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
추방지는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주들의 말대로 남궁소혜로 추정되는 인물이 우아하게 검격을 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수많은 문도들 사이를 누비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라는 수식어가 절로 어울리는 자태였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오롯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저자는……?”
주먹을 움켜쥔 그가 눈에 불을 켜며 한 사내를 응시했다.
장삼태.
흑도회를 몰락시킨 흉수와 한패일 가능성이 농후한 사내였다.
흑도회가 무너진 후부터 지금까지 놈을 찾아내기 위해 했던 짓들을 생각하며 지긋지긋했다.
칠각문 문주에게 역용술까지 가르치느라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이놈! 드디어 찾았구나!”
바득바득 이를 간 추방지가 거칠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기, 기다리시오! 추방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봐야 하오!”
“보면 모르는가? 그대들이 여태껏 추진해 온 일이 딱 걸렸다는 말이지. 흐흐흐.”
“크윽……!”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저들만 죽이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리고 잊지 않았겠지?”
“……저놈 말이오?”
“그래, 이 자리에서 저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내 도움은 바라지도 말게나.”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남궁소혜 직접 들이닥친 이상 무림맹 또한 이번 일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렇기에 당장 돈을 들고 도망을 치려 했던 이들은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자신들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고, 상대는 고작해야 네 명뿐.
더군다나 저곳에 있는 사내를 죽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추방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할 수 있는 선택이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나서야 했다.
추방지가 없는 그들은 그저 힘없는 중소 문파의 문주일 뿐이었으니까.
* * *
‘정말이었구나.’
카카카캉-!
남궁소혜는 빠르게 검을 놀리며 상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쳐들어왔다 하여 미안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 이들이 펼치는 검술은.
조금 전 보았던 그 복면인들과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아편 밀매와 관련된 게 분명했다.
이들의 무공은 제법 묵직하고 강했다.
예전이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테지만, 단우현을 만난 이후로 변해 버린 그녀의 검날은 더욱 날카로웠고, 빈틈을 노려 상대를 확실하게 제압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촤촤촤촤악-!
그녀는 베고, 또 벴다.
누구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다.
삼도회를 이루는 세 문파는 무림맹에 가입되어 있는 곳. 그런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무림맹에서 징벌해야 함이 마땅했다.
권무진이나 장삼태보다 더 힘을 내어 움직여 한 사람이라도 더 쓰러트리는 것이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목적이었다.
‘그렇게 아니길 바랐는데!’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깨문 입술에선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무림맹은 정파의 상징.
그곳에 가입된 모든 문파는 그 이름에 걸맞은 도리를 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림맹이라는 단체가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한데, 정파의 탈을 쓰고 이렇게 추악한 악행을 저지르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분이 치솟았다.
그녀의 검이 한층 날카롭게 변하며 빠르게 주위를 휩쓸었다.
남궁세가의 절기가 꽃을 피웠고, 우아한 그녀의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들었다.
“앞에.”
카캉-!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소혜는 재빠르게 앞을 바라보며 몸을 숙였다. 그러곤 빠르게 좌에서 우로 검을 움직였다.
서서걱-!
두 사람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남궁소혜는 방심하지 않고 물러서며 다시금 기수식을 취했다. 이런 난전에서는 잠시 내보인 방심이 곧 목을 달아나게 하는 법이었다.
카카캉-!
사방에서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칼날과 주먹을 막아 내며 남궁소혜의 검이 빛을 발했다.
번뜩이는 섬광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열세 개의 검로가 그어졌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의 신위였다.
“고마워요.”
남궁소혜는 조금 전, 경고해 준 목소리의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보다 저기를 보아라. 드디어 나온 것 같구나.”
단우현의 말대로 네 명의 인물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세 명은 틀림없이 삼도회를 이루는 문주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보았더라?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가던 남궁소혜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추방지!”
“크흐흐, 봉황단주라면 이 노부의 얼굴을 알고 있을 만도 하지. 그래, 남궁천은 잘 있느냐? 슬슬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통 소식이 없다구나.”
“닥치지 못해!?”
남궁소혜가 노성을 터뜨리며 이를 갈았다.
이 모든 이들의 뒤에 추방지가 있다면 그 괴상한 아편의 정체 또한 어느 정도 아귀가 들어맞았다.
추방지가 만들어 낸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다른 약들보다 몇 배 이상 효과가 좋은 데다, 한 번이라도 흡입하는 순간 끊을 수 없는 중독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삼태야.”
“예?”
세 명의 인물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단우현이, 한쪽에서 숨을 헐떡이는 장삼태를 불렀다.
그가 부리나케 뛰어오더니 단우현이 가리킨 세 사람을 바라봤다.
“저놈이다.”
“저놈 말입니까?”
“가운데 있는 놈. 역용술을 사용한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다.”
“저놈 말입니까?”
장삼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가락질했다.
가운데 있는 이를 향해 말이다.
“그래. 저놈이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장삼태는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역용술의 흔적 따위 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지만, 가운데 서 있는 놈은 뭘 잘못 먹은 것인지 눈은 시뻘겋게 핏줄이 일어나 있었으며, 온몸의 근육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우락부락했다.
왠지 덤비는 순간 죽을 것 같았다.
“저놈을 잡아야지.”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장삼태가 숨을 삼키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를 쳐다보는 단우현의 눈빛이 매우 살벌했으니까.
‘지가 하면 더 빠르면서 꼭 나한테 시켜. 시벌…….’
그렇지 않아도 힘든 상황에 저런 무식한 놈과 붙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슬쩍 권무진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오른쪽에 서 있는 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고, 남궁소혜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지들 멋대로 상대를 정하고 지랄들이야?’
장삼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중심에 서 있는 것만 보아도 저 세 놈 중 가장 강한 것 아니겠는가?
당연히 그의 걸맞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 나서야지.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지만, 미소 지은 입가만 보였다.
“다리가 튼실한 것이 제법 경공에 자신이 있어 보이는구나.”
“경공이요?”
“그래, 하지만 경공은 누가 더 빠르지?”
“……저 아닙니까?”
“그래, 이곳에선 나 다음으로 네가 빠를 거다.”
“……!”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장삼태는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힘이 솟았다.
단우현은 결코 허언을 하지 않았으니까.
“제가 하죠! 제 얼굴을 팔았으니 제가 해야죠!”
“그래, 죽을 것 같으면…….”
“죽을 것 같으면?”
“그냥 들이받아라.”
결국엔 죽을 생각으로 싸우라는 소리였다.
급격히 의욕이 상실되었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 장삼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놈! 네놈이로구나! 흑도회를 몰락시킨 장본인이!”
그때,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절규에 가까웠던지라 단우현은 듣기 싫은 듯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썼다. 추방지가 단우현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저, 장삼태란 놈이 굽신거리는 것을 보니 틀림없다! 네놈, 네놈이였어!”
“시끄럽다, 노괴.”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다!”
“시끄럽다 하지 않나.”
단우현은 인상을 썼다.
쇠를 긁는 듯한 추방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말투가 몹시 거슬렸다.
“나의 안식처를 빼앗고! 내 가족들을 죽이고! 나의 모든 것을 빼앗은 녀석이 네놈이로구나!”
“노괴…… 입 다물어라.”
기이한 바람이 불었다.
시뻘건 바람이 추방지의 주위에 머무는 것이 단우현의 눈에만 보였다.
단우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붉은 바람은 재앙을 몰고 다니는 자들을 상징했다.
그것은 곧 단우현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악연으로 똘똘 뭉친 자.
오랜만에 보는 그 바람에 단우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더 이상 악연을 쌓고 싶지 않았건만, 결국 또다시 붉은 바람을 보게 되었다.
이 또한 운명인가?
“어서 놈을 죽여라! 사지를 찢어발기고, 네놈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부숴 주마!”
“도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가늘게 눈을 뜬 단우현의 손에 자그마한 바람이 머물렀다.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현상에 모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이어서 단우현의 손을 떠나간 바람이 유유히 추방지의 몸에 머물렀다.
이윽고!
콰콰콰쾅-!
“끄아아아악!”
그것은 곧 태풍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추방지의 온몸이 마치 수백 개의 칼날 속에 던져진 듯 난자되어 살점 하나 남기지 못했다.
산산조각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펼쳐진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모든 이들이 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사람이 어찌 저런 무위를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마, 말도 안 돼!”
“…….”
“어찌 이런 일이…….”
사람의 경지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모든 이들이 자각했다.
그렇기에 벌벌 떨었다.
단우현에 대한 공포가 각인되었고, 또한 그에게는 어떠한 술수도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세 명의 문주들은 몸을 굳힌 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저 사내의 눈빛이 자신에게 향할까 너무나도 두려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