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5
남궁소혜와 제갈운을 필두로 무림맹의 고수들이 우르르 이동하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말을 타고 달리는 그들의 표정은 무척 다급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안향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내달리자 먼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 이건……!”
어느 한 곳에 멈춰 선 제갈운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안향으로 들어서는 자그마한 협곡, 그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들 또한 많았다.
천천히 다가가 복면을 벗겨 보니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얼굴에 난 상처를 보아 죽은 뒤 상처를 낸 것 같았다.
누군가가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맹주님을 찾아라! 당장!”
제갈운은 질끈질끈 입술을 씹었다.
맹주인 남궁천이 습격당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
천하의 검황이 어떻게 되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몹시 요동치며 그의 심장을 옥죄였다.
‘도대체 누가?’
주변에 나 있는 검흔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 검황의 것이고 이들의 흔적은 도통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지워졌으니까.
‘화약 냄새…….’
또한, 협곡 인근에는 화약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 무너지고 움푹 파인 지반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 벽력탄을 사용한 게 분명해 보였다.
“총사님! 이건…….”
“안다. 그러니 아무런 말도 하지 마라.”
남궁소혜 또한 벽력탄의 흔적을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천하의 검황이 벽력탄에 당했을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도대체 벽력탄을 어찌 구했을까?
황실이 아니면 화약을 손에 넣는 것조차 힘든 세상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역죄로 낙인찍히고, 목이 달아날 물건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두 사람은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어떻게 해서든 남궁천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그때, 제갈운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자그마한 바위 사이로 새하얀 가루가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던 탓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확인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천천히 다가가 냄새를 맡은 순간, 제갈운은 화들짝 고개를 뒤로 젖히며 코를 막았다.
“산공독?!”
“서…… 설마!”
산공독이라는 말에 남궁소혜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무림인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으니까.
무림인들에게는 특히 치명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독.
구하는 것이 벽력탄을 손에 넣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귀한 독이었다.
한데, 정말 이것이 산공독이라면?
“할아버님!”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남궁소혜가 미친 듯이 내달리며 남궁천을 찾았다.
* * *
단소미는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한 시진이 넘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겹지도 않은지 눈동자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꼼지락꼼지락.
손가락을 매만지며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참다못한 단소미가 벌떡 일어서는 순간.
“앉아 있어라!”
“앉아!”
두 사내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특히 장삼태의 날 선 목소리는 단소미에게 제법 큰 충격이었다.
엉덩이를 얌전히 땅에 붙이며 힝- 하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왜요! 소미도 할 수 있는걸요!”
“할 수 있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부숴 먹진 말아야 할 것 아니야?”
“소미는…… 부순 적 없어요…….”
“저걸 봐라!”
단소미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장삼태가 가리킨 곳에는 망가져 쓰지 못하는 나무판자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단소미가 망치질해 보겠다면서 구멍을 낸 것부터 시작하여, 목재를 들어 주겠다고 까불다가 엎어지며 아작 낸 것까지.
그렇지 않아도 나무를 패는 것도 힘이 든 상황에서, 단소미의 행동은 민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곧 배가 완성이 될 예정이었다. 고작 자그마한 쪽배 하나 만드는 데 이틀이란 시간이 걸린 이유도 다 저기 있는 단소미 덕분이었다.
“잘 하고 있나 보군. 거의 제 모습을 찾았어.”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단소미에게 소리친 것을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단우현은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둘러봤다. 쓰러진 나무들을 하나하나 확인을 하더니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만에 이 정도면 훌룡하군.”
“가, 감사합니다, 주군!”
권무진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잠조차 자지 않은 채 나무 패는 방법을 익혔다.
비록 단우현처럼 단번에 아름드리나무를 팰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리 큰 나무라 하여도 스무 번 정도면 쓰러트릴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에 비해 장삼태는 아직 멀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우현은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거나 소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두 사람이 무엇을 하든 신경조차 쓰지않은 채 이야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단우현의 등장으로 잠시 일을 멈추었던 권무진과 장삼태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금 일을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낸다면 이제 곧 완성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배와도 안녕이다.
그렇게 두 시진.
드디어 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완성되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일하고 있던 권무진이 털썩 주저앉아 웃음을 지었다.
이것을 만들려고 무공을 수련할 때보다 더 집중한 것 같았다.
“잘 만들었구나. 생각보다 튼튼해 보이는군.”
단우현 또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들이 가진 손재주라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배가 완성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대단히 멋지지는 않아도 상당한 수준의 배가 만들어졌다.
“탈 수 있는 거예요, 이제?”
“하하, 그래 보이는구나. 하지만 소미는 조금 더 있다 타야 할 것 같다. 아직 이게 안전한지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네! 소미는 꾹 참고 기다릴 수 있어요.”
두근두근!
단소미는 재미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배를 주시하며 말했다.
당장 타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단우현이 안 된다고 말했으면 안 되는 법이다.
* * *
단우현이 배를 동정호 위에 띄웠다.
“호오- 제법이군.”
단숨에 가라앉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대로 떠 있었다.
균형이 안 맞았든가 망치질이 잘못되었다면 물이 새어 들어올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두 사람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배를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지쳐 쓰러져 있는 장삼태와 권무진을 바라보던 단우현이 이내 배에 올랐다.
“잘린 면이 다소 거칠고, 노를 쥐는 느낌도 그리 좋지 않지만…… 이 정도면 처음 만드는 것치곤 잘했다. 너희들, 훌륭한 목수가 될 소질이 있는 것 같군.”
“…….”
“흥! 목수 같은 거 될 생각 없습니다!”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를 돌리는 권무진과는 다르게 장삼태는 작게 중얼거렸다.
목수는 무슨, 그딴 게 되려고 여기에 남아 이런 시답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잠시 나갔다 오마.”
“빨리 다녀오세요! 소미도 타고 싶어요.”
“하하, 알겠다 알겠어.”
단우현은 가볍게 노를 저었다.
한 번의 노질로 배는 호면 위를 미끄러지며 움직여 나아갔다.
상당히 먼 거리를 단박에 나아가는 그 모습은, 지켜보고 있는 세 사람이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로 빨랐다.
“노 젓는 것도 사람이 아니네, 사람이. 에이!”
장삼태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등을 돌렸다. 배를 만드느라 제대로 쉬지를 못했으니 단우현이 없는 동안 조금이라도 몸을 눕혀야 할 것 같았다.
노를 저으며 나아간다.
호면 위를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이 자그마한 쪽배는 못 갈 곳이 없어 보였다.
우두커니 선 채 노를 젓고 있는 단우현은 바람을 느끼며 기분이 좋은 듯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얼음을 깨고 나와 단소미를 만난 뒤, 느긋한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와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듯한 동정호의 수평선.
이제는 집중해야만 볼 수 있을 만큼 멀어진 장원.
여기저기 떠 있는 배들 사이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정신과 마음을 일깨우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면 어디가 무릉도원이라 할 수 있는가.
단우현은 배에 주저앉아 품을 뒤졌다.
그러곤 미리 준비해 둔 술 한 병을 꺼냈다.
배 한편에 등을 기대고 독하디독한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좋군.”
이것이야말로 사람 사는 인생이 아닐까.
과거에는 너무 피만 보았다.
무인으로서 검을 드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 길에 오로지 피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었을 때이니…….’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던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한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는 생각을 접으며 또다시 가볍게 한 잔 목을 축이고 고개를 돌렸다.
“…….”
동정호의 물길을 따라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미약한 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그것은 멀리서 보아도 사람이었다.
다행히 얼굴을 위로 향하고 있었지만 미동조차 없었으며, 한쪽 팔이 잘려 나간 상태로 보아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단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망치는 게 도대체 누구인지.
물결에 밀려 다가온 그 시체는 어느덧 단우현의 배에 부딪혔다.
“그것참…….”
그리고 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다소 피폐해진 몰골, 몸 곳곳에는 검상과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는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남궁천…….”
검황 남궁천이 다시 단우현과 만났다.
단우현은 손을 뻗어 코에 가져다 댔다.
미약하기는 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죽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 닿았다는 뜻 아닐까?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이런 꼴로 만나는구나.”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천천히 손을 뻗어 공력을 움직이니 남궁천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라 배에 안착했다.
허공섭물을 이용해 자그마한 물건들을 옮기는 것은, 일정 수준에 오른 고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예였지만, 사람을 들어 올리는 것은 설령 검황이라 하여도 불가능한 경지였다.
“독에 당했군…… 산공독인가?”
맥을 짚어 본 단우현은 단박에 그의 몸속에 들어 있는 독을 알아차렸다.
맥을 짚는 순간 흘러 들어간 단우현의 공력을 빠르게 흐트러트리는 성질을 지닌 독은 산공독밖에 없으니까.
상당히 독한 놈이었다.
“흐음…….”
잠시 신음을 흘린 단우현이 노를 저었다.
일단 장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사이에 남궁천이 죽지 않는다면 그 또한 천운이며, 그의 명줄이 아직 끊길 때가 아니라는 뜻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