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87
기묘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차게 밀어붙이던 육철완은, 무언가 묘한 낌새를 느끼며 권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으로는 두 명의 사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천지교의 남아 있는 사천황 둘이다.
하나같이 못지않은 기세.
부복하고 있기는 하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운은, 과연 십존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며 깊게 고개를 숙인 그 모습에선, 다른 이들은 가지지 못한 절대적 충성심이 느껴졌다.
이들이야말로 천지교를 이끄는 절대 힘이며 육철완의 가장 최측근이라 할 수 있다.
“성주는 살아 있나?”
“겨우겨우 숨은 붙어 있습니다. 그리하라 하셨기에…….”
사천황 중 한 명, 황도진의 입이 열렸다.
언제나 적무성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듯 지키고 있으나, 실상 육철완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 그의 숨통을 끊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다.
“그래그래, 아직 죽어서는 아니 된다. 조금 더…… 사파의 힘이 내게로 와야 하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혈도가 뚫릴 일은 없을 테지?”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남만에서만 구할 수 있고, 해독제는 물론 치료법조차 없는 독임을 수차례 확인했습니다.”
“그래…….”
황도진의 말에 육철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힘을 뺐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하는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으니만큼,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불안감 또한 기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예!”
그때 육철완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곁에서 부복하고 있던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천지교 사천황의 일인.
커다란 키와 덩치는 물론이며 몸 전체가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자다. 눈매 역시 날카로운지라 길을 걷는다면 누구도 이자의 눈을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았다.
백만량.
주먹과 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불리는 이다.
교주인 육철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천지교에서 가장 강한 이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무예 실력을 지닌 자다.
“어찌 되었나?”
“최근 놈들의 동향이 잡혔는데, 산서로 들어왔다 합니다.”
“산서? 여기 말이냐?”
“예!”
이게 과연 우연이라 말할 수 있는가?
호남에서부터 호북 서장과 천산, 그리고 이제는 산서다. 마치 천지교를 쫓고 있는 사람처럼, 천천히 꼬리에서부터 몸통, 그리고 이제는 머리까지 다가왔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이것이 우연이라 말할 수 없음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느끼고 있는 이 불길함은, 어쩌면 그자들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육철완이 시선을 돌려 황도진을 바라봤다.
“호남 쪽 일은?”
“……연락이 없습니다.”
“허…….”
질끈 눈을 감은 육철완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놈들이 산서로 온 것도 그렇지만 호남으로 보낸 이들마저 연락이 없다니?
이것이 바로 그 불길함의 정체임을 깨달았다.
“무황성을 움직일 수 있느냐?”
“교주의 명이시다면…… 반드시 수행할 것입니다.”
황도진은 안다.
사파의 교활함을.
이미 무황성의 수뇌부들까지 천지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 어떤 이들이라 한들 교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힘과 권력을 얻기 위해 천지교 앞에 고개를 숙였고, 그 덕에 얻은 독으로 적무성을 끌어내려 지금의 힘을 얻었으니까.
이 사실이 드러난다면 사파인들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만큼, 어떤 식으로든 천지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다.
“무황성을 움직여 놈들을 붙잡아 데려오라. 또, 그자들의 작은 물건 하나 놓치지 말고 가져와야 할 것이야.”
“명!”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육철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며 숨을 골랐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불길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대법왕의 비급을 손에 넣고 그것을 익히며 이 자리까지 올라오면서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불길함이었다.
* * *
“아따- 사람 참 많네.”
성도 거리를 거닐고 있는 장삼태는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본디, 성도라는 곳이 다른 곳보다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근래 작은 촌락들만 들렸더니 이러한 인파가 적응되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 대부분이 험악하게 생겼다.
산적 같은 이들도 있고, 어디 족제비 같은 생긴 자도 있다.
척 봐도 나 성격 안 좋아요, 하는 이들의 모습이 대부분인지라, 과연 성질 더러운 것들이 모여 있는 사파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었다.
눈 잘못 마주쳤다간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일행이 어떤 일행인가?
갓을 쓰고 면사로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는 남궁소혜의 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마련인데, 기이한 가면마저 뒤집어쓴 노인들마저 있으니 지나가는 어린아이마저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고 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부담스럽군…….”
“허허-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남궁천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곳은 마교와 같이 사파의 성지이지 않은가. 까딱 잘못했다간 온 사파 놈들이 칼을 들고 덤벼들 것이다.
“저 객잔인 것 같습니다요.”
그때 장삼태가 한 객잔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 빛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객잔. 척 보아도 나 좀 비싸요,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 보이는 것이, 음식 맛도 꽤 있는 듯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것인지 군침이 흘렀다.
“괜찮아 보이는군.”
단우현의 눈에도 나빠 보이지 않는 곳이다.
다만 비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인지 그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먹고 자는 것에 큰돈이 들어가는 것만큼 아까운 일은 없으니까.
“일단 가요!”
그때 단소미가 먼저 나서며 단우현의 팔을 이끌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시선을 받는 것보다, 객잔에라도 들어가 있는 것이 속이 편한 것이다.
더욱이 금지란과 진태공이 가장 뒤에서 얼굴을 가린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는 싶었던 것이다.
“으하하!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만들어 놓겠습니다요!”
신이 난 장삼태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자그마한 촌락 같은 마을만 들린 탓에 좋은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하여, 오랜만에 도착한 성도에서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놓고 좋은 술을 입에 댈 것이다.
그러다 운 좋으면 조용히 혼자 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지난번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새 옷까지 사 놓았으니만큼, 이번만큼은 반드시 좋은 곳에 가고자 굳게 다짐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허허- 신이 났구만, 아주.”
“또 무슨 꿍꿍인지…….”
남궁소혜가 도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삼태가 들어간 객잔 문을 바라봤다. 저 인간이 저런 느낌으로 나오면 꼭 한 번씩 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했다.
그때.
벌컥, 하며 문이 열렸다.
“아…… 아아……!”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장삼태가, 시퍼렇게 죽은 표정으로 덜덜덜 몸을 떨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 때문인지 하나같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으아아아악-!”
“이, 이봐요?! 어디 가요?”
그리고 순간, 마치 사람이 미쳐 버린 것마냥 핏기 없는 얼굴로 무작정 달려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남궁소혜조차 그 뒤를 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뭐…… 뭐야, 대체?”
“허허, 드디어 실성을 하였나 보구나.”
남궁천과 남궁소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삼태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곧 되돌아올 줄 알았건만 사라진 장삼태는 좀처럼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아?!”
단소미의 짧은 탄성이 들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객잔 입구를 향해 돌아가자 그제야 사람들은 왜 장삼태가 그리 허겁지겁 도망쳤는지 알 수 있었다.
“매향 언니?!”
입구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이는 틀림없는 매향이다. 서늘하다 못해 귀기(鬼氣)가 서린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남궁천과 사도학이 입을 다물었고, 단우현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권무진이 있었다.
“하, 하하. 오,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용케 왔구나.”
“이곳에 계실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 말입니다. 해야 할 말도 좀 있고…….”
“그래?”
단우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던 매향은, 단우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옆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뭐라 한마디 세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이…… 인간이……!”
“매 소저……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됐지 않았어요?”
이내 뒤를 따르는 남궁소혜가 한숨을 쉬자 매향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여인의 한기 섞인 눈빛은, 같은 여인이 봐도 무서운 것인지 남궁소혜가 어깨를 움츠렸다.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제가 나간 그사이 집을 떠나다니……!”
“허허- 집을 떠나다니……. 그저 유람을 온 것이지.”
“맞아요, 저희도 단 공자가 갑자기 말을 해서 놀랐다고요.”
매향은 단우현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괜한 이를 붙잡고 토했다. 남궁천과 사도학은 어색한 것인지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객잔 안으로 들어섰고, 그 뒤를 따라 금지란과 진태공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순간, 또다시 매향의 눈빛이 날카롭게 남궁소혜를 향했다.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아, 그게……. 일이 있어서 식객으로 들어올 사람들이에요.”
식객? 식객이라?
매향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특히, 금지란을 바라볼 때 눈빛은 마치 맹수와도 같았는데, 혹시 장삼태와 모종의 관계로 엮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아하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그보다 어서 들어가요! 제가 지금 너무 배가 고파요…….”
그때 남궁소혜와 매향 사이를 슬그머니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단소미였다. 계속해서 성질을 내며 유독 남궁소혜를 몰아붙이는 모습은 집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며 그럴 때마다 자연스레 끼어들어 두 사람을 중재했기 때문이다.
“그…… 그래……. 그래야지…….”
매향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더 속에 있는 말을 쏟아 내고 싶었으나, 단소미가 배고프다는데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터트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내 세 사람이 다시금 객잔으로 들어선 순간.
가운데 있던 단소미가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아…… 아저씨?!”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단우현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천웅이다. 그는 차를 마시며 단소미와 시선을 마주하였고,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 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많이 컸구나.”
“와아-! 오랜만이에요!”
이윽고 단소미가 비천웅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콰직!
그리고 순간, 단우현이 앉아 있던 탁자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