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41
이 무림에 전설이라 불리는 무신(武神)을 모르는 이는 있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를 붙잡고 묻는다 하여도 알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있기 마련이다.
설령 그것이 무림이든 아니든.
사방신수(四方神獸)
수많은 중원인이, 태어나 자라면서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며 또한 살면서도 수차례 그 이름을 거론하게 되는 것들.
모든 이들이 가장 신성시하며 무림의 전설이라 불리는 무신(武神)보다 더욱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이야기.
천지교의 상징조차 사방신수인 백호를 상징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경외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주저앉아 있는 추작한은 바들바들 몸을 떨며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봤다. 거대하다는 말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며 보석을 박아 놓은 듯 날카로운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하여, 그것을 보는 순간 깨달아 버렸다.
저것은 진짜다.
한 치 거짓 없는 신수 백호다.
천지교의 신녀가 키우고 있는 그러한 가짜와는 전혀 다른, 진짜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두려움에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순간.
등 뒤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땅을 뒹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사악-!
이윽고 자그마한 무언가가 그 옆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속도이지 않은가?
저것은…… 삭월묘?
한 마리의 신수도 모자라 삭월묘까지?
심지어, 사람을 절대 따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던 삭월묘가 자연스럽게 백호의 등을 타고 뛰어오르더니 백호의 머리를 때린 여인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건 절대 있을 수 없다.
“아- 저기 아저씨? 이만 가 보는 게 어때요? 이 녀석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때 주지약이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백호도 있고, 백묘도 있다.
분명 어디선가 뛰어놀다, 단소미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쏜 살보다 빠르게 달려온 것일 터. 남궁천이나 사도학의 말로는 이 두 놈을 상대로 멀쩡히 서 있을 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하였으니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주지약은 더욱 환한 웃음을 지었다.
사사사사삭-!
그때 추작한의 주변으로 검은 흑의를 입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는 스물 정도인가? 하나같이 경계 어린 표정으로 추작한의 주변을 에워쌌다.
마치, 그를 보호하려는 듯 보였다.
“더 하시려고요?”
크르르릉-!
주지약은 그것을 보면서도 놀라지 않고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백호의 등 위로 손을 얹었다.
순간 파르르 손이 떨렸는데, 기실 이것들은 단소미가 아니라면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데다 호랑이라는 특성상 그녀 역시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적응 안 돼…….’
그러나 주지약은 눈물을 삼키며 공포를 숨겼다.
“주군! 일단 자리를 피하시는 것이…….”
“큭……!”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선 추작한이 이를 악물었다. 가장 자신 있던 매혹술은 통하지도 않았고, 원하는 목적조차 이루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임무조차 실패한 적이 없었던 추작한에게 있어선, 이런 식으로 물러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존심이 뭉개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추작한은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호흡을 다스렸다. 그제야 흔들리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뻗쳐 오르던 열이 차갑게 식으니 조금이나마 이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구나. 그저 재미 삼아 나온 여정이었는데, 네 덕에 아주 큰 걸 물었어.”
“네?”
추작한은 놀란 듯 눈을 치켜뜨는 단소미를 바라보며 작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저, 단순히 마성자의 별호를 팔고 있는 놈을 잡으려 했던 것에 지나지 않은데, 이런 데서 백호와 삭월묘를 데리고 있는 계집을 보게 되다니?
마음 같아선 당장 손을 쓰고 싶지만 쉽지 않다.
백호의 능력은 이미 그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자리에서 물러선다.
그 빌어먹을 놈을 향한 복수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미룬다 한들 어찌 되지 않을 것이니.
지금은 그것보다 급한 것이 생기지 않았던가.
“오늘은 그냥 물러가마. 하지만……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추작한은 뒤로 스윽 몸을 날렸다.
순간, 그의 수하들이 백호를 경계하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자리에 있던 사내들이 삽시간에 땅을 박차며 물러서자 팽팽했던 긴장감이 씻은 듯 사라졌다.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이윽고 모든 이들이 사라지자 주지약은 그제야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추작한 앞에서 전혀 기죽은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였으나, 누구보다 놀라고 누구보다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주지약의 상태를 알아본 것인지 슬그머니 다가온 단소미가 물었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너는…… 무섭지도 않아? 무슨 반응도 없고…….”
“아하하……. 조금 무섭기는 했는데, 사실…… 사 할아버지가 화낼 때가 더 무섭거든.”
주지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소미의 말을 들으니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하 오황, 그중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인물이 화를 내는데 무섭지 않은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비의 호통보다 황제의 호통이 무서운 것과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자 다소 곤란한 표정의 단소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쩌지?”
슬그머니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바닥에 엎어져 있는 두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머리에 돌을 맞고 뒤집혀 죽은 개구리마냥 뻗어 있다.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보아 용케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윽……!”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토사물에 머리를 틀어박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 용케 죽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할 정도다. 이것도 천운이라면 천운인 것인가?
“그냥…… 내버려 둬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를 구하려고 왔는데…….”
주지약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곤혹스러워하는 단소미의 표정이 보였다. 그냥 두고 가기에는 미안하고, 그렇다고 구해 주자니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도 둘 사이에 무슨 악연이 있는 듯싶다.
“그냥 내버려 둬. 구해 줬다간 혼인하자고 달려들 것 같은데 말이야.”
“윽……! 싫다, 그건.”
단소미는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큼은 제발 참아 달라는 듯한 표정이다.
좀처럼 타인에게 나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단소미를 생각해 본다면 이 사내는 단소미에게 역겨움, 그 이상 가는 존재가 되어 버린 듯싶었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주지약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 * *
빠르게 경공을 펼쳐 나아가고 있는 추작한은, 아직도 자신의 본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한 전설이라 생각했던 그 존재를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천지교의 신녀가 데리고 다니는 그런 가짜와 전혀 다르다.
쳐다보는 순간, 느껴지는 기백과 힘.
말 그대로 신수임이 느껴질 정도로 완벽했다.
그렇기에 추작한은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루속히 교주께 알려야 한다.’
백호는 천지교를 상징한다.
천지교의 신녀가 우습지도 않은 가짜 백호를 데리고 다니는 것 역시, 사방신수 중 하나를 다룬다는 것을 교도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러한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수많은 교도가 신수에게 선택받은 신녀, 그리고 교주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 백호가 진짜 백호라면?
그 백호가 수많은 사람 앞에서 힘을 드러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교도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 중원 무림에서 암약하는 단체가 아닌, 정면으로 정도무림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영향력과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이리 만든 이의 얼굴 따윈 단숨에 잊을 정도로 말이다.
“앞에 누가 있습니다.”
“응?”
그런 생각을 하며 나아가고 있던 추작한은 느닷없이 들리는 수하의 말에 정면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수하의 말대로 누군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풀도 울창하고 사람조차 찾지 않는 곳이다.
하여, 다른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하였기에 다소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곁에 있던 수하가 슬쩍 검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눈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일단 베고 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추작한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기분이 몹시 좋다. 괜한 피를 뿌리지 마라.”
“알겠습니다.”
추작한의 말에 수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정면에 있는 그 인영을 경계하며 나아갔는데, 이내 거리가 좁혀지고 점점 그 모습이 뚜렷해지는 찰나.
수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저 얼굴, 분명 그 마차 안에 있던 사내가 틀림없다.
저도 모르게 경계를 하며 힐끗 추작한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그 인영의 곁을 스쳤다.
“천운을 다 썼군.”
이내, 그 인영의 입이 열리며 속삭이듯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누구에게 말을 한 것인지, 또 대답을 들을 생각은 있었는지 싶을 정도로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움직였고, 어느새 그 인영과 추작한 일행은 서로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흥! 묘한 녀석이로군.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목을 베었을 것을…….”
추작한은 스치며 보았던 이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고, 되돌아가 칼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은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지부로 돌아가 이 기쁜 소식을 교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단우현은 다소 먼 거리에서, 단소미와 주지약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이서 보낸 짧은 시간이 꽤 좋았던 것인지 그간 힘들었던 것들을 조금은 떨쳐 내버린 것 같은 얼굴이다.
어제보다 확연하게 표정이 좋아져 있었다.
느긋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단우현의 마음 또한 눈 녹듯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큰일이 나지 않아 다행이로군.”
이윽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린 시절, 백호와 백묘를 구해 준 것이 천운이 되었다. 물론 그 역시도 저 아이의 힘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덕분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백호의 성질이 아무리 더럽다 한들 단소미 앞에서 피를 보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온 주변이 시신 밭이었을 거다.
“용케 참았구먼……. 당장 칼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일세.”
그때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 남궁천이, 다소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평상시 그였다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숨통을 끊어 놓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 아니던가.
한데,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살려 주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저 아이가 되돌아갈 길에 피를 뿌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허허- 그렇다면 그놈들이 운이 좋았구만 그래.”
“그렇지…….”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금을 통틀어 무신의 심기를 거스르고 살아남은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처음에는 죽이려 했으나 단소미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고, 그 이후에 보이는 깐족거림은 이제는 익숙해져 그리 크게 거슬리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그렇지 않았다면 장삼태란 존재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눈앞에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다.
단소미가 되돌아가야 할 길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그 첫 번째며 그 첫 번째 이유야말로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단소미가 돌아가야 할 길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살려 주었으니 오늘 놈들은, 평생 나눠 써야 할 모든 천운을 다 써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기에 두 번은 없다.
“또 만나게 될 거다. 그것도 꽤 가까운 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