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7
“으하, 으하하하-!”
마차가 또다시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이 좋기는 하지만 워낙 속도가 빠른 탓에 덜컹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진태공은 사색이 된 얼굴로 의자를 강하게 붙잡고 있었으며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흔들림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마차를 몰고 있는 장삼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시원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렸다.
“저놈, 어제 늦게 들어오더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구만…… 허허.”
“싹수가 노란 놈이야, 아주. 이 어르신들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건만 지놈은 밖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
“……풀밭이 좋았던 모양이더군.”
남궁천과 사도학, 그리고 비천웅의 비꼬는 말에 마차 안에 있던 매향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꼭두새벽 시간에 객잔으로 들어갔는데, 두 사람 모두 옷깃과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으며 몸 곳곳에는 잡풀이 묻어 있었다.
누가 봐도 뭔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은 상황이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매향이 까득 이를 갈며 마부석으로 달려갔다.
이내 거칠게 장삼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컥?!”
“적당히 좀 하라고, 이 인간아?! 애들도 있잖아!”
씩씩거리며 다시금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매향을 장삼태가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순간, 매향 역시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어쩔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길…… 너도 잘 봐라. 혼인을 하면 이렇게 되는 거다.”
“……제가 보기에 충분히 맞을 짓이었습니다.”
“스읍-! 네놈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라고 받아들여, 임마. 넌 내 밑이잖아? 내가 위고!”
“에…… 예…… 알겠습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는 진태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삼태가 괴짜이기는 해도 다른 이들보다 편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지금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쯤 금지란은 차라리 마차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것이 알기에 아무리 장삼태가 지랄 같아도 곁에 붙어 있는 것이다.
“…….”
“크음-!”
마차 구석에 곤히 누워 있는 적무성은 곁을 지키고 있는 금지란을 힐끗 바라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일어나 패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단우현이 곁에 있고, 다른 이들도 말리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그저 인상을 찌푸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하지 않았다!”
“예? 아…… 네, 그러네요.”
금지란은 뭔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오황 중 한 명 적무성의 말이니만큼, 모른다 말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꼬장을 받아 주어야 했다.
“천지교 따위한테 당한 게 아니란 말이다!”
“아…… 그, 그렇군요. 여, 역시 천하오황의 일인이십니다.”
“흥!”
엄지를 치켜세우며 띄워 주어도 적무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니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 쓰지 말거라. 다 늙어 저러는 것이니, 허허허-”
그 광경에 남궁천이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천지교만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태라는 점에서, 그녀를 향한 적무성의 감정이 결코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으니 삐친 어린아이마냥 행동을 하고 있었다.
“흥! 쓸데없는 잡소리 하지 말거라, 늙은이. 그보다 단 가주! 도대체 나는 언제 고쳐 줄 셈인가?”
적무성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노쇠해진 몸이야 밥을 먹고 기력을 키우면 되는 일이기는 하나, 막혀 있는 혈도만큼은 단우현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자칫, 영원히 무공 따위 쓰지 못하는 몸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는지 단우현을 재촉했다.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커…… 커큼! 아, 아니 자네도 혈도가 막혀 봐야 그런 소리를 못할걸세. 얼마나 불편한지 아는가?”
“막힌 혈도는 스스로 뚫는다. 그것조차 못하는 건가?”
정론이나 다름없는 단우현의 말에 적무성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막힌 혈도를 뚫기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할 수만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을 거다.
하여, 적무성은 원망하는 눈빛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라. 시기가 되면 풀어 줄 테니……. 지금 풀어 줘 봐야 쓸데없는 것에 힘을 쓸 생각 아니냐.”
“윽…….”
단우현의 말에 적무성은 움찔하며 신음을 삼켰다.
혈도가 풀리는 순간, 다시금 산서로 돌아가 무황성에서 자신을 배신했던 놈들을 모조리 싸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이미 권형태가 죽었음을 알고 있기는 하나, 고작 그런 놈 하나로 풀릴 분이 아니다.
이번 일에 동조했던 놈들의 목은 물론이오, 그들의 가문까지 통으로 날려 버려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여, 더욱 단우현을 재촉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눈치를 챘던 것인가?
저도 모르게 들끓는 살심을 가라앉히며 크게 호흡을 골랐다. 저 인간을 이용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함인지 남궁소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밝은 목소리이기는 하나 힐끗 적무성의 눈치를 보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했다.
“어쨌든 이제 안휘네요. 어휴…… 지겨워라. 다시는 유람 따위 안 갈 것 같아요.”
그녀의 한마디가 부드럽게 들리자 뜻을 알아들은 남궁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오랜만에 안휘이니 실컷 즐기거라.”
“즐길 게…… 있나요?”
남궁소혜는 잠시 집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즐긴다라…….
그 가족들 사이에서 즐길 수 있을까?
아비와 오라비의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역겨운 것을 생각한 사람마냥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부터 그들이 보일 행동이 눈에 선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와 함께 단소미가 방긋 웃음을 지으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기대되지 않느냐는 듯한 눈빛과 표정 때문인지 단우현 역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재미있을 거다.”
이제, 가장 오랫동안 함께했던 여인을 떠나보낼 시간이다. 천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붙잡아 두었던 인연이자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던 여인의 모습.
그것을 가만 생각하며 눈동자를 돌렸다.
“거기 가면 언니가 좋은 곳들 많이 알려 줄게.”
“좋아요. 아이들이랑 같이 가면 더 재밌겠네요!”
단우현의 눈동자에 단소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남궁소혜의 모습이 들어왔다. 분명, 남주련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그 핏줄을 이었기 때문인지 언뜻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뭐라…… 고?”
“무황성이 무너졌습니다.”
제갈운은 혹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말을 한 사내의 입에서 같은 소리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제갈연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머리가 아픈 것인지 미간을 움켜쥐었다.
“왜…… 그렇게 됐데요?”
말만 들으면 사실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사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곳이 바로 무황성이다. 정파든 마교든 이미 오황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상황에서, 유일하게 적무성이라는 오황 중 한 명이 다스리고 있었기에 현 중원 최강 단체라는 말이 오갈 정도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적무성이 미쳐 돌았는가?
아니면 무황성 고위급들이 미쳐 날뛰는가?
어느 쪽이든 간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알고 보니 무황성 쪽에서 천지교와 손을 잡고 적무성을 끌어내렸답니다.”
“하……?”
“하하, 그게 말이 되는가?”
들어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들려오니 천하의 제갈운이라 한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파의 현재 위상은 중원 제일이라 자부해도 좋을 것인데, 고작해야 이단 종교인들 따위와 손을 잡고 적무성을 끌어내렸다?
머리가 있으면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기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말을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하…… 참, 염경백이나 마철권이 있었을 때가 오히려 잘 굴러갔던 것 같군.”
제갈운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쉬었다. 이리도 머리가 없는 놈들이 모여 있으니 사파라 불리는 것이다.
심지어 천지교라니?
그곳은 틀림없이 단우현과 척을 지었던 곳이 아니던가?
“……?”
“아……?”
제갈운이 그런 생각을 하며 딸을 쳐다보니 그녀 역시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무황성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그게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고선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무황성을 무너트린 것인가?”
“듣기론 한 사람이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 아닙니까? 천하의 무황성인데…….”
“그…… 그렇지…….”
한 사람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하나같이 말이 안 되는 소리라 말을 하지만 제갈운이나 제갈연의 입장에선, 그러한 짓을 할 수 있는 딱 한 사람이 떠올랐던 것이다.
천지교와 마찰이 있었다더니 결국 사달을 냈구나!
제갈운은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왔다.
무황성이 사라졌다는 것은 사파의 역사가 엎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이들이 칼을 들고 권력과 힘을 잡기 위해 나설 것이고, 그것은 곧 정파 쪽으로 불똥이 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제갈운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산서 쪽으로 병력을 보내고 간자를 넣어 상세한 보고를 올리도록 하게. 무황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정사대전이 언제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니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시대가 변한다.
제갈운은 그러한 흐름을 깨닫고 있었다.
천하오황이 자리에서 내려와 새로운 오황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검을 들고 자신의 실력을 뽐내게 될 거다. 그러한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수많은 이들의 피가 흐른다.
제갈운은 질끈 눈을 감았다.
“시대를…… 바꾸시려는 것인가?”
무황성이 무너지는 것으로 중원무림은 들썩이게 될 거다. 그것은 곧 적지 않은 피바람이 분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단우현은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인 것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뭘 그렇게 깊게 생각해요? 단 가주가 그런 생각 하면서 사는 사람 같아요?”
“…….”
“그냥 걸리적거리니까 치워 버린 거라고요. 당한 놈들만 재수가 없었던 거죠. 안 그래요?”
뒤이어 들려오는 딸아이의 말에 제갈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애써 단우현의 행동의 의미를 부여해 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갈운이 하아- 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