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99
“조용하군…….”
“평화로워 좋다고 해라, 이놈아.”
호남단가 주변은 실로 조용할 날이 없다. 어느새 꽁꽁 얼었던 겨울이 한 걸음 물러서고, 굳게 얼었던 땅마저 풀려 슬슬 봄 농사를 지어야 할 시기다.
호남단가의 사람들 대부분이 밖으로 나와 농기구를 들었다.
손에 쥔 것으로 땅을 파고 씨앗을 심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누구 하나 빠지는 이가 없다.
사도학과 남궁천을 기준으로 적무성과 비천웅이 밭을 갈고 있었는데, 이런 이들이 농사일을 시작하니 누구도 발을 뺄 수가 없다.
퍽퍽 괭이질을 할 때마다 아직 덜 풀린 땅이 파헤쳐졌다.
본래라면 소를 이용하기도 할 터인데, 이들은 직접 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그런 네 사람과는 다르게 힘겹게 밭을 메고 있는 이들도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 네 사람에게 시달린 탓에, 온몸에 진이 다 빠져 버린 권무진과 무호 등이었는데, 그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괭이질을 하고 씨앗을 심어야 했다.
그때, 느닷없이 누군가 다가와 권무진의 손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권무진이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니,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는 단소미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시범을 보여 준다.
파헤쳐진 땅에 씨앗을 심고 곱게 묻는다.
그러한 행동들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는 하였는데, 조금 더 꼼꼼하고 깊게 묻어 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 알았다.”
권무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단소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곁에 있는 무호 역시 혼이 나고 싶지 않은 것인지 힐끗힐끗 바라보며 따라 하기 바빴다.
이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기 좋을 정도다.
“어휴, 그건 그렇고 이놈은 어딜 간 거야?”
그때, 적무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썼다.
보여야 할 놈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일을 잘하는 놈인데 어디서 농땡이를 치고 있는 것인지 나타나질 않았다.
호통을 칠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순간, 느닷없이 대문이 열리며 장삼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요! 이제 왔습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장삼태가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얼굴에는 입술 자국이 가득하였고, 여기저기 헝클어진 모습이 가득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사도학이 인상을 썼다.
“미친놈, 매일 그렇게 계집한테 당하니 좋으냐?”
“다…… 당하다니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요! 아들놈 기저귀 갈아 주고 왔습니다요.”
“그런 것치고는 네놈 꼴이 영…….”
장삼태는 순간 손으로 얼굴을 닦아 냈다.
무엇이 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입이 수없이 맞춰졌던 것을 그제야 깨달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어 버리니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사도학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어르신도 장가 한번 가 보십시요. 자식새끼 있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요.”
“네놈은 달라진 게 없는데?”
“에이! 저 좀 성장했습니다.”
히히 하며 장삼태가 가슴을 두들겼다.
벌써 장원으로 돌아온 지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첫 합방을 했을 당시 태어났던 아이는 두 살이 되었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 역시 두 살을 더 먹었다. 단소미마저 성장하여 슬슬 소녀의 자태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니, 세월의 흐름이란 어떤 이라 하여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머저리 같은 놈…… 밭이나 매, 이놈아. 그놈 돌아오면 무슨 소리를 들을까 싶다.”
“…….”
사도학이 툴툴거리며 누군가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아차 싶어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사도학이 사방에서 꽂히는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단우현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떠한 연통조차 없으며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많은 사람이 아직 호남단가에 모여 있는 이유는, 단소미 때문이기도 하면서 그가 아직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보다 무천풍 그 인간은 괜찮으려나 모르겠군.”
무천풍은 떠났다.
장삼태의 스승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호언장담하여 일 년 전쯤 이곳을 나갔으니, 지금쯤 그를 잡았는지 놓쳤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잘 살고 있을 것이란 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천풍이다.
어디서 구걸을 해서라도 잘 먹고 살 놈이니, 굳이 그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잡았든 못 잡았든 간에 잘 먹고 살 녀석 아니던가? 허허허, 배를 곯면 구걸이라도 할 인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남궁천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가 무천풍이다. 배가 고프면 거지라도 털어먹을 놈이니, 걱정 따위는 쓸모가 없음이다.
“그런데 네놈들은 왜 안 가고 여기 처박혀 있는 거냐?”
사도학이 힐끗 시선을 주며 비천웅과 적무성을 바라봤다. 남궁천과 사도학이야 이제는 이곳에 뼈를 묻는다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저 두 사람은 조금 다르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고생을 하려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남궁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두 사람은 남궁천과 사도학과는 다르게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
“아니, 뭐…… 그냥 있으면 안 되나?”
“…….”
적무성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와 반대로 비천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대꾸를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네놈들도 안 가잖느냐?”
반대로 적무성은 걸맞지 않게 볼멘소리를 냈다.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 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밭을 일구고 밥을 해 먹고 평범하게 산다.
물론 호남단가라는 이름이 워낙 커진 탓에, 지금은 함부로 건드는 이들조차 없어 심심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다 같이 모여 함께 웃고 떠드는 것이 인생의 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가 튀는 전장도 싫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싫다.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보다, 장삼태처럼 덤비고 또 동등한 눈빛과 표정을 받는 것이 좋았다.
늙어 그런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변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무성은 지금만큼 편한 상황을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사파로 돌아간다 해도…… 네놈들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잖아.’
사파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파를 집어삼키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시기가 가장 좋다. 오황이라 불리는 놈들은 모조리 잠적을 하였고, 천도회에서 당사휘가 떵떵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적무성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적무성의 생존을 알리고 다시금 무황성으로 들어간다면, 사파는 절대적인 힘을 얻고 만천하에 그 힘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그럼 종국에는 어찌 될 것인가?
비천웅 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고, 사도학과 남궁천이 걱정되어 매일같이 벌벌 떠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살 바에야 지금의 생활이 편하다.
그런 적무성의 생각을 읽었는가?
세 사람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적무성은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힌 듯하였기에 저도 모르게 창피한 듯 얼굴을 붉혔다.
“다녀왔습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면면들이 보였다.
남궁소혜와 제갈연이었는데 말을 타고 돌아온 두 여인들은, 네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왔느냐?”
제일 먼저 반응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두 여인을 향해 달려간 것은 다름 아닌 단소미였다.
단소미는 마치 무언가를 애절하게 바라는 듯이, 남궁소혜의 옷깃을 쥐고 꾹꾹 잡아당겼다.
“그…… 그래, 그게 있잖니…….”
남궁소혜는 ‘하아―’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단우현을 찾기 위해 중원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종적조차 찾을 수가 없으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단소미의 눈빛이 부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순간, 이제는 눈치마저 빨라진 단소미는 남궁소혜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알아차렸는지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 년 동안 그 종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 이 아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또 답답할까?
남궁소혜와 제갈연 역시 미안할 따름이다.
단소미가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으나, 이내 방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단우현을 찾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꼭 남궁소혜와 제갈연의 탓은 아니지 않은가?
단소미는 괜찮다는 듯이 남궁소혜에게 안겨 고마움을 표했고, 이내 쪼르르 장원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아이를 따랐다.
홀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왜 이리도 쓸쓸해 보일까?
“도대체 그 인간은 어디서 뭘 하고 있답니까?”
장삼태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툴툴거렸다.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 죽었으면 죽었다, 하고 연통이라도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걱정시키고 있는 단우현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그때 남아 있었어야 했다니까…….’
뒤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지금 와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설령 남아 있었다고 한들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까 싶기도 하였으며, 반대로 단우현의 발목을 붙잡는 최악의 한 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장삼태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하다못해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만 알아도 좋을 터인데 말일세…….”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단우현을 기다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온갖 정보들을 모으고 확인을 해 보아도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이라 한다면, 언젠가는 장례를 치러야 함이 맞을 테니까.
그것을 아이에게 설명할 생각을 하니, 남궁천은 벌써부터 앞날이 캄캄했다.
“큰일은 아닐 거야. 그놈 일이니 어디서 농땡이라도 피우는 것일 테지.”
그때, 사도학이 ‘흥!’ 하며 콧방귀를 뀌고는 웃었다.
마치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떤 의미에선 그저 한없이 단우현을 믿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대부분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는데, 이유인즉 어쩌면 단우현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놈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감하지…….”
비천웅마저 동조하며 대답하고는 싱긋 웃었다.
무뚝뚝한 그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곁드니 그것 역시 상당히 뜻밖의 일이었다.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무신이라는 존재를 알고 눈앞에서 보았으니,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호남단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 생각하며 희망을 가졌다.
그것을 바라보곤 남궁천 역시 미소를 걸었다.
하나같이 믿음과 신뢰를 보내는 시선.
그리고 그 표정에서 단우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기둥으로써 그 역할을 잘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오황이 한 사람에게 기대는 날이 오다니, 허허허’
남궁천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푸르른 하늘 아래 떠 있는 태양.
많은 이들이 무신을 공포의 대상이며 혹은 경외할 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태양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네?’
남궁천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