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5
“시, 신녀…….”
“아무 말도 마세요.”
금지란은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연신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눈으로 본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보았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황성이 무너지고 전각들이 부서지는 것을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럽다 해야 할 판국인데, 지금 이곳에서 보았던 것들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천지교 전 교도가 일제히 무황성을 향해 달려들던 그 모습, 하지만 고작 한 사람 앞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였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죽어 가는 이들의 괴성이 들리는 듯했다.
지금도 보아라.
이곳에서 무황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기만 해도, 수많은 시신이 이리저리 뒤얽힌 채 널브러져 있는 처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저도 보았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기실 충격은 진태공이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
그녀는 그저 먼 거리에서 흐릿하게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면 진태공은 최대한 안력을 돋워 바라보았기에 생생하게 그 상황을 접했다.
단우현.
그자가 틀림없다.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것을 보아 버렸다.
사람의 힘으로 그런 것이 가능하다니.
남궁천과 사도학조차 하지 못할 일이지 않은가.
“……뭐가 있는가?”
그때 스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린 금지란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단소미 곁에 붙어 그녀의 시선을 가리고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는가?
어찌 지금 눈앞에 있는가?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진태공은 고개를 숙였고, 금지란은 입꼬리를 떨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없네요.”
“……잘 생각했다.”
“……!?”
“큭!”
이윽고 들려오는 비천웅의 말에 두 사람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우현보다 표정 변화가 없는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기분이 좋아 웃는 것이 아님을 안다.
여차하면 죽이겠다는.
혹은 죽이려 했는데 모른다니 다행이라는 듯한 느낌이다.
몸이 절로 벌벌 떨려 왔는데, 이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두 사람을 향해 쏘아 대는 살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 있을지 모르겠으나 충고하나 해 주지.”
“예……”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라. 살고 싶다면…….”
경고 가득 섞인 눈빛과 표정을 보고 있자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것을 거부하겠다 한다면 비천웅은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의 목을 잘라 낼 것이다.
“아! 뭐 하는 거예요? 저쪽으로 가 본다면서요?”
그때 단소미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북서쪽을 가리켰다. 자그마한 숲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연못이 나온다 하였기에 그것을 구경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그녀가 재촉을 하니 비천웅이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고, 두 사람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뒤를 따랐다.
애초에 장삼태의 후임으로 들어간다 하였으니 도망칠 수도 없고, 이제 와 그 약속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이 집구석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지옥이 아닌 이상 중원 천지 어디에서도 살 수 없을 테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돌이킬 수 없으니까.”
“하, 하하, 죽지만 않으면 다행입니다.”
주륵 식은땀을 흘린 진태공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장삼태는 도대체 이런 자들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앞서가는 단소미와 비천웅을 따라 연못에 도달한 그 순간. 느닷없이 정면에서 발소리가 들렸으며 이내 다급하게 뛰어가는 인영과 마주했다.
“……!?”
“……!”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결코 모른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한 얼굴. 그렇기에 얼굴에는 당혹감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어, 어찌 신녀가……?”
“당신이 왜 여기에……?”
* * *
황도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피폐해진 교주의 모습을 본 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도주를 결심했다. 천지교는 망가졌고, 되돌릴 수 없으며 그렇다면 무너지는 곳에 목숨을 걸 필요 따위 없지 않은가.
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챙겨 나왔다.
봇짐이 한가득한 이유 역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빠짐없이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보상이라도 받아야 앞으로 쉬이 살아 나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성도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왜 이런 곳에 금지란과 진태공이 있단 말인가?
힐끗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니 묘령의 여인이 또 한 명,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의인이 그 여인을 지키듯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당신! 어딜 가는 거죠?”
“뻔하지 않습니까? 무너질 곳에 미련 두지 않고 떠나려는 겁니다.”
내뱉은 한마디에 진태공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름 교주의 총애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던 황도진인데, 이제는 나 몰라라 도망치려는 그의 행동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이를 갈며 물었다.
“설마…… 배신을 한단 말이냐?”
“배신은 무슨……. 이미 망한 곳에 배신이고 나발이고 있단 말이냐? 배신이라 한다면…… 오히려 네놈들일 테지.”
황도진은 한껏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갑작스레 무황성이 무너진 것도, 꽁꽁 숨어 있던 천지교 내부에 적이 침입한 것도, 누군가 알려 주지 않는다면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것이 신녀의 실종이 있은 직후에 벌어졌으니만큼, 금지란과 진태공이야말로 진정한 배신자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쉰 황도진이 봇짐을 내려놓으며 우둑우둑 몸을 풀었다.
“그래도 교주한테는 은혜가 있으니 복수 정도는 해 주고 가도록 하지.”
“뭐…… 뭐라?”
“네놈들을 죽이겠다는 말이다.”
황도진이 기세를 풀어 헤치며 검을 손에 쥐었다. 기실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을 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두 연놈들이 눈앞에 있으니만큼, 그냥 놓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게슴츠레 눈을 뜬 황도진이 자세를 잡았다.
단칼에 저것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정말 큰일이 날 테니까요.”
“하하, 신녀는 예나 지금이나 말장난 하나는 끝내줍니다. 큰일은 이미 저쪽에서 나지 않았습니까?”
“…….”
“나에게 그런 장난은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면 더더욱……!”
황도진은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금지란이야 평범한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계집이다. 반대로, 진태공은 사천황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추작한 정도나 겨우 이길 수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그가 마음먹고 검을 휘두른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 중 어느 누구도 막아 낼 수가 없다.
그대로 몸을 날려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쏜 살과도 같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에 속도다. 백만량과 마찬가지고 교주에게 직접 하사받은 상승무공이니만큼, 그 힘은 말할 것도 없이 두려울 정도다.
이내 검을 치켜들며 그대로 금지란의 목을 날리려는 순간.
빠악-!
“컥?!”
느닷없이 나타난 흑의인의 주먹이 안면에 꽂혔다. 그리 강하게 휘둘렀다고는 볼 수 없었는데, 기이하게도 황도진의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처박혔다.
“…….”
“아…….”
“그…… 러게 그만하라고 했는데…….”
금지란이 미간을 부여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자리에 비천웅이 없었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일이 수월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오황 중 한 명, 살황이 있는 상황에서 고작해야 황도진 따위가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지 않겠는가?
“그 사람, 괜찮아요?”
그때 멀리 있던 단소미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하였는데, 힐끗 쓰러진 이를 내려다보는 표정에는 혹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깃들었다.
“……괜찮을 거다. 죽지 않았다.”
“끄으으윽…….”
비천웅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다.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충격이 매우 컸던 것인지 그의 입안에서 피와 함께 이빨이 우르르 뽑혀 나왔다. 척 봐도 한두 개가 아닌 것이, 앞으로 무언가를 씹어 먹기는 그른 것처럼 보였다.
“휴…… 다행이다. 죽었으면 어쩌려나 했어요. 그런데, 아는 사이에요?”
“천지교 사천황 중 한 명…… 황도진이라 합니다.”
묻는 말에 진태공은 그 어느 때보다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천하오황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그녀를 지키고 있는 데다가, 그녀의 아비는 그마저도 능가하는 수준을 지닌 무인이다.
함부로 했다간 뼛가루조차 남지 않을 것이 뻔했다.
“천지교라면…… 분명…… 나쁜 사람들이 있는……?”
단소미가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금지란과 진태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 역시 몸담고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레 말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으나, 가슴이 뜨끔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금지란이 슥 고개를 돌리며 애써 웃었고, 진태공은 머뭇머뭇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으려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어쨌든 다행이에요. 언니가 큰일 날 뻔한 거니까요. 이 사람은 그냥 놔두죠. 눈을 뜨면 알아서 갈 테니까요.”
“그, 그래요.”
“그럼 가던 길 계속 가요! 저쪽이라 했던가?”
단소미는 엎어진 이가 있음에도 크게 신경을 쓰는 기색이 없었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울고 불며 난리를 피우고, 구해야 한다니 어쩐다니 했을 테지만 단우현의 곁에서 성장을 하다 보니 조금은 성격이 그쪽으로 바뀐 것 같았다.
비천웅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토했다.
여전히 꾸밈없는 아이이지만 계속해서 단우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다.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단우현의 교육 방침에 왈가왈부할 자신이 없었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황도진의 봇짐을 슬쩍 발로 건드려 보았다. 순간, 봇짐이 풀어 헤쳐지며 안에서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 모습을 드러냈다.
금지란과 진태공마저 놀랄 만한 양이다.
“……단 가주에게 가져다주거라.”
“이, 이건 황도진의 것이…….”
“……그리하면 너희 앞날이 편해질 거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한마디에 금지란이 풀어진 봇짐 사이로 흘러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시 담아내더니 이내 다시금 끈을 꽉 묶어 진태공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태공은 그녀의 눈빛을 알아먹은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봇짐을 들어 올렸다. 워낙 진귀한 물건들이 많은 탓에 상당한 무게를 자랑하였으나, 그는 마치 이것을 생명줄이라 생각을 하는 것마냥,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양손으로 꽉 끌어안았다.
“어서 와요!”
“가, 갑니다. 가요!”
이내 들려오는 단소미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가기 시작했다.
“…….”
홀로 남은 비천웅은 단소미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자 힐끗 바닥을 바라봤다.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는 황도진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이자는 천지교의 핵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천황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분명할 테지.
이미 더는 손을 쓸 가치가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긴 했으나, 악연으로 묶인 인연은 언제가 되어도 악연이 되기 마련이다.
안타깝지만 싹을 도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우현 역시 나서지 않았는가?
퍼걱-!
그리고 비천웅은 망설이지 않았다. 소매 속에서 뻗어 나온 칼날이 황도진의 머리에 틀어박히는 순간, 숨을 쉬고 있었던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더니 어느 순간 멈춰 버렸다.
그것을 확인한 비천웅이 걸음을 옮겼다.
그저 무심하게.
당연히 죽어야 할 인간을 죽였다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