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79
취기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세상은 왜 이리 빙글빙글 도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눈은 반쯤 감긴 채로 자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다만 한 가지 행동만큼은 반복하고 있었다.
손아귀에 커다란 그릇을 쥐고, 비어 있는 술동이에 국자를 넣어 그릇에 따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술잔이 가득 차야 했었는데, 아무리 국자로 퍼내고 또 퍼내도 그릇에 잔이 차지 않는다.
“결국……. 해내 버렸군.”
“끅……!”
“이건…… 미친놈이야……. 제정신이 아니야.”
단우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니 사도학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독하니 독한 화주 한 통을 전부 비워 버리다니?
강제로 마시게 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취기를 날리지 않은 채 저리 술을 마시는 것은, 남궁천이나 사도학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장삼태는 해냈다.
정말 놀라운 녀석이란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끅……! 저…… 저는 그…… 그놈들…… 차, 찾으러…… 가야 하는데요…….”
해롱해롱 눈알을 굴리며 장삼태는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것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한 동이를 전부 비운 이유이기도 했다. 분명 얼굴은 물론이고 눈과 행동거지까지 맛이 간 것처럼 보이나, 금지란과 진태공을 찾아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어차피 떠날 놈들 아니었나? 도망간 놈들을 잡아 뭐 한다고 고집이냐?”
단우현은 그런 장삼태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제법 길게 데리고 다니기는 했으나, 어차피 떠나보낼 자들이 아니었던가.
하여, 도망을 쳤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남궁천이나 사도학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애초에 원하는 정보는 모두 얻었으니 더는 쓸모도 없는 말이다.
“아…… 아니……. 도망 안 갔다니까요……. 끅! 부…… 분명 뭔 일이 끅! 제…… 후임 아…… 아닙니까…….”
장삼태는 몸을 휘청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단우현이 무슨 말을 하든,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오로지 금지란과 진태공을 붙잡아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우스웠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단우현이 슬쩍 장삼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그의 몸 전체에 김이 일어나더니 단숨에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속내는?”
“제 뒤를 이을 종놈 년 아닙니까?! 그놈들이 없으면 저는 계속 종놈 아닙니까!”
예상치도 못할 정도로 이른 시간에 술이 깨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었던 말이 저절로 뱉어진 것이다.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요…….”
“어이쿠, 머리야……. 그러니까, 네놈 종놈 노릇 하고 싶지 않아서 그놈들 데려다 쓰겠다?”
“허허허- 잔머리도 이런 잔머리는 내 살다 살다 처음 보네.”
단우현마저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인연이 엮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힘으로 데려가는 것은 좀 아니지 않은가?
“사람을 강제로 데려다 일 시키는 건 어느 머리에서 나온 거냐?”
순간,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너잖아, 너…….’
이내, 입 밖으로 나오려는 한마디를 꾹 눌러 참았다.
비록, 처음 보았을 때 잘못을 하기는 했으나, 그 이후 장삼태는 단우현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나지도 못한 채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기라 하면 기고, 밥하라 하면 하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을 시키고.
그러한 것들을 배우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안 될 건 또 뭐가 있는가? 심지어 그 연놈들은 호남단가가 아니면 천지교라는 웃기지도 않은 곳에서 사람이나 속이며 살아갈 것들이 아닌가.
“허허, 뭐 어찌 되었든 굳이 도망간 이들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네. 그들도 그들 인생이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럼 저는 제 인생이 없어서 붙잡혀 살았는가 보죠?”
장삼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단우현과 남궁천을 돌아봤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남궁천이야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단우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을 찾고 싶으냐?”
“아니! 진짜 도망을 간 건지, 아니면 뭔 일이 생긴 건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애써 말을 돌리는 단우현을 보며 장삼태 또한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말을 한다 해도 통할 상대도 아니고, 지금이 딱히 나쁘다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문제는 다르다.
분명, 객잔을 나서기 전까지 도망치려는 기색 따위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도망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장삼태의 마음을 알았는가?
피식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찾아보거라.”
“예? 진짜 말입니까?”
“그래,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어디 찾아보거라.”
“지, 진짜로 찾으면 데려옵니다? 제 후임으로 쓸 겁니다?”
“마음대로 하거라. 단, 그자들의 의사를 무시하지는 말거라.”
장삼태는 순간, ‘내 의사는?’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으나 이내 입을 닫았다. 본디 사람의 의사라는 것은, 한 대 맞을 때마다 순식간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그놈들이 눈물을 흘리든 애걸복걸을 하든 간에 그 입에서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장삼태가 신이 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술을 마시느라 밤을 새웠다는 사실조차 머릿속에 없는 것인지 장삼태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객잔을 빠져나갔다.
어찌나 신이 나 보이는지 마치 어린애와도 같았다.
“쯧쯧, 그런데 괜찮은 것이냐? 도망친 게 아니라면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건데?”
“그렇군…….”
단우현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거세지는 않으나 틀림없는 불온함을 품고 있는 그 바람을 느끼며 단우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되겠지…….”
* * *
분명 아침임에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다. 어디인지 알 수는 없으나, 주위에 이들 이외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아무리 살려 달라 소리를 친다 한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또 누군가 찾아온다 한들 그 상대가 천지교의 장로 형운각이라 한다면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금지란이 입술을 깨문 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곁에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진태공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본연의 형태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천지교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고수이거늘.
어찌 이런 결과가 나온단 말인가.
그때 형운각이 손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사천황 중 교주 곁을 지키는 두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진 좀 많이 과장되었지요.”
“…….”
“특히 진태공은 좀 많이 띄워 주셨습니다, 신녀. 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니…… 허허허.”
형운각이 슬쩍 발을 움직여 진태공의 몸을 뒤집었다. 혼절한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어디를 봐도 교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윽……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나요? 교주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허허- 머리가 좋으신 분이 애써 현실을 부정하시려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
고개를 숙인 금지란이 아득하며 이를 갈았다.
형운각의 한마디로 모든 상황에 확신이 들었다. 사천에서 벌어진 일은 교주가 벌인 것이고, 지금 자신은 살아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조금의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내고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장로께선 왜 저를 죽이지 않는 거죠?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는 건가요?”
“허허허- 역시 눈치가 참 빨라 좋습니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건?”
형운각은 장로 중에서도 욕심이 많은 자다.
교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기는 하나, 만약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뒤통수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자라 할 수 있다.
만약 형운각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면, 어쩌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했다.
“그럼 묻겠네만……. 교주…… 그자의 무공은 도대체 무엇인가?”
“……?!”
순간, 금지란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형운각이 뱉은 한마디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육철완조차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 않았던가.
“놀라는 것을 보니 뭔가 알고 있기는 한 것 같네만…….”
형운각은 게슴츠레 눈을 뜨며 금지란을 바라봤다.
표정에 변화가 있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말. 그것을 느끼며 환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알지 못한 육철완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얻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의 모든 것을!
“알아서…… 좋을 것이 없을 텐데…… 말이죠.”
“허허허- 늙으면 궁금증이 많아진다네. 지금 자네가 숨을 쉬고 있는 것도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함이고……. 그렇지 않다면…… 필요가 있겠는가?”
형운각이 슬쩍 손을 뻗어 금지란의 미간을 매만졌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법을 쏘아 얼마든지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살기마저 느껴지고 있으니만큼, 금지란은 부르르 몸을 떨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는…….”
“그래그래, 어서 말해 보게나.”
형운각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입을 바라봤다. 어서 빨리 이야기를 하라는 듯 재촉하는 눈빛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깊게 한숨을 쉰 금지란의 입술이 들썩였다.
“무신의……. 무공을 익혔어요.”
“……?!”
그리 말하는 순간, 장로의 표정이 경악스레 변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오롯이 교주 본인만이 알고 있을 터.
금지란은 있는 그대로 교주의 말을 전해 주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