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74
“후우…… 이미 읽어 알기는 했지만 정말 엄청나구만.”
이제 막 이립이 된 것 같은 사내가, 얼굴에 부채질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경전을 읽어 보지 않았더라면 생각 없이 나섰을 것이고, 끔찍한 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째, 당시 대법왕께선 그리도 잘 표현을 해 놓았는가?
큰 키를 비롯하여 머리카락의 생김새와 이목구비까지.
그가 풍기는 기세마저 여실히 표현을 해 놓았기에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다.
천 년 전 인간이 어찌 살아 있을 수 있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을 테지만 당대 대법왕이 남겨 놓은 글귀가 머릿속에 맴돈 탓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선인의 계략으로 동정호 깊숙한 곳에 잠든 그는, 죽었으나 죽었다 볼 수 없고, 그렇기에 언제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 하여, 그의 모습을 상세히 적어 두는 바, 후대에 만약 그의 모습을 보는 이가 있다면 지체 말고 고개를 숙여라.
하여, 멀리서 그 모습을 확신했고, 나서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구자곡과 같은 꼴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어휴…… 금천수왕 망할 노친네 같으니. 사람 좀 제대로 알아보고 일을 벌이던가.”
대법왕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애초에 그러한 존재가 있다고 말만 했다면, 경전 따위 찾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경전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미 경전의 내용을 알고 있는 그다.
하여, 왜 그런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러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천 년 역사를 뛰어넘어 불교의 성지가 되어 버린 포달랍궁이,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긴, 그렇게 치욕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았으니 만약 자신이 무신이라 해도 뒤집어엎어 버렸을 것이다.
“돌아갈까?”
대법왕은 헐레벌떡 몸을 움직이며 서장을 향해 움직였다. 최대한 무신과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안전하다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부르르- 한순간 온몸이 떨려 왔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마치 공포에 젖어 든 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가 어렵사리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데, 목에서는 끼익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나는 듯했다.
“젊군.”
“……?!”
“대법왕이라 해서 늙은이인 줄 알았더니…….”
이내, 그가 앞에 서 있다.
기나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맹수를 집어삼킨 것만 같은 눈빛,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세는 마치, 승천하는 용을 보는 듯 압도적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바람이 분다.
그의 주위로 살랑살랑 바람이 일고 있다.
마치, 항상 곁에 머물고 있다는 듯 또 바람이야말로 그를 상징하는 것처럼,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바람이 있었다.
대법왕은 순간 질끈 눈을 감았다.
“누…… 누구시오?!”
“나를…… 모른다?”
“그, 그렇소.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소.”
기이한 말을 한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에게 하는 말이 기이한 변명이다. 그리고 순간,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대법왕이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보지 못했소, 가 아니라 끝까지 모른 척을 해야 했다.
단우현의 눈빛이 반짝하며 빛을 냈다.
“보았나?”
절레절레-
들려오는 질문에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끄덕이는 순간 죽는다.
아무리 용을 쓰고 있는 대로 내공을 처박는다 한들, 손끝 하나 혹은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지? 어쩐담?
그리고 순간, 단우현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으로 내던졌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상당히 많은 죽간이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 그 내용을 알고 있는 대법왕의 안색이, 점점 사색이 되어 갔다.
“예전에…… 없는 이야기를 담는 라마승 한 놈이 있었다.”
“어, 없는 이야기…… 끅!”
“사실이 아니지만 재미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라고 말을 하던 놈이다.”
“……!?”
대법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대 대법왕이 없는 내용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무신을 담아내었을 테니까. 하지만 단우현이 그렇다고 말을 하면 그런 것이다.
목숨이 열 개이든 백 개이든 간에 얼마든지 죽이고 가루로 만들 수 있는 이를 앞에 두고, 그의 말에 고개를 젓는 머저리를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네놈은 보았나?”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보지 않았습니다!”
화르르륵!
순간, 눈앞에서 죽간이 불타올랐다.
손을 대 삼매진화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그저 의지만으로 불을 일으켰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눈에 새기니 입만 벙긋할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 괴물은…….
아니, 괴물이라는 말조차, 저 인간을 다 표현할 수 없다.
단우현이 그제야 피식 웃음을 지었다.
표정은 무언가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해서, 이것들은 필요한 건가?”
“아, 아닙니다! 어, 없어져도 괘, 괜찮은 것들입니다.”
“다행이군……. 이것처럼 불타 없어지지 않아도 돼서…….”
움찔- 하며 대법왕이 몸을 떨었다.
그 말인즉슨, 필요하다고 말을 했다면 포달랍궁을 모조리 불 싸질러 버리려 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으나, 애써 표정을 숨기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제야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참…… 혹, 이외에 다른 것이 있는 건…… 아니겠지?”
“어, 없습니다!”
사실 있다.
죽간이 아닌 종이로 된 서책 한 권이 말이다. 그 안에는 당시 무신이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또 어떤 식으로 상대를 제압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물론…… 봐도 소용이 없는 것들이다.
그 외에도 당대 대법왕께서 말년에 궁을 나가 썼다는 비급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동굴에 틀어박혀 삼천 등, 많은 이들의 무공을 해석했다는 글귀가 있기는 하였으나 애초에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고, 무신과는 관계가 없으니 그 또한 의미가 없다.
“……믿어 보마.”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단우현의 등을 바라보며 대법왕은 숨을 삼켰다. 사라져 가는 뒷모습조차 위협적인 나머지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았다.
이내, 그 모습이 완벽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쯤,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었다.
“더럽게 무섭네…….”
왜 그를 조심하고 또 두려워하라고 말을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누구도 그를 앞에 두고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존재치 않을 것이다.
* * *
구자곡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아픔은, 이곳이 결코 저승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으로 시선을 주었다.
“자요.”
그리고 순간, 한 여인이 물잔을 내밀었다.
두 눈을 껌뻑이며 그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휘둥그레 눈을 치켜떠야 했다. 왜 이 여인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너는…….”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다행이에요.”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틀림없이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우연과 운이 겹쳐 그리되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죽이려 했던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왜…… 나를…… 간병하고 있는 것이냐?”
“아, 사 할아버지한테 제가 부탁했어요. 주변에 간병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단소미가 슬금슬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단우현은 보이지 않았고, 장삼태는 간병 같은 것에 소질이 없다. 그렇다고 사도학이나 남궁천에게 부탁할 수 없고, 금지란과 진태공은 어딘지 모르게 얼이 빠져 있었다.
남은 건 남궁소혜였는데, 마교인이기 때문인지 질겁을 하니 결국 단소미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자곡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섭지 않으냐?”
“네? 아…… 그때 일 때문인가요? 저는 괜찮아요. 그런 거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라…… 서.”
단소미는 영혼이 빠진 듯한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부터 헤아린다면 몇 번째일까?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던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구자곡의 칼이 정말로 단소미를 죽일 수 있는 칼이었다면 이미 품에 있던 백묘나 백호가 진즉 나섰을 것이다.
“미안…… 하구나.”
“아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지나간 일인 걸요.”
“…….”
단소미의 말에도 구자곡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세뇌를 당해 오로지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죄 없는 아이를 죽이려 했다.
심지어 사도학과 마교를 배신하기까지 했으니 그의 마음이 오죽할까?
당장 목을 매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잘도 살아 있구나.”
“교…… 교주?!”
그때 문이 열리며 사도학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는 단우현과 남궁천이 보였는데, 구자곡의 눈은 오로지 사도학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소…… 송구합니다, 교주! 제가 못난 탓에…….”
“아니, 아니다. 못난 놈 탓해 봐야 소용없지. 그저, 네놈 못난 거 알고 있으면 된 거다. 다음부턴 그런 실수는 안 할 것 아니냐.”
“…….”
“네놈들 처분은 감춘이 알아서 할 테도 넘어가도록 하고…….”
“교…… 교주! 모든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수하들은 만큼은……!”
사도학의 말이 들리는 순간, 급하게 고개를 들어 올린 구자곡이 소리를 쳤다. 세뇌를 당한 것은 그 혼자였고, 수하들은 그저 구자곡이란 단주의 명령을 따라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자신을 따른 죄 밖에 없는 수하들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싶은 것이 구자곡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순간, 사도학이 턱 하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내 지그시 시꺼먼 눈을 빛내며 시선을 마주치더니, 입가를 비틀며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내가 교주더냐? 교를 이끌고 있는 게 누구냐?”
“……?!”
“네가 섬겨야 할 이는 내가 아니라…… 감춘이다. 똑바로 처신하거라.”
“…….”
구자곡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도학의 말대로, 교주 직위에 있는 것은 감춘이다. 하여, 천산마교에 몸담은 자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사도학에게 비는 것이 아닌, 감춘에게 죄를 청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구자곡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깨워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알면 됐다. 가 봐.”
구자곡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이대로 교주인 감춘에게 가, 죄를 청하고 그것을 달게 받을 심산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해야 할 결자해지인 셈이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정말로 그 죽간이 전부였나?”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구자곡이 시선을 돌려 단우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