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16
“끄어어어…….”
“억…….”
“사…… 살려 줘…….”
장삼태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이들은 틀림없이 근처에서 제법 힘 좀 쓴다는 거지패들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무서웠던 존재들을 이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제압하는 자신이 더 무서웠다.
“내 참, 이 잡것들아.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라고.”
장삼태는 묵호를 바라봤다.
널브러져 있는 그가 땅을 기며 아픈 복부를 부여잡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움찔하며 덜덜 몸을 떨었는데, 어찌나 통쾌한지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런 놈이 뭐가 무섭다고…….’
쯧쯧 하며 장삼태는 혀를 찼다.
이대로 숨통을 끊어 놓을까 잠시 생각했다.
분명 몸이 낫는다면 또다시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이것저것 해 먹을 놈들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눈가에 살심이 맺힌 탓인가?
그것을 깨달은 이들이 소리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제, 제발!”
뒷골목이라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거친 생활을 하던 자들이다.
사람의 눈가에 맺힌 살심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만큼, 묵호를 비롯한 이들은 벌벌 몸을 떨며 애걸복걸하였다.
장삼태가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는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이들이 무작정 골목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엎어져 있다가는 언제 목이 날아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도망치지 못했다.
달려 나가는 그들 사이를 누군가 가로막았다.
서걱-!
한순간에 섬광이 일더니 묵호를 비롯한 사내들의 몸이 양단되었다.
피가 뿌려지고 그 파편이 어지럽게 주위에 널브러졌다. 누구 하나 산 자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을 하는 이들은 없었으며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이 역시 없었다.
“누군데 함부로 살생을 하쇼?”
장삼태가 그것을 바라보며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죽이려 했다면 진즉 자신의 손으로 했을 것이다. 한데, 결과적으로 죽임을 당하였으니 장삼태의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터벅터벅―
검을 빼 든 사내가 천천히 장삼태를 향해 다가왔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포권을 했다.
“호남단가의 장삼태 대협이 맞으십니까?”
“맞는데?”
어찌 알았는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장삼태라는 이름은 사실상 그리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남단가에서 유명한 이는 틀림없이 단우현과 그 주위에 있는 늙은이들이니까.
“진도세가에서 나왔습니다. 가주께서 잠시 이야기를 하시고자 하니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도세가?”
장삼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에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지금 이 상황이 그리 내키지는 않았으나, 상대가 예의를 차리며 부탁을 해 오니 단박에 거절하기 힘들었다.
“무슨 일로? 나는 우리 장주님이 아닌데?”
“대협을 뵙고자 함입니다.”
“나를?”
“예.”
“뭔 일로?”
“…….”
사내가 다소 어이없는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이미 용무가 있다 말을 하였으니 가서 확인을 해 보면 될 것을 왜 굳이 같은 말을 반복하여 되물어본단 말인가?
“그것은 가서 직접 들으시는 것이…….”
“에이, 뭔 개소리를 그렇게 하쇼? 나한테 뭔 말이든 하고 싶은 놈이 와야지.”
“예?”
“몰라서 물으쇼?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오라 하쇼.”
장삼태는 그런 말을 내뱉으며 유유히 등을 돌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제법 멋있는 말을 했다 여겨지는지, 걷는 걸음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우뚝 걸음을 멈춰 서며 등을 돌렸다.
석상처럼 굳어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내 있을 곳이 없어 그러니 나 있는 곳 찾아오고 싶으면 객잔 비용 좀 주쇼.”
“…….”
사내의 인상이 급격하게 구겨졌다.
* * *
“뭐라고?”
“그…… 그러니까…….”
사내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말을 내뱉기는 하였지만 저리 역정을 내니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괜히 두려운 마음에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지, 직접 찾아오시라…… 전하라 했습니다.”
“하…….”
진도세가의 가주 진도유는 기가 찬 듯 혀를 차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강해진 진도세가의 영향력 탓에 어느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무리 호남단가라 하여도 그곳의 가주도 아닌 일개 무사인 자가 한 가문의 수장을 오라 가라 하다니?
그것이 더욱 어이없고 화가 났다.
손아귀가 부들부들 떨리며 힘이 들어갔다.
쾅!
이윽고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내려치자 탁자가 와르르 부서지며 파편이 휘날렸다.
“미친놈 아니더냐!”
“확실히 미쳐 보이기는 했습니다…… 돈도 빼앗듯이 가져가고…….”
“뭐?”
“아, 아닙니다.”
사내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객잔비랍시고 전낭을 통으로 털어 갔는데,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다 아파 왔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돈은 상당했기 때문이다.
‘어제 받은 녹봉이었는데…….’
앞으로 한 달을 어찌 살아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했다.
“그래, 그밖에 무슨 소리를 하더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찾아오시라고만…….”
진도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공천문을 멸문시킨 호남단가의 무사가 감숙으로 찾아왔다. 공천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진도세가이니, 혹여 호남단가의 다음 목적이 이곳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하제일세가라…….’
진도유는 머릿속의 그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혈천과의 싸움이 있었을 당시에는 전력을 보전시키기 위해 참가하지 않았던 탓에,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듣기만 했다.
하지만 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호남단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소문이 그렇게 돌았다면 분명 그러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를 어찌한다?”
괘씸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도 찝찝했다. 어떠한 방식이라도 저들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진도유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가만 앉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내가 가면 굽히는 것 같은 모양새고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는 없고…… 이것 참 고민되는구나.”
의자에 몸을 눕힌 진도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호남단가의 가주도 아닌 일개 무사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쾅!
그때,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화사한 옷차림의 여인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잔뜩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대뜸 진도유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행동을 취했다.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부인이야말로 왜 그러는 것이오, 대체?”
“내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죽었는데 왜 칼을 들지 않고 이리 앉아만 계시냐고 묻고 있습니다!”
여인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오라버니인 공마중을 잃은 충격과 분노가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하지만 가장 믿고 있는 남편인 진도유가 아무런 행동조차 취하지 않고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선 답답하고 짜증이 날 법도 했다.
“정확한 사정을 알아야 이쪽에서도 조치를 취할 것 아니오?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모르는 것이오?”
“우리 오라버니가 죽었다고, 이 새끼야-! 그런 게 지금 뭐가 필요해!”
공백지는 한쪽에 놓여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순식간에 발검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통 실력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어느새 칼날은 진도유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고, 칼날은 파르르 떨려 왔다.
“당신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하겠어!”
“미친 소리 하지 마시오! 진도세가까지 망하게 할 셈이오?”
“진도세가든 뭐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 가족이 죽었는데! 당신! 당신-! 지금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잊었어? 다 우리 오라버니 덕분이었다고!”
“큭!”
“말리지 마! 말리는 순간 당신도 죽여 버릴 테니까.”
공백지는 칼을 거두며 거침없이 밖으로 나섰다.
성큼성큼 걷고 있는 그 발걸음은 분노를 토해 내려는 것 같았다.
그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진도유는 미간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미치겠군, 정말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이곳은 진도세가가 아닙니까? 가주님의 명령 없이 움직일 아이들은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겠지만…….”
진도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불같은 성격은 도무지 어찌 되지 않는다.
제 오라비의 일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모든 행동이 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 * *
누군가 자신의 목을 따려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장삼태는 하오문이 운영하고 있는 기루에 눌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사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이는 장삼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이한 것은 또 있다.
술을 마시고 있는 장삼태의 곁에 기녀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헤롱헤롱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장삼태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
마치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무언가를 들은 것 같았다.
“정말이오?”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난주상단이 바로 진도세가라고?”
“예, 틀림없습니다.”
“하…….”
장삼태는 거침없이 술잔을 넘겼다.
난주상단.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잊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그의 어린 여동생을 때려 죽였던 상단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못을 한 것은 장삼태이기는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여동생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틀림없는 난주상단의 짓이었으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장삼태는 술잔을 매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토록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또한 이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그리고 대협께서 멸문시킨 공천문 말입니다만…….”
“또 뭐가 있수?”
“난주상단의 뒤를 봐주고 있던 것이 바로 공천문이었습니다.”
“아…… 그렇군.”
장삼태는 거칠게 술잔을 기울이며 천장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벅벅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인연이라는 게 있기는 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