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1
“끄아아아…….”
“가만있어라.”
권무진의 한마디 때문인지 상대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몸을 굳혔다. 당장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이 자리에서 달려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권무진이 나선 이상 도주 따위는 있을 수 없으니까.
“사…… 살려 주십쇼, 대협! 집에 병마에 시달리시는 노모가…….”
“나도 그렇다. 다 늙어 빠진 자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말이다.”
“이…… 이제 갓 두 살 된 아이가…… 젖도 못 먹고…….”
“나도 있다. 그것도 두 명이나 말이다.”
“…….”
순간 사내는 할 말을 잃었다.
동정심이라도 사려고 하였는데 권무진은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그를 악양 현청을 향해 끌고 가고 있었다.
“대협! 생각을 좀 해 보십시오! 좀도둑질 몇 번 했다고 대협 같은 분이 나타나면 어찌합니까? 원래 이런 일은 이름도 없는 말단들이 하고, 못 잡으면 점점 실력 있는 자들이 나타나는 거 아닙니까?”
“재수가 없다 생각해라.”
무뚝뚝한 표정의 권무진은 힐끗 사내를 바라봤다. 기가 차다는 이의 마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 봐야 기껏 자잘한 물건이나 훔치고 무전취식 정도를 한 것이다.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권무진 정도나 되는 고수가 움직일 만큼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재수 없게 권무진의 앞에서 물건을 훔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에이, 대협…… 재수가 있을 수도 있지요…… 이래 봬도 제가 좀도둑 생활 십 년 차입니다만…….”
“그래서?”
권무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삭삭 비비고 있는 그자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어 실로 헛웃음이 나왔다.
‘장삼태 녀석과 똑같군. 도둑들은 원래 이런 것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사내를 주시하자, 그가 생글생글 웃음을 지으며 자세를 낮췄다.
“그 있잖습니까? 동쪽 나라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만…….”
“말해 봐라.”
“부러진 제비 새끼를 불쌍히 여기어 고쳐 주고 풀어 주니 엄청난 박을 가져왔다 합니다.”
“박?”
“예! 그 박을 갈라 보니 무수히 많은 금은보화가!”
경악한 사내의 표정에 권무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실소라 해야 할지 비웃음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사내의 말이 너무나도 재미있어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그러니까…… 저를 놓아주시면 제가 엄청난 박씨를 가지고 올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미친놈…….”
하아- 하며 권무진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을 했던 권무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도둑들이 생각하는 것이야 거기서 거기인 것인데, 왜 그것을 귀담아듣고 있었던 것인지.
“정말입니다!”
“되었다.”
권무진은 더 이상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 사내를 끌고 현청으로 다가갔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이 권무진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예를 갖추었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이 악양 땅에서 권무진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잡범이다. 홍 대인께 데려가거라.”
“하하, 이 녀석 또 왔습니까? 네놈은 어찌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구나.”
포졸들이 웃음을 지으며 사내를 붙잡았다.
한순간,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쉽게 나갈 거라 생각하지 마라. 한 일, 이 년은 옥에서 고생해야 할 거다.”
“아……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사람을 죽였으면 목을 베었을 거다.”
포졸들이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틀에 한 번 꼴로 잡혀 오니, 이번만큼은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굳은 표정들이 역력했다.
사내가 격렬하게 반항을 해 보았지만, 두 포졸들의 힘에는 당해 내지 못하겠는지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장삼태 녀석도 일, 이 년 가둬 두지 않으려나……?”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권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 * *
“오오! 돌아왔는가?”
“…….”
장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장삼태의 모습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백의장삼을 입고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장원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을 한 종놈답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과는 다르게 반말이 가득했다.
그것은 자신감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래, 그래, 내가 부탁한 것은?”
“이거 말이냐?”
“크으으으! 이거야, 이거! 얼마나 가지고 싶었는데!”
권무진이 품에서 자그마한 술을 꺼내 건네주었다. 최근 호연세가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웃돈을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술이라 한다.
저것을 구하기 위해 장삼태는 호연지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가지고 싶어 했는지 대략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장삼태가 크게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권무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고맙네, 고마워! 안 그래도 매향이 이걸 마시고 싶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힘들었는데 자네 덕분에 살았네, 살았어. 으하하하!”
장삼태가 큰 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려 자신의 거처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는 조금 전 자기 자신의 행동이 어떠했는지 조금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권무진은 부들부들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처음 이 장원에 들어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장삼태는 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던 놈이었다. 하지만 권무진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유인즉, 장삼태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여도 결코 자신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류 무인으로서 삼류의 발끝조차 되지 않는 이를 바라보는 기분이라 할까?
엄청난 기연 없이는 무슨 짓을 하여도 넘을 수 없을 것이니 권무진의 입장에서 장삼태 따위는 신경을 쓸 가치조차 없는 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장삼태는 권무진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훌쩍 앞서 나갔다.
이는 단우현과 여정을 오랫동안 한 탓이기도 하였는데,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겪어야 단시간에 저렇게 실력을 늘릴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삼태라는 존재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백대고수에 꼽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가끔 사도학이나 단우현과 대련을 하기도 하니 언젠가 오황이라는 이름이 그에게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사 어르신의 제자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권무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사도학은 마치 즐겁다는 듯이 장삼태를 괴롭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순간순간을 눈에 새겨 보면 대부분 사도학의 무공을 장삼태에게 알려 주는 식이었다.
“망할…….”
권무진은 인상을 쓰며 시선을 돌렸다.
이 장원에서 사도학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자.
적무성이 눈에 보였다.
장삼태에게 사도학이 있으면 권무진에게는 적무성이 있다. 아니,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기는 했다. 같은 사파인이었으며 비슷한 점이 가장 많다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무성은 바닥에 누워 코를 골며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다른 노인들과 바둑을 두거나 가끔 단우현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 정도일 것이다.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사도학과 적무성을 생각하자 권무진은 더욱 마음이 쓰렸다.
“그런 데 서 있으면 부딪쳐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권무진은 화들짝 놀라 몸을 피했다. 어느새 슥 다가온 제갈연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방긋 웃었다.
손가락 끝에 내력이 느껴지는 것이, 피하지 않았다면 몸이 꿰뚫렸을지도 몰랐다.
“으음? 평소보다 반응이 좀 느리네요.”
“뭐 하는 짓이냐?”
“그냥 멍하니 서 있는 게 신경 쓰여서 말이죠.”
제갈연은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권무진이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는데, 마치 그녀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 여우 같은 년…….’
권무진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제갈연은 그 여우 기질이 더욱 강해졌다.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덕분인지, 그것이 아니면 혼인을 하지 못하여 안달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매혹적인 여인의 향을 풍기며 사람을 가지고 놀기 일쑤였다.
“그, 그래! 무슨 일이더냐!”
“응? 알아차렸어요?”
“너, 너는 일이 있을 때만 내게 말을 걸지 않느냐.”
권무진은 자신의 짐작이 들어맞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말로 제갈연이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다면, 순식간에 눈이 뒤집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배시시 웃었다.
그 환한 미소는 사내들의 정신을 앗아 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름이 아니라 도와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천도회의 일인가?”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신경 쓰이는 소문을 들어서요.”
제갈연이 어깨를 으쓱하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휙휙 돌아보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 같더니, 곧 쥐 죽은 듯 자그마한 소리로 입을 열며 소리를 냈다.
“이건 단순한 소문인데요…….”
“소문?”
“네네, 지금 이 악양 땅에 어마어마한 재보가 숨겨져 있다고 해요.”
“……?”
권무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마어마한 재보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면 응당 누군가가 가지고 갔을 것이다.
돈이라면 귀신조차 때려잡고 가지고 올 인간이 이 장원에 한 사람 있지 않은가?
이 악양의 돈줄을 꽉 쥐고 있는 이조차 모르는 재보가 존재한다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신뢰조차 가지 않았다.
그가 피식 비웃음을 머금자 제갈연이 인상을 썼다.
“소문이라고요, 소문!”
“그러니까 헛소문일 테지. 그리고 그런 돈이 있다면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권무진이 단우현과 단소미가 있는 거처를 힐끗 바라봤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놀고 있는 것인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천운을 지닌 아이가 있고,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내.
그 사내가 이 악양에 있는 한, 그 어마어마한 돈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있잖아요? 지금 하오문에서 사람을 풀었는데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다못해 무언가 재미있는 게 있겠죠?”
제갈연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권무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제갈연은 돈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자신의 흥미를 유발한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저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이 흘러가는 이 생활에 자극을 주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권무진이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하지?”
“그래야죠! 재미있는 게 있으면 뭐든 해 보는 거예요! 그래야 사내지!”
“하아……. 해서?”
제갈연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한숨을 쉬는 권무진을 바라보고는 티 없이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하오문을 조져야죠?”
권무진은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