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1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권무진은 물론이고, 검황을 상대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는 것을 직접 두 귀와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남궁소혜 또한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단우현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검황을 상대로도 이리 대담하게 나갈 줄은 꿈에도 여기지 못했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러다 싸우겠네.’
그런 것을 바라고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싸운다 한들 승자는 이미 나온 상황이니.
검황이라는 이름을 허투로 얻은 것이 아님을 온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의 검에 단우현은 한 초식조차 견디지 못하리라.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남궁소혜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할아버지! 우린 손님예요.”
“허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니라.”
“그리고 단 공자도, 어른은 조금 공경하는 게 맞다구요!”
“어른이라…….”
단우현은 턱을 스다듬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남궁천은 확실히 나이가 많아 보인다. 새하얀 백발과 휘날리는 긴 수염, 화사한 장포를 입고 있으니 과연 무림명숙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권무진조차 이 남궁천의 기세 탓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른이라?
과연 어른일까?
단우현이 봉인되기 직전 나이는 무렵 오십을 넘겼다. 워낙 동안인 탓에 서른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따지고 본다면 남궁천보다 몇 십 배 이상 많은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입씨름을 해 봐야 귀찮기만 하지.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것이냐?”
“그게…….”
“오랜만에 손녀딸과 동정호 구경이나 좀 하려 한다네. 일도 좋지않게 끝나서 말이야 마음이 영 좋지 않으니 말일세.”
남궁소혜는 미간을 짚었다.
창피하게 그걸 굳이 입밖으로 내야 할까? 그렇지않아도 조금 있으면 무림맹이 무신비동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호남에서 벌어진 두 사건 탓에 무림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아니한데, 이런 창피한 일까지 오르내리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방값은 비싸다.”
“은자 세 냥씩 쳐주도록 하겠네.”
너털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여는 남궁천을 보며 순간 단우현이 반짝 눈을 빛냈다. 은자 세 냥이라면 상당히 비싸게 방값을 치르는 것이니까.
“그럼…… 밥 정도는 공짜로 제공해 주지.”
단우현은 이들을 이끌고 머물 거처로 안내했다.
남궁소혜야 평소 쓰던 곳을 쓰면 된다지만, 남궁천은 처음 온 데다 상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니 좋은 방을 내줘야 할 것 같았다.
“이곳을 쓰도록.”
“허허, 이곳을 정말 이 노부가 써도 되겠는가? 장주의 거처나 다름없는 것 같은데.”
“빈방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말을 내뱉고 단우현은 거침없이 등을 돌렸다. 남궁소혜와는 그나마 인연을 쌓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조금도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남궁소혜가 그것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허허, 재미있는 친구구나.”
“친구 아니에요.”
한껏 뿔이 난 남궁소혜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속을 달래러 왔다가 더 울화가 치미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뭘까.
이래서 악양으로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남궁천을 바라봤다.
“할아버지.”
“그래, 무슨 일이냐?”
“왜…… 가만히 계세요?”
“응?”
“경어도 쓰지 않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데…… 평소 할아버지 같았으면 벌써 한마디 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남궁소혜는 근래에 있었던 일을 하나 떠올렸다.
팔대세가, 그중에서도 남궁이 으뜸이라 한다면 만년 이등이라 불리는 세가가 있었다.
바로 요녕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용세가.
그곳의 장남이 남궁소혜와 두 살 차이가 나는데, 태어났을 당시 뛰어난 재능으로 차후 정파의 기대주가 될 것이라 명성이 자자했다.
모용세가를 제일세가로 키워 낼 수 있는 인재라는 말도 떠돌았다.
어찌 되었든 그런 모용세가의 장남을 근래 본 적이 있었는데, 남궁천은 철없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 사람에게 크게 훈계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양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단우현의 행동도 제법 무례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한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더구나.”
남궁천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단우현을 떠올렸다. 처음 대문이 열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그를 보며 아찔함을 느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겪어 본 적이 없었던 남궁천에게 있어서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저자가 흑도회를…….”
“예, 말은 안 하지만 확실해요.”
턱을 괴고 있는 남궁소혜의 입에서 한숨이 새었다. 몇 번이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저런 자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확 때려 주었을 텐데.
꾸우욱-!
주먹을 움켜쥔 그녀가 분을 삼켰다.
“그건 그렇고 정말 괜찮겠어요? 맹 쪽은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저희 둘이서만…….”
“허허! 괜찮다, 괜찮아. 어차피 곧 은퇴할 늙은이인데 농땡이 좀 피어도 다들 이해해 줄 테니 말이다.”
“제갈 총사님은 안 그러겠죠.”
그녀가 한숨을 내쉬자 남궁천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다른 이들은 또 모르겠지만 제갈 총사만큼은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를 떠올리는 순간 벌써부터 난감했다.
* * *
“저자는 검황이 아닙니까?”
“검황?”
“현 무림맹주이기도 합니다.”
“그렇군.”
단우현은 생각했다.
남궁소혜의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검황이라는 자가 바로 저자였구나 하고 말이다. 과연 지금까지 만나 왔던 그런 무인들과는 격이 다른 자였다.
처음 본 순간 느껴지는 기도 또한 남달랐다.
‘그렇지만 그게 다군.’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백은 틀림없이 대단하였으나, 그 기세 속에 숨겨져 있는 날카로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했다.
‘그 아이가 이것을 알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를 할 테지.’
단우현은 잠시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렸다. 하나, 이내 다가오는 따스한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단소미가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 왔죠?”
“하하, 그래. 왔더구나.”
“와-! 보러 갈래요.”
“잠시 놔두거라. 혼자 온 것이 아니니.”
“네? 누구랑 같이 왔어요?”
“그래.”
단소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방을 바라봤다.
그 예쁜 남궁소혜가 누구랑 함께 왔다는 것이 무척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하나 아무리 쳐다봐도 방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그머니 발을 떼며 남궁소혜의 방을 향했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권무진과 단우현이 웃었다. 하나, 이내 표정을 고친 권무진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군자도 일 때문에 온 것일까요?”
“글쎄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조용하군.”
고작해야 둘이서 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단우현은 삼천의 유해를 아무도 모르게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자신이 있었다.
설령 남궁천이 옆에 있었다 해도 말이다.
“걱정됩니다. 하필이면 저자가 이곳에 있다는 게 말입니다.”
권무진은 사파의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궁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검황이라는 불리는 그는 전장에선 그야말로 불패였으며, 그의 적에게는 사신이나 다름이 없던 존재였으니까.
오황이란 그런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늙고, 성격이 죽었다 한들 그 본성이 사라지는 법은 아니니까.
“두렵더냐?”
“얼굴을 보는 순간 아득했습니다.”
권무진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황이라 불리는 이들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사파의 황제 적무성 또한 오황의 일인이라 불리는 자였으니까.
하나, 먼 거리에서 보았던 적무성과 코앞에서 본 검황은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그 기백이 느껴지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빠지는 통에, 억지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으려 애를 썼다. 단우현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때,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언제나 보여 주는 웃음이었다.
순간 권무진은 몸에 힘이 서서히 돌아옴을 느꼈다.
“사람은 높은 것을 바라봐야 비로소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한 단계 더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지금 부족하다 해서 분해 하지 마라.
넘볼 수조차 없는 산을 바라보며 아득함에 치를 떨지 마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 권무진은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물론 단우현이 내뱉은 말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런데 삼태 이놈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단우현은 인상을 썼다.
손님이 왔는데 차를 내오거나 혹은 음식을 준비해야 할 녀석이 사라졌다.
‘일이 있으면 있다, 어딜 간다면 간다, 그런 말을 하고 사라져야지.’
단우현은 쯧쯧 혀를 찼다.
“이놈이 나태해졌군.”
앞으로 장삼태를 조금 심하게 굴려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 * *
그 시각, 장원 뒤편으로 나간 장삼태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이내 인상을 쓰더니 다시금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이런 시벌, 도대체 이 공은 어디에 있는 거야?”
고작해야 어린아이가 던진 공이었다.
그리 멀리 날아갔을 리가 없었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없으니 독수리가 채갔는지 아니면 바람에 날아간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벌써 이각이 넘도록 있지도 않은 공을 찾아 헤메는 중이었다.
해는 중천으로 넘어갔고 배도 고팠다.
당장 장원으로 돌아가 밥을 차려야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공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린 것이 울먹이는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장삼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공을 확실히 찾아 주겠다는 신념이 넘쳐 흘렀다.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를 쳤다.
“내 반드시 네 공을 찾아 주마, 소미야!”
다시 한 번 주위 깊게 주변을 살피며 한참을 나아갔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바람이 불었기에 자그마한 공 하나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반 시진이 흐른 뒤 장삼태가 소리쳤다.
“시벌! 진짜 있긴 있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