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27
이른 아침, 느닷없이 봇짐을 챙겨 나오는 단우현을 보며 장삼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들은 말이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꿈에서 흘러든 환청인지 제대로 인지를 하지 못한 것이다.
장삼태가 고개를 돌려 남궁천을 바라봤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 보였다.
이내, 저도 모르게 다시금 단우현을 바라봤다.
“뭐라굽쇼?”
“유람을 간다 했다.”
“예?”
단우현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한마디는, 귓속을 파고들어 머리까지 전달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단우현의 곁에서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단소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벼운 경장 차림에 질끈 묶어 올린 머리.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집을 나설 복장이다.
“……? 어디를 간다고요?”
“호북이다.”
“지금요?”
“그래.”
또르르-
눈알을 굴린 장삼태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어느새 커다란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상당히 크고 편안해 보이는 그 마차는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세 개의 관 같은 것이 보였다.
“…….”
장삼태는 말없이 단소미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녀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아니, 이상하잖아요!? 갑자기 호북이라니? 심지어 웬…… 관을?”
“관이라니? 그저 물건을 담는 상자다.”
“누가 봐도 관이라고요!”
장삼태는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졌다.
어떤 식으로든 우기면 다 되는 것은 십 년 전이나 가능한 일이다. 단소미도 장삼태도, 하나같이 대가리가 컸으니 단우현의 웃기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 예예, 하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이다.
“호북…… 호북이라?”
그때 어느새 다가온 남궁천이, 조금 더 길어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머리도, 수염도 완벽한 백발이 되어 버린 남궁천의 모습은, 모르는 이가 본다면 신선이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허허허, 무당파 구경이라도 가려는 심산인가?”
“무당산에 가려는 것은 맞다만, 굳이 무당파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흐음- 하며 남궁천이 신음을 삼키고는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이내, 어느새 준비했던 것인지 가져온 봇짐을 마차에 실으며 세 개의 관을 바라봤다.
“이제 집에 가시려는 게로구먼.”
“…….”
단우현은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남궁천은 이미 그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단우현과 삼천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후손이 있고, 또 그들이 쌓아 올린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
하여, 본디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이미 남궁세가 역시도 오래전부터 남주련을 모실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상당한 돈을 들여 사당까지 만들지 않았던가.
이제 그곳으로,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때 어느새 다가온 사도학이, 봇짐을 내려놓으며 씩 하고 웃음을 지었다. 마치, 이 여정에 결코 빠질 수 없다는 듯 굳은 눈빛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호북 다음이 천산이더냐?”
“그래.”
“그럼 당연히 나도 간다. 불만 없지?”
단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소미와 둘이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뜻하지 않은 두 사람이 추가되었다. 이 이상 일행이 늘어나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장삼태가 마부석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뭐 합니까? 안 가요?”
“……너는 남아 애를 돌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 한마디에 장삼태가 휙휙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매향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두 아이를 데리고 악양을 다녀온다 하였으니 돌아오려면 저녁쯤은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악양에 있는 또래 아이 엄마들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그렇기에 장삼태는 씩 하며 웃었다.
“저도 가끔…… 휴식이 좀 필요합니다.”
“…….”
“흐음…….”
퀭하니 표정이 죽은 장삼태가 하하,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영혼을 잃은 것 같은 그 모양새에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전부…… 갈 수는 없잖아요?”
그때 남궁소혜가 다가오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매향이 있고, 장삼태의 두 아이도 있다.
이런 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결국 전부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다.
남궁소혜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단우현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다. 제 입으로 간다 하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것이다.
나쁜 새끼!
남궁소혜는 속으로 욕을 하며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제가 남죠. 어차피 다들 가실 테니…….”
“그래, 나쁜 생각은 아니로군.”
“윽?!”
찌릿하며 또다시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매서운 기세가 폭풍처럼 몰아치자 장삼태가 숨을 죽이며 입을 다물었다.
십 년 동안, 그녀의 수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궁천을 모시며 이곳에 남아 단소미의 교육을 담당하며 보모 노릇을 자처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칼을 쥐고 중원으로 나선다면 검후라는 칭호 또한 우습지 않게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여인이 기세를 뿌리니 견딜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
아니, 많다.
장삼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태연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그럼 저도…….”
“소미는 함께 간다.”
“꼭이요?”
“그래.”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남궁천과 사도학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정이 단순하게, 삼천의 유해를 돌려주기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조금 더, 단소미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여 말릴 수도 없다.
“후우- 어쩔 수 없죠. 알아서 잘 지키고 있을게요.”
어느 순간 다가온 남궁소혜가, 단우현의 정강이를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 하지만 단우현이 슥, 다리를 뒤로 빼는 것만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해 내자 남궁소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도 허락해 주지 않다니?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저주했다.
“금방 돌아올 거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어라.”
“흥, 누가 걱정 따위 한다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남궁소혜가 고개를 돌렸다. 단우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얼었던 그녀의 마음을 녹여 낸 것이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으며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한 번이라도 더 그의 얼굴을 보려는 듯 시선이 돌아갔으나, 단우현은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인지 어느새 마차를 향해 가며 남은 짐을 챙겨 올렸다.
그 모습에 남궁소혜의 표정이 변했다.
“저…… 저도 갈래요!”
“뭐!?”
“너도 말이냐?”
“예! 저도 가고 말겠어요. 매향이야, 뭐……. 알아서 잘 버티겠죠. 애도 아니고…….”
남궁소혜가 씩씩거리며 거처를 향해 달렸다. 이내 얼마 있지 않아 커다란 봇짐 하나를 짊어지고는 짐수레에 실었다.
그것을 본 장삼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한 사람은 남아야…….”
“그쪽이 남는다고요?”
장삼태는 입을 다물었다.
본래라면 그가 남는 것이 맞다. 아이들도 있고, 매향은 또 처가 아니던가. 하지만 장삼태는 이번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인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남궁소혜의 말을 무시했다.
때론 남자도 느긋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 납득하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저도 가도 되는 거죠?”
그녀가 단우현을 올려다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떤 식으로 만류를 한다 한들,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어느새 마차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소미를 불렀다.
“마…… 말릴 수 없겠구먼…….”
“아주 벌집을 쑤셔라, 벌집을…….”
남궁천과 사도학이 단우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단소미의 마음은 그리 잘 알고 있는 놈이, 어찌 여인의 마음을 이리도 알아주지 못한단 말인가?
다 늙어 뼈만 남은 그들조차 알 것 같은데 말이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가도록 하지.”
그러나 단우현은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녀가 가지 않는다고 해도, 간다고 해도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단소미가 포옥 한숨을 쉬었다.
“……왜 아무도 없죠?”
매향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집을 바라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본래라면 장삼태가 한창 밥을 짓고 있을 시간인데, 그러한 낌새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가신 건가?”
“말도 없이요?”
매향이 두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이내, 거처로 돌아가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리저리 돌며 등불을 켜고 주변을 밝혔다.
아무도 없이 휑한 공간이, 그제야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이 좀 환해지자 권무진은 본격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애초에…… 뭔 일이 생길 곳은 아니지.’
하지만 이내,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주변이 쑥대밭이 된다 한들, 이 호남단가만큼은 멀쩡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대체 어딜 가신 건지…… 응?”
식당을 돌며 흔적을 찾기 시작할 무렵, 권무진의 눈에 식탁 위에 자그마한 서신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곳에 서신이라니?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
이내, 그것을 펼쳐 내용을 훑어보는 그의 눈이 서서히 휘둥그레 치켜 떠지더니, 종국엔 이마에서 주룩주룩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뭘 좀 찾았어요?”
그때 뒤늦게 도착한 매향이 한숨을 포옥 쉬며 권무진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면서 말을 걸었음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내 그의 손에 서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빼꼼 고개를 내밀며 내용을 훑었다.
“뭐?!”
앙칼진 목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렸다.
어찌나 음이 높은지 귀가 다 아플 지경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서신을 빼앗아 읽었다.
그 내용이 완벽하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와락! 하며 손에 쥔 서신을 구겨 버렸다.
“이 인간이 미쳤나! 애를 놔두고 어딜 간다고?!”
또다시 앙칼진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어찌나 음이 높은지 곁에 있던 권무진이 귀를 틀어막으며 종이를 갈기갈기 찢은 뒤, 질근질근 밟아 버리는 매향을 바라봤다.
이 일을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까.
벌써부터 앞날이 막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