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3
“그런데 진짜 믿는 것이냐?”
하오문 밖으로 나온 권무진은 제갈연을 바라봤다.
구무악은 확실히 아군이기는 하지만 쉽게 믿을 수 없는 자다. 하오문이라는 삼류 단체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그만한 수라장을 버티고 헤쳐 나왔기에 가능한 일.
알게 모르게 교활한 성격을 지닌 자다.
구무악이 정보를 빌미로 단우현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제 이득을 챙기는 것만 보아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애초에 전대 하오문주가 정말로 악양에 있는지도 모르는 일 아니더냐? 심지어 저 하오문이 지금까지도 그자를 쫓지 못했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고…….”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네요. 하지만 반은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반?”
“예, 전대 하오문주가 도망쳤다는 거 말이죠.”
제갈연은 신음을 삼켰다.
전대 하오문주라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재보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남은 반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 테죠.”
제갈연은 입술을 매만지며 웃었다.
구무악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기는 했지만 제갈연의 눈을 속이기에는 아직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대충 상상은 가지만…….’
한때 중원에 그런 소문이 난 적이 있었다.
또한 마교와 사파 쪽에서도 그것을 듣고 은밀하게 움직이기도 하였으니, 제갈연은 자신이 기억해 낸 것들이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 믿고 있었다.
구무악에게 있어선 창피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그 입에서 그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하아- 하며 권무진의 한숨이 들렸다.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이다.”
“뭐죠?”
“지금 이 일을 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권무진은 모든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쁜 일이 일어나려 하기에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이 깃든 것인지.
뚫어지게 제갈연을 바라보며 답을 구하자 그녀가 웃었다.
“간단해요. 요즘 너무 지루하잖아요. 안 그래요?”
“정말로 흥미 위주로군.”
“이렇게라도 사는 맛이 있어야죠. 매일같이 똑같은 삶을 살면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가!”
제갈연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단우현이 돌아온 지 또다시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시끄러웠던 무림은 마치 모두 꿈이었다는 것처럼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천도회는 정파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고, 사파 역시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싸움 따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고, 간간이 나타나는 산적이나 도적들을 때려잡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무료하다.
이처럼 삶이 무료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무슨 일 하나 터져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하고 있었던 그녀 앞에, 하오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고 결국 그 꼬리를 물고 쫓아오게 된 것이다.
“자, 보세요! 이 생기 넘치는 표정을! 이 생기 넘치는 눈동자를! 얼마나 좋아요!”
제갈연이 한 걸음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순간 코앞까지 다가온 여인의 얼굴과 그 향기가 아득하게 풍겨 오니, 권무진은 아찔함이 도를 넘어 정신마저 해이해졌다.
그것을 깨달은 것인가?
‘아!’ 하는 짧은 소리를 내며 제갈연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반하면 안 돼요.”
“누가 반하냐!”
언성을 높이는 권무진을 바라보며 제갈연이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장난기 가득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사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권무진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정말로 하려고?”
“물론이죠! 하오문주이든 뭐든 간에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 버리죠!”
“……그냥 찾는 거 아니었나?”
“그냥 찾으면 재미없으니 붙잡은 뒤에 놓아주죠. 뒤를 쫓으면서 겁에 질려 가는 얼굴이 보고 싶은 날이네요.”
“…….”
하아- 하며 제갈연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표정으로 울까, 어떤 목소리를 낼까, 하며 생각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명문정파의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기이했다.
“저러니 시집을 못 가지…….”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제갈운의 닦달로 최근 이 년 동안 상당히 많은 선을 보았던 그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상대의 대부분은 그녀의 성격 때문인지 겁에 질려 도망가기 일쑤였다.
천하에 손꼽히는 명문 집안들의 자식들이 벌벌 떨며 달아나는 꼴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 건지는 아나?”
“으음…… 먼저 저잣거리?”
“확신은 있고?”
“원래 파락호들은 저잣거리를 어깨에 힘주며 껄렁껄렁 걸어 다니고 그러잖아요, 침 찍찍 뱉으면서.”
“너한테 파락호란 도대체 뭐냐?”
“걸렁배들?”
“…….”
“하지만 그런 이들은 하오문도 쪽이 더 많으니까 힘들겠네요.”
“아니, 네가 다 작살을 내 놔서 없을 거라 생각한다만…….”
“그런가요?”
제갈연이 슥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권무진의 말이 하등 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오문도들을 보는 순간 작살을 내어 놨으니, 지금쯤 대부분 병상에 누워 신음만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일단 가 보죠.”
제갈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저잣거리를 향했다.
그 뒷모습을 권무진이 가만 바라봤다.
힘차게 거리를 걷고 있는 제갈연은 확실히 최근 보았던 그 어느 모습보다 활기가 있었다. 이는 그녀가 지금 무척이나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권무진은 말려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망할…….’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복수라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과거의 원한을 갚는다. 자신에게 치욕을 준 이의 비틀어지는 얼굴을 바라보며 희열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이며, 그만큼 즐거운 일 또한 없을 것이다.
생각한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가장 밑바닥을 기던 인생이 펴기 시작한 것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본디 파락호란 것들은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익만 맞는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자신의 위치가 불편하였고, 또 모든 것을 빼앗길까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하여 도망쳐야 했다.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던 그날.
그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오른팔이었던 자는 자신의 심장에 비수를 박았다.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
살아야만 이 원한을 갚는다 생각하며 미친 듯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숨겨 두었던 돈을 들고 도망치는 그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았으나, 조금이라도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 곤혹스레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겨우 살아남은 그는 정처없이 중원을 떠돌았다.
하오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마을에는 쉬이 들어갈 수조차 없었기에, 사람이 오가지 않는 산속에서 그는 먹고 자며 수련을 계속했다.
그러다 만난 것은 기연이다.
사내는 품속에서 한 권의 책자를 꺼내 들었다.
“무신도경…….”
이것이 실제 무신의 무공인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운이 좋았기에 익히고도 살아남았으니 그것이야말로 원한을 갚으라는 하늘의 계시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어둠 속에서 웃었다.
어떤 이라 하여도 갈가리 찢어 죽이리.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잔학한 웃음을 지으며 숨을 죽였다.
* * *
“그래, 몇 명이나 당했더냐?”
하오문주 구무악은 제갈연과 권무진이 밖으로 나간 뒤, 한참 동안이나 밖을 바라봤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그 공간을 눈에 새기며 힐끗 옆을 돌아봤다.
“벌써 스물이 넘습니다.”
“그렇군…….”
구무악은 슥 턱을 쓰다듬었다.
전대 하오문주를 쫓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제갈연에게 당한 이들이야 하루이틀 요양을 하면 그만일 테지만, 전대 하오문주에게 당한 이들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자가 그리도 강했던가?
구무악의 머릿속에 있는 그 사내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하오문주의 자리까지 올라왔기에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구무악보다는 한참 떨어졌으니 살생 자체를 하지 않는 온순한 자였다.
그렇기에 몰아내지 않았던가?
“어디서 기연이라도 얻은 겐가……?”
구무악은 인상을 찌푸렸다.
전대 하오문주는 확실히 많은 이들이 따를 만큼 사람이 좋았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마저 챙기는 그 성격은 역대 다른 문주들과는 다른 면을 보여 주고 있었기에, 은연중에 따르는 이들 또한 많았다.
구무악 또한 그를 따랐다.
아마도 단우현을 제외하면 가장 큰 충성심을 보였던 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러한 성격이 이 중원에선 허점이 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역시 현실이었다.
전대 하오문주는 모용세가의 압박을 받았다.
그 당시, 하오문주가 머물고 있던 곳은 하남이었는데, 숨어 있던 그를 찾아내 협박을 하고 하오문을 뒤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 역시 모용세가였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보니 하오문은 그저 모용세가의 뒤처리를 해 주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고,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달아 갔다.
그러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마교와 사파에서 공격이 시작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모용세가는 뒷짐을 진 채 아무런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따르다 이러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모용세가는 나 몰라라 하며 그 어떤 보호조차 해 주지 않으니, 하오문 입장에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까지 가 버린 것이다.
결국 구무악이 일어섰다.
하오문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은밀히 주변인들을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하오문주를 치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이 나는 듯하였다.
그가 도망가기 전까지.
‘나에게 복수를 하러 온 것일 테지…….’
구무악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 원한이 얼마나 뼛속 깊이 사무쳤을까?
조용히 이곳에 나타나 하나둘 하오문도들을 죽이는 것만 보아도, 틀림없이 구무악을 조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쉬이 가능할까?
‘당신은 모용세가 따위에 하오문을 팔았지만 난 아니오.’
구무악은 장죽을 입을 물었다.
그것에 불을 붙이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자욱하게 창밖으로 빠져나가 악양 거리로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당신과는 다르오. 그렇기에 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지.’
구무악은 피식 웃었다.
애초에 이 싸움은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오문이 호남단가를 위해 일을 하는 이상, 그리고 그들이 하오문의 뒤를 봐주고 있는 이상, 상대가 설령 천도회라 하여도 하오문은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