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0
흐릿하게나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주위는 어디인지 확인을 할 수 없지만, 죽은 것은 아닌지 감각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손끝까지 모든 것들을 확인하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어……? 깬다, 깨!”
“쉿! 조용히 해, 이놈아!”
“아니, 점주님! 이제 깨지 않습니까? 전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좀 닥치라고!”
“아악!”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흐릿하게 눈을 떴다. 시야가 제대로 트지 않았지만 사람의 인영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보였다.
두 사람?
살의는 없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천천히 기세를 끌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턱 막히는 것을 깨달으며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쯧쯧! 기맥을 다쳤어, 이 새끼야. 한동안 제대로 운신조차 하지 못할 거다.”
“누구냐……?”
“그건 몰라도 돼.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사내의 목소리였다.
너무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범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있었다.
틀림없이 경시할 수 없는 강자임이 느껴졌고 어쩌면 천무제보다 더, 혹은 자신보다 더욱 강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다른 목소리는…… 아이인가?
사내아이의 목소리.
특별한 힘도 기색도 없는 그저 평범한 목소리였다. 어쩌면 단소미와 비슷한 나이일지도 몰랐고, 조금 더 많을 것 같기도 했다.
“알려 하지 마라. 느끼려 하지도 말고. 너와 우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운명에 있으니 또다시 만날 날이 올 거다.”
“…….”
“하하하, 그때 이 목숨값을 받기로 하지.”
“목숨…… 값……?”
“그래, 우리가 거두지 않았으면 네놈은 분명 죽었다. 멍청한 놈…… 마지막에 방심을 하다니…….”
스르륵―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져 갔다.
마치 어딘가로 떠나는 것처럼 점점 더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귀에 파고드는 그의 말은 또렷하고 확실하게 들려왔다.
“가운…… 유가운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라. 언젠가 네놈의 목숨을 구해 준 값을 받으러 갈 것이니.”
“저…… 점주님! 그거 제 이름 아닙니까?”
“시끄럽다니까!”
‘따콩!’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퍼졌다.
이윽고 그 소리가 끊겼는데, 신기하게도 그와 동시에 시야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아까 그 사내의 힘이 모든 것을 흩트려 놓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 의미 모를 상황에서 단우현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대체…… 누구냐?’
단우현은 처음으로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적의도, 선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자신을 도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복잡한 감정은 더욱 크게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윽고 일어섬과 동시에 느끼는 것은.
“목이 마르군…….”
극도의 목마름이다.
입은 바짝 말라 있었으며 몸 또한 상당히 왜소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사람처럼 말라 있었는데, 그 꼴이 제법 해괴하여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리가 휘청이며 균형조차 제대로 잡을 수가 없을 정도다.
처음으로 느끼는 약자의 감정.
단우현은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폐가인가…….”
이제는 사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사방이 거미줄이고 바닥은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치료해 놓고 목숨값을 운운하다니.
다소 어이없기는 하였지만 이내 힘없이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이 빠질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단우현은 밖으로 나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시선이 파르르 떨렸다.
천무제와 마지막으로 싸웠던 장소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에 저도 모르게 허탈감과 함께 소름이 끼쳤다.
눈앞에는 커다란 동정호가 보였다.
잔잔하게 물결이 일고 있는 그 장소는 틀림없이 단우현이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눈을 떴던 그곳이었으며, 뭍으로 올라온 곳이기도 했다.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같았다.
“하하…….”
이 또한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 사내는 모든 것을 알고 이러한 짓을 벌인 것인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새어 나왔다.
눈앞에 있는 동정호를 바라보는 순간 느껴지는 온갖 감정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기이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단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서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조금은 풀어졌다.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과거의 잔상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 눈을 떴을 때에도 이러한 길을 걷지 않았던가?
분노에 찬 시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걷고 또 걷기만 한 것 같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서서히 그 분노마저 죽어 버린 순간.
단우현은 처음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악양.
지금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악양이었다.
휘청휘청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선만큼은 그 악양의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처음 그 악양을 눈에 새긴 날과 동일했다.
이 느낌, 이 감정.
하나하나 뺄 수 없고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단우현은 더욱 걸었다.
보보(步步)를 내딛고 악양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차마 그 몰골이 단우현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는 것인지, 그저 위협적인 자, 혹은 거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역력했다.
여기저기에서 또다시 거지가 들어왔다, 또는 기이한 이가 나타났다 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단우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본디 그러한 성격이기도 하였지만, 워낙 몸이 피폐하여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스르륵 풀려 버렸다.
제대로 먹은 것이 없고 또한 기맥을 다쳐 내공 운용조차 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기력이 쇠하였으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단우현은 신음을 삼키며 억지로 그 자리에 버텨 섰다. 천하의 무신이 길바닥에 쓰러지는 꼴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잠시…… 쉬어야겠군…….’
호남단가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조금 쉬지 않으면 걷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선 단우현은, 그제야 벽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졌다.
“하아…….”
온몸이 노곤했다.
기력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큰일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였기에, 또한 다른 이들과는 천부적인 재능부터가 달랐기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삼태 녀석에게 미안한 일만 했군…….’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기력이 다한 장삼태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수련을 시킨 적도 있었다. 수많은 일거리를 안겨 주기도 하였으니, 그 역시 지금의 단우현처럼 쉬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미안한 감정이 깃들었다.
꾸르르륵.
그때, 배에서 요란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기혈이 막혀 공력을 움직일 수 없으니, 내공으로 몸을 유지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데, 지금의 단우현은 돈 한 푼 없으며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는…… 어찌 버텼는지 모르겠군.’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처음 이러한 골목에 주저앉아 있을 당시, 오랫동안 굶어 가면서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삶에 대한 회의감과 수많은 감정이 몰아쳐 온 탓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단우현은 아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너무나 많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또 자신을 본 그 아이가 어떻게 웃어 줄지.
지그시 눈을 감은 단우현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하여 생각했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자신을 향해 내밀었던 따스한 손길을 말이다.
천천히 눈을 뜬 단우현이 앞을 바라봤다.
“…….”
“…….”
순간 단우현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 어느 때보다 놀란 눈빛이 역력하였으며, 온갖 감정들이 치밀어 올라와 그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눈앞에는 방금 전 떠올렸던 아이가 서 있었다.
평소 보았던 그 작은 모습이 아닌 이제는 어엿한 소녀가 되어 가고 있는 아이.
글썽이는 커다란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으며, 떨리는 양손에는 커다란 만두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그것을 내미는 소녀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단우현은 그것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 또한 말이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먹으라는 것이냐?”
단우현이 묻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해야 한마디 물음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온갖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만 같았다.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환하게 웃었고, 단우현 역시 그때는 짓지 못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소녀가 준 만두를 쥐었다.
한 입 깨물자 기억 속 그것과 같은, 한없이 맛있고 그 어떤 산해진미조차 비교할 수 없는 맛이 터질 듯한 감정을 안겨 주었다.
“앉거라.”
단우현은 모든 것을 느끼며 말을 했다.
소녀가, 아니 단소미가 단우현의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계속해서 닦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앉은 단소미는 살포시 단우현의 어깨에 몸을 기대어 그의 체온을 느꼈다.
“맛있구나.”
“…….”
단소미는 말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그 감정을 깔끔히 날릴 수 있었다.
기분이 들뜨고 감정들이 날아다녔다.
단소미는 어떠한 말을 하고 싶어 입을 열려 하였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 오히려 당황하는 것 같았다.
단우현은 그런 단소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말조차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것인지, 그저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
“하지만 되돌아왔다.”
그 한마디에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단우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던 단소미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단우현의 손길이 너무나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우현의 곁에 몸을 기댄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녀왔다.”
이윽고 들려오는 말에 단소미는 단우현의 품을 벗어나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예전과 비교해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
자신이 알고 있던 단우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느낌이었지만, 그 말투와 온기는 틀림없이 그임을 알려 주었다.
무신(武神) 단우현은 약속대로 귀환했고, 그의 딸은 몇 년 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 다녀오셨어요?”
재회한 부녀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무신귀환록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