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7
감숙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기본적인 거리가 상당하다는 것도 있지만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단우현과 사도학, 남궁천을 챙기며 이동해야 하니, 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장삼태는 매일 사냥을 해서 이들의 끼니를 챙겨야 했으며 혹은 잠자리를 알아보고 최대한 이들이 불편함 없이 지내게 해야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장원에 있을걸, 우라질!”
사냥한 사슴을 둘러업고 산길을 걷고 있는 장삼태는 불평불만이 상당했다. 저 세 사람을 챙기고 싶지 않아 장원을 나선 것이었는데,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도망이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가?
불가능했다.
도망도 실력이 돼야 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단우현이 있는 곳에서 상당 거리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도망을 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순간 저들은 어느새 눈앞에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크다는 거다.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장삼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노숙을 하는 장소로 돌아갔다.
느긋하게 자리를 깔고 잠잘 준비를 마친 세 사람은 모닥불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삼태를 향해 술을 권하는 대신 안줏거리를 달라는 시선을 보냈는데, 그것이 또 어찌나 얄밉던지 저들의 볼을 꼬집어 늘어트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휴가입니까요?”
“장원 청소를 하지 않으니 휴가이지.”
단우현의 말에 장삼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곳 청소를 하지 않으면 휴가라니?
말 같지도 않으면서도 은연중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화가 나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반박해야 하는데 차마 반박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본디 유람이란 함께 다녀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이 노부도 자네의 여동생을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일세.”
남궁천이 껄껄 웃음을 지으며 장삼태를 다독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부드럽게 말을 하면서도 가장 심하게 장삼태를 부려 먹는 인간이 바로 남궁천이었으니까.
뭐가 정파의 협객이고 정도의 우두머리란 말인가?
장삼태가 보기엔 그저 뺀질뺀질한 노친네에 지나지 않았다.
“내 참 진짜…… 정말로 왜 따라오시는 겁니까요?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기어 돌아갑니다만…….”
“허허, 말하지 않았나? 유람이라는 게…….”
“유람이 아닙니다만?”
장삼태가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의사권을 지니고 있는 존재. 아마도 이러한 모든 상황은 전부 단우현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 믿어 의심치 않으니 만큼 괜스레 미운 마음만 들었다.
“쉽게 생각하거라.”
“뭐가 말입니까?”
장삼태가 인상을 쓰자 그제야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가 가지고 온 사슴을 슥슥 손질을 시작하더니 고기 한 점을 떼어 내어 불에 굽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애초에 장삼태가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모든 게 수련이다.”
“필요 없습니다요!”
단우현의 말에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련은 개뿔.
그거 몇 번 더 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장삼태가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세 사람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 보냈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 따라오지 마십시오! 이 장삼태 혼자 가겠습니다요!”
결국 큰소리를 내뱉은 장삼태가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가는 것 같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쫓고 싶어도 쫓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세 사람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얼굴에는 여유마저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간다 하여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사도학이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도망간 놈을 잡기 위해 경공을 펼치려는 순간.
“그만두거라.”
“응? 안 잡아도 되냐?”
느닷없이 단우현이 만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학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기실 이들 역시 장삼태의 고향이 몹시 궁금하기도 하였으며, 또 여동생의 묘에 술이라도 한 잔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여 함께 가려 했던 것인지 도망을 치니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했다.
하지만 단우현은 상당히 느긋하였는데, 마치 이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좋구나.”
“뭐라는 거냐?”
사도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단우현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지그시 불에 구워지고 있는 고기만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장삼태는 미친 듯이 내달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세 사람이 또다시 쫓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급한 마음에 연신 등을 돌려 뒤를 바라보기도 하였는데,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묘한 표정으로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진짜 안 쫓아와?”
장삼태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들이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일각여 정도 시간을 보냈다.
따라오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진즉 쫓아왔어야 할 이들의 모습과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니 장삼태는 긴장하면서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으하하하-! 결국 포기했구나, 이 인간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이리할 것을! 하며 뒤늦은 후회가 들었다. 그렇다면 그간 고생을 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던가?
혹은 단우현이 어떠한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그러한 것을 머릿속에서 생각한다 한들 애초에 장삼태의 머리로 단우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웃음을 짓고 있던 장삼태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혹여 어디선가 확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비웃음을 지으며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횡재다.’
굳게 마음을 먹은 장삼태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길을 따라 무작정 이동했다.
분명 호남에서 중경으로 올라가는 길을 탔으니, 북쪽을 향해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는 중경이나 호북이 나타날 것이다.
마을 또한 있을 것이니 그때 마음 놓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히죽거리고는 한참을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칠흑 같던 밤하늘에 서서히 동이 틀 때쯤이 되자, 장삼태의 눈앞에는 커다란 마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는……?”
그곳은 틀림없이 호북의 성도 무한이 아닌가 싶었다. 중경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호북으로 움직인 모양이었다.
대로를 타지 않고 산을 넘으며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장삼태였으니,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을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 순간, 장삼태는 목적지를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감숙으로 향하는 것이 목표이기는 하였지만, 그사이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들을 즐기고 싶으니 최대한 놀면서 움직일 생각이다.
가장 먼저…….
‘홍등가를!’
장삼태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매향은 분명 아름다웠다.
장삼태라는 인간의 아내로서는 부족할 것 없는 외모임은 분명하지만, 사내라면 응당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꾸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장원 일 덕분에 제대로 놀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니, 이번만큼은 실컷 놀고 마시며 자유를 즐기자고 합리화했다.
그러기 위해 하오문을 털어 왔고 야금야금 돈을 모으지 않았던가.
“모두 이날을 위한……?”
장삼태는 품 안에 있는 전낭을 매만지며 환호를 내지르려 했다. 하지만 안쪽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기에 기이한 표정으로 품을 살폈다.
“응?”
없다.
아무리 만져 보아도 전낭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전낭이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누가 짐작이나 할까.
그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어디 갔어? 왜 없어?!”
온몸을 뒤적거리며 전낭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두 가지뿐.
움직이면서 빠져나갔든가 혹은 누군가가 훔쳐갔든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장삼태는 번뜩 무언가를 깨닫고 소리쳤다.
“단우현! 이 개새끼야―!”
쩌렁쩌렁-!
그의 목소리가 한없이 울려 퍼져 나갔다.
* * *
“귀가 간지럽군.”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는 단우현은 손에 쥔 전낭을 매만졌다. 상당히 묵직한 것으로 보아 은자만 해도 수십 냥은 넘어 보였으며, 전표마저 들어 있으니 꽤 큰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에 남궁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우현의 전낭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머니는 상당히 낡았고 마치 어렵게 구하거나, 혹은 천쪼가리를 덧대 급조하여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무리 다시 보아도 단우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또 어디서 났는가?”
“주웠다.”
“……그걸 주워?”
사도학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겉모양새만 보면 틀림없이 주웠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금액을 생각해 볼 때, 누군가가 고이 모셔 둔 것을 빼앗은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보나 마나 삼태 놈 것이겠지.”
“허…… 그럼 그놈은 지금 무일푼이라는 말인가?”
“…….”
두 사람이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기가 막힌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리 단우현이라 한들 이러한 짓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전낭을 매만지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게 다 수련이다.”
“미친놈.”
사도학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련을 빙자하여 장삼태를 골탕 먹이며 즐기는 것 같지 않은가?
“허…… 이번에는 좀 심했네, 가주…….”
“괜찮다. 어디 가서 쉽게 죽을 놈은 아니니 말이야. 그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지?”
단우현이 주위를 바라봤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산밖에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산을 넘어 이동하려 했으니, 깊게 들어온 탓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단 저 봉우리를 넘으면 호북으로 가는 길이고…… 그 옆에 있는 봉우리를 넘으면 중경으로 빠진다네.”
“그렇군…….”
단우현은 남궁천이 가리킨 두 산을 바라봤다.
호북으로 갈 것인가, 중경으로 갈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간에 재미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 단우현이 오른쪽을 바라봤다.
호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더 부드럽다.
또한 그곳에서 장삼태의 냄새가 났다.
“호북에 삼태가 있는 것 같군. 냄새가 난다.”
“개냐? 엉?”
사도학이 인상을 찌푸리며 단우현을 쏘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