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89
남궁소혜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가만히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주변 소리를 들어 봤다.
하지만 곁에 아무도 없는 감각은 마치 그녀 홀로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안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검격 소리에 조금씩 이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만큼 움직였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던 것이다.
남궁소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으로 나를 유인한 건가요?”
“호호, 그곳은 너무 시끄러웠거든.”
온 사방에서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때문에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몸은 더욱 긴장감을 숨길 수 없었으며, 어느새 이마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흘렀다.
“왜 하필 저를 유인한 거죠?”
목적은 단소미가 아니었던가?
애초에 저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이 공격을 감행하였는지 알지 못하는 남궁소혜는 최대한 정보를 짜내기 위해 말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뿐이다.
분명 여인처럼 웃고 있었는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는 사내의 것이었다.
그 기묘한 상황이 남궁소혜의 심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스윽-
그때, 느닷없이 그녀의 코앞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뻘건 복장, 아니 애초에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복장 따위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존재는 여인처럼 보이기 위함인지 덕지덕지 분칠을 하고 심지어 연지까지 짙게 발랐다.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풍겨 오는 알싸한 분 냄새는, 홍등가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화들짝 놀란 남궁소혜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사내의 손이 뻗어 와 그녀의 멱살을 잡아 쥐며 끌어당겼다.
“나는 말이야,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단다.”
“윽?!”
“호호, 여우 년 이후로 처음이구나. 이렇게 가지고 싶은 계집은 말이다.”
려하군은 아름다운 것에 집착했다.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심취하고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면 그가 하는 짓은…….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나. 산 채로 네 살가죽을 조심스레 벗겨 내면 그 아리따운 얼굴은 내 것이 되는 게야. 호호호.”
사악!
들려오는 소리에 남궁소혜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거칠게 뻗어 나간 검은 려하군의 가슴을 베려고 하였지만, 어느새 사라져 칼날은 허공을 갈랐다.
“취미가 좋지 않군요.”
남궁소혜가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그것을 알 수 없어 인상을 찌푸리고 여전히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보며 호흡을 골랐다.
어디로 갔을까?
‘아니, 애초에 눈앞에 있다 한들…… 이길 수 있을까?’
남궁소혜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상대와 자신의 결정적인 차이.
그것은 단순히 고하의 경지를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거대한 산군(山君)이 있으며, 남궁소혜 본인은 그저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실력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대장, 즉 선인이라 할 수 있는 존재.’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또한 입가에 맺힌 것은 씁쓸한 웃음이다.
단우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일말의 걱정조차 없었을 것이지만, 홀로 그러한 상대를 마주하고 있자니 불안감과 두려움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춰 서 있을 때는 아니지 않은가.
어떤 식이든 간에 반드시 살아 돌아갈 것이다.
‘아직 장원도 다 짓지 못했고, 소미한테 단 공자를 함께 기다려 준다고도 이야기했고, 또 할아버지한테 배울 것도 많고…….’
여러 가지 생각을 이어 가며 결심을 굳혔다.
그녀의 눈빛에 살고자 하는 희망이 깃들었다.
“호호호, 좋구나, 좋아! 그 여우 년보다 더 좋은 눈빛이다. 그 눈동자도 참 탐이 나는구나. 뽑았을 때 어떤 식으로 울려나?”
그러한 목소리를 들으며 남궁소혜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검을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변태 새끼.”
* * *
비천웅은 기이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방에 낀 안개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검격 소리는 여전하지만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려는 무리는 없었다.
안개를 만들어 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본디 가지고 있는 목적을 조금 더 확실하게 받아 가겠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 하나 담장을 넘어 들어오는 기척이 없다.
심지어 저들 무리를 이끌고 있는 이의 기척조차 없었다. 이는 결코 좋다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슴츠레 눈을 뜬 비천웅이 가볍게 몸을 날리며 담장 위로 올라섰다.
“뭐야? 왜 안 지키고 거기서 놀고 있냐?”
담장 밑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적무성이 보였다. 그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엎어져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비천웅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두머리를 찾는다.”
“지금?”
“그래.”
적무성이 멍한 표정으로 비천웅을 바라봤다.
그야 찾을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테지만, 어떤 기척도 없고 심지어 이렇게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는 상황이다.
상대의 계획조차 알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장원을 비워 두는 것은 최악의 한 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냐?”
“너희들이 지켜라. 무슨 일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고.”
“야 이 미친놈아!”
비천웅은 그러한 말을 남기며 훌쩍 사라졌다.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적무성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천과 사도학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그가 사라져 버렸으니,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적무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안개가 잔뜩 꼈는데 뭔 신호를 어떻게 보내라는 거야?”
신호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적무성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썼다.
그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담장을 넘어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하다못해 자신이라도 그곳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 * *
촤악-!
“윽!”
남궁소혜는 신음을 삼키며 비틀거렸다.
얼마나 많은 칼을 맞았는지 온몸이 피투성이다. 옷은 반쯤 찢겨 나가 맨살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으며, 곳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흥건하게 땅을 적셨다.
기실 서 있는 것도, 버티고 있는 것도 신기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려하군이 남궁소혜를 가지고 놀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한 수만으로 충분히 죽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볼 때 틀림없이 상대를 조롱하고 나약한 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결코 얼굴은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얼굴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호호호, 어디어디, 이렇게 하면 어떤 춤을 출까?”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푹!’ 하며 어깨로 무언가가 쑤시고 들어왔다.
“아아아악!”
남궁소혜가 고함을 내지르며 주춤거렸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어깨에 꽂혀 있는 것을 붙잡아 빼냈다.
나뭇가지.
칼도 아닌 고작해야 자그마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상대를 농락하다니?
보통 실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였으며, 그 사실을 남궁소혜는 당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으윽……!”
남궁소혜는 호흡을 고르며 비틀거렸다.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어느새 떨어트려 보이지 않는다.
짙은 안개 탓에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혹여 있을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여 가지고 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보통의 단검보다 날이 제법 길었는데, 단순한 위협용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날이 갈려 있는 물건이다.
“오호, 그건 비천웅에게 배운 것이냐? 그렇지, 짧은 단검은 확실히 들어가지 않는 이상 살상력이 낮아. 그래도 한 뼘은 더 들어가야 사람을 죽이지.”
려하군의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평범한 단검보다 한 뼘 정도 더 긴 것은, 확실히 상대를 해하기 위함이다. 짧은 단검은 정확한 급소가 아니면 실제로 살상력이 좋다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도 말이다.”
려하군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움직였다.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은밀히 접근한다.
어느새 남궁소혜의 곁으로 나타난 그가 이번에는 오른쪽 가슴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실력이 비슷해야 통하는 법이란다.”
그러한 말을 하며 웃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식으로 울음을 터트릴까 하는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궁소혜가 몸을 비틀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을 지켜본 려하군이 깜짝 놀라 칼을 비틀어 올렸다.
얼굴만큼은 반드시 온전하게 손에 넣고자 하는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려하군의 표정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지? 그러한 의구심이 가득했다.
동시에 치고 들어온다.
남궁소혜의 단검이 그대로 려하군의 목을 찔렀다.
캉!
그러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다.
고강한 무예를 지닌 이일수록 몸 전체에 두르고 있는 호신강기는 수준 낮은 이들이 결코 뚫을 수 없는 견고함을 자랑했다.
“호호, 좋은 한 수이기는 했지만 안타깝구나!”
기습적인 한 수에 당할 뻔했던 려하군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짓는 그 순간.
남궁소혜가 그대로 려하군을 향해 돌진했고, 그 찰나의 순간 방심하며 웃고 있던 그는 그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혹은 그녀가 무슨 짓을 한다 하여도 자신에게 상처 하나 줄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푹!
“커억!”
남아 있던 칼날이 려하군의 목을 꿰뚫었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을 텐데도 칼날은 너무나도 쉽게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목을 꿰뚫은 이후 칼날은 마치 그제야 호신강기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 스르륵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커커컥!”
려하군이 목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단 공자가 그러더군요. 강자일수록 방심하고, 방심할수록 허점이 드러난다고. 호신강기가 만능처럼 보이나요?”
이것은 남궁소혜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으면 어떤 상황이라 하여도 칼날이 몸에 닿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우현의 가르침은 그러한 것들을 모조리 부정하였다.
“안타깝지만 호신강기도 만능이 아니라는 거죠.”
물론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기에 그 기회를 노리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남궁소혜는 오늘 천운을 가져다 쓴 것처럼 운이 좋았다.
“그리고…… 당신 냄새, 너무나도 독해요. 조금만 집중하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몸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긴 했지만, 그것도 계속되면 아무리 저라도 느끼겠죠?”
부들부들 목을 부여잡고 거칠게 떠는 려하군은 믿을 수 없는 시선을 보냈다.
천하의 려하군이, 선인의 경지조차 도달하지 못한 이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는 산군(山君)이 개미에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궁소혜는 피를 흘리며 부들부들 몸을 떠는 려하군을 바라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그녀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