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599
새로이 쌓아 올린 남궁세가는 여러 별채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손님들만 머무를 수 있는 별채. 그곳에 머무는 적무성은, 산서를 빠져나올 때보다 확연하게 좋아진 모습으로 침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곁에는 수발을 들기 위함인지 권무진이 항시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그 모습은 단순한 수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 보였다.
적무성은 권무진의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우습지 않으냐? 이 적무성의 모습이 말이다.”
“아닙니다. 여전히 저에겐 하늘과도 같으십니다.”
“하하하! 녀석, 말은 잘하는구나.”
적무성은 딱히 듣고 기분 나쁘지는 않은 것인지 웃음을 지었다. 무황성에서 보았던 놈들의 입바른 말과 같으나, 와닿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속내가 없다.
권무진은 그저 적무성이라는 이에 대한 경외와 존경심만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무황성은 없다……. 어찌 생각하느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돌하게 말을 하는 이를 보며 적무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듯 수발을 들며 존경의 의미를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권무진의 주인은 단우현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권무진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본인 스스로가 그리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무성의 입장은 아니다.
무황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곧, 사파는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온다는 말과 같다. 정도도, 마도도 머리를 잃고 휘청이는 사파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파라는 세력 자체가, 둘 중 한 곳에 흡수될 가능성 역시 없지 않다.
특히, 제갈운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적무성이 없고 무황성이 무너져 내렸으며 그동안 사파를 이끌던 절대 고수들이 몰살을 당한 상황이니만큼,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테니까.
“네가…… 하거라.”
“……?!”
“내 뒤를 이어 네가…… 사파의 군주가 되거라.”
결코, 급조하여 생각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피나는 노력으로 위치에 오른 녀석이다. 또한 단우현이 죽이지 않고 살려 놓은 것만 보아도 권무진은 충분히 장래가 있고 사람을 이끌 만한 인재라는 말과 같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결과,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다시금 권무진을 불러 무황성의 뒤를 잇게 할 생각이었던 적무성이다.
“어…. 어르신…… 그, 그게 무슨…….”
“아니면 사파가 무너지는 걸 두 눈 뜨고 볼 생각이더냐?”
“…….”
“혼란의 시기일 때야말로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네가…… 그 영웅이 되어 사파를 일으키거라.”
권무진은 말이 없었다.
기실, 과거에는 사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적무성이 무황성으로 돌아간다 하며 호남단가를 나섰을 때 권무진 역시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무황성은 그의 고향과 같은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 삶 역시 나쁘지 않다.
고작해야 어린아이 뒤치다꺼리나 하고, 어쩌다 호위 일 좀 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살생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진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가라니?
“자네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나, 가주?”
그때 적무성이 방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순간, 휘둥그레 눈을 치켜뜬 권무진이 다급하게 등을 돌렸다. 이윽고 끼익 문이 열리고, 덤덤한 표정의 단우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려 한다면 막을 생각은 없다.”
“하하…… 자네에겐 많은 사람이 곁을 지키고 있네. 꼭 무진이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테지. 나는 그렇게 판단했네.”
반박을 할 수 없다.
아니, 반박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적무성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권무진 하나 빠진다 해서 단소미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아이에겐 언제나 백호와 백묘가 있고, 나름 장삼태 역시 못지않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남궁천이나 사도학, 그리고 비천웅 같은 이들 역시, 앞으로 십여 년은 넘게 거뜬할 것이니만큼 권무진의 빈자리가 두각 될 일도 없다.
그저…… 조금 씁쓸할 뿐이다.
“앞으로…… 조금 쓸쓸해지겠군.”
“주…… 주군?! 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걸어 보거라.”
“……!”
“걷다 지치면 돌아와도 된다.”
사람에게는 사람만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단우현이 그러하였고, 남궁천이나 사도학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권무진이 걸으려 하는 길 역시, 어쩌면 그가 가장 바랐고 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는 것을, 씁쓸하다는 이유만으로 막아서고 싶지 않은 이유가 큰 것이다.
“종종 들르거라.”
“……예.”
권무진은 고개를 떨군 채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있는 단우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리하여 뱉은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기도 했다.
적무성이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늘부터 스승이라 부르거라. 그리고 앞으로 몇 년간…… 내 직접 네놈을 지도할 것이다.”
“……?!”
놀라는 이의 표정을 바라보며 적무성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장난 가득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으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깊은 산으로 가자꾸나.”
“지,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루라도 빨리 내 모든 것을 전수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노쇠한 몸도 어느 정도 정상을 찾아가고 있는 데다, 단우현이 막힌 혈도마저 풀어 주었으니 딱히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적무성의 입장에선 하루 한시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늙은 놈이 성질 한번 급하네.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갈 참이었냐?”
“허허허- 섭섭하구만.”
그때 또다시 방문이 열리며 남궁천과 사도학이 들어왔다. 이미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견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조금도 놀라 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약 그들 역시 적무성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틀림없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적무성은 친우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징글맞을 정도로 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적무성은 다시 한번 일어날 수 있다.
“단가에 가서 죽지 말고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내 이놈 악착같이 가르쳐 놓고, 네놈들과 술이나 마시며 유유자적할 테니 말이다.”
“흥! 네놈이나 죽지 마라.”
“허허- 자네가 가장 늙어 보인다는 걸 잊지 말게.”
단우현은 세 사람을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서로를 신뢰하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눈빛. 그것은 마치 과거 삼천이라는 이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그러한 것과 같았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인연이라는 건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왜 이런 것을 그때는 몰랐는지 모르겠다.
* * *
“저…… 정말 이리 빨리 가신다는 겁니까?”
남궁용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표정을 고쳐 잡아 보지만 고작해야 이틀만 머물고 떠나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의 발길을 붙잡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비인 남궁천 역시 떠나려 이미 짐을 쌌으니 말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저 하루만 더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 너는 어떠냐? 조금 더 머물고 싶지 않으냐?”
급하게 고개를 돌린 남궁용이 소혜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소혜만 허락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하루라도 더 붙잡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하루 더 있겠다 하면 단 공자는 나중에 오라하고 먼저 떠날 거예요. 그쵸?”
“잘 아는군.”
“당연히 할아버지는 단 공자를 따라갈 테고…….”
“허허허- 이미 그것까지 읽었느냐?”
남궁소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올 것 같은 답이었다.
더욱이 그리된다면 나중에 호남단가로 돌아갈 때 그녀는 길동무조차 없이 혼자 움직여야 하니만큼, 남궁용의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저도 먼저 짐을 쌌답니다.”
밝게 웃음을 지은 남궁소혜가 봇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평소 그녀가 들고 다니던 봇짐과는 다른 느낌이다. 부피가 많이 늘었고 무게 역시 상당해 보였는데 마치, 당분간 안휘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듯 필요한 것들을 전부 챙겨 넣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 하지만 아직 챙겨 드릴 것도 많고 또……. 맛있는 음식도 많이 대접해 드리지 못하였는데…….”
“허허- 우리가 못 먹고 다닐 사람들처럼 보이느냐?”
“끄으응…….”
남궁용은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며 그 곁에는 남궁천과 사도학, 그리고 적무성이 있다. 이들이 못 챙겨 먹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어떤 말을 해도 붙잡을 수 없음을 새삼 느꼈다.
결국,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신에 먼 여정이 될 것이니 이것저것 좀 챙겨 오겠습니다.”
“허허허- 네 마음대로 하거라.”
부리나케 등을 돌려 달려가는 남구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궁천은 더는 거절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비를 챙겨 주겠다는데, 이마저도 거절 수 없지 않은가.
“좋은 자식이로군.”
“부럽는가? 허허- 그럼 자네도 하나 더 낳지 그러는가. 예쁜 색시도 곁에 있으니…….”
“할아버지!”
“허허허- 나는 너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니라.”
순간, 남궁소혜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노려보았다. 벼려 놓은 칼날과도 같은 눈빛이 어찌나 서늘하던지 웃고 있던 남궁천이 애써 시선을 돌릴 정도다.
더 나아갔다간 한 대 칠 것 같았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보도록 하지.”
“그래요. 어휴……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득하네요.”
기나긴 여정의 마무리다.
안휘에서 호남까지.
짧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지만 지금까지 오갔던 길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 여러 가지 일들도 있었고 말이야, 허허.”
남궁천은 잠시 지난날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처음 호남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예상하기는 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남궁천이나 사도학에게 있어 중원 유람은 어쩌면 인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었기에 더욱 각별함을 금치 못했다.
비록 원만하지는 않았으나 재미는 있었다.
오랜만에 무림에서 활개를 치며 마음껏 즐긴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여정이었다.
이제 그 마지막을 더욱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을 느낀 것인가?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강서로 가 포양호를 보고 가는 것도 좋겠군.”
“허허허! 그거 좋지! 동정호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라네.”
“좋- 지! 뱃놀이하며 술 한잔 마셔 보지, 뭐! 으하하!”
벌써 기대감 가득한 두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