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08
사람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기분을 느낀 적 있는가?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골목 어귀에 축 처져 있는 장삼태는, 그런 기분을 느끼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기껏 단우현의 마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그 모든 것들이 단우현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니.
전낭을 가져간 것은 틀림없이 이러한 일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개자식!’
불만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주머니에 손을 대다니.
천하의 단우현이라 하여도 해도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다소 도가 지나쳤다.
‘확 현청에 일러바쳐?’
장삼태는 생각했다.
포졸들에게 포박당하는 단우현의 모습.
현청 중앙에 무릎 꿇린 채 도둑놈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그 광경.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그게 마음대로 안 될 거란 말이야…….”
이윽고 웃음을 멈춘 장삼태가 늘어지게 몸을 벽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상은 언제나 상상에 지나지 않다.
현청으로 단우현을 끌고 가 엿을 먹인다 한들, 호남단가의 장주 말을 믿겠는가, 돈 한 푼 없는 거지 종놈의 말을 믿겠는가?
어느 현령이든 간에 단우현을 믿을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세간에 들려오는 단우현의 위엄과 홍원창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무슨 짓을 한다 하여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길…….”
이렇게 되면 어떤 방식을 써서든 돈을 구할 수밖에 없다. 여정도 여정이기는 하지만 다시금 단우현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소매치기일까?
잠시 잠깐 생각을 하던 장삼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손을 씻었다.
단소미를 만난 직후부터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 다짐을 하지 않았던가?
도둑놈이 개과천선한다는 것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장삼태는 단소미와의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불법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오문?’
하오문으로 들어가 돈을 뜯어내는 것?
따지고 보면 소매치기나 이 짓이나 비슷한 것 같기는 했지만, 정중하게 받아 오는 것이니 일말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장삼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짓을 했다간 단우현에게 자신의 위치가 바로 들통이 날 것이 분명했다.
하여 또 그것을 제외하고 생각한 방법은 바로 범죄자들을 잡아 현상금을 챙기는 것이다.
혹은 그러한 이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이고.
장삼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잣거리로 향했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니, 사건사고 역시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왈패니 뭐니 누구든 하나만 걸려라.’
장삼태가 눈을 번뜩이며 매처럼 주위를 바라봤다.
노리는 시선이 매서운 것이, 주먹패든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왕창 뜯어낼 생각이 가득한 것 같았다.
범죄로 번 돈을 그들을 훈계하고 정당하게 가져가는 것이니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는 듯 보이기는 했으나, 이러한 모습 자체가 단우현과 몹시 닮았다는 것을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한참 동안 주위를 바라보고 있던 장삼태는 문득 어떤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머리에 천을 깊게 눌러 씌웠고, 움직임 역시 상당히 기묘했다.
제법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인지 다부진 체격이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손놀림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고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품 안에 고이 숨겨 두었던 전낭이 쑤욱 하고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각은 그야말로 찰나다.
정작 본인은 무언가를 도둑맞았는지조차 모를 정도였으니, 저 사내의 도적질이 하늘에 닿았음이다.
“야! 거기 서!”
부리나케 튀어 나간 장삼태가 거칠게 소리를 쳤다. 은밀히 사람들과 섞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던 사내가 움찔하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헉?”
“엄마야!”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사람이 이처럼 빠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속도다. 경공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장삼태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놈이!”
그러나 장삼태 역시 경공 하나로 먹고살았던 자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을 빛내며 장삼태 역시 몸을 날렸다.
애초에 이 중원 무림에서 경공으로 장삼태를 이기려 한다면 오황 정도는 되는 이들이 찾아와야 할 것이다.
쏜살과도 같이 날아간 장삼태는 빠르게 사라진 이의 꼬리를 쫓았다.
아무리 빨라도 그보다 더욱 빠르게 나아가니, 눈앞에서 그 흔적을 놓칠 리가 없다. 굳이 추격술을 하며 흔적을 찾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야 이놈아! 감히 내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전낭 내려놓고 가라고!”
장삼태는 쩌렁쩌렁 소리를 쳤다.
점점 상대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확인하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두둑한 전낭 몇 개를 확인하였으니 조금만 얻더라도 능히 먹고사는 것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호재다.
그렇기에 장삼태는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윽고 완벽하게 거리를 좁히고는 그 옷깃을 붙잡으려는 순간.
팟!
등을 돌린 사내의 손이 날아들었다.
빠르다.
섬전과도 같은 금나수.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느낌에 장삼태는 인상을 썼다. 치고 들어오는 손놀림을 가볍게 받아넘기며 상대의 멱살을 부여잡고 그대로 땅으로 내리꽂았다.
쾅!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고야-!”
곧 노인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이 들렸는데, 그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장삼태는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천이 벗겨진 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이고…… 나 죽네. 야 이 새끼야! 늙은 놈 죽이려고 하느냐? 잡으려면 곱게 잡을 것이지!”
이내 까랑까랑한 언성이 들려왔다.
귀를 울리는 익숙한 음성에 장삼태는 잠시 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움찔했다.
장삼태는 재빠르게 얼굴을 가렸고, 아프다 고함을 내지르던 노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너!”
“나…… 나를 아쇼?”
장삼태는 식은땀을 흘렸다.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그것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라 한다면 더더욱 말이다.
지금 장삼태가 그러했다.
과거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늙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척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어찌 네놈을 몰라보느냐! 나야, 나! 금대량! 네놈 스승이지 않으냐?”
“하, 하하, 무…… 무슨 소리를 하쇼? 나에겐 스승 따위는 없습니다만?”
금왕수 금대량.
한때나마 장삼태에게 경공을 가르쳤던 인물이며, 또한 아직까지도 최고의 도둑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존재이기도 한 자다.
비록 지금은 저잣거리에서 소매치기나 하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지만, 과거에는 털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대단했던 자이다.
하지만 장삼태는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자다.
“이놈 보소, 이놈 보소! 아, 아니! 네놈이 어찌 살아 있는 게야?”
금대량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금왕수 말인가?”
“그래. 기이해서 그렇다. 선천지기를 끌어다 쓰는 경공을 익히고 있는데…… 그자는 어찌 여전히 살아 있는지 말이다.”
단우현이 지금까지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딱히 크게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묻어 두기는 하였지만, 장삼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애초에 선천지기란 생명 그 자체.
그것을 끌어다 쓴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인데도, 그 금왕수란 이는 상당히 오래 살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금왕수라는 이름이 들려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기이한 일이 아닌가?
“흐음…… 글쎄…… 사실 노부도 그 점이 궁금하다네.”
남궁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에는 그저 희대의 경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는데 장삼태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본 순간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응당 죽었어야 할 늙은이이거늘 살아 있는 것이 용하기도 하였다.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을 해, 이것들아?”
“음? 뭔가 아느냐?”
단우현의 시선이 사도학을 향해 돌아갔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걸으며 조금 전 뜯어 온 칡을 갉아먹고 있는 사도학은, 의문 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이 무척 우습게 보인 모양이다.
“그 늙은이는 말이다. 가진 돈을 전부 영약 사는 데 쓴다. 선천지기라 해 봐야 결국 기운인데 그것을 다스려 줄 영약들이 없을 리가 없지.”
“허허, 그럼 결국 훔치는 것 역시 살기 위한 것이라는 거군.”
남궁천이 그제야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도둑질이나 하고 다니는 이다.
내공을 크게 쓸 일이 없을 것이고 싸움은 피해 다니면 그만이다. 침입할 때 또한 들키지만 않는다면 경공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선천지기를 최대한 아낄 수 있다.
비어 버린 기운은 영약을 복용하여 회복시키니, 자연스럽게 전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여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웃기는군. 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도둑질을 할 때마다 죽어 가다니.”
“그게 그놈들 천성 아니겠어? 솔직히 하나 제대로 털면 영약 사고도 남을 돈이 생길 테니 일석이조이고 말이다.”
“금왕수라는 것들 대대로 그러했다는 것이 신기하구먼…… 나같았으면 진저리를 쳤을 것이야.”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둑질을 그만두지는 못한다. 애초에 금왕수라는 이름을 이은 이상 도둑이 되어야 할 운명이니까.
하지만 도둑질을 하고 경공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목숨이 깎여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니 살기 위해 그만둘 수 없게 된다.
악순환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남궁천이 쯧쯧 혀를 찼다.
“이러니 마공이라 불리는 것들은 익히는 것이 아니야.”
“마공도 마공 나름이지. 그깟 쓰레기 무공과 이 어르신의 무공을 비교하는 거냐?”
뒤에서 따라오던 사도학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마공을 무시하는 남궁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확 인상을 쓰며 고깝게 바라보자, 앞서 걷고 있던 남궁천 역시 걸음을 멈추고 사도학을 바라보며 껄껄 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마공을 익혀 제대로 된 놈들이 있기는 하는가?”
“있잖아? 나!”
“네놈 말고!”
“그럼 마교의 다른 놈들은 다 머저리 등신이라는 거냐?”
사도학의 말에 남궁천이 또다시 껄껄 웃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 그 모양새는 마치 긍정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고깝게 바라보던 사도학의 주위로 광풍이 몰아쳤다.
지금까지와는 엄연히 다른 기세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니, 남궁천의 부드러운 기운 역시 마치 맞서 싸우듯 흘러나왔다.
단우현은 그런 두 사람을 가만 바라봤다.
휘몰아치는 광풍과 거센 기세들이 부딪치며 엄청난 위압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단우현은 그들이 내뿜는 기세를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싸울 것이 그렇게 없느냐? 애들만도 못하군, 쯧쯧.”
그런 말을 내뱉으며 천천히 앞서 나갔다.
격렬하게 부딪치려 했던 두 노인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찔 몸을 떨며 어색한 표정으로 서서히 기운을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