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1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운 날이다.
푹푹 찌는 열기는 숨을 쉬지 못하게 할 정도였으며, 가만히 그늘에 앉아 있음에도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삐질삐질-
땡볕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 참으로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안쓰럽다.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당과를 씹어 먹으며 한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소혜는 저들의 인생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제기랄…….”
“…….”
“아- 더워요…….”
불쌍하다.
사내 두 놈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소미가 참으로 안쓰럽다.
기왕이면 함께 그늘에 앉혀 놓고 쉬게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일을 끝낼 때까지 다른 두 아저씨들과 함께하겠다는 의리로 똘똘 뭉친 단소미다.
“그러게 왜 이런 더운 날 밭을 일군다고 이 짓을 해요? 돈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을 쓰지.”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유유자적 태연하게 입을 여는 남궁소혜가 몹시 거슬렸는지 장삼태가 언성을 높였다.
사람을 쓰고 싶은 생각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다.
단소미나 권무진과는 다르게, 배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나무 베기를 해야 하는 장삼태의 입장에선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단우현의 명령이다.
반 시진씩 쪼개서 일다경 휴식만을 취하고 다시 나무 베기를 두 시진 꽉 채워 해야만 남은 시간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단소미라 하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번, 삼도회 일을 겪고 나서부터 단우현은 마치 몰아치듯 이러한 일들을 시키고 있었다. 그래 봐야 시작한지 고작 나흘이 지났지만 말이다.
그때,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궁소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권무진이 인상을 쓰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만있지 말고 좀 돕지 그래?”
“더워서요.”
“안 더운 사람 없다. 소미도 하는데 넌 애만도 못하구나.”
“윽……!”
“아니에요, 이건 저희 일인 걸요. 언니는 안 도와줘도 돼요.”
단소미가 방긋방긋 웃었다.
이런 땡볕에 나흘 동안 밖에서 일을 한 탓인지 단소미의 얼굴은 예전보다 많이 탔다.
심지어 낫을 쥐고 있던 손은 물러 터진 탓에 피가 살짝 보였는데, 이는 아직 낫을 잡는 것이 서툰 탓이기도 했다.
이런 어린아이에게 노동을 시키다니…….
남궁소혜가 포옥 하며 한숨을 쉬었다.
“소미야, 이리 오렴. 언니 옆에 앉아.”
“안 돼요. 아빠가 시킨 일인 걸요.”
“그런 계부 말은 들어선 안 돼. 그러다 고운 손 다 터지겠다.”
단소미가 슬쩍 자신의 양손을 바라봤다.
물집 맺힌 곳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잠시 울상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소미는 괜찮아요. 예전에도 해 봤는걸요, 농사일.”
헤헤 웃으며 단소미가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낫을 들고 잡초를 베며 또다시 일을 시작했다.
사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 두 부모와 함께 밭을 일구던 일이 생각이 난 탓에 제법 즐겁기도 하다.
그것을 바라보며 남궁소혜가 작게 한숨을 쉬는 순간.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마라. 그런 말 모르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과를 먹고 있던 남궁소혜가 체한 듯 콜록거리며 가슴을 두들겼다. 인기척조차 없이 나타난 인물로 인해 먹고 있던 것이 목에 걸려 버린 거였다.
“기, 기척 좀 내고 다니죠?”
“네가 듣지 못한 것을 남 탓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흐…… 흥! 어쨌든요. 그리고 일하지 않는 자라니요? 저는 무림맹의 일을 완수하고 지금 휴식 기간인걸요? 더군다나 매일같이 숙박료도 주고 있고. 아-주 비싸게!”
남궁소혜가 아미를 찌푸렸다.
하루 숙박료가 무려 은자 한 냥이다.
어느 객잔이라 하여도 은자를 받아 가는 곳이 없는 만큼, 어마어마하게 비싼 금액이다.
심지어 하루 세끼 중 두 끼에 돈을 받는다.
철전 닷 푼씩.
‘집에서 돈 가지고 와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또 구걸해야 했을 거야.’
남궁소혜는 자신의 선경지명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편이 뿌려지는 곳이 호남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림맹에서 받는 돈을 평소에 두 배, 그리고 무림맹에 남아 있는 아비에게 상당량의 용돈을 챙겨 받았다.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빈털털이가 되었을 거다.
“비싸다니? 하루 한 끼를 무료로 제공하는 데다, 네가 머물고 있는 방이 좀 크더냐? 은자 한 냥이 아니라 닷 냥을 받아도 시원찮을 정도다.”
“……흥.”
남궁소혜가 뾰로통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우현의 말 또한 틀리지는 않다.
객잔에서 잠을 자는 데 드는 비용은 허름한 곳이라 해도 철전 스무 푼은 넘게 든다.
그렇다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탓에 이것저것 돈을 주고 사 먹고 나면 은근히 많이 나가는 법이다.
그래서 한때 망하기도 했고.
심지어 방도 작다.
“어쨌든 한 일이 없으면 너도 해 보지 그러느냐?”
“엑? 제가요? 저는 밭일 해 본 적이 없는데…….”
또르르-
남궁소혜가 시선을 돌렸다.
제대로 된 밭일도 아니다. 지금 눈앞의 이들이 하는 일은 밭을 일구는 과정인 셈이다. 그 탓에 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권무진은 거대한 망치를 들고 돌을 깨고 있고, 장삼태는 나무는 패고 있다.
단소미는 잡풀을 제거하고 있으니만큼, 사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때,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언제 가지고 온 것인지 손에 쥔 괭이 하나를 넘겼다.
“그냥 땅을 패면 된다.”
“에?”
“이곳부터 시작해서 평평해진 곳 전체를 말이다.”
남궁소혜는 가만히 땅을 바라봤다.
현재 그녀가 앉아 있는 곳 주변의 땅은 상당히 평평하다. 이미 손질도 끝나 있어, 곧바로 밭을 갈기 위해 괭이질을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아무리 돌을 치우고 나무를 베고 잡초를 뜯어낸다 하여도 땅 속에 박혀 있는 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녀의 눈앞에는 자그마한 돌 몇 개가 땅속에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이걸 괭이질하라고?
차라리 소를 이용해 뒤엎는 게 빠를 것 같다.
“차라리 소를…….”
“사 와.”
“…….”
사 오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누구 좋으라고 비싼 소를 사다 바친단 말인가?
“저는 숙박료를 내고 있어요.”
“그럼 하루 은자 두 냥씩을 받도록 하지.”
“네?!”
“방도 넓고 풍경도 좋겠다, 물가도 있으니…… 마침 여름이고 성수기(盛需期)에 접어들 때니 바가지 좀 씌워 보지.”
그게 대놓고 할 말인가요, 당신?
남궁소혜는 입꼬리를 들썩이며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단우현의 말은 틀리지 않다.
이렇게 더운 날이고 사람들이 한창 놀러 다닐 법한 시기이다.
심지어 이곳은 악양, 동정호를 끼고 있으니만큼 이런 시기에는 대부분의 객잔에서 상당히 많은 돈을 챙기기 위해 비싼 바가지를 씌운다.
지금 단우현이 그것을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남궁소혜 또한 대책이 있다.
지금 그녀의 주머니는 넉넉하다 못해 넘치니까.
“해 봐요!”
“호오? 이번에는 제법 주머니가 두둑한가 보지?”
“그런 일을 겪었으니 당연하죠. 저를 얕보지 말라고요.”
남궁소혜는 씩 웃었다.
이번만큼은 단우현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무림맹에서 받아 온 금액도 크기는 하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용돈 또한 웬만한 사람들 일 년 치 봉급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그럼 내기를 할까?”
“내, 내기요?”
남궁소혜가 의심스런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내기라니?
도박을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런 것을 좋아하나?
상당히 뜻밖인 탓에 실소를 머금으며 남궁소혜가 입을 열었다.
“뭘 하려고요?”
“아주 쉬운 일이다. 여기서 저기까지 괭이를 들고 누가먼저 열 줄에 밭을 가나 하는 것이지.”
흠- 하며 남궁소혜는 신음을 삼켰다.
그녀가 있는 곳에서 끝까지, 즉 단소미가 잡초를 베고 있는 곳까지 거리는 약 이십 여 장이 조금 넘는다.
괭이질을 처음 해 보기는 하지만 그 정도 체력은 충분히 넘친다.
심지어 내공 또한 만만치 않게 높은 여인인지라, 마음만 먹는다면 괭이질하는 데 일다경도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씩 웃자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승낙하는 건가?”
“무엇을 걸려고요?”
“하루 치 숙박료를 받지 않도록 하지.”
남궁소혜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았다.
돈을 아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고.
“좋아요! 하지만 한 가지 더. 밥도 공짜로 주셔야 해요.”
“물론이다.”
“그럼 전 뭘 걸까요……?”
“딱히 네게 필요한 것은 없다만, 내기이니 무언가 있기는 해야지. 그래야 더 불타오르고. 은자 한 냥이면 어떠냐?”
고작해야 하루 숙박료다.
남궁소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양반이 웬일로 제대로 된 제안을 한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잃는 것도 그리 크지 않고.
“하지만 단 공자는 고수이니 제가 출발을 한 후 스물을 세고 출발하세요. 그 정도는 상관없죠?”
“오십을 세고 출발하지.”
“자신 있나 봐요?”
단우현이 피식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남궁소혜도 마주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력이 좋았던 그녀는 단우현이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하여도 힘과 체력에서만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오십을 세야 하니만큼 그는 남궁소혜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괭이질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 다소 어색할지 모르겠으나, 단순히 땅을 파면서 나가면 되니 힘들 것도 없다.
고작해야 이십 장이며 열 줄이다.
심지어 시간은 그녀의 편이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좋아요!”
남궁소혜가 괭이를 들고 내공을 불어 넣었다.
단숨에 저 끝까지 땅을 파 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차게 힘을 내뿜었다.
퍽퍽퍽!
그녀가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곧장 끝까지 갈 기세를 보이는 데다, 눈앞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다.
지금 그녀는 오로지 땅을 파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다.
‘이길 거야! 이긴다!’
남궁소혜는 눈에 불을 켜고 괭이질을 했다.
뒤에서 하나둘, 하며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기에, 움직이는 그녀의 손이 더욱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어느새 흥건하게 땀이 난다.
한 줄을 끝내고 뒤를 돌아 두 줄을 가고.
다시금 세 줄을 팠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님을 증명하듯 땀은 비를 맞은 것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온몸에 힘이 빠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이를 악물며 괭이질을 했다.
이번만큼은 단우현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순식간에 아홉 줄기의 밭을 일구었다.
이내 뒤에서 오십이라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지막 땅을 갈고 거칠게 괭이를 내려놓으며 남궁소혜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헉, 헉! 거…… 거봐요! 제가 이겼죠?”
주룩주룩 흐르는 땀을 닦아 내지도 못한 채 단우현을 바라봤다. 득의양양한 얼굴과 단우현을 이겼다는 쾌감이 그녀의 전신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한데, 무언가 이상하다.
단우현은 단 한 줄에 밭도 갈지 않았다.
그러곤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실소를 머금고, 손에 쥔 괭이를 땅에 던져 놓았다.
“그래, 네가 이겼다.”
그녀의 귓가에 피식 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그가 등을 돌려 사라졌다.
“…….”
남궁소혜는 멍하니 그 등을 바라봤다. 한순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것인지 입꼬리를 파르르 떨다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장삼태와 권무진이 보였다.
그녀가 사라져 가는 단우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이…… 이봐요, 어디 가요? 네? 조금 더 말 좀 해 줘요!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나 단우현은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사라져 갔다.
남궁소혜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이내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주변을 바라봤다.
“제가…… 이긴 거죠?”
“하아…….”
권무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인지 바위를 깨는 데 다시금 열중했다.
장삼태 또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안쓰러움을 느낀 것인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등을 돌렸다.
“저기! 제가 이긴 거라고 해 줘요! 부탁이에요! 제가 이겼잖아요! 그렇죠?”
몇 번이고 말을 해 보지만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은 완벽히 남궁소혜가 단우현의 꾐에 넘어갔으니까.
‘단순한 것.’
‘바보로군.’
두 사람은 저마다 속내를 감추며 씁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