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1
“이거 정말 엄청나군…….”
전각 앞에 서 있는 유백은 호흡을 골랐다.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한기는 도가 지나칠 정도다. 저러한 곳에 갇힌 사람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이것이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던 만년빙정의 힘이라 생각을 하니, 유백은 괜한 두려움이 몰려들어 저도 모르게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는 순간 얼음덩어리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퉤 하고 침을 뱉은 천무광이 인상을 썼다.
내뱉은 침은 어느새 얼음이 되었다.
그나마 아직은 버틸 만한 상황이기는 하였지만, 만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제대로 공력을 이용해 몸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일다경은커녕 찰나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곳은 류태서가 아니라면 누구도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만년빙정의 힘은 지나칠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럴 만했다.
자신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으러 가는 상황이나 다름없다.
목숨만 희생되고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 느껴지는 극한지기를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탓이다.
“할 거지?”
천무광이 힐끗 남주련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마치 그녀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남주련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안 하면 안 하실 건가요?”
“아니, 그래도 들어간다.”
천무광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자신은 현 상황을 어찌할 수 없다.
재수 없는 천무제 놈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어차피 그놈에게 희생당할 목숨이라고 한다면, 단우현을 위해 바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후우-’ 하며 숨을 고른 천무광이 유백을 바라봤다.
질끈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그가, 그 상념을 끝냈는지 다시금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
유백은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이러한 일을 위해 자신이 살아 있었다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과 말투에 각오가 깃들어 있으니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다잡은 천무광이 문고리를 잡았다.
그것을 잡는 순간부터 공력을 끌어올리며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연다……?”
“빨리 열어, 이놈아!”
뜸을 들이며 문을 열지 않는 천무광을 보며 유백이 언성을 높였다. 기왕 할 거면 망설임 없이 해치워야 하는데, 뜸을 들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껏 인상을 쓰며 그 소리가 까랑까랑 울려 퍼지자, 천무광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사아아악!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극한지기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사람이라 한들 단박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그것. 숨결마저, 시간마저 얼려 버릴 것 같은 한기다.
“윽……!”
“어서 들어와라. 그리고 확실히 문을 닫아야 할 거야! 안 그랬다간 저기 널브러진 놈은 그대로 얼어 죽을 테니 말이다. 하하.”
유백의 말에 남주련은 숨을 삼키며 더욱 공력을 끌어올렸다.
몸을 보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살과 뼈를 얼려 버릴 것 같은 한기를 모조리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질끈 입술을 깨문 그녀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서는 유백을 따랐다.
세 사람의 시선 끝에는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있었다. 칼을 휘두르는 모습 그대로 얼어붙은 채,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습이다.
그 중심에는 만년빙정으로 추정되는 것이 보였는데, 어떤 식으로든 밖에서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
그것을 확인하며 남주련은 쓰린 속을 삼켰다.
아주 오래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또한 그것을 깨부수고 다시금 단우현이 나타났을 때, 두 번 다시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나 천무제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그저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남주련은 생각하며 마음을 다졌다.
‘반드시…… 꺼내 드릴게요.’
그러한 마음을 다잡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때, 세찬 한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으니 지체할 생각은 마라. 우리에게 주어진 건 일다경이다.”
유백은 남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은 일다경.
그 시간이 지난다면 아무리 이 셋이라 한들 만년빙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도 못하고 얼음덩어리가 되어 숨을 거둘 터이니 그만한 개죽음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남주련과 천무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섰다.
세 사람은 단우현이 갇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준비를 시작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기 위한 준비.
그들의 시선에는 비장함이 깃들었다.
이윽고.
“시작하자.”
세 사람의 기운이 넘실넘실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 * *
장삼태는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골이 얼얼한 것이 절로 신음을 흘리게 했다.
“망할…….”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보는 순간 추위는 미친 듯이 몰려와 그를 괴롭혔다. 불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기를 느끼다니?
그만큼 주산군도의 상황이 좋지 않음이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마나 오래 혼절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슬쩍 창밖을 바라보니 달은 여전히 떠 있다.
모닥불이 꺼지거나 탄 흔적을 보아하니 오랫동안 혼절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잡것들이!”
장삼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무광을 비롯하여 남주련과 유백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으니, 그것을 뜯어말리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다.
아픔을 눌러 참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극한지기는 더욱 그를 괴롭히듯 몰려들었고, 이제는 뼈마저 얼어 버릴 것 같았다.
그제야 유백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시진이라 했지?”
그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이곳을 탈출해라.
그 경고가 머릿속을 자극했지만, 말을 따를 이유는 없다. 애초에 단우현을 데리고 나가지 않는 이상 장삼태는 그 어디로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처음 이 여정을 떠날 때 말하지 않았던가?
서로 누군가 죽거나 움직이지 못한다면 반드시 챙겨 가자고.
장삼태는 그 말을 지켜야 한다.
단우현과의 약속을 위해서, 또한 단소미를 위해서.
심지어 단우현이 죽었다는 보장조차 없는 상황이니, 그를 살려 데려가고 싶고 이곳에서 누구 하나 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가 억지로 발을 내디디며 전각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으로 가면 갈수록 추위는 더욱 심해져 갔다.
온몸이 어는 감각.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 서 있는 것인지, 그러한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며, 흘러나오는 콧물은 어느새 얼어붙었고, 입안에 고인 침마저 입을 여는 순간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미친 짓이지, 진짜!”
장삼태가 욕을 하며 인상을 썼다.
하루라도 빨리 네 사람을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정말로 모두 얼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의 마음은 조금 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전각 앞에 선 장삼태는 호흡을 골랐다.
주변에는 세 사람이 움직인 흔적들이 보였는데, 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소리도 없고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더욱 그의 마음에 조급함을 끄집어냈다.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쉰 장삼태가 마음을 먹고 문을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악?!”
문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엄청난 한기가 손아귀를 타고 올라왔다. 만약 그대로 손가락을 떼지 않았더라면, 한기는 장삼태를 집어삼킨 채 얼려 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망할 것!”
장삼태가 손을 흔들며 인상을 썼다.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손을 대는 것이 불가능하니 짜증이 치솟았다. 있는 대로 공력을 이용해 문을 후려쳤지만, 전각은 마치 무언가가 지키고 있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무신을 가두기 위해 천무제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 쉽게 부서질 것이었다면 만들지도 않았을 터.
그러한 것들을 알 리 없는 장삼태는 전각 앞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어야만 했다.
“어쩌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조차도 인지할 수 없으니 마음은 계속해서 조급해져만 갔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거다.
이 문을 열 수 있는 그러한 것 말이다.
장삼태는 전각을 벗어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 수 있는 도구를 찾기 위함이다. 하다못해 두꺼운 천이라도 있으면 손을 감싼 뒤 문을 열 수 있을 테니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배회를 하고 있는 사이, 해변 쪽에서 기이한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누구…… 지?”
또 다른 이가 찾아온 것인가?
단순한 짐승의 그림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삼태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거침없는 행동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한 불안감이 깃들었다.
장삼태가 인상을 쓰며 슬그머니 그를 향해 다가갔다.
“뉘쇼?”
몸을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묻는다.
애초에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들은 한정적이다. 대부분이 장삼태보다 수준 높은 자들일 테니, 굳이 몸을 숨길 필요조차 없었다.
숨는다는 행동 자체가 의미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 이윽고 달빛 사이로 드러난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장삼태는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뻘건 머리카락과 눈동자.
사람이라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괴했다. 또한 몸에서 풍겨 오는 기세 역시 사이함이 가득하여 결코 좋은 의미로 찾아온 이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평소 간 크기로 유명한 장삼태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는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가오고 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장삼태를 보았음에도,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표정은 태연하고 걷는 걸음 또한 멈추지 않았으며, 경계를 하는 듯한 시선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걸었다.
그때, 장삼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점차 가까워지는 이를 바라보곤 질끈 눈을 감았다. 무언가 생각을 한 듯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천천히 눈을 뜬 장삼태는 결심한 듯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누구시냐니까?”
그가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마치 그러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결코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반드시 이 자리에 멈춰 서게 해야 했다.
하지만 사내는 장삼태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기다려…… 컥!”
장삼태가 그 사내를 향해 손을 뻗으려 하는 순간,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주먹이 날아들어 복부를 후려쳤다. 한순간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암흑이 찾아왔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우웩!”
사내는 토악질을 하는 장삼태를 벌레 보듯 쳐다보며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