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22
오랜만에 호남단가가 시끌벅적했다.
감숙을 향했던 장삼태를 비롯하여 단우현과 남궁천, 사도학이 돌아온 탓이다.
장삼태는 여정의 피로조차 제대로 풀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 것인지 웃음을 머금은 채 연신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것 좀 먹어 봐라, 소미야!”
“참 맛있네요.”
곁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단소미는 반짝 눈을 빛냈다. 잘 볶아 놓은 야채 하나가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치 녹아내리는 것 같은 맛이 느껴졌다.
단소미는 그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얼굴에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고, 그럴 때마다 장삼태는 더욱 득의양양했다.
“크흐흐, 정말로 맛있느냐?”
“네, 물론이에요. 장 아저씨가 해 주는 음식은 정말로 맛있는걸요.”
“으하하! 그래, 그렇지! 내가 최고지!”
크게 웃음을 짓는 장삼태를 바라보며 단소미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마치 보란 듯이 치맛자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물었다.
“정말 잘 어울리죠?”
“그래, 그래! 잘 어울린다! 이 내가 감숙에서 사 온 보람이 있어!”
“헤헤헤.”
“으하하!”
단소미는 안다.
장삼태가 어디를 갔다 온 것인지, 또 왜 이러한 옷을 사 왔는지 말이다.
죽은 여동생을 생각하며 단소미에게 건네준 것이니 그것을 입어 주는 것만으로도 장삼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했다.
“그건 그렇고, 또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었어요?”
“아아? 아, 그렇지! 많은 일이 있었단다. 이 장 아저씨가 말이야……!”
단소미는 장삼태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해도 웃음을 지으며 들어 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운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떤 의미에선 정말로 장삼태가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매향이 오히려 더 미안한 모습이다.
“어휴…… 그만 좀 해요. 애를 벌써 몇 시진째 붙잡고 있는 거야. 제 딸한테나 그러지 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소미도 내 딸이지!”
“헤헤, 아저씨, 제 아빠는 한 사람밖에 없는걸요.”
“…….”
단소미는 툭 말을 잘랐다.
다른 것은 다 들어 주겠지만 그것만큼은 원치 않는 모양이다. 한참 웃음을 짓고 있던 장삼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할 말을 잃은 채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단소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웃음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갈께요. 아빠가 기다리고 계셔서.”
“그…… 그래라…… 그…… 그런데 소미야.”
“네?”
“정말로 내가 아빠 같지 않은 거냐?”
“당연하죠, 헤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장 아저씨는 으음…… 친구 같아요.”
장삼태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굳었다.
매향 역시 뭐라 말을 잇지 못하겠는지 총총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고 있는 단소미의 뒷모습만을 가만 확인하고 있었다.
“치, 친구…….”
“철없다는 소리예요.”
“나도 알아!”
뼈를 때리는 매향의 말에 장삼태는 버럭 화를 냈다.
* * *
장삼태가 있는 주방을 벗어난 단소미는, 조금 전 웃던 것과는 다르게 어느새 풀 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사람들이 돌아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근래 호남단가의 이름이 악양 전체에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는 탓에 제대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이상한 사람들마저 주위를 얼쩡거리고 있었으며, 전혀 처음 보는 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말을 거는 경우마저 생겼다.
이러한 상황들이 아직은 어린 단소미에게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은 아이가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빠는 나를 두고 돌아다니기만 하시고…….’
단소미가 삐친 듯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항상 곁에 있어 줄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주 집 밖으로 나갔다.
말도 없이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니, 항상 단우현을 찾고 있는 단소미의 입장에서 그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또 그리하시나요?”
“으응?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얼굴에 다 보이십니다. 나 관심 좀 주세요, 하고요…….”
어느새 나타난 여은월이 피식 웃으며 말 했다.
그 한마디에 깜짝 놀란 단소미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렇게나 감정이 드러나는가 싶어 곧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티가 나?”
“예, 아가씨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시잖아요.”
“장 아저씨는 모르시던걸?”
“그분이야 원래…… 바보이시니.”
“…….”
단소미는 또다시 장삼태의 평가가 이 호남단가에서 얼마나 좋지 않은가를 새삼 깨달았다. 나름 무공도 강하고 다재다능하기는 하지만, 그 성격 때문인지 평가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 말 장 아저씨 앞에서 하면 안 돼. 상처 입으시니.”
“친구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보다 낫지요.”
“……티 났을까?”
“예, 확실히 철이 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단소미가 미간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나름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한 것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티가 났단 말인가? 조금 더 말을 에둘러 할걸, 하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툭 튀어나온 속내를 막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후우-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고, 아버지는 어디 계셔?”
“현재 동정호 앞에 앉아 계십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단소미가 눈을 반짝 빛냈다.
재빠르게 손을 뻗어 치맛자락을 붙잡고 몸을 날렸다. 한순간에 쏘아져 나아가는 단소미를 바라보며 여은월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경공이네…….”
저것은 틀림없이 장삼태의 경공술이다.
익힌다고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테지만, 단소미는 이제 대성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장해 있었다.
‘단순한 경공만이 아니시지…….’
여은월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경공만 빠른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여은월이라는 호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하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 날고 긴다는 고수들과 붙는다 하여도 그 누구도 쉽사리 제압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여은월은 권무진이나 남궁소혜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점점 더 자신이 쓸모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금 더 칼을 휘둘러야겠다 생각했다.
‘그분들처럼 버려지지는 말자.’
여은월은 불끈 주먹을 쥐며 결심했다.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그들처럼은 되지 말자고 말이다.
* * *
“아빠!”
“왔구나.”
“헤헤헤.”
힘껏 달려온 단소미는 단우현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방에서 가지고 온 낚싯대를 자연스레 드리워 놓는 것이, 처음부터 이 목적을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오랜만에 낚시네요.”
“하하, 그래 최근에 한 적이 없구나.”
“한 적이 없는 게 아니라 이제까지 나갔다 들어왔으니 할 수 없었던 거죠.”
“…….”
가시가 돋쳐 있는 것 같은 말투에 단우현은 입을 다물었다. 힐끗 시선을 주어 옆을 바라보니 단소미가 싱글싱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는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 일 없었더냐?”
“어제 말했듯이 소미는 괜찮았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하고…… 집 주위를 서성이기도 하고 또 평소 알던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것을 빼면 말이죠.”
“…….”
단우현은 신음을 흘렸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다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 화가 나 있는데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 뿔이 난 것인지 그 표정과 말투를 들어 보면 도통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저 화 안 났어요.”
“그…… 래…… 보인다.”
“헤헤, 그렇죠? 그러니까 다음부터 어디 갈 때는 꼭 저도 데려가세요.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마치 집 지키는 강아지 같아요.”
그런 말을 하고 있던 단소미가 단우현과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손뼉을 짝 하며 쳤다.
“아, 맞다! 들으셨어요?”
“뭘 말이냐?”
“악양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있어요. 무슨 단가의 사람들이 어디를 멸문시켰다느니 하는 거 말이죠. 멸문이 뭐예요?”
“…….”
단우현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지금 이 아이를 보며 느끼는 것은 마치 처음 만났을 당시 미호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아이의 구슬을 흡수해서 그런 것인가?
어렸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헤헤, 소미는 괜찮아요. 그런 소문은 신경 쓰지 않는걸요. 그런데 조금 불편하기는 해요. 왜 사람들이 소미를 슬금슬금 피할까요?”
반짝 눈을 빛내며 대답을 구했다.
그것은 실로 질책이 담긴 시선과 말투였던지라,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었다. 그가 피식 웃음을 짓더니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하구나. 고생을 시킨 것 같아서 말이다.”
“헤헤, 아셨으면 되었어요.”
“…….”
결국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단우현은 신음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이들은 이 시기가 되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것이 그런 것은 아닌가 싶어 괜스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낚시 끝나고 어디 좀 가면 안 돼요?”
“갈 곳이 있느냐?”
“네, 다 버려 두고 아빠랑 둘이요.”
“괜찮구나…… 오랜만에 둘이서라, 하하.”
단우현은 나쁘지 않다 여겼다.
오랜만이다.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느새 붙잡은 손마저 놓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다.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아비로서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그래, 어디를 가려고?”
“으음…… 생각해 놓은 곳은 있기는 한데요…… 읏차! 아, 벌써 잡았네요!”
잠시 고민을 하던 단소미가 재빠르게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커다란 대어가 줄에 매달려 퍼득거리니 그것을 바라보며 단우현은 어이없이 웃었다.
여전히 저 강한 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해서?”
단우현은 단소미가 잡아 올린 고기를 천천히 갈무리하며 물었다. 어디를 가고 싶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헤헤, 비밀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호오…… 그것참 궁금하구나. 좋은 곳이더냐?”
“좋은 곳이랄까…… 조금 특별한 곳이랄까…… 가 보고 싶었지만 갈 용기가 없었던 곳이랄까…… 요?”
단소미가 키득 웃었다.
잠시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기는 했지만 곧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윽고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낚싯대를 접었다.
“그리고 가더라도 꼭 아빠와 가겠다고 생각했던 곳이기도 하고요.”
“기대되는구나.”
“후후, 틀림없이 아빠도 좋아할 거예요. 그게 아니면…… 슬퍼할지도 모르고요.”
“하하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슬퍼한다라?”
“자! 날이 저물기 전에 어서 갔다 오죠. 분명 아빠를 보면 엄청 좋아할 테니까요.”
단소미가 손을 뻗어 단우현의 손을 붙잡았다.
그 온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 것인지 찰싹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단우현은 그런 단소미를 바라보며 입가에 맺힌 웃음을 좀처럼 지우지 않고, 마치 처음 보았던 그날처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