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48
무당산 인근에는 커다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단순한 촌락에 지나지 않았던 곳이지만 무당파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부터 성장하여, 지금은 인근에서 가장 큰 마을로 바뀐 곳이다.
그곳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인심이 후하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마을 사람 대부분이 과거 무당과 연을 맺은 경우가 많고, 그렇게 대대손손 내려와 살고 있는 이들 역시 상당하다 보니 마을 사람 절반이 기본적으로 무예를 익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여, 어느 누구도 쉬이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뼛속까지 정도의 기둥 중 하나, 무당의 영향력을 짙게 받고 있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괜한 일을 벌였다간 뼈조차 추스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정도를 위협하는 적에게 가장 무서운 곳이라 할 수 있는 그 마을에 은밀하게 소문 하나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뭐라고? 마성자?”
“그렇다니까 그러네. 틀림없이 천지교의 인간들이었다는군.”
객잔에서 내뱉은 누군가의 말이, 밥을 먹던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들을 향해 돌아갔다.
“무당산 인근에 마차를 세워 놓고 있는데…… 보아하니 곧 무당을 칠 것 같은데…….”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냉랭하며 변했다.
이미, 마성자가 호북으로 입성했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다. 하여, 저 사내들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였다.
“그게 사실이오!?”
“진짜라면 가만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곳곳에서 칼을 든 무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지교는 현재, 정도무림의 적.
그놈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할 일인데, 다른 곳도 아닌 무당파를 치기 위해 무당산 인근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뼛속까지 정도의 색이 짙은 무사들에겐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밥을 먹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눈빛에 살기가 일렁거렸다.
* * *
“어휴…… 큰길로 왔으면 한 달이면 올 거리를…….”
노숙을 하고 있는 장삼태는, 호남에서 무당까지 걸린 시간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했다.
두 달 가까이 되지 않았는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본다면 아득하기만 했다.
“느긋하게 생각하게나. 허허허- 나는 처음부터 포기했다네.”
남궁천은 사냥해 온 토끼 고기를 하나 집어 들며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단우현이 걷는 길에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리 따지면 이번 여정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한 달 가까이 늦어진 것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다.
“도대체 그 천지교 따위가 뭔데 이리 지랄들인 거냐. 내참, 그딴 것들도 단속 못해서야, 원…….”
“듣기론 오래전부터 암약했던 단체라 해요. 그런데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사이 워낙 크고 작은 일이 좀 많아서…… 그렇죠.”
남궁소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천지교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호남단가가 완벽히 그 활동을 멈추었을 때부터다. 그 전부터 있었다고는 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단우현과 호남단가의 사람들이, 중원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일을 내 버리는 통에 다른 사건 사고들이 완벽하게 묻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해 놓으니 그 자리를 틈타 세력을 키우고,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어찌 보면 호남단가의 책임이 없지 않은 셈이다.
“크하하- 그래 봐야 종교 집단이지.”
“허허- 마교도 따지고 보면 종교 집단 아닌가?”
“이 자식이 비교를 해도 어딜 감히! 그딴 놈들과 마교가 같냐?”
“내 보기에 비슷해서 그렇다네. 아니라 생각하면 되었네! 허허허- 열 내지 말게나.”
남궁천이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화를 내지 말라 말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눈빛은 틀림없이 마교를 비하하고 있음이다.
십 년이나 함께 있었는데, 변하지 않는다.
남궁소혜가 미간을 움켜쥐었다.
순간, 삽시간에 퍼지는 기세에 몸을 움찔했다.
차라리 호랑이와 곰의 싸움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마교든 정파든 사이비든 우리 장주님 눈에는 다 똑같은 것들일 텐데 뭘 신경 쓰십니까요?”
그때 장삼태가 코를 후벼 파며 입을 열었다.
그가 보기에 아무리 무림이 대단하다 한들, 단우현만 못하다는 인식이 깔린 듯싶었다. 하여, 두 노인이 누가 잘났니 못났니 떠들어도 그저 우습기만 했다.
퍼억!
“끄악?! 코…… 코가! 피가!”
“쓸데없는 소리를 자꾸 하고 지랄이냐, 네놈은?”
“허허- 코가 아니라 얼굴에서 피를 보고 싶으냐?”
장삼태는 주륵주륵 코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딱히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뭘 그리 잘못을 했다고 두들겨 패는가?
“아이고, 나 죽네……!”
“아저씨, 괜찮으세요?”
“어휴…… 자업자득이죠.”
남궁소혜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파니 마교니 하는 것에 이미 짙게 물들어 있는 것이 남궁천과 사도학이다. 그런 이 앞에서 단우현이 최고니 마니 말을 하면 얻어터지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장삼태는 사도학의 제자와 같은 위치이지 않은가?
본인은 자각이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교 편을 들어야 했다.
“그건 그렇고…… 바람이 굉장히…… 묘하네요.”
“허허- 단 가주 곁을 그리 따라다니더니 너도 바람 타령을 하는 것이냐?”
순간, 남궁소혜가 화악 얼굴을 붉혔다.
이 순간에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소리를……. 그냥, 바람이 이상하게 부는 것 같아서 한 말이거든요?”
“쯧쯧, 너는 언제까지 단가 놈 뒤꽁무니만 따라다닐래? 슬슬 혼인할 때도 되지 않았냐?”
콧방귀를 뀌며 내뱉는 사도학의 말에 남궁소혜가 아미를 찌푸렸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혼인하니 마니 하는 것인가?
“어르신이나 먼저 가시죠. 한-참! 전에 가셨어야 했는데 말이죠.”
“커험! 나는 무예와 혼인을 한 것이다.”
“네네, 그거참 대단하네요.”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것이냐?!”
“어르신이야말로 저한테 시비 거시는 거예요?!”
사도학이라는 이를 앞에 두고, 남궁소혜는 결코 물러섬이 없다. 그저 가볍게 뿌려 낸 기세에도 몸이 움찔하였으나 그녀는 지지 않고 똑같이 노려보며 있는 대로 기세를 뿌려 댔다.
살짝만 더 건드렸다간, 겁대가리 없이 사도학을 향해 칼이라도 휘두를 것만 같은 느낌이다.
“거,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는 꼭 아빠와 혼인할 거니까요.”
그때 단소미가 싱긋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정말로 큰 사달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뱉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소미의 한마디에 두 사람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특히, 남궁소혜가 가관이다.
조금 전보다 더욱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네 아비가 퍽이나 들어 처먹겠다.”
사도학은 그것이 영 부정적인지 헛웃음을 지었다. 그놈이 혼인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그것이 십 년 동안 따라다녔음에도 아무런 소득조차 없는 남궁소혜라니?
지나가던 개가 다 웃을 것이다.
“그런데…… 저도 조금 그래요.”
“허허- 뭐가 말이냐?”
“바람이 조금 불안하다 할까……. 아무튼 뭔가 조금 기이해요.”
“……!”
남궁소혜가 말을 뱉을 때는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두 노인은, 같은 말을 단소미가 뱉어 내자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곧,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흐음- 하며 신음을 흘렸다.
“아까 그 녀석들 때문인가?”
“허허- 잡아 둘 걸 그랬나 보구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남궁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봇짐을 뒤져 가면을 뒤집어썼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이 과거 군자검의 그것과 같았다.
“내참…… 그러게 진작 잡자고 했더니.”
사도학 역시 마찬가지로 가면을 뒤집어쓰며 불만을 드러냈다. 다소 수가 많기는 했으나,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보다 약간에 수고로 그것을 덜어 내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하나둘, 처음에 작게 들리던 그것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이, 이게 뭐야? 몇 명입니까?”
“대략…… 사오백은 될 것 같구만…….”
서서히 다가오는 기척을 느껴 보면 대략 그러하다.
일류를 오가는 고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을 테지만 이 압도적인 숫자는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위압적이었다.
물론 두 사람한테만.
“이런 망할!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어쩌죠? 많아도 너무 많은데…….”
장삼태가 이를 갈며 소리치지만 남궁소혜는 압도적인 숫자에 아연실색하는 듯했다. 일 대 다수의 경험이 제법 되기는 하지만 이렇듯 많은 숫자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단소미까지 곁에 있지 않은가.
“천지교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
“한 놈도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오!”
이윽고 들려오는 커다란 외침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장삼태를 향했다. 천지교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저놈을 노리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던 탓이다.
“제 탓 아니라니까요?!”
“시끄럽다. 네놈이 악적이니 뭐니 그런 소리만 안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니.”
날카로운 사도학의 말에 장삼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도 죽겠는데, 이 모든 사태가 자신에게 있다 말을 하니 괜스레 풀이 죽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 남궁천이 슥 주위를 둘러봤다.
“흐음……. 일단 산으로 피하자꾸나.”
남궁천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굳이 물러설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는 이쪽에 대해 오해를 하는 상황이니만큼, 무작정 때려잡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는 것이 좋다.
이쪽은 소수이고 저쪽은 다수다.
또한 무당산 자체가 워낙 험하고 길 자체가 중구난방이다 보니 쫓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하여, 각개격파하며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역시 쉬울 것이다.
“이러다 무당 놈들까지 나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허허허- 그것만큼은 참아 주었으면 하네만…….”
남궁천이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저곳에는 낭인도 있을 것이고, 무당과 연관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운이 어렴풋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로 사이한 기세를 지닌 자들도 있다. 한둘이 아닌지라 정확히 그 수를 셀 수는 없으나, 꽤 많은 수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당까지 개입한다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저들끼리 죽고 죽인다 하여도 티조차 나지 않을지 모른다.
“놀아났구만 그래, 허허-”
남궁천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오늘, 무당산에 혈우가 쏟아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