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4
우당탕-!
거친 소리와 함께 수 명의 사내들이 날아갔다. 이리저리 부딪치고 나뒹굴기를 반복하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엎어졌다.
“이것들도 아닌가?”
권무진은 그러한 이들을 지루한 표정을 바라봤다.
애초에 하오문주가 어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하여 닥치는 대로 그럴듯한 이들을 잡아 손을 쓴 것인데, 하나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다.
삼류 문파이기는 하지만 하오문주라면,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히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엎어진 이들은 탈락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있는 거야?”
권무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몇 시진째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짓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주라는 자의 모습은 물론, 그 꼬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오문에서 제공해 준 정보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몫했다.
권무진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펴 보았다.
엉성하게 그려져 있는 용모파기다.
사람인지 귀신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려 놓았다. 그림을 그린 이의 실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목격자의 말이 거짓인지.
이렇게 생긴 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응당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인데, 아무리 살펴도 이런 이는 보이지 않았다.
코는 짓뭉개져 있으며 얼굴은 반쯤 녹아 버렸다. 길고 긴 머리카락은 엉성하리만큼 헝클어져 있었고, 눈빛은 야수와도 같으며, 입은 마치 찢어진 것처럼 기이했다.
그림을 그린 이의 솜씨가 얼마나 개발새발인지 이목구비가 모두 설렁설렁 그려져 있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용케도 이런 몰골로 전대 문주라고 알아봤구먼…….’
권무진은 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몰골이라면 어느 누구도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았다.
“으음.”
그때, 신음을 삼키며 제갈연이 나타났다.
여전히 흥미진진한 눈빛을 보이며 나타난 그녀는 다소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였는데, 그것이 손에 묻어 있는 피와 연관이 있음을 권무진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쪽은 어떠냐?”
“뭘요?”
“……하오문주 찾는 거 말이다.”
“아! 그랬지, 참. 때리는데 열중할 때가 아니었죠?”
“…….”
아무리 생각해도 제갈연은 본연의 목적을 잊은 것 같아 보였다. 슬쩍 권무진의 눈치를 본 그녀가 어색한 몸짓으로 치맛자락에 피 묻은 손을 닦아 냈다.
소름 끼치는 모습이다.
“근처를 배회하는 하오문 애들을 좀 조져 봤거든요.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 조져? 크큼……. 그래서?”
“저들도 모습만 확인하고 제대로 그 행적을 쫓지는 못한 것 같네요.”
“이 모습을 확인했다고?”
권무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용모파기를 툭툭 쳤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이러한 이가 보였다면 하오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먼저 소문이 퍼져 나갔을 거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쥐 죽은 듯 고요하니, 정말로 이런 이가 나타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 한눈에 척 알아본 거겠죠.”
제갈연은 지그시 권무진의 손에 들려 있는 용모파기를 주시했다. 그녀가 그린다 하여도 저것보다는 잘 그릴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나름 특징들은 잘 잡아낸 것 같았다.
“크흐흐…… 뭐…… 뭐야 네놈들…… 그런 웃기지도 않은 놈을 찾으려고 우리를 건든거냐? 우…… 우리는 도끼파다!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파락호 하나가 소리를 치며 품에서 도끼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손에 든 그것은 날만 보아도 이미 수차례 써먹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굳은 피가 엿보였다.
또한 눈에는 살기가 넘실넘실 흘렀는데, 그것을 보니 사람을 한두 번 죽여 본 것 같지 않았다.
“도끼파?”
“그런 것도 있었나요?”
“모…… 모른다고?! 이…… 악양을 지배하고 있는 게 우리인데!”
제갈연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고운 주먹을 말아 쥔 것을 보니 뒤가 훤히 보였다.
지끈거리는 미간을 움켜잡은 권무진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불만이 있으면 호남단가로 찾아오너라.”
“컥!”
순간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는 한 사람만이 아닌 주위에 엎어진 이들 또한 똑같았다. 도끼를 들고 있던 자는 시퍼렇게 낯빛이 질려 경직되었고, 도끼를 들 힘조차 없는 것인지 그대로 도끼 자루를 놓아 버렸다.
“호…… 호남단가…….”
“그래.”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대협! 저…… 저희가 높으신 분들을 몰라뵙고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이 느닷없이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자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닿았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호남단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
그것이 결코 가벼울 리가 없으니까.
권무진과 제갈연은 그것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우월감에 젖은 듯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아래에 두고 엎어진 이들을 거만스럽게 바라봤다.
“신경 쓰지 마라.”
“신경 쓰지 마세요.”
두 남녀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러나 행동거지는 마치 위에 있는 사람처럼 위엄이 깃들어 있어 엎어져 있는 이들의 눈에는 하늘에 군림하고 있는 이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그런데, 찾으시는 놈이 어떤 놈입니까? 천하의 호남단가에서 찾는 놈이니 보통 놈이 아닐진대…… 저,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돕겠습니다.”
“도움이 된다고 네놈들이?”
권무진이 기가 찬 표정으로 사내들을 바라봤다.
따지고 보자면 하오문보다 못한 존재들.
뒷골목을 지배하고 있다. 떵떵거리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하오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손을 뻗는 존재들이다.
“밑져야 본전이니 보여 주죠.”
그때, 제갈연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며 권무진의 손에 쥔 용모파기를 빼앗았다. 그러고는 조금 전 도끼를 든 사내를 향해 휙 던졌는데, 공력이 실린 것인지 펄럭펄럭 날아가 정확히 사내의 손에 쥐였다.
“……애가 그린 것입니까?”
“신경 쓰지 마라. 이런 이를 본 적 있느냐?”
“저희와는 많이 다릅니다만…….”
사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권무진과 제갈연을 바라봤다. 척 보아도 다른 사람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용모파기인데, 굳이 자신들을 붙잡고 때릴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시선이었다.
“그것도 신경 쓰지 마라.”
“본 적 있나요, 없나요? 그것만 말해 봐요.”
“당연히 본 적은 없습니다만…….”
“다만?”
“재미있는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복장?”
권무진이 사내에게 다가가 다시금 용모파기를 바라봤다. 얼굴을 너무 흉측하게 그려 놓은 탓에, 다른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사람의 전신을 그려 놓았다.
보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얼굴을 제외하고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복장이다.
헐어 빠진 옷가지.
한데 그 옷 역시 상당히 특색이 있어 보였다.
“옷에 띠를 매는 모양새나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보았을 때 이것은 틀림없는 비단옷입니다만…… 이렇게까지 헐어 빠졌다면 오랫동안 입은 것이라는 겁니다.”
사내가 용모파기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완벽한 확신이 있는 듯한 말투였다. 제갈연이 들어도 사내의 말에는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옷……?”
권무진은 신음을 삼키며 그 복장을 주시했다.
이는 어느새 다가온 제갈연 또한 마찬가지다. 워낙 개발새발 그려 놓은 탓에 얼굴을 제외한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자신들의 실책을 깨달았다.
“이거……?”
그리고 권무진은 무언가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야 떠오른 것인데 이 복장,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왜요?”
제갈연이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순간, 권무진이 다급하게 등을 돌려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사람이 사람을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보게 된다. 특히 그 일에 대해 크나큰 관심이 없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주시하게 되기 마련인데,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러했다.
제갈연은 그저 흥미 위주였기에 하오문주를 잡아도 그만, 잡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여인이다. 그렇기에 용모파기 또한 대충 훑어보는 정도였으며,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머릿속에 담지도 않았다.
그것은 권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놓친 것이다.
‘코앞에 두고!’
권무진은 자신의 머리를 한탄하며 길을 걸었다. 이윽고 어느 한 장소에 당도함과 동시에 인사를 하는 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응? 권 호위 아니던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권무진을 바라보며 홍원창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심각하리만큼 낯빛을 굳히고 있는 탓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하지만 뒤이어 제갈연마저 의아한 시선으로 안으로 들어오자, 틀림없이 어떠한 사건이 터졌음을 짐작하며 긴장 어린 눈빛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오늘 낮에 내가 잡아 온 이가 있을 것이오.”
“아, 그 좀도둑 말이지? 조금 전에 곤장 몇 대 쳐서 내보냈다네.”
“이상했던 것은 없소?”
“이상했던 것이라…… 으음, 옷이 너무 헐어 빠진 것 정도일까? 우리 포졸 중 한 명이 너무 불쌍해 보여 안 입는 옷을 내주었다 들었네만?”
“……어디로 갔소?”
홍원창은 다소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질문만 받고 있으니,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여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보다 무슨 일인가?”
“일이 조금 있소. 한데, 그 옷을 주었다는 포졸은 누구요?”
“아! 그건 접니다!”
그때, 홍원창의 곁에 있던 이가 다급하게 권무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묘한 긴장감이 서린 표정을 보더니 혹 무언가 잘못되었는가 싶어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서쪽으로 갔습니다.”
“다른 것은?”
포졸이 한동안 고민했다.
사실 워낙 신경을 쓸 필요조차 없는 잡도둑이었던지라 그저 묻는 것에 답해 주고 불쌍하여 철전 몇 푼과 옷 한 벌을 내준 것이 전부다.
그것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
“뭐가 더 있소?”
권무진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물었다.
그제야 포졸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손뼉을 치더니 반색하며 권무진을 바라봤다.
“그것이 있잖습니까…… 하오문에 대해 조금 물었습니다.”
“하오문에 대해……?”
“예, 하오문의 뒷배가 있다는 소문이 맞느냐 하길래…… 호남단가라 하였지요.”
현 중원에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비밀이라 할 수도 없었으며 또한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러자 그놈이 호남단가가 어디냐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쪽 길을 따라 쭉 가면 된다 하였지요.”
“아…….”
“음…….”
순간, 권무진과 제갈연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어떠한 이유로 물었는지 대강 상상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깨닫는 순간, 제갈연이 후우- 하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이,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결말이네요.”
“……찝찝하기는 하지만.”
“뭐 어때요?”
두 사람은 동시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끝마무리조차 되지 않은 일이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을 하는 것처럼 태연했다.
홍원창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이미 끝난 일을 물고 늘어지면 남자답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뭘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크게 언성을 높여 보지만 제갈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유히 등을 돌리며 권무진과 홍원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재미있었어요.”
“…….”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권무진은 피식 웃음을 짓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대체 뭘 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를 통째로 날린 의미가 없었다.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