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
“거기, 잠깐 기다려라.”
단우현의 한마디에 비적들이 우뚝 멈춰 섰다. 슥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시선에는 싸늘함이 담겼다. 허튼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인 것 같았다.
“무엇이냐.”
다른 이가 물은 게 아니다.
장백산이 대꾸했다.
그가 가만히 단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는 그는 단우현의 작은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를 데려가 어찌할 생각이냐?”
“죽인다. 이자가 내 가족을 죽였던 것과 같이.”
“보아하니 그대는 비적인 것 같은데?”
“그런데?”
장백산이 다소 삐딱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비적인 것과 복수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한데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비적이라면 저 현령보다 사람을 죽이면 더 죽였지, 적게 죽이진 않았을 듯한데, 그리 보면 현령은 그대에게 죽은 사람들의 복수를 해 준 것 아닌가?”
“뭐…… 뭐라?!”
“이 자식이 미쳤나!”
“저런 염병할 놈이!”
비적들이 이를 갈며 칼을 뽑았다.
단우현의 한마디는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당장 달려들어 사지를 찢어 버릴 것 같은 살기가 솟구쳤다.
하나 단우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는 지그시 장백산을 주시하다 이내 시선을 돌려 현령을 바라봤다.
“그대는 스스로에게 죄가 있다 생각하나?”
“그, 그…… 그렇지 않다.”
홍원창은 마른침을 삼켰다.
호남 일대에 악명이 자자한 비적 무리와 그 우두머리를 상대로 한 치도 기죽지 않은 표정과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였다.
퍼걱-!
“커억!”
홍원창이 내뱉은 말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장백산의 주먹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쓰러진 그의 복부에 깊게 발을 쑤셔 박고, 얼굴을 걷어차며 씩씩거렸다.
아직도 머릿속엔 죽은 가족들의 얼굴이 가득했다. 그 울화가 가시지 않았건만, 스스로 죄가 없다 말을 하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었다.
홍원창은 안쓰럽게 땅을 뒹굴었다.
현령이라는 높은 위치에 있는 자임이 분명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홍원창의 처지는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포졸들은 모두 죽었으며 더 이상 그를 구해 줄 사람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더욱 홍원창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봐, 주접떨지 말고 그만 갈 길이나 가지그래?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흠…….”
단우현이 홍원창을 바라보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작은 신음을 흘렸다.
버려 두고 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저자가 죽는다고 장원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현령이 내려올 테고, 어쩌면 전임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면 장원의 일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달리 생각하면, 장원의 일을 좋게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단우현이 씩 웃었다.
홍원창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몹시 고약해졌다.
“현령, 살고 싶나?”
홍원창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단우현의 한마디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것과 같았다. 물론 그가 어찌할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지만 말이다.
“살려 주는 대신에 조건이 있다. 두 번 다시 내 장원을 문제 삼지 마라.”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새끼야!”
결국 화를 참지 못한 한 사내가 달려들었다.
단우현의 여유로운 행동이 그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한껏 인상을 쓰며 그대로 칼을 뻗었다. 단박에 심장을 찔러 단우현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한데, 멀뚱멀뚱 서 있는 단우현의 몸에 칼날이 닿기도 전에 바람이 몰려들며 칼날을 밀어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사내가 눈을 치켜떴다.
퍼걱-!
“꺼어억-!”
이내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새우처럼 꺾였다. 극심한 통증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털썩 고꾸라졌다.
“헉……!”
“자…… 장우 녀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쓰러진 이를 바라보는 비적들의 시선에는 경악이 서렸다. 장우라는 자는 비적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였다.
그런 이를 단 한 수에 쓰러뜨렸으니 놀랄 법도 했다.
“제법 한 수가 있구나.”
장백산이 이를 갈았다.
어찌 저런 놈이 포졸들에게 잡혔단 말인가?
상당한 고수가 분명했다.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 쾌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장백산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손에 쥐고 있는 칼의 감촉을 느끼며 몸을 긴장시켰다.
‘어쩌면 나보다 강할지도.’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장백산은 여태껏 자신보다 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까.
그 운과 수하들을 믿었다.
단우현이 바닥에 떨어진 검을 손에 쥐었다. 그러곤 기겁하며 놀라고 있는 홍원창에게 다시금 물었다.
“어떠냐? 좋은 거래인 것 같은데?”
“살려만 준다면…… 뭐, 뭐든……!”
그 한마디에 단우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적들을 바라봤다.
일일이 세어 볼 필요도 없었다. 적게 잡아도 오십여 명, 많으면 그보다 조금 더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숫자는 무극신마 앞에선 어린애 장난이었다.
“그렇게 되었다. 얌전히 물러간다면 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미친 새끼!”
비적들은 자신이 있었다.
수적 우세도 압도적인 데다 자신들의 옆에는 장백산이 있었다. 어떤 고수가 앞에 있다 해도 기죽지 않고, 지금까지 험난한 길을 헤쳐 온 진정한 고수가.
그들은 승리를 굳게 믿었다.
“죽여 버려!”
장백산의 외침과 함께 비적들이 달려들었다. 오십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함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단우현의 표정은 일절 변하지 않은 채, 묵묵히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죽일까, 말까?’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검을 내지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또다시 피의 길을 걷는다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화소미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으며 검을 내던졌다.
검이 허공으로 훨훨 날아간다.
비적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내던진 그 검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달려들던 비적들이 비웃음을 지었다.
단우현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때 단우현의 발이 움직였다.
돌멩이 하나를 탁 걷어차자, 그것은 쏜살보다 빠르게 날아가 떨어지는 검에 부딪쳤다.
쩡-!
울려 퍼지는 커다란 쇳소리에 비적들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은 곧 멈추고 말았다.
퍽퍽퍽퍽퍽-!
“끄아아악!”
“아아악!”
“크악!”
괴성과 신음이 난무했다.
달려오던 이들은 일제히 엎어지고 말았다. 산산조각 난 칼날은 작은 암기가 되어 사방으로 쏟아졌고, 그 파편들이 비적들의 몸을 파고든 것이다.
순식간에 이십여 명의 비적들이 엎어졌다.
괴성을 내지르고 비명을 토해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생각보다 적군. 파편이 부족했나?”
마치 저승사자의 한마디처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
덜덜덜.
홍원창은 온몸을 떨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현실인가? 아니면 꿈인가?
도무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무림인이 자신들과는 완전히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도가 지나쳤다.
그야말로 공포였다.
작은 쇳조각들이 이십여 명이 넘는 이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했고, 뒤이어 움직인 단우현의 주먹은 한 번에 두세 명의 비적들을 박살냈다.
퍽퍽퍽-!
반항도, 신음도, 괴성조차 들리지 않았다.
주먹에 얻어맞은 이들은 소리를 내뱉을 겨를조차 없었으니까.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끅……!”
단우현이 비적들을 잡아내는 데 걸린 시각은 일각조차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저런 괴물에게…… 무, 물곤장을 치려 했다고?’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만용을 부렸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함에 온몸이 저려 왔다. 만약 저놈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으리라.
“이…… 이건 말도 안 돼! 왜 너 같은 놈이 포졸 따위에게 잡혀 있고 지랄이야!”
멍하니 서 있던 장백산이 거칠게 소리치며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이기지 못한다. 복수는커녕 한 발이라도 다가가는 순간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만났던 고수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몸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는 있는 힘껏, 태어나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두 다리를 움직었다.
삽시간에 멀어지는 장백산의 뒷모습에 홍원창은 다급해졌다.
쓰러진 비적 따위보다 급한 것은 장백산이었다. 놈은 비적의 우두머리였고, 그 머리에 걸린 현상금만큼이나 흉악한 놈이므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
게다가 언제 이번처럼 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놓쳐선 안 됐다.
“저, 저놈을 잡아야 하오! 부…… 부탁이오! 놈을 잡아 주시오!”
“흠…….”
단우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놈을 애써 쫓아가 죽이는 건 성미의 맞지 않았지만 현령이 원하고 있다.
장원의 일을 말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 인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 발을 내디딘 순간 그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새 장백산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헉?!”
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란 장백산이 기겁하는 찰나.
단우현의 손이 그대로 장백산의 머리를 부여잡고 땅에 처박았다.
쾅-!
뿌연 먼지가 치솟았다.
땅이 움푹 파이고 그 속에 머리가 처박힌 장백산의 몸이 움찔거렸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나, 틀림없이 살아 있었다.
단우현은 그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었다.
그러고는 그를 현령 앞에 가져다 놓으며 씩 웃었다.
“이것으로 우리 거래는 성립된 것이다, 현령.”
“무…… 물론이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만약 또다시 장원을 가지고 시비를 걸 경우…….”
“그럴 리는 없소! 정말로 그러지 않을 것이오.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홍원창은 기겁했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허튼소리를 지껄이겠는가.
이제 장원을 가지고 뭐라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눈앞의 이 괴물의 능력이 하늘과도 같다는 걸 깨달았으니, 살고 싶으면 반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렇게 한 번 머리에 박힌 공포를 지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단우현이 웃자, 홍원창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잦아들지 않았다.
‘장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리!’
홍원창은 그런 다짐을 하며 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