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7
남궁천이 이 장원에 들어온 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보름 정도의 시간 동안 요양을 끝낸 그는 본격적으로 장원의 일을 돕기 시작하였는데, 사실 별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궁천의 입장에선 그저 잡일이나 거드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쪽 팔마저 없으니 대부분이 장삼태나 권무진이 해결했다.
결국, 남궁천은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한쪽 팔이 없어도 이 장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기로 말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 몇 개 정도는 있다.
특히 이 정도는 말이다.
퍼드득-!
힘차게 낚싯대를 들어 올리자 커다란 메기 한 마리가 걸려 올라왔다. 어찌나 큰지 어른 손바닥만 하였기에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단소미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우와, 엄청 커요! 지금까지 잡은 것들 중에서 최고인 것 같아요!”
“그러냐? 허허, 하지만 어제 네가 잡은 붕어만은 못하지 않으냐.”
“에이, 그거보다 더 큰 것 같은데요?”
단소미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메기입에 걸린 바늘을 빼고 물속에 반만 담가 두었던 바구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렇게 하면 집으로 가져갈 때까지 싱싱하게 오래 산다.
“이번에는 장어를 잡아요! 아빠랑 할아버지 몸보신하게!”
“허허, 그 녀석들은 잘 잡히지 않는데 끄응…….”
“괜찮아요. 소미가 콱! 하고 잡아 드릴게요!’
남궁천은 가만히 단소미를 바라봤다.
어린 것이 겁도 없이 살아 있는 미끼를 손에 잡고 거침없이 바늘에 낀다.
‘저 나이 때는 벌레만 봐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남궁소혜 또한 단소미와 같은 나이부터 검을 잡았으나 벌레나 쥐새끼들을 무척 무서워했다. 특히 바퀴벌레가 나올 때면 방방 뛰고 아주 난리가 났었다.
그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르자, 제법 그리워졌다.
“그러고 보니, 소미야.”
“네?”
“넌 힘들지 않으냐?”
“뭐가요?”
“뭐긴 인석아. 이곳에 있는 것 말이야. 저잣거리나 학당도 그렇지만 주위에 친구들도 없고, 사내놈들만 득실거리지 않으냐. 허허허.”
“아!”
단소미는 남궁천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열흘 동안 소미를 보았을 때, 항상 학당이 끝나면 단우현이 데리러 갔으며, 친구들과 제대로 놀 시간조차 없이 장원으로 돌아와 하는 것이라곤 아저씨들이나 졸졸 따라다니는 것 정도였다.
하나 단우현을 제외한 권무진이나 장삼태는 저마다 일이 있고, 그렇기에 계속해서 단소미를 봐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제법 많았다.
이런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은 아이에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았다.
한데 단소미는 붕붕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팔이 없는 게 불편하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보통 어린아이라 하여도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권무진이나 장삼태조차 눈치를 봤다.
남궁천은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래, 불편하다.’
왼팔이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충격이었다. 평생 함께해 왔고 그를 검황의 위치까지 올려 준 팔이었으니까.
지금도 팔이 하나 없기에 이렇게 낚시밖에 할 수 없었고, 더 이상 남궁소혜에게 어떤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것에 속이 쓰렸다.
그렇기에 그의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조금 그렇구나.”
“저는 아니에요. 친구가 없어도 여긴 아저씨가 있고, 우리 아빠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도 있어요. 오늘 자고 학당에 가면 친구들을 볼 수 있고, 학당에서 돌아오면 또 우리 가족들이 있어요. 그래서 소미는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싱그러운 아이의 미소가 와 닿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 말이지만, 남궁천은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단소미의 목소리가 들린 것 또한 바로 그때였다.
“할아버지도 그렇지 않나요? 왼팔은 없지만 오른팔이 있잖아요. 전 할아버지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궁천은 이야기를 들으며 남아 있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주로 쓰던 팔이 아닌지라 아직도 움직임에 어색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팔이 있기에 지금도 이렇게 낚시를 할 수 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구나…… 이 노부에게도 아직 오른손이 있단다.”
“헤헤헤, 그래요. 그러니까 낚시도 하죠. 전혀 불편하지 않죠?”
“허허! 인석아, 불편하기는 하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네 말대로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구나.”
파르르-!
낚싯줄이 격떨리는 것을 본 남궁천이 재빠르게 오른손을 뻗어 그것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장어 한 마리가 차마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끌려 올라왔다.
그것이 털썩 땅으로 떨어지자 단소미가 손뼉을 쳤다.
“와-!”
“허허허.”
꿈틀거리는 장어 한 마리를 바라보며 남궁천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머릿속을 헝클어트렸던 모든 잡념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 같은 감각이다.
어느덧 시선은 잡힌 장어가 아닌 단소미를 향해 있다. 고작해야 일곱 살, 한참이나 어린아이에게 가르침을 받다니?
검황의 체면이 구겨져도 완벽하게 구겨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아직 오른팔이 남아 있구나.’
왼팔이 잘렸다 한들 오른팔이 있다.
공력이 사라졌다 하지만 또다시 노력하면 그것을 되돌리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되짚고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남궁천이 이윽고 번뜩 눈을 빛냈다.
“이 남궁천…… 아직 죽지 않았다.”
그는 검황이다.
정파 최고의 고수라 칭송받던 존재였으며, 모든 이들이 경외하며 떠받들었던 무인이었다.
고작해야 산공독, 그리고 팔 하나가 사라졌다 한들, 위대한 무인의 발자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올라갈 수 있다.
남궁천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소미가 빤히 바라보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이 할아비는 잠시 일이 생겼는데 혼자 있을 수 있겠느냐?”
“네, 소미 낚시 좋아해요. 헤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빠도 온다고 했으니 괜찮아요.”
“허허허, 그래라.”
작게 웃음을 머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이지 기특한 아이였다.
혼자 있는 게 제법 쓸쓸할 텐데도 티조차 내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정이 가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 아이를 대하는 것을 남궁소혜가 본다면 질투심을 발할지도 몰랐다.
그 아이에겐 훈계하되, 칭찬은 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천천히 걸으며 장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쪽에는 장삼태가 보였으며, 다른 한쪽에는 권무진의 얼굴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하며 걸었다.
그가 향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장원 뒤편에 있는 연무장.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목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 아주 어렸을 적 이외에는 쥐지 않았던 탓에 오랜만에 느껴지는 나무의 감각이 참으로 낯설었다.
부웅-!
한 번 휘둘러 보니, 세차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내력이 없다 하더라도 그 초식은 변함이 없는 것인지 제법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익숙하지 못했다.
왼손으로 했던 모든 것들을 오른손으로 하려니, 그 검로는 물론이고 초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휘두른다.
부웅부웅-!
한 번씩 검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격변했다. 머릿속에 있는 검로를 하나하나 되풀이하며 차근차근 처음부터 모든 것들을 다시금 풀이했다.
그것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남궁천이 힘이 든 듯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공력이 사라졌으니 남아 있는 그의 기본 체력을 소진하여 펼치는 무공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힘들 수밖에.
그러나 남궁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삼일.
하루 두 시진을 검을 잡는 데 시간을 보냈으니, 어느새 검로는 처음보다 더욱 날카로워졌고, 초식 또한 많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되짚다 보니, 그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던 깨달음을 얻기도 하여 그의 검로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부쩍 향상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남궁천은 더욱 집중했다.
모든 것을 되찾을, 그날을 위해 더욱 검을 갈고닦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
연무장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단우현이 찾아왔다. 그는 한참이나 검을 휘두르고 있는 남궁천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검을 멈추자 말을 걸었다.
“이제야 기운을 차렸나 보군.”
“허허, 부끄럽게도 어린아이에게 깨달음을 얻었네.”
“깨달음이란 것이 남녀노소를 가리던가? 자기자신이 모르고 있고 다른 이가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법이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남궁천은 생각했다.
‘그래, 결코 창피한 일이 아니로구나.’
검황이라는 허울 섞인 이름에 취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남궁천은 근래에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기는 했어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더욱 창피했던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조차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난 아직 죽지 않은 것 같네.”
“내 보기에도 그렇더군.”
“잠시 어울려 줄 수 있겠는가?”
단우현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남궁천을 바라봤다. 익숙하지도 않은 오른팔을 가지고 한 수 어울려 보겠다는 것인가?
제법 흥미로웠다.
“그 팔로 말인가?”
“제대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앞서 말했듯이 이 남궁천은 죽지 않았다네.”
열흘 동안 검을 휘둘러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가장 빠르고 익숙하게 오른손에 적응시키는 방법은, 그에 걸맞은 싸움을 하는 것이다.
공력이 없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초식이나 전투의 방법 같은 것들이 권무진과 장삼태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들과는 승부가 되지 못하니 그나마 강해 보이는 단우현에게 청한 것이다.
초식을 펼치는 방법, 검로 등 모든 것이 왼손으로 펼칠 때와는 달라야 했으며,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상대는 바로 그뿐이었다.
“가볍게 하면 될 것 같네. 이미 상당히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네만, 아직 모자란 것들이 있어 그것을 시험해 보고자 하니.”
단우현은 흠- 하며 짧은 신음을 삼켰다.
남궁세가의 검술은 이미 남궁소혜를 통해 보았다.
그러나 검황이 펼치는 초식은 또 어떤 맛이 있을까?
심지어 남궁천은 눈을 뜬 후 만난 이들 중에서 가장 고수였다.
이만큼 강한 이를 본 적이 없으며, 그 기도 또한 대단하여 가슴을 뛰게 했다.
단순한 초식 승부이기는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좋다. 원한다면 말이지.”
“고맙네.”
그 소리에 일을 하고 있었던 장삼태는 물론이고 권무진까지 조심스레 다가와 연무장을 주시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승부는 돈을 주고도 보지 못할 구경이었으니까.
“누가 이길 것 같나?”
“당연히 장주님이지. 아무리 검황이라 해도 한쪽 팔로는…….”
천천히 움직이며 목검을 손에 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권무진은 장삼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산공독에 당하여 공력이 흐트러졌고, 예전과 같은 몸상태가 아닌 만큼 이 승부는 틀림없이 단우현이 이길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검황이라는 것이 변수였다.
그는 정파 최강.
그렇기에 검황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자였다.
단순한 초식 승부라 하더라도 결코 자신들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더욱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목검을 가지고 서로를 마주 봤다. 어떤 초식으로 치고 들어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아무런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단우현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들었다.
“최선을 다 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