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4
류태서는 천무제가 잠든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입에 담았다.
기실 원하는 것을 제대로 손에 넣지 못했던 탓에,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두려운 마음이 들었으나, 어떠한 사실조차 숨기지 않고 내뱉어야 했다.
그것은 두렵지만 천무제를 누구보다 믿고 있는 그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렇군. 그러한 일이 있었는가?”
천무제는 인상을 찌푸렸다.
기껏 회수한 천환옥을 쓸 수가 없다니. 그 계집아이가 가지고 있는 천일조화공이 아직까지 완벽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을 채우기 위해 구미호의 뒤를 쫓았다 하였는데, 그조차 완벽하게 종적이 사라졌으니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천무제는 이러한 사실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힐끗 류태서를 바라봤다.
책망의 시선이 가득했다.
“소…… 송구합니다.”
“아니, 아니라네. 그럴 수도 있지.”
허허 하며 천무제는 웃음을 지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다. 또한 이번 일은 처음부터 천무제가 주도했던 것이니 만큼, 자신의 실책이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것을 굳이 류태서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수하들이 없다는 것도 한몫하기는 하였지만, 만약 다른 누군가가 있다 하여도 류태서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주산군도로 간 녀석에게는 연통이 없는가?”
“아직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녀석이 해결을 했다 해도 연통을 할 녀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천무제는 무언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 녀석보다 더 좋은 근골. 본래라면 그가 혈마가 되는 것이 천무제의 계획이었다.
잘만 키워 놓는다면 무신을 견제하기에 그만한 자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원체 재능이 좋은 탓인지 반선경을 밟아 버리는 통에, 새로운 혈마를 구하고 그를 곁에 두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반선경을 밟았다는 것은 그만큼 쓸모 있음을 입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제멋대로인 데다가 제 스스로가 강자임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한 사실 하나하나가 몹시 마음에 걸려 언젠가는 정리를 했을 녀석이기도 했다.
‘죽었을 테지. 천무광과 남주련, 그리고 유백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그릇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다못해 셋 중 하나라도 보냈으면 제 역할을 다한 것인데…….’
최악의 상황은 있다.
셋 중 누구도 죽이지 못했을 경우.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무신이 깨어났을 경우.
물론 만년빙정의 힘을 이용한 봉인이었기에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률이라 함은 십 할 중 일 할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 할 전부가 아니 된다 말을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확률로 생각을 해 보았을 때, 무슨 수를 쓴다 하여도 단우현을 되살리기는 힘들 것이고, 오히려 제 목숨을 버리는 상황이 될 것이다.
“손 놓고 떡을 먹은 격이로군.”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네.”
천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떤 식이든 간에 결국 그들이 무신을 되살릴 수 없고, 그러한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니 천무제에게 있어 나쁜 결과는 아니다.
“그럼 호남단가로 가시렵니까?”
“아니, 지금 눈을 떴다고는 하지만 몸이 완벽한 것은 아니라네. 잠시 시간을 주게나.”
“알겠습니다.”
류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느낌이었지만 아직까지 그 기운이 제대로 갈무리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한 시기만 지난다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무제와 류태서가 움직이는 것이니 만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류태서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 * *
“아니,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그러십니까요?”
장삼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홀로 어딘가로 향하려 하는 그가 굉장히 불안했던 것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기라도 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차라리 모든 것을 접고 호남단가로 돌아가 편히 사는 것이 그 어떤 선택보다 더욱 괜찮아 보였다.
그렇기에 무슨 수를 써서든 막으려 해 보았지만, 단우현의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으며 또한 막아설 수 없음이다.
“되었으니 돌아가거라. 내 직접 해결을 할 것이니.”
“아이고, 답답해라! 그러다가 진짜 잘못되면 제가 소미 얼굴을 어찌 봅니까요?”
“하하, 잘못될 생각을 먼저 하느냐?”
움찔하며 장삼태가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우현이라면 괜찮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주산군도 일을 겪고 나니, 혹여 그러한 일이 또 벌어질까 무서웠던 것이다.
어떤 식이든 무슨 일이든 간에 헤쳐 나올 것이라 믿었던 단우현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었던 그 기억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있거라. 내 금방 돌아갈 테니.”
“어휴…… 정말로 따라가면 안 됩니까요?”
장삼태가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젓는 것을 보며 포기를 해야 했다. 지금까지와는 엄연히 다른 느낌으로 내뱉는 그의 말투와 표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따라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기에 장삼태는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요…… 그럼, 말이나 좀 사 주십쇼. 아, 여비도 좀 필요합니다요. 돌아갈 돈이 없지 않습니까요.”
“…….”
단우현은 말이 없었다.
그저 지그시 장삼태를 바라봤다.
툴툴거리며 거리를 걷고 있는 그는, 최대한 빠르게 말을 타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인 것인지 말을 살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한두 푼인가?
단우현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뛰어가라.”
“에?!”
“산과 들에 먹을 것이 천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요?! 돈 있잖습니까?”
“나도 여정을 해야 하니 모자란다.”
“…….”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신은 써야 하고 남은 쓰면 안 된다는 것인가?
가뜩이나 단우현을 기다리는 데 쓰인 기력과 체력조차 아직 보충되지 않았건만, 경공을 펼쳐 달려가고 사냥을 해 먹을 것을 챙기면 죽으라는 소리와 진배없지 않은가?
“많이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요?”
“으음…….”
단우현은 주섬주섬 품을 뒤적였다.
이윽고 전표로 보이는 것들이 한 뭉치 손아귀에 쥐였다. 적게 잡아도 수백 냥은 될 법한 돈으로 보였기에 장삼태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다.
하지만 이윽고 그 연유를 알아냈다.
젖어 있다.
모든 전표가 젖어 그 쓸모를 잃었다.
전표를 발행한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고 또한 그 금액이 얼마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린 셈이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전낭에 있는 것이 전부다.
짤랑짤랑 소리를 들어 보면 상당히 많은 양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단우현이 그 안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
“걸어가라.”
“…….”
단우현은 말없이 장삼태를 압박했다.
겉보기에 느껴지는 그 양은 상당할 것이다. 그중 절반만 내준다 하여도 호남단가까지 가는 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왜 안 주는 것인가?
장삼태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그것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이것도 수련이다.”
“망할……!”
장삼태가 욕을 내뱉으며 인상을 썼다.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으니 걸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장삼태는 등을 돌려 호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홀로 남은 단우현은 싸늘하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을 느꼈다. 만년빙정을 부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지, 불어오는 바람이 몹시도 찼다.
그것을 느끼고 있자니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얼음 속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던 천무제.’
천무제는 어리석다.
자신의 계획을 위해 많은 것들을 움직이고 그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고 있기는 하였으나, 언제나 모든 것들이 그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천무제의 뜻대로 모든 것들이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단우현이 몸소 보여 줄 것이다.
“얼마나 걸리려나?”
단우현의 시선이 서쪽을 향했다.
어딘가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날짜를 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그가 피식 웃었다.
“열흘이면 족한가?”
단순히 평소처럼 걷는다 하여도 그리 멀지 않다. 그렇다면 빠르게 간다면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되니, 어느 쪽이든 간에 순식간에 결판이 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여 단우현은 다소 느긋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앉아 검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처음이지 않은가?
눈을 뜬 직후 이렇게 제대로 손질을 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날은 여전히 상하지 않았으며, 그 반짝거림은 도가 지나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검 또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단우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빛을 더욱 번뜩거리며 단우현의 마음을 대변했다.
“처음 너를 얻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단우현은 웃었다.
전 중원을 뒤진다 하여도 발견할 수 있는 이는 극소수. 그것이 바로 만년한철이라는 것이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얼음덩어리에 갇혀 있었음에도 녹슬지 않고 멀쩡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구해 준 것은 미호였던가?
사냥꾼의 덫에 걸려 죽어 가던 여우 한 마리를 살려 준 것이 계기가 되었고, 그 여우가 은혜를 갚기 위해 만년한철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것 역시 어쩌면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슥슥-
깔끔한 천으로 칼날을 닦아내며 단우현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은 떠올려 본다 한들 후회할 것들만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 만난 인연 하나하나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놓았음은 분명했다.
그런 상황만 놓고 보자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천무제일지도 모른다.
그가 얼음 속에 단우현을 봉인하였기에 단소미를 만났으며, 지금 호남단가를 지키고 있는 자들을 곁에 두었다.
하여 원한을 갚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러한 것들은 깔끔히 잊힐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까.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단장을 새로 하고 검을 갈무리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검날을 집어넣고 마음을 다잡으며 또다시 생각했다.
“그래, 원한을 갚고자 함이 아니다.”
단우현은 안다.
이미 원한은 없다.
천무광이든 남주련이든 유백이든, 또한 천무제의 계획으로 인해 죽어 간 이들의 복수를 하고자 함 또한 아니다. 복수라는 것은 단우현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한과는 다르게 끊어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천무제와 단우현은 끊어야 할 인연이 있다.
그래야만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먹었으니 앞으로 나아간다.
이 기나긴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삶을 지켜 내기 위한 여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