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3
“그런데 짧은 사이에 많이 늘었구나.”
“짜…… 짧은 사이라니요? 벌써 몇 달이 흘렀구먼.”
장삼태의 말에 단우현이 신음을 삼켰다.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의식 자체가 없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몇 달이라…….”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 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아는 이들은 모조리 죽어 사라지고, 홀로 남은 그 역겨운 감각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그사이 많이 늙었구나.”
“아니! 수개월이라니까요, 수개월! 몇 년이 아니라고요! 늙은 뭘 늙어, 이 인간아?!”
장삼태가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는 억울함이 가득한 한마디다.
느닷없이 깨어난 그에게 온갖 반가움을 다 표했건만, 자신에게는 늙었단다.
고작해야 수개월이 흐른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그사이 겪은 고초로 인하여 늙어 보이기는 할 수 있을 테지만 팍 삭은 것은 아니다.
장삼태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그가 피식 하고 웃는 것이 보였다.
그 웃음 때문인가?
장삼태는 화를 삭이고 숨을 골랐다.
“그건 그렇고 안에 들어가 있던 세 분은 어찌 되셨습니까요?”
“세 분?”
“예, 장주님 꺼내겠다고 들어가셨는데 말입니다요.”
단우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한 이들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돌려 전각을 향해 다가갔다. 내딛는 발걸음은 순간적으로 이동을 하는 듯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다.
뒤에서 헉헉거리며 장삼태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 달려오던 그가 무언가를 발견하였는지 그대로 우뚝 선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단우현이 갇혀 있던 전각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파편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흩뿌려졌으며, 주변은 커다란 구덩이가 파인 채로 마치 수백 발의 포탄이라도 맞은 모양새다.
만약 저곳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천무제가 만들어 놓았던 만년빙정의 힘을 억누르고 있던 전각조차 가루가 되어 사라졌는데, 사람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니었을 테니까.
“누가 왔었느냐……?”
단우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 소리는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다. 장삼태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 뭐시다가…… 유, 유백이라는 어린놈하고 천무광, 남주련이었습니다요.”
“…….”
단우현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의식조차 없었던 와중에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호통을 치며, 혹은 도발을 하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기에 의식을 되찾고 나올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세 사람이 모든 선력을 털어 넣었던 모양이다.
만년빙정이 있는 곳에서 선력을 모조리 사용했다는 것은 곧 순식간에 얼음덩어리가 된다는 말과 같았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단우현의 힘이 세 사람의 형태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린 것이다.
“다…… 날려 버렸습니까요? 생명의 은인들을?”
“…….”
“미…… 미쳤어! 정말 미치셨습니까요?!”
장삼태가 어이없어 하며 소리쳤다.
자신을 구해 준 이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린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 줘야 하는 상황인데 가루로 만들었단 말인가? 당황한 시선이 역력하였고 또한 단우현에 대한 실망감마저 들었다.
단우현이 슬쩍 미간을 부여잡고 끄응 신음을 삼켰다.
이윽고 무언가를 생각해 냈는지 반짝 눈을 빛냈다.
“괘…… 괜찮다. 진짜 육신은 본디 다른 곳에 있는 존재들이니까.”
“……그렇게 핑계 대고 넘어가는 겁니까요?”
“시끄럽다. 그런 줄 알아라.”
장삼태는 단우현의 모습이 기이하다 여겼다. 구해 준 이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고도 태연한 느낌. 혹여, 자신에게도 그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람의 감정이 없는 것인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는 그 찰나.
단우현의 주위로 부드러운 바람이 몰려들었다.
“잠시 쉬고 있거라.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테지.”
뜬금없는 말을 한다.
완벽히 사라진 이들을 향해 내뱉을 법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가? 마치 그들이 대답하는 것처럼 새로운 바람이 불며 주위를 감싸 안았다.
그 기묘한 현상들이 장삼태에게 있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 그간 어찌 되었느냐?”
“모릅니다요.”
“응?”
“아니, 여기를 나갈 수 있어야 뭘 알지요. 나가지도 못했는데 제가 어찌 압니까요?”
단우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만년빙정의 영향으로 얼음이 되어 버린 시체들이 곳곳에 보였다.
지난번 그가 죽였던 이들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시체들도 있다.
이는 즉, 살려 놓았던 이들을 장삼태가 모두 제압했다는 뜻이니, 그의 실력이 오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바다가 잔잔해졌다고는 하지만, 배조차 몰지 못하는 장삼태가 그것을 끌고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셈이다.
단우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로구나.”
“뭘 안 합니까? 여기서 눈사람 되어 버린 장주님을 지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장삼태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억울한데 계속해서 저리 말을 하고 있으니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든 것이다. 하지만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단우현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부드럽다는 것을.
또한 평소에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이가 은근히 말이 많아졌다.
이는 단우현의 기분이 몹시 좋음을 뜻했다.
장삼태가 힐끗 그 얼굴을 바라보다 히죽 웃었다.
“이 삼태를 만나 좋으면 좋다고 하십쇼. 왜 그렇게 빼십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하하! 뭐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호남으로 가시렵니까요?”
단우현은 잠시 뜸을 들였다.
호남단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이대로 천무제를 놔두고 돌아가기에는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언제 다시 습격을 해 올지 모른다.
또는 어떤 이들이 희생당하게 될지 모른다.
결국 이 일의 끝을 봐야 함이 맞을 것이다.
‘어디에 있으려나…….’
단우현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천무제는 누구보다 몸을 숨기는 것에 능하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가 머무는 장소를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곳이 있기는 했다.
이곳에 찾아와 깨달은 것이 있다.
주변을 메우고 있던 공기, 그리고 기운.
이와 비슷한 것을 느꼈던 곳이 딱 한 군데 있지 않았던가?
물론 느낌만 있었고 무언가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곳이라면 이 주산과도 멀지 않고 몸을 숨기기에는 그 어떤 곳보다 적당했다.
단우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슬며시 웃었다.
“가야 할 곳이 있다. 네놈은 호남으로 먼저 돌아가거라.”
“예?”
“듣지 못하였느냐?”
장삼태가 끄응 하며 미간을 짚었다.
이러한 말을 몇 번이나 들어 본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장삼태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지그시 단우현을 응시했다.
“저는…….”
“이번에는 정말 죽는다.”
“…….”
순간 장삼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진지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시선.
어떠한 말을 해도 단우현은 들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심한 표정에는 무게감이 가득 서렸으며, 표정으로 내비치는 위압감이 무겁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 * *
사아아아―
공기가 달라졌다.
조용히 누워 있던 천무제의 주변으로, 지금까지 흐르지 않았던 공기가 흐르듯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을 뭐라 말을 해야 좋을까?
방 안을 맴돌고 있는 바람은 평소와는 달랐다.
누워 있던 천무제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류태서가 긴장 어린 시선을 보냈다.
마치 무언가를 예상한 사람처럼 손에 땀을 쥐었다.
이윽고 시체처럼 누워 있던 천무제의 눈이 번뜩 뜨였다.
동시에 사방으로 휘몰아친 기운들이 소용돌이처럼 주변을 휘감더니 이내 천무제의 코와 입으로 몰려들었다.
천지의 기운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곧 천천히 그의 몸이 떠오르더니 이내 가부좌를 틀었고, 서서히 자리에 내려앉았다.
“허허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무제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단우현의 칼을 맞고 죽어 가던 이의 음성이 아닌, 완벽하게 되살아난 사람처럼 생기가 있는 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어나셨습니까, 형님?”
“허허, 그래…… 오랜만에 눈을 뜨니 기분이 색다르구나.”
경지가 한층 더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뜨고 생기 있는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층 더 성장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류태서는 그러한 천무제의 마음을 아는지 고개를 숙였다.
“완쾌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고마워. 한데 왜 자네들뿐인가?”
천무제가 류태서와 그 뒤에 서 있는 이를 힐끗 바라봤다. 고작 한 사람이다. 본디 천무제를 따르고 있던 다른 선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류태서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알 것 같다.”
천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몹시 한탄스러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누구도 지켜 주지 못했고 누구도 안아 주지 못했다. 그저 장기판에 있는 말처럼만 생각하였지만, 그들이 모조리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상실감이 들었다.
하지만 딱히 연연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장기짝은 언제라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쾌차하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 그래, 자네의 마음은 다 알고 있지.”
천무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류태서의 뒤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이윽고 손을 뻗는 순간 사내의 몸이 쭉 빨려 들어왔다.
그 머리가 천무제의 손에 닿는 순간.
“끄아아아아악!”
사내는 괴성과 함께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사내의 몸에 흐르는 진원진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듯 서서히 몸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제대로 된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채 목내이가 되어 버렸다.
“혀…… 형님…….”
류태서가 당황하여 천무제를 바라봤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마저 죽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들어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걱정하지 말게나. 선력이 다소 모자랐기 때문이니……. 이런 놈들이야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 그렇긴 합니다만…….”
자리에서 일어선 천무제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툭툭 가볍게 옷을 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그래,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어디 들어나 봄세.”
류태서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신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