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3
뭐지? 뭐였는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천지교에서 개인의 무력으로는 교주를 제외한 다음이 바로 백만량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원에서 숱한 임무를 수행했음에도,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없었던 것은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무력 때문이었다.
천 년 전, 대법왕이 자신이 보았던 삼천의 무공을 재해석하여 만들어 놓은 비급 중 하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제대로 된 일격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갈렸다.
그저 허망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상황이 아니던가.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하게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력으로는 누구보다 믿었던 백만량이었다.
설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상 정도는 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건만 그마저도 허황되게 사라지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저 여전히 교도들을 베어 버리고 있는 사내를 멍하니 주시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교…… 주…… 일단, 자리를 피하시지요.”
“자리를…… 피하라고? 이 내가!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육철완은 역정을 내며 황도진을 쏘아봤다.
하늘의 뜻에 따라 대법왕의 기연을 얻었고, 천지교를 세웠으며 이제는 중원 일통의 마지막 한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사파를 집어삼키기 직전이었다.
그런 자신이…… 피해야 한다고?
어이가 없는 황도진의 말에 부들부들 입꼬리가 떨렸다.
이런 치욕이 또 따로 있을까?
“저 사내의 무력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황도진의 말대로다.
이렇게 잠시 뜸을 들이고 있는 사이에도, 또다시 백여 명이 넘는 시체가 쌓였다.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을 하는 듯한 사내의 검술은 더욱 위협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사내의 검이 또다시 휘둘러졌다.
눈앞에 있는 수 명의 적을 가볍게 베어 버리고, 뻗어 나간 검풍이 힘을 잃지도 않은 채 육철완을 향해 날아들었다.
촤악-!
“큭?!”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육철완의 볼을 상처 내며 사라졌다. 조금만 힘이 더 붙어 있었다면 볼이 아니라 머리가 날아갔을 판이다.
“교주! 정신 차리십시오!”
“그…… 그래……!”
이내 들려오는 황도진의 말에 육철완은 정신을 차리며 호흡을 골랐다. 지금 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눈으로 보았으니 알 수 있고, 설령 자신이 나선다 하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상대의 강함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후퇴…… 해야 합니다!”
황도진의 말이 맞다.
더는 교도들을 잃어선 안 된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을 살려야만 추후 다시금 재정비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육철완은 이러한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느냐……!’
등을 돌리는 육철완은 이를 갈았다.
* * *
서거걱-!
눈앞에 있는 적을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칼을 휘두르고 살을 베는 거다.
하나를 베고 둘을 베고, 그렇게 서넛을 베다 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서 있는 이는 단우현 혼자였다. 그것이 어느덧 천 년 전이기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으, 으아악…… 컥?!”
적의 눈빛에는 이미 공포가 깃들어 있다.
이럴 때야말로 사람을 죽이기 가장 쉬운 상황이다.
공포에 질린 이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칼날을 받아들이기만 하니까. 하여, 단우현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압도적인 공포와 함께 상대를 갈가리 찢으며 더욱 큰 두려움과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 수만을 베어 버리고도 멀쩡했던 단우현의 힘이다.
“도…… 도망가-!”
“이, 이길 수 없어…… 이길 수 없다고……!”
전의를 잃은 이들이 도주를 시작했다.
썰물 빠지듯 도망치는 모습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렇게 달린다 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단우현은 눈매를 좁히며 칼을 들어 올렸다.
짧은 순간이지만 모여 있는 힘이 칼날에 강하게 응축되었다. 이내 그가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검에서 해방된 힘이 사방으로 멀리 뻗어 나갔다.
콰콰쾅-!
“끄아아악!”
“컥!”
땅이 파이고, 부서지고, 날아올랐다.
돌풍과도 같은 검풍이 죽은 이들을 날려 보내니 살고자 하는 이들과 뒤섞여 바닥을 뒹구는, 어처구니없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지금 단우현의 손에서 벌어지는 것은 재앙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고,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 내고있는 단우현은, 짙은 웃음을 머금은 채 오로지 사람을 베는 것에만 몰두하는 듯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살성이 눈이라도 뜬 것처럼.
혹은, 눈을 뜬 직후부터 가라앉아 있었던 그것이, 하나둘씩 많은 일을 겪으며 다시금 그를 장악해 버린 것같이 말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천지교도들에겐 악몽이었다.
“단 공자-!”
그때 남궁소혜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귀로 파고들었다.
칼을 휘두르려던 단우현이 우뚝 멈춰 섰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 악몽과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남궁소혜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괜…… 찮아요?”
온 사방이 피범벅이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사람의 여기저기가 밟히는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다. 굴러다니는 것은 팔인지, 다리인지, 내장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럴 때마다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으나, 단우현을 향해 다가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 더욱 힘차게 걸었다.
“…….”
“괜찮은 거…… 맞아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남궁소혜가 어렵사리 물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만약 모르는 이들이 보았다면 누군가에게 난도질이라도 당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저 몸에 흐르고 있는 피 중 어느 것도 단우현의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살벌했던 단우현의 눈매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하였고, 주변에 풍기던 살기 역시 빠르게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이내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단우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괜찮아졌다.”
“진짜로 괜찮은 거 맞아요?”
“그래, 괜찮다.”
몇 번이고 되묻는 물음에 단우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눈앞에 드러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가 몇 번이나 묻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가 서 있는 주변은 그야말로 시체로 산을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라, 하는 표본과도 같은 않은가.
그만큼 엄청난 수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이들 중에는 천지교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무황성 사람들도 있을 터. 그러나 뒤죽박죽인 탓에 누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어휴…… 엄청 걱정했잖아요.”
“……그랬나?”
“예, 얼굴 좀 닦아요.”
남궁소혜가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고, 표정에도 이렇다 할 것이 전혀 드러나지는 않으나, 파르르 떨리는 손은 그녀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단우현 역시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애써 웃었다.
이내 손수건을 건네받고 얼굴을 닦아 냈다.
그런다 한들 수많은 피가 어찌 가실까 싶기는 하나, 그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평소에 단우현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는 어찌 되었나?”
“아, 적 어르신은 이미 구해서 객잔에 모셔 두었어요. 얼마나 못 먹었는지…… 그냥 목내이 같아요.”
“그렇군…….”
단우현은 짧게 대답을 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호남단가를 떠날 적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던 것이다. 가고 싶지는 않으나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권무진이라도 데려가고 싶으나, 단우현의 눈치 탓에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런 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고맙구나.”
“네?!”
느닷없이 감사 인사를 건넨 단우현은, 그나마 많은 피가 묻지 않은 왼손을 들어 올려 남궁소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란 남궁소혜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뜨며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는데,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단우현은 또다시 웃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으, 으으. 교, 교주는 도망을 친 것 같아요.”
“그래.”
단우현 역시 알고 있다.
이미 그러한 기척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자를 놓친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빌미를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리도 많은 이를 죽인 이유 역시, 천지교와의 인연을 완벽히 끊어 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주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등을 돌리는 순간, 남궁소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같이 가요!”
“……그래.”
“에?”
남궁소혜는 또다시 멍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분명, 따라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수월하게 허락을 해 버렸다.
그러한 상황이 못내 신기하여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 그러나?”
“아니……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뜨려나…… 해서……?”
“해는 원래 동쪽에서 뜬다.”
“……?!”
순간, 남궁소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단우현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생각 없이 중얼거렸는데, 그것이 틀렸을 줄은 전혀 인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름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그녀였기에 창피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남쪽에서 뜨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상황인가?”
“에…… 예. 그, 그래요.”
단우현의 말에 남궁소혜는 더는 말이 없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다른 말 따위 어차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 가도록 하지.”
“어디인지는 알고요?”
“사람이 급하면 가장 안전하다 여기는 곳에 숨는 법이다.”
“아-”
남궁소혜는 단박에 단우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무황성이 보이는 곳에 천지교의 본거지가 있다. 금지란이 지도까지 펴서 알려 주었던 곳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이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서쪽에 있는 커다란 산을 바라봤다. 산서에서 유명한 명산과는 다른 느낌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숨기 좋을 만큼 울창하고 또 험하기로 유명하다지?
아마도 지금쯤 저곳에서 대책을 짜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