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17
“난주상단이라…….”
장삼태는 하오문에서 얻은 말을 타고 주천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가는 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생각이 조금 많았는데, 이는 난주상단과 여동생 간의 일 때문이었다.
장삼태가 비단을 훔쳤던 곳은 틀림없는 난주상단.
그리고 그것을 멋대로 입다 걸려 여동생을 죽인 곳 역시 난주상단이다.
철천지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기에, 지금까지 그 이름을 잊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과거라면 복수 따위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힘없는 도둑놈이 한 상단을 무너트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지금의 장삼태는 아니다.
홀로 공천문을 멸문시킬 정도의 힘이 있다 보니, 난주상단 하나 무너트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복수를 하려 하니 쉽게 몸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모든 사태에는 시작과 끝이 있을 것인데,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 한들 시작은 장삼태가 하였으니 결과 또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동생 역시 지금 같은 복수를 바랄까?
“아…… 시벌, 몰라! 진짜 짜증 나네.”
장삼태는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러한 과정과 장삼태 역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힘이 없을 때는 그리 죽이고 싶었던 자들이었는데, 막상 힘이 생기고 나니 괜한 생각이 드는 우습지도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던 그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모든 것을 접어 두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주천과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당장은 여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길을 따라갔다.
또다시 하루가 지나고 이른 아침 말을 타고 출발했다. 그러한 것을 며칠 반복하니 드디어 장삼태의 고향인 주천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많이 변했네, 여기는…….”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는 풍경은 드문드문 남아 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주위 풍경과 사람들이 그러했다.
아는 얼굴들 또한 거의 없었다.
이곳을 나간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새로운 사람들을 채워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장삼태는 그러한 거리를 걸어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곳은 주천을 빠져나와 산길을 타고 조금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인근에는 사람도 살지 않아 조용히 살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움직였다.
산세는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았는데, 그 풍경이 조금 바뀐 것 같은 느낌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는데 벌써 이곳을 떠난 지 이십여 년이 흘렀으니, 작게 남은 것을 제외하면 낯선 것들만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윽고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산 중턱으로 꽤 올라간 집이었는데 주천 마을이 한눈에 다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없는 탓에,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도 풍겼다.
장삼태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건들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공간을 둘러보며 옛 생각에 빠졌다.
동생은 언제나 자그마한 마당에서 뛰어놀았고, 장삼태는 나무를 하거나 산에서 먹을 것을 캐어 돌아왔다. 불을 때기 위해 나무 역시 해야 했는데, 가장 힘든 것은 바로 한겨울에 나무를 했던 것일까?
그러한 생각을 하며 장삼태는 마당에 보이는 커다란 통나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썩은 통나무이기는 하지만, 마당에 앉을 곳을 만들고 싶어 어렵게 가지고 온 것이다.
하루 종일 깊은 산속에서 밧줄을 메고 질질 끌고 온 탓에, 손아귀가 전부 터져 나갔을 정도였다.
“여기가 네 집이더냐?”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던 장삼태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단우현과 남궁천, 그리고 사도학이 집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삼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 떼어 놓고 온 것 같은데 용케 아셨습니다요?”
“네놈 생각이야 거기서 거기지.”
“단순하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맞다.”
“…….”
장삼태가 말없이 단우현을 노려봤다.
주먹을 쥐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단우현만 아니었다면 벌써 저것이 나갔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단우현은 그저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좋은 집이구나.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군.”
“살아 보시렵니까?”
“네놈이?”
“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눕는 순간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요.”
“그런데 나보고 살라는 것이냐?”
단우현이 의문 섞인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어이없어 하는 눈빛 역시 있었는데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며 중얼거렸다.
“장주님이야 이런 집에서 자다 무너진다고 해도 멀쩡히 살아올 사람 아닙니까요?”
“하하.”
신뢰라 해야 할지 비꼬는 것인지 모를 말투다. 단우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품에서 술 한 병을 꺼내 마당에 뿌렸다.
“제 동생은 이곳에 묻힌 게 아닙니다만?”
“안다. 그저 이곳에 머문 바람이 너를 봐 반가워하기에 술 한잔 주려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누가 보면 미친놈 같다니까.”
아무도 들리지 않게 속삭이기는 했지만, 단우현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이 돌아오자, 몸을 움찔한 장삼태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뭐…… 틀린 말 했나? 다른 사람이 보면 그렇다는 거 아닙니까요?”
“시끄럽다. 그건 그렇고 네 동생은 어디에 있느냐? 왔으니 술이나 한잔 따라 줘야지.”
“에엑?”
장삼태가 싫은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할 상황임이 분명한데도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이 먼저 나오니, 남궁천이 기가 차 입을 열었다.
“인석아, 싫은 것이냐? 왜 이리 얼굴을 찌푸리느냐?”
“그…… 맨날 오라비 쥐어 패는 사람들 얼굴을 보게 하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요?”
“허허, 네놈이 지금처럼 맞을 짓을 하니까 그러는 것이야.”
빠각!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장삼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가볍게 내지른 한 수이기는 하지만, 머리를 얻어맞은 장삼태는 죽을상을 지으며 신음을 집어삼켰다.
아파도 엄청 아프다.
천하오황 중 한 명이 때린 꿀밤이었으니, 그 통증이 오죽할까?
장삼태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크으…… 여기서 멀지는 않습니다요…… 그런데 정말 따라오려 하십니까요?”
“그래, 네 가족이 궁금하구나.”
단우현의 말에 장삼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에 최대한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단우현과 남궁천, 사도학이 저런 말을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 길을 따라 쭉 가면 있습니다요. 돌을 쌓아 올려 만들어서 금방 눈에 띕니다요.”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쪽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집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형국이다. 주천 마을과 다소 가까운 거리였는데, 집 인근이 아닌 이런 곳에 묻은 것은, 당시 난주상단에서 장삼태의 존재를 알고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묻을 수밖에 없었고 빠르게 도망을 쳐야 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장삼태는 처음과는 다르게 어느새 표정이 펴져 있었다. 오랫동안 가 보지 못했던 탓에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와 찾아오니 그 두근거림이 오죽할까?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기! 저기입니다요!”
“확실한 것이냐?”
“이 장삼태! 아무리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제 동생 묻은 곳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요?”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그것만 봐도 지금 장삼태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고 또한 주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비록 밝게 웃으며 받아 들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장삼태는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전해 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 자리에 도착한 것인가?
앞서가고 있던 장삼태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뭐…… 야?”
장삼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하고 있는 장소는 지금 이곳이 틀림없다.
하지만 돌로 쌓아 올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지이며 잡초와 수풀이 무성한 산이다. 어디를 어떻게 본다 한들 사람이 묻혀 있는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이게 뭐야?”
“잘못 찾은 거 아니냐?”
사도학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제 동생의 무덤도 못 찾는가 싶어 질책하는 시선이 역력했다.
“아니…… 틀림없습니다요! 이…… 이 나무 한번 보십쇼! 내, 내가 칼질해 놓은 자국이 있지 않습니까요!”
장삼태가 커다란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혹여 있을지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새겨 놓은 것이다. 돌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니, 커다란 나무에 흔적을 새겨 놓는다면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될 테니까.
한데 그 흔적을 찾기는 하였지만, 동생의 무덤으로 보이는 것은 존재치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장삼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손아귀가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이윽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걷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없다고! 여기 맞다니까요!”
마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크게 퍼져 나갔다.
* * *
돈이라는 것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돈으로 귀신까지 부린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그 돈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기 때문이다.
공백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사내가 온갖 병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름 이름만 대면 안다는 고수들.
천하백대고수라 불리는 이들이며 이 감숙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가진 힘이 적지 않으니, 이 정도 숫자라면 능히 팔대세가라 불리는 곳들마저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탁-!
그녀는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탁자 위에 전낭 하나를 던졌다.
제법 묵직하였는데, 주둥이가 흐트러지자 안에서 금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우오-! 대단한데?”
“크하하, 역시 난주상단이로군. 이러한 거금을 순식간에 준비하다니.”
주위에 몰려 있는 사내들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돈이라면 능히 수년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공백지는 놀라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품에서 한 다발의 전표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은자 십만 냥이에요.”
“헉?!”
“시…… 십만?”
올려놓은 전표만 은자로 십만 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자까지 합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 역시 틀림없었다.
감숙에서 가장 큰 갑부라 하는 난주상단이 아니었다면 결코 구할 수 없는 금액이기도 했다.
“호남단가의 장삼태. 그 목에 이 돈을 거는 겁니다. 가져오세요.”
사람들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호남단가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보다 그들의 마음을 더욱 흔들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탁자 위에 놓인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다.
하지만 돈보다 본디 목숨이 중하지 않은가?
이들이 망설이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자, 공백지는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성공한다면 오십만 냥을 더 드리도록 하죠.”
돈은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공백지는 돈으로 귀신마저 부릴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사내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