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
* * *
최근 홍원창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비적들이 이 마을 저 마을을 건드려 놓은 바람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탓이다.
왕부에서도 닦달을 할 정도인지라 하루 빨리 놈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잡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급기야 비적 두목의 용모파기를 내걸고 현상금까지 걸었다.
무림인들이나 낭인들이라도 나서서 놈들을 토벌해 주면 그보다 감사한 일은 없을 테지만,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장백산 때문이지.’
장백산은 비적들의 우두머리였다.
일류의 무공 실력을 지녀 웬만한 낭인들은 건드리지도 못하는 데다, 말 타는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보다 고수와 붙어 도망치는 것도 잘했다.
하여 많은 이들이 녀석들을 잡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왕부의 닦달과 비적의 습격으로 인한 백성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자, 홍원창은 결국 집요한 추적 끝에 비적들의 본거지를 습격하였다.
비록 장백산과 그 수하들 대부분을 놓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운 좋게 장백산의 가족들을 붙잡을 수 있었고, 모조리 참수하여 효수했다.
그것은 장백산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더 이상 허튼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앙심을 품은 장백산은 더 이상 관아의 힘으로는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욱 크게 날뛰었다. 이제 황실에서 군이 파견될 것이다.
“곧 황실에서 대대적으로 놈들을 쓸어버릴 테니 걱정거리 하나는 덜겠습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쉬지도 못하고 벌써 일 년이 넘었어.”
인상을 찌푸리는 현령을 보며 포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령이 어디를 가도 자신들은 따라가야 한다. 일종의 호위인 셈이다.
장백산의 가족들을 죽였으니 응당 그 보복이 돌아올 것이기에, 포졸들은 현령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이제 다소 풀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아를 나설 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포졸들은 대수롭지 않게 걸으면서도 여기저기 곳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때였다.
“응?”
험한 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니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보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장원이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
포졸들은 눈을 끔뻑였고, 홍원창 또한 말을 잃었다.
“이, 이보게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녕 현실인가?”
“트…… 틀림없습니다. 부, 분명 장원이 있습니다.”
으리으리하고 고급스런 장원이 한 채 지어져 있었다.
이 땅에 이만한 장원을 지으려면, 인부를 수십 명을 써도 반년은 넘게 공사를 해야 했다.
한데, 고작 보름이다.
더구나 소문이 나기 시작한 때를 생각해 보면, 그 시일은 턱도 없이 짧아진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장원이 생겼으니 이걸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꿀꺽!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 무량수불……!”
포졸들이 불호를 외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조차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 정말로 귀신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 어서 가 보자!”
홍원창은 불안감을 지워 내며 호흡을 골랐다. 귀신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니 분명 사람일 것이다. 혹은 무림인일 가능성 또한 있다.
무림인들은 가끔 범인들은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해낸다고 하니까.
장원을 향해 다가서자, 한쪽에서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같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수풀이 스윽 갈라지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손님을 초대한 기억은 없소만?”
한 손에 토끼를 들고 단우현은 홍원창과 포졸들을 빤히 바라봤다. 남의 집 앞에 우르르 몰려 있는 꼴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게슴츠레 눈을 떴다.
하지만 홍원창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는 현령이었으니까.
“자네가 이 장원의 주인인가?”
“그렇소. 그쪽은?”
“나는 악양의 현령 홍원창이네.”
“단우현이오.”
현령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대꾸하는 단우현이었다. 마치 현령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행동인지라, 홍원창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 장원을 지은 것이 자네가 맞는가?”
“지은 것이 아니고 폐가를 보수한 것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세워져 있는 담장이나 눈에 보이는 건물의 면면만 보아도, 폐가를 수리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너무나도 깔끔했으니까.
더욱이 원래 이곳에는 폐가는커녕 아무런 구조물도 없었다.
“장난하는가! 이곳은 나라의 땅일세. 허락 없이 장원을 세우거나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란 말이네! 그것도 몰랐다고 할 텐가?”
“허락해 주면 되지 않소?”
“이익!”
“허…….”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단우현의 한마디에 포졸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허황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흠.”
단우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장원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곧바로 들킬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깊숙한 곳에 지어 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 지어 놓은 집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눈을 반짝 빛낸 단우현이 주섬주섬 품을 뒤적였다.
그러고는 이내 홍원창을 향해 그것을 내밀었다.
“이것으로 좀 봐주시오.”
“…….”
“…….”
짤그랑.
홍원창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결코 청렴결백한 관리가 아니었다. 탈이 나지 않을 만큼 뇌물을 받았고, 왕부와 황실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에서 뒷돈을 챙기기도 했다.
하여 청탁을 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돈이면 얼마든지 넘어가 줄 수 있는 작은 사안이었으니까.
한데 단우현이 내민 돈이 문제였다.
철전 다섯 푼.
금자 다섯 냥도 아니고, 철전 다섯 푼이었다. 이것으로는 객잔에서 소면 한 그릇을 사 먹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봐도 현령인 자신을 능멸하는 것이었다.
“놈을 당장 포박해라!”
“옛!”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가 포박을 하려 했다.
단우현은 손을 쓰려다가 이내 멈칫했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현령이었다. 괜히 손을 썼다가 뒤탈이라도 나면 곤란했다.
쫓기는 인생에 익숙해져 있기는 하나, 화소미는 아니었다. 그 아이를 자신과 같은 고생길을 걷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일단 지켜볼까? 소미가 자고 있어 다행이군.’
단우현은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
* * *
관아로 향하는 길.
걸어서 한 시진이 조금 넘는 거리였다. 멀다 하면 상당히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홍원창은 최대한 지름길을 이용해 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괜한 오기에 걸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하긴, 애초에 말을 타고 왔다면 더욱 골 때렸을 테지.’
홍원창은 힐끗 뒤를 돌아 단우현을 바라봤다. 끌려오면서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자그마한 반응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그저 주위를 둘러보기만 할 뿐 말 한 마디, 그리고 표정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홍원창은 그것이 몹시 신기했다.
“죄를 짓고 잡히면 다들 표정이 어두운데 자네는 그렇지 않군. 죄를 지었다는 의식이 없는 겐가?”
“딱히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소.”
단우현은 피식 웃어 버렸다.
고작 장원을 지은 것이 죄가 된다면 과거의 단우현은 이미 여러 번 효수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죄의식조차 느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하여 이런 것은 죄라 생각지도 않았다.
‘무슨 놈의 눈빛이 이리 살벌해?’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단우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틀림없이 비웃는 것이 분명한데, 차마 거기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눈빛이 너무나도 살벌하여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오금이 저릴 것 같았으니까.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무림인인가?’
그렇다고 해도 풀어 줄 생각은 없었지만, 다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무림인이었다면 이렇게 순순히 잡혀 오지는 않았을 테니 애써 생각을 부정했다.
“자네는 오늘 상대를 잘못 골랐네. 결코 곱게 놔주지 않을 테니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야.”
포졸들 또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현령을 농락하였으니 물 곤장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관아에서 살아 나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단우현이 앞에 있는 포졸에게서 두 걸음 물러났다.
“응? 이놈, 어딜 도망…… 컥!”
퍽-!
그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창 한 자루가 포졸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단우현이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뭐…… 뭐야, 컥?!”
퍽퍽퍽-!
뒤이어 화살이 마구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쏟아지는 화살들은 정확히 먹잇감을 파악하듯 쏘아져 내려와 포졸들의 가슴과 목을 꿰뚫었다.
십여 명의 포졸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이…… 이게…….”
홍원창은 덜덜 몸을 떨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느닷없이 창과 화살이 날아오다니. 어디서 누가 쏜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곧 흉수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수풀을 가르며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홍원창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자…… 장백산?!”
“으하하하! 홍원창! 잘도 밖을 쏘다니는구나!”
달려오는 이는 틀림없이 장백산이었다.
그는 홍원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기는 하지만, 눈빛에는 살심이 가득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홍원창은 심히 당황했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은 고작해야 검 한 자루.
하지만 일류 고수 수십 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도망갈 퇴로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장백산과 그 무리들이 홍원창을 둘러쌌다.
“오늘로 네놈의 명이 다하였구나, 홍원창!”
“윽……!”
실수였다.
정말로 놈들이 현령인 자신을 노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그의 가족들을 죽인 것 또한 반년이나 지난 일인지라 방심한 이유도 있었다.
“두목! 베어 버리죠! 지금 당장 형수님의 원한을 갚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두목! 제가 이놈의 사지를 다 잘라 개 먹이로 쓰겠습니다.”
곳곳에서 비적들이 이를 갈았다.
자신들이 따르는 장백산의 가족들을 모조리 죽였으니, 그 분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것이다.
바득바득 이를 가는 이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당장 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홍원창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시퍼런 안색으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사…… 살려 주게.”
“하하! 내 그 말을 언제 듣는가 싶었는데 오늘 듣는구나. 하나, 오늘이 네놈 제사상 받아먹는 날이라는 것은 변치 않을 것이야!”
장백산이 일갈을 내질렀다.
말에서 내려온 비적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러고는 억지로 홍원창을 붙잡고 강제로 그의 무릎을 꿇렸다.
“히, 히익!”
“끌고 가라! 놈에게 지옥을 보여 줄 테니.”
“예!”
수하들이 홍원창을 이끌었다.
한편, 멀뚱멀뚱 그 자리에 서 있던 단우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상대는 도적들로 보였는데 아마도 현령과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단우현이 인상을 썼다.
원한도 원한이지만 주변에 널린 시체들에서 흐르는 진득한 피 냄새가 코를 자극한 탓이었다.
“두목, 이놈은 어찌할까요?”
그때 한 사내가 단우현을 가리키며 물었다.
손이 포박되어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짓을 저지르다 현령에게 잡힌 것이라 판단을 한 것이다.
같은 범죄자라 여겨 동질감이라도 느낀 듯 딱히 살심을 표하진 않았다.
“흥, 운이 좋다 생각해라. 우리가 아니었으면 큰일을 당했을 것이니.”
장백산의 말에 한 사내가 다가와 포박을 풀어 주었다.
그냥 가라는 뜻이었다.
단우현이 무언가 고민하며 신음을 삼켰다.
힐끗 시선을 돌려 홍원창을 바라봤다. 이대로 현령이 비적들에게 끌려가면 장원의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흐음…….”
하지만 무언가 찝찝함을 느낀 단우현이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