮은 벌레 같은 놈들……!”
빠드득!
갈황이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로서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들인데, 드디어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되니 그 살기는 더욱 미친 듯이 끓어올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죽이고 싶다, 당장 죽여 없애 버리고 싶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력이 들끓으며 치솟았다.
“허허, 진정하게나.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러는 것인가? 내 그대를 본 기억이 없거늘…….”
“이런 미친 종자들 같으니! 군자도에서의 일을 잊었느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온몸을 위압했다.
찌릿찌릿 느껴지는 기세는 설령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분노를 토해 내는 것 같았고, 또한 그 살기는 지금까지 받아 본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팔선에 오른 이들의 기세로군.’
남궁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천무광과 남주련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하였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실 그 두 사람은 실력을 다 내보이며 상대를 해 준 적이 없었기에, 이들의 대단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래도 천무광과 남주련, 그자들만큼 강한 상대는 아닌 것 같군.”
사도학이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약 군자도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벽을 허물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는 그저 죽기 위한 자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섭긴 하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실력을 다 쏟지 않은 남주련이나 천무광보다도 위압감이 덜하니, 해 볼만 상대라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미친놈들이! 하찮은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뭐라고?!”
“시끄러워, 새끼야. 네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우리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정도다. 용케 살아남았구먼. 바퀴벌레냐?”
사도학이 이죽거리며 갈황을 조롱했다.
수많은 벽력탄이 터지고 또한 동굴 전체가 가라앉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정말로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도학은 천천히 기세를 풀었다.
그것과 동시에 남궁천 역시 기세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기운이 서서히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하자, 하찮은 벌레라 여기며 소리를 치던 갈황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갈황이 처음 이들에 대해 들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다.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반선에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이는 문턱이라 하여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상대를 낮게 보던 갈황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러한 상황이 된다면 결코 흥분해서는 안 된다.
먹으려 하다가 자칫 먹히는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오호, 그나마 정신은 박힌 놈이로군.”
사도학이 이죽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언성만 높이는 녀석이었다면, 오히려 장원을 지키고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목숨을 건 생사투를 벌인다 한들 나쁜 느낌은 아닐 것 같았다.
최소한 무인의 기질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도망쳤을 때를 생각하지 말게나.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네.”
남궁천의 한마디 역시 무겁게 갈황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는 한 사람만이 아닌 두 사람 모두가 동등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갈황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내 웃음을 지었다.
“혼자 온 줄 아느냐?”
“수하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더군. 그것조차 모르는 줄 알았더냐?”
“하하하.”
수하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말을 하자면 갈황의 수하들은 아니다. 이미 그의 수하들은 동굴 폭발 때, 바위에 깔려 죽임을 당했으니까.
그런 그의 얼굴에서 낌새를 알아차린 것인가?
남궁천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 같은 사람 한 명이든 두 명이 우리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네. 괜히 무신의 사람이겠는가?”
“이 자식들……!”
갈황이 입술을 꿈틀거리며 화를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