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1
콰르르르릉-!
또 다른 전각이 무너지고 박살 나며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사파의 상징인 무황성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처량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불길마저 치솟아 올랐다. 바람마저 강하게 부는 탓에 불길은 빠르게 번지며 그 화력을 키워 나갔다.
삽시간에 주변을 집어삼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점차 화력을 키우는 화마(火魔) 속에서 단우현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
그저 오롯이 서 있는 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대자.
아무런 기세조차 흘리지 않으나, 그 평범함이야말로 최강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그 어떤 이들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의 시선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으…… 으으……!”
“미, 미쳤어, 이, 이건 말도 안 돼……!”
누구도 그의 앞에서 검을 뽑지 못하고 주저앉았으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실신을 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서 단우현이란 존재는 그저 재앙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그러한 것.
그것이 바로 지금 단우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었다.
“옛 생각이 나는군.”
그리고 순간, 그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타오르는 불길과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
살고자 칼을 들었으나 차마 덤벼들지 못한 채 주저앉는 자들.
단우현은 오롯이 그들을 바라보며 먹이 사슬 가장 꼭대기에 자신이 있음을 깨달아 버린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기에 지금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 역시 옛과 차이가 없다.
그런 무덤덤한 포식자의 시선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단우현은 슬쩍 검을 들어 올렸다.
도망가는 자들도 보이고, 석상마냥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 상황에서 마음먹고 검을 휘두른다면 시체 밭이 될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들어 올린 검을 회수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단우현의 표정이 조금 변하였는데, 마치 더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은 것 같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드디어 오는군.”
고개를 돌린 단우현은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묘한 기척들이 느껴지고 있다. 한둘이 아닌 수백, 혹은 수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마치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기세를 풍기며 점점 더 빠르게 이곳을 향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정말…… 옛 생각이 나는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린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과거 이와 같은 일이 있지 않았던가?
수만에 달하는 무림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떠난 발걸음. 오롯이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칼을 들었던 그 순간 말이다.
과거의 재구성인가?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하여도, 이번에는 선인 놈들에게 쉬이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 * *
“아니, 이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끄억?!”
사도학은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걸었다.
달려드는 이들 따위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없는 것이, 과연 천하의 사도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길을 막는 이가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하나같이 처박고 내려찍어 두들겨 팬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머리를 긁적이면서 긴 한숨을 토했다. 벌써 절반 가까이 뒤졌는데 보이지 적무성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 진짜 속 썩이는 놈일세, 그려.”
“허허- 어쩌겠는가? 그래도 구하기는 해야지.”
“……서, 성주님의 거처는 이 근처가 맞습니다만.”
“그러니까, 없잖아?”
권무진은 진땀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적무성을 찾기 위해 그의 거처로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사람이 있었던 흔적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금지란의 말로는 무황성 내부에 감금을 하고 있을 거라 하였는데, 그 장소를 특정해 내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많은 이들을 붙잡아 억지로 입을 열게 해 보아도 모른다는 말만 나온 것으로 보아, 이 근방에 성주만이 알고 있는 통로 같은 것이 있다 생각하는 편이 맞는 것 같았다.
“어휴…… 또 무너지네……. 이러다 우리까지 말려드는 거 아니에요?”
그때 밖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남궁소혜가 불안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홀로 남은 단우현은 마치 쌓여 있는 울분을 토해 내듯 무황성 여기저기를 때려 부수고 있었다.
무너진 전각만 해도 십여 채에 달한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괴성들은 지옥을 연상케 할 정도다. 단우현이라는 존재가 화가 나면 어찌 되는가를 보여 주는 상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휘말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다는 것. 천하의 단우현이니 알아서 조심할 것이라 생각을 하긴 하지만 여기저기 무너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알아서 한다 했으니 믿는 수밖에.”
“깔려 죽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정말……. 하아…….”
긍정적인 말에도 남궁소혜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만큼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음이고, 힘을 쓰는 단우현 역시 자비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이쪽으로 길이 있습니다!”
그때 권무진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나같이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길이 보였다. 좁은 그 길은 주변 풍경을 이용해 잘도 가려져 있었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다.
네 사람이 슬쩍 서로를 바라보며 그 길을 향해 걸었다. 이미 적무성의 거처를 이 잡듯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 외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니까.
더욱이 금지란은 말했다.
무황성 안에 숨겨져 있다고.
정확히 그 위치를 알지 못하였으나,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이 좁디좁은 길 끝에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 여기 맞구만.”
이윽고 길 끝에 다다른 사도학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분명 막다른 길이지만 진법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슬쩍 손을 뻗자 손이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도학이 확신을 하며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자 이내 숲과도 같았던 풍경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커다란 동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어르신?!”
“성주님!”
이윽고 그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초라한 적무성의 몰골이다. 목내이와도 같은 몰골로 힘없이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어느 누가 보더라도 오황의 일인 적무성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궁소혜가 경악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또한 남궁천과 사도학 역시 시선을 돌리고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중원무림을 종횡무진하며 치고받았던 사이가 아닌가.
미운 정이 되었든 고운 정이 되었든, 정이 들 수밖에 없는 관계다.
그런 이가 초라한 몰골로 힘없이 벽에 기대어 있으니 내색하지는 않으나 두 노인 또한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궁천은 무언가를 떠올린 것인지 핏발 선 눈빛으로 부들부들 떨었으며 사도학은 주먹을 움켜쥔 채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의 기운이 매섭게 주변을 장악했다.
남궁소혜는 물론이고 권무진까지 두 사람의 기운에 온몸을 벌벌 떨어야 할 정도다.
“흐, 흐흐, 누…… 누굴 주, 죽일 셈이냐, 인석들아…….”
그때 적무성이 게슴츠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은 괜찮다는 듯,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듯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내 툭 떨어져 내렸는데,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한 탓에 손을 드는 행위조차 힘들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권무진이 황급하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흐…… 흐흐……. 과…… 과연 네놈밖에 없구나.”
“어르신……!”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인석아. 다 내 업보인 게지.”
적무성은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탓에 크게 휘청이기는 하였으나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네놈들이 올 줄 알았다!”
“창피한 줄 알아라, 이놈아. 나 같으면 고개도 못 들고 다닐 거다.”
“허허허- 뭐라 할 말이 없네.”
사도학과 남궁천이 기나긴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이미 한 차례 비슷한 일을 겪은 남궁천은, 마치 그날의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인지 쓴웃음을 지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래, 어쩌다 이리됐냐? 이놈처럼 진천뢰라도 터트린 건 아닐 테고……?”
“독…… 독을 먹었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
독이라는 말에 두 사람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오황이라 불리는 자가, 얼마나 정신을 빼놓고 다녔으면 독에 당하겠는가? 차라리 진천뢰가 쏟아지는 것이 나을 법했다.
하여, 두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병신…….”
“허허- 참…….”
사도학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반대로 남궁천은 한심스럽다는 듯 적무성을 바라봤다.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는 인물이 고작해야 독에 당했으니 응당 그럴 법했다.
순간, 적무성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 역시도 창피하다는 것 정도는 아는 것이다.
“일단 데리고 나가자. 목내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말이야. 냄새도 나고…….”
“이, 이리 못 가네. 내…… 내 눈으로…… 내, 손으로 주, 죽여야 할 것들이…… 있단 말일세.”
적무성은 이리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배신한 이들의 목을 쳐야 했다. 그토록 믿었던 놈들에게 당했으니만큼, 적어도 그것들이 죽는 것 정도는 보아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하여, 이대로 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쿠르르릉-!
그때 또다시 땅이 크게 울렸다.
동굴이 흔들리고 천장에선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벽면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는 것이, 몇 차례의 흔들림 탓에 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이긴 뭘 죽여? 이미 다 뒤졌을 텐데.”
“……그, 그게 무슨……?”
의미 모를 말에 적무성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죽었다는 것은 이미 남궁천과 사도학이 처리를 했다는 소리인 것인가? 하긴, 이 두 늙은이가 움직였다면 그놈들이라고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네들이…… 갚아 주었는가?”
“허허- 갚기는 뭘 갚았겠는가? 우리는 그저 자네를 찾으러 온 것에 지나지 않네.”
“……? 그…… 그럼, 죽었다는 말은……?”
“단 가주가…… 우리를 대신하여 움직이고 있으니…… 이미 숨이 끊어지지 않았겠는가?”
이내 들려오는 남궁천의 말에 적무성은 사색이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움직였다는 것은, 단순히 놈들에게 갚아 준다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권무진과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자 침을 꿀꺽 삼키며 사도학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미 사파는 끝났어, 이놈아. 무황성은 흔적이나 겨우 남을까 싶을걸?”
“커억?!”
입을 쩍 벌린 적무성은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진동은 그런 것인가?
단우현이 여기저기 부수고 다니고 있다는 신호였단 말인가.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 절로 머리가 핑 돌아 버렸다.
“어…… 어르신?!”
이내 쓰러지는 적무성을 권무진이 가까스로 부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