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77
마차를 끌고 감숙으로 들어선 지 나흘째가 되는 날.
단우현의 마차는, 기련산을 한참 지나 난주에 도착했다. 이대로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면 곧 섬서에 도착할 것이니만큼, 빠르게 안휘와의 거리 역시 좁혀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섬서의 성도 난주에 멈춰 선 이들은, 가장 먼저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역할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장삼태이다. 매번 그가 하는 일이니만큼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하여, 평소라면 구시렁거리며 홀로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끙끙거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기이할 정도로 가벼운 몸놀림으로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 좋구나!”
장삼태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치솟는 울분은, 어느덧 사라져 존재치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뒤를 따르는 금지란과 진태공 때문이다.
두 사람의 손에는 양손 가득이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의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그것은 걷는 것조차 여의치 않을 지경이었다.
“윽?! 무…… 무거!”
금지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헐떡였다.
양손 가득 물건이 들려 있으니 무게가 상당하다. 심지어 오랫동안 걸은 탓에 발도 아프니 누군가 짐을 나눠 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태공은 여유가 없다.
오히려 금지란보다 더 많은 짐을 들고 있는 탓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장삼태인데…….
“뭐가 좋을까……?”
장삼태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콧노래를 부르며 저잣거리를 둘러보고만 있었다. 도와줄 생각 따위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저, 저기! 좀 나눠 들죠?”
“나참! 장 보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내가 그걸 들면 장을 볼 수가 없잖아?”
기껏 용기를 내 말을 건네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시큰둥한 대답이다. 애초에 짐꾼으로 쓰기 위해 데려온 자들이니만큼 실컷 부려 먹겠다는 것이 장삼태의 생각이었다.
이대로 장원까지 같이 가 주었으면 할 정도로, 십 년이 넘게 노예 짓을 하고 있던 장삼태에겐 아주 좋은 놈년들이었다.
진태공은 힘이 좋고 뭐든 근성으로 잘한다.
시키면 척척까지는 아니어도 욕을 먹으면서 성장하는 놈이랄까? 옆에서 종놈으로 키우는 보람이 있다 느낄 정도다.
반대로 금지란은?
투덜거리면서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빨래를 시키면 다 찢어 버리고, 설거지를 시키면 전부 깨부숴 버린다. 하지만 한 가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요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처참한 것을 내어놓더니 이제는 사람 입맛에 맞게 척척 해 놓기 시작했다.
식사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오랫동안 밥 담당이었던 장삼태의 수고를 크게 덜어 주고 있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절대로 도망치게 못하지, 암!’
장삼태는 느꼈다.
왜 단우현이 자신을 그리 부려 먹는지.
누군가를 부려 먹는 게 이리 편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그였다. 하여, 어느 누구보다 두 사람의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며 절대 놓아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으으윽…….”
그때 금지란이 신음을 삼키며 표정을 찌푸렸다. 날이 굉장히 더운 탓에 한순간 머리가 핑 돌아 몸이 휘청였는데, 곁에 있는 진태공이 재빠르게 그녀를 부축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하…… 하아……. 사람 죽을 때가 된 거 같으니까 좀 걱정스러운가요?”
“그…… 그건……!”
“됐네요. 저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금지란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진태공을 떨쳐 냈다. 평소에는 남궁소혜 곁에 달라붙어 뭐든 내어 줄 것처럼 행동하더니 이제야 걱정하는 척하는 그의 모습에 진저리가 났다.
아득바득 이를 악물고 버티고 또 버텨 낼 것이다.
어차피 저 인간들에게서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것이 바로, 지난 몇 개월 동안 장삼태가 그녀에게 가르쳐 준 인생의 참맛이었다.
“…….”
“저건……?”
그리고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스치듯 지나갔으나, 끝까지 꽂히는 시선에는 확신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재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 * *
“뭐? 그게 사실이냐?”
“예, 틀림없습니다. 신녀와 진태공이 확실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천지교로 돌아가던 장로 형운각은, 수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의 신녀와 진태공이 짐을 들고 누군가를 따라갔다?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다.
신녀는 자존심이 드세고 언제나 사람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가, 시녀와도 같은 노릇을 하고 있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살아 있었나?”
형운각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교주는 이미 사천에서 두 사람을 처리하려 했다.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으니 없는 데다, 정파의 공격으로 인해 신녀가 죽었다 선포를 한 직후다.
하여, 천지교의 사기가 들끓고, 반으로 갈라졌던 천지교의 힘이 지금은 교주의 밑으로 하나가 되어 정도무림을 향해 이를 갈고 있지 않은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녀는 살아 있어서는 아니 된다.
형운각은 툭툭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교주에게 보고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던 형운각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어떠한 뜻이 있는 듯한 이의 표정이다.
“신녀라면 교주와 가장 오래되었지, 아마?”
천지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함께했던 사이라고 알고 있다. 그만큼 그 교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현 장로와 호법들을 단숨에 꺾어 굴복시킨 그 힘, 그리고 그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천황의 두 존재를 만들어 낸 무예.
꼭꼭 숨겨진 채 드러나지 않았던 그 의문들을, 어쩌면 그녀라면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형운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교주의 비밀을 파헤칠 수만 있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알 수 없는 힘을 어쩌면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만 된다면 천하오황이 별거던가?
이 중원 천지를 발아래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형운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젊었을 적 느꼈던 그 호승심이 미친 듯이 끓어올라 감정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 * *
“아무도 없네?”
“헉, 헉.”
“아, 아이고, 나 죽어……!”
객잔에 들어선 장삼태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장 보는 것을 떠넘기는 게 이상하더니, 아무래도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다들 나간 것 같았다.
분명, 저들끼리 하하호호거리며 맛난 것을 사 먹겠지.
장삼태는 분한 마음을 삼키며 주먹을 와락 쥐었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도, 신나게 먹고 마실 것이다.
‘분명…… 여기도 아주 좋은 술집이 있다고 하던데……?’
순간,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장삼태가 헤벌쭉 웃음을 지었다. 이게 몇 년 만에 느끼는 자유의 울림인 것인가.
좋은 술을 마시고, 맛깔난 안주를 먹을 거다.
기왕이면 술 따라 주는 계집이 있으면 더 좋고.
저도 모르게 꿈에 부풀었는지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힐끗, 한쪽을 바라보자 바닥에 널브러진 금지란과 진태공이 보였다.
“에이! 또 나만 빼놓고 놀러 나갔네.”
이내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진이 빠진 이들은 딱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장삼태는 보이지 않게 씩 웃었다.
주섬주섬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던져 주었다.
“나머진 내가 할 테니 나가서 뭐들 사 먹으라고. 보아하니 장주님도 밖에서 드시고 올 것 같은데.”
“헉, 헉…… 그…… 그래도 됩니까?”
“내가 이런 걸로 장난치는 거 봤냐?”
많이 봤습니다, 하며 말을 하고 싶지만 진태공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삼태가 험하게 사람을 부리기는 하지만 보상을 할 때는 확실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허튼 생각은 하지 말고.”
순간, 진태공이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도망을 친다 한들 성공이나 할 수 있을까?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과 마찬가지이거늘.
그리고 뒤에 벌어질 참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진태공이 어렵사리 몸을 일으키며 금지란을 부축했다. 고작, 저잣거리에서 짐은 옮기는 일에 불과한데 왜 이리 엄살인가 싶을 테지만 그간 쌓인 피로가 장난이 아니다.
마음 편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이들과는 다르게 언제나 긴장을 해야 하니 깊게 잠을 자지 못했고, 또 시간 맞춰 일어나 일을 해야 하니 늦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여, 이리 지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객잔 안에 남은 이는 장삼태 혼자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두 노인의 방과 두 여인의 방, 그리고 단우현의 방을 슬그머니 열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 안은 휑했고, 인기척이라고는 쥐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모두 나가고 없다는 것이 확실시되는 것이다.
이내, 장삼태가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가지고 왔던 봇짐을 풀어 가장 밑쪽을 바라보니 집을 나올 때 챙겨 온, 깔끔한 옷이 보였다.
“이날을 위해 가지고 왔지, 으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재빠르게 정리하고, 동경을 바라보니 평소 보던 장삼태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이내 옷 안쪽에 전낭 주머니를 넣으려는 순간.
펄럭-!
종이 한 장이 펄럭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뭔가, 이건?
오랫동안 입지 않기는 했지만 이런 종이를 넣어 둔 적은 없었다. 종이 또한 상당히 낡아 보이는 것이, 꽤 오래전에 넣어 둔 것 같았다.
하여,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쥐어 드는 순간.
장삼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껴졌다.
-나가만 봐, 아주. 그 흉물을 잘라 버릴 테니까.
써 있는 글귀는 굉장히 단순명료하다.
하지만 필체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남궁소혜만큼이나 깔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필체. 그러나 힘이 있으며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것 같은 느낌.
그래, 이 필체의 주인은 바로…… 매향이다.
“이런 빌어먹을?!”
장삼태는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매향의 얼굴을 그리며 장삼태는 망연자실하였다. 마치, 장삼태의 속내를 하나부터 열까지 읽어 낸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이 옷을 입지 않지 십 년이 넘었거늘…….
오싹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