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8
격전은 예상했다.
호남단가 주위로 몰린 이들을 바라보며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 역시 있었다.
남궁십육검과 마교의 흑우까지 가세한 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실력 차이가 상당하여 고전을 금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남궁소혜와 권무진, 제갈연 등이었다.
미호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을 잊지 않고 상황마다 빠르게 판단을 하며 상대를 압박하고 풀어내니, 적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시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호남단가 측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고 겉보기엔 확실히 밀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반대로 적의 시체가 더욱 많았고 이쪽은 경중상에 그치고 있었다.
이는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이는 남궁소혜 때문이었다.
누군가 고전을 한다면 기꺼이 도와준다.
그럼에도 자신의 상대에게 눈을 떼지 않았으며, 다음 수를 빠르게 읽고 파악해 내는 능력 역시 상당히 특출했다.
완벽한 압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려하군의 수하들은 되려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서걱!
남궁소혜의 검이 또 한 번 휘둘러졌다.
번개와도 같은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를 장악하고 그 목을 베어 냈다.
동시에 허점을 파고드는 이가 있다면 제갈연과 권무진이 도움을 주니, 이만큼 등이 든든한 동료가 어디에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등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 곳에 집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니, 남궁소혜는 더욱 거침없이 움직이며 전장을 누볐다.
‘역시 대단해.’
반면 권무진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며 상대를 주시했다. 치고 들어오는 이의 검을 막아 내고 옆으로 흘렸다.
다른 손에 쥔 칼을 뻗어 옆구리를 쑤시고 그대로 다리를 걸어 넘어지는 이의 목을 찔렀다.
간결한 동작이기는 했지만, 그 한 수만으로도 상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체가 되었다.
‘하지만 나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생각했다.
처음 사파를 벗어나 이 호남단가에 몸을 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으며 때론 포기할 뻔하기도 하고 죽을 위기를 수차례 겪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살아남아 버텼다.
살아남을 때마다 더욱 실력은 늘어났다.
비록 믿을 수 없는 재능을 지닌 남궁소혜만큼은 아니지만, 권무진 역시 사선을 넘나들며 이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했다.
한층 더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런 권무진에게 있어 마장강은 조언자이며 스승이기도 했다.
때론 조언을 주고 함께 연무를 하며 부족한 점을 깨닫고 함께 앞으로 나아갔던 존재. 어느새 자신들을 훌쩍 앞서 버린 장삼태를 따라잡고자 맹세를 하며 미친 듯이 수련하며 고락(苦樂)을 함께했다.
그런 권무진에게 있어 마장강의 죽음은 실로 충격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남궁소혜를 살리던 그 등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은 채 사라지지 않았고 또한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하여 더욱 노력하며 칼을 휘둘렀다.
언제나 마장강과 함께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었다.
단우현이 자신들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자. 호남단가의 호위들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게 만들 정도로 높은 곳에 오르자.
그렇기에 권무진은 칼을 휘두른다.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서거거걱!
휘두르는 두 자루의 도가 삽시간에 주위를 휩쓸었다. 다가오던 적들의 몸을 가르고 베어 내고 죽음으로 이끌었다.
온몸에 새빨간 피를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고 상대를 도륙하고 있었다.
재능이 없다면 노력으로 나아간다.
남궁소혜처럼 빠르게 가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그 등을 바짝 쫓으며 언젠가 적무성이 있는 그 위치까지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 권무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때, 뒤에서 기이한 기척이 느껴졌다.
앞을 바라보고 있던 권무진이 깜짝 놀라 등을 돌렸다. 생각이 너무나도 많았던가? 아니면 예기치 않게 방심을 한 것인가?
어느새 가까운 거리까지 근접한 사내 중 한 명이 권무진의 머리를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머리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빠각!
시뻘건 피가 묻은 봉이 그대로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얻어맞은 이의 몸은 어이없이 날아갔다.
“주위를 살피십시오. 이곳은 전장입니다.”
어느새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무호다.
시뻘건 봉을 들고 염불을 외웠다.
그 또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였는데 그 모습은 소림승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괴기하였다.
‘이 정도면 파계승 아냐?’
권무진이 주르륵 식은땀을 흘렸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아도 무호의 모습은 파계승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그러한 말을 해 봐야 본인은 분명 부정을 할 테지만, 권무진이 보기엔 명백히 파계승으로 보였다. 심지어 지금은 머리까지 기르고 있지 않은가?
“고…… 고맙군.”
“아닙니다. 그럼 소승은 이만…….”
무호는 봉을 휘두르며 또 다른 적을 향해 뛰어들었다. 적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는데, 그것은 싸움을 좋아하고 즐기는 이의 모습이었다.
권무진은 식은땀을 닦아 냈다.
‘그러고 보니 또 있었군, 재능을 타고난 녀석이.’
그것은 다름 아닌 무호다.
미호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부터 순식간에 실력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빠르고 대단하여 혀를 내두룰 정도다.
‘장삼태, 남궁소혜, 그다음은 무호인가…….’
권무진은 손에 쥔 도를 더욱 거세게 쥐었다.
저들에게 또 한 번 따라잡히면 마장강을 볼 면목이 없다.
마음을 먹은 권무진이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 * *
“으랴랴럇!”
빠각!
적무성이나 무천풍이 보기에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자들이다.
움직임은 확실히 빠르고 치고 들어오는 칼날 역시 정교하지만, 오황에 버금가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죽이지 못할 이유 역시 없었다.
앞에서는 상당히 고전을 하고 있는 것 같으나, 후방에서 나름 여유가 있는 것은 무천풍과 적무성이 자리를 잡고 있는 탓이다.
누구도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범접할 수 없는 절대결계인 양, 다가오는 이들은 시체가 되어 널브러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청나게 많네.”
적무성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남궁세가, 흑우대, 그리고 호남단가의 인물들.
이러한 이들의 수를 세어 본다면 능히 한 문파 정도는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들을 고정할 만큼 강하고, 또한 그 수도 많았다.
엄청난 수를 죽였음에도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으니, 얼마나 더 많은 수를 시체로 만들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다 앞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자들이 기력이 떨어져 먼저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하……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이놈들 대장은 어디 간 거야?”
무천풍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격한 싸움이 벌어지고 수없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응당 이들을 이끄는 대장격인 존재가 나타나야 할 것인데, 기이할 정도로 그런 이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혹여 사도학이나 남궁천에게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고는 이들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하다.
정확히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적무성과 무천풍은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썼다.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대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데다, 기척조차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흔적이 없었다.
그것이 못내 마음이 걸렸다.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없으면 어떤 변수가 생기게 될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제갈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해서 현 상황을 판단하려 애를 써 보고는 있지만, 애초에 대장이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가진 자인지조차 모르는데 계획을 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노리는 것은 단소미가 맞아?”
“그런 것치고는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별로 없군.”
무천풍의 말에 적무성이 중얼거렸다.
다가오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살인을 하기 위해 오는 것 같았다.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살심만이 가득하니 단소미가 목적이라 보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망할 것들이 진짜!”
화가 난 무천풍이 소리를 내지르며 일장을 뻗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던 사내의 몸이 터져 올랐다.
그와 동시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온몸이 싸늘하다 못해 한기마저 느껴졌다. 습기가 자욱하게 올라오는 것 같더니 이내 안개가 끼고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안개는 온 사방을 뒤덮었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그 시야를 방해하니, 기척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무천풍과 적무성이 그것을 보고는 급하게 움직이려 하였는데, 그러한 두 사람을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안에서 들려오는 비천웅의 한마디였다.
“둘 다 움직이지 마라. 그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니.”
“에이, 시벌!”
비천웅의 말에 움직이려던 두 사람이 우뚝 멈춰 섰다. 자욱하게 낀 안개 사이로 세찬 비명들이 들려왔다. 그것이 적의 비명인지 아니면 아군의 비명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거야?!”
적무성이 짜증이 난 표정으로 소리치며 이를 갈았다.
* * *
남궁소혜는 입술을 깨물며 호흡을 골랐다. 느닷없이 안개가 끼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기척만을 이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읽다 보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는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피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보통 이러한 상항이라면 천천히 기척을 읽고 주변 상황을 판단하며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법인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이들의 칼날과 움직임 탓에 그러한 것을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카카캉!
또다시 검격이 치고 들어왔다.
읽지 못하였다면 죽을 수 있는 완벽한 한 수다. 하지만 극도로 오감이 발달하여 있는 남궁소혜의 감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
그녀는 들어오는 칼날들을 모조리 쳐 내며 오히려 반격을 시도했다.
서거걱!
몇몇 이들을 베는 감촉이 칼끝에서 느껴졌다.
묵직하게 살을 가르는 감각.
그것은 틀림없이 상대를 베었음을 알리는 한 수였다.
하지만.
캉!
“윽?!”
기이한 충격이 칼끝에서 머물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엄청난 감각에 남궁소혜는 주르륵 뒤로 물러서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사악사악!
그와 함께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만을 귀에 담고 긴장 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캉!
또다시 휘둘러지는 무언가에 남궁소혜가 가까스로 막아 내었지만, 이번에는 쥐고 있던 검을 놓칠 정도의 힘이 서려 있었다.
“호호호!”
그리고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모른다. 온 사방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통에, 웃는 이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남궁소혜가 긴장 어린 시선으로 떨어진 칼을 쥐었다.
“후우…….”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지금까지 몰려들던 이들과는 다르다.
그것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