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30
호북으로 향하는 길에는 커다란 마을이 있다. 이곳을 지나 북서로 간다면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장가계가 존재하고, 혹은 조금 더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호북의 명산 중 하나인 천자산이 존재한다.
하여, 장가계나 호북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머물러 가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마을은 이 근방에 없을 것이다.
그곳에 멈춰 선 강상춘은, 슥슥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하, 제법 빨리 도착했구나.”
“소문주! 정말로 그자를 쫓을 생각입니까? 다른 문도들은 다 돌려보내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 그 악적 놈을 붙잡는 것이 참된 무인의 도리가 아니냐?”
“차, 참된 무인의 도리라니…….”
언제부터 철권문이 무(武)의 도리를 따지던 문파였던가? 애초에 무림과는 연관도 없고, 발을 담가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강상춘은 그야말로 영웅을 꿈꾸고 있는 어린 소년과도 같은 눈빛이다. 자신의 힘으로 악적을 물리치고,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그러한 것을 기대하는 것 같은…….
힐끗, 강상춘의 얼굴을 바라봤다.
꿈에 부푼 듯 눈빛은 아련하고,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영웅이 되고자 하는 생각만이 아닌 듯했다.
‘목적은 그 여인들인가?’
강상춘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금대길은, 뱃놀이를 하던 두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사실 어떠한 이유로 배가 뒤집혔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호남단가라 단정 짓고 그곳으로 쳐들어간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장가계가 나온다. 이 속도라며 슬슬 따라잡은 거 같은데…….”
“아니…… 그자가 장가계 쪽으로 갔을 거라…… 정말 단언하십니까?”
“당연하지. 그리 아름다운 여인들을 데리고 있는 놈이다. 험한 길을 택하겠냐?”
호북으로 향한다 하였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마차가 움직일 수 있는 편한 길은 둘 셋밖에 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장가계 쪽으로 가는 길이 가장 좋으며 또 풍경도 좋아 여인과 함께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하여, 강상춘은 망설임 없이 이 길을 택했다.
강상춘은 품에서 용모파기를 꺼내 바라봤다.
그 매향이라 했던 여인이 그려 주었던 사내의 얼굴.
장삼태라 했던가?
기실, 아무리 봐도 여인을 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얼굴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아름다운 여인들이 꼬임에 넘어간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보다 못생긴 놈이
강상춘은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껏 인상을 썼다. 하지만 이내 여인들을 되찾을 생각을 하며 함박웃음을 입에 걸었다.
“악적 장삼태!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으하하하-!”
악인의 손에서 여인들을 구해 내고, 그 은혜를 빌미로 연을 쌓는다. 마치 전해 내려오는 영웅담 같은 느낌이 들지 않던가.
성공만 한다면 철권문의 명성을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비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악적? 지금 악적이라 하지 않았나?”
“악적이라면…… 마성자?”
“그놈이 장가계에 있다고?”
그때 여기저기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힐끗힐끗 강상춘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반짝거렸다. 몇 명은, 말의 진위조차 파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길을 타고 장가계로 향했다.
또한 얼마 있지 않아 마을 곳곳에서 전서구가 날아올랐다.
-마성자가 장가계로 향하고 있다.
느닷없이 흘러나간 소문이 발 빠르게 중원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장가계인가…… 오랜만이로군.”
무릉도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높고 커다란 바위들이 들쭉날쭉 솟구쳐 올랐고,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숲과 나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절경을 만들었다.
또한 낮게 깔린 안개가 잠식하듯 퍼져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무릉도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라보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넋을 잃게 만드는 곳.
그곳이 바로 장가계라는 곳이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단소미 역시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어렸을 때 한두 번 유람을 간 적 있기는 하지만 워낙 어렸고 딱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여정은 그녀에게 있어 첫 유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소미는 동그란 눈으로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시선을 뗄 수 없는 풍경들이 보이니 감정이 벅차오를 지경이다.
“어…… 엄청나네요…….”
“호호, 여기는 처음이지? 나도 처음 왔을 때 같은 기분이었단다.”
곁에 있던 남궁소혜가 단소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이곳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악양과 장사밖에 모르던 단소미이니 만큼, 이런 풍경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있을 겁니다. 오늘은 거기 멈춥니까요?”
그때 마차를 몰고 있던 장삼태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해가 떠 있으니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조금 더 갈 수 있을 테지만 혹 멈춰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벌써, 며칠째 노숙을 했으니까.
“그래, 오늘은 그곳에서 쉬다 가도록 하지.”
이내 단우현의 허가가 떨어지자 모든 이들이 활짝 웃음을 지었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하나같이 노숙 생활에 지친 탓이다.
“허허, 이 마을에는 신선객잔이라는 곳이 유명하네. 음식도 괜찮고 잠자리도 좋지.”
“아- 어렸을 때 가 본 적 있는 거 같아요. 맞죠?”
“허허허, 그래. 맞다, 맞아. 잘도 기억하는구나.”
남궁소혜는 함박웃음을 입에 걸었다.
남궁천의 손을 꼭 잡고 찾아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니 기분이 몹시 묘했다.
“아버지도 와 본 적 있으신가요?”
“그래,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쫑긋했다.
도대체 단우현이 오래전이라 말을 하면 얼마나 오래전인가? 아마도 그 당시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백골이 진토(塵土)되지 않았을까 싶은 세월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까?
남궁소혜는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헤에- 어땠어요?”
지금 풍경도 중원 어디를 뒤져 본다 한들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천 년 전이라면 어땠을까?
저 산봉우리는 있었을까?
구름은 지금보다 더 신비로웠을까?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별다른 건 없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피가 가득했고…… 살과 뼈가 찢긴 시신들이 가득했지.”
“예?”
“네?”
“커흠……!”
단우현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는 이들의 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옛 장가계의 풍경을 떠올렸다.
분명, 혈마를 처음 두들겨 팼던 데가 이곳이었던가?
그 친위대의 숫자만 해도 수백이었던 터라, 주변 풍경을 보고 자시고 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때는 단우현조차 미숙할 때였던 탓이다.
단소미 앞에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단우현은 과거를 회상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오싹-!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이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오로지 단소미만이 멀쩡할 뿐, 모든 이들이 단우현의 웃음에서 죽음을 느낀 것이다.
“허…… 허허,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만.”
“주변 구경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 아직 멀었느냐? 이 늙은이 허리 아파 죽겠다, 이놈아!”
사도학이 애써 분위기를 바꾸며 장삼태를 향해 소리쳤다. 이대로 흐름을 끊지 못한다면 감당조차 안 되는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아, 저기 보이네. 신선객잔…….”
그때 장삼태가 천천히 마차를 멈춰 세웠다.
남궁천의 말대로 신선객잔이라는 곳이 있다. 상당히 유명한 곳인지 안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릴 지경이다.
그만큼 객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뭔데 칼 든 놈들이 이리 많아?”
사도학이 인상을 찌푸리며 객준 주변을 바라봤다.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칼을 든 무인들이 상당히 많다.
중원무림에 칼 찬 무인들이 있는 게 이상할 것이 있는가 싶긴 하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심지어,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신경 쓸 거 없다.”
그러나 단우현은 딱히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다.
중원무림에서 칼을 들고 다니는 무인 따위를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의 수가 많고 적음 역시 큰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테지.”
사도학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크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저놈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런 곳에 단우현이 있다는 말은, 재수가 없으면 엮이게 된다는 말이다.
단우현은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렇게 마차 안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지나가던 낭인들의 시선이 삽시간에 그들을 향했다.
마치 자신들이 찾고 있는 누군가와 비교를 하는 듯 마차에서 내리는 이들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사도학과 남궁천은 그 시선이 몹시 불쾌했다.
“확 다 엎어 버려?”
“허허, 참게. 저자들도 사정이 있겠지.”
“어휴…….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한숨을 쉬는 남궁소혜가 두 늙은이를 이끌며 객잔으로 향했다. 이들보다 먼저 움직인 단우현과 단소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린 듯싶다.
하여튼 이런 일에는 발이 빠른 인간이다.
그때 장삼태가 기지개를 쭉 켜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마차를 가져다 놓고 들어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장삼태는 마차를 끌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귀중한 물건은 없으나 귀한 분들은 있으니 괜한 사달이 났다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여, 조심스레 말을 묶고 마차 문을 걸쇠로 잠가 놓았다.
이렇게 한다면 도둑맞을 염려는 없다.
“어휴…… 어째 집에 있나 밖에 나오나 하는 일은 똑같은 거야?”
장삼태는 내키지 않는 것인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등을 돌렸다.
집에 있어도 일을 하는 신세는 변함없고, 따라 나와도 그 신세는 그대로다. 잡일 하는 놈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지만 단우현은 객식구를 늘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돈이 더 나가니까.
긴 한숨을 내쉬며 객잔을 향해 걷는 그 순간.
저벅저벅-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드…… 드디어 찾았다, 이 악적!”
“악적?”
뜬금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며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봤다.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칼을 뽑은 채 겨누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용모파기 같은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이해 안 되는 상황에 의아함을 금치 못하는 그 순간.
“내 오늘 이 악적을 토벌하여 세상의 정의를 구현하리!”
뜬금없이 소리를 내지른 사내가, 무식하게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