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8
우두커니 선 채 남궁천을 내려다본 단우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 오만했다.
마치 검황을 아랫사람이라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권무진과 장삼태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치떴다.
아무리 단우현이라 한들 지금 검황의 자존심을 건드는 짓은 하지 말아야 했다.
“허허허, 아무리 노부가 원한 것이라 해도 그렇지 너무 얕잡아 보는 것 아닌가? 한쪽 팔이 없다 해도 검황이라 불렸던 사내일세.”
단우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검황, 검황…….
남궁소혜는 물론이고, 권무진이나 장삼태도, 심지어 눈앞에 있는 당사자 또한 검황이라는 별호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별호란 그저 이름일 뿐이거늘.
그것이 전투에서 목숨을 구해 주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라. 그게 지금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다.”
어디서 저런 자신감을 표출하는지 모르겠지만, 남궁천은 자존심에 금이가는 것을 느꼈다.
목검을 쥐고 있는 오른손에 급격히 힘이 들어갔고, 눈앞에 있는 단우현을 노려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력이 없는 그의 몸놀림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그저 성인들이 달려가는 것과 비슷했지만, 이내 뻗어진 검은 상대를 농락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눈을 현혹시켰다.
그 검로를 바라보고 있던 권무진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공력조차 없는 사람이 저런 검로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탁-!
하나, 슬쩍 뻗은 단우현의 목검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남궁천의 검을 가볍게 막아섰다.
목검을 내지른 남궁천조차 이리 쉽게 파훼될 줄은 몰랐는지,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단우현은 너무나도 덤덤한 시선으로 놀란 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말을 잘못했군. 네가 설령 사지 멀쩡하고 공력을 잃지 않았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니 죽을힘을 다해 덤벼라.”
남궁천은 더욱 굳게 목검을 쥐었다. 한 번 기술을 파훼했다고 해서 마치 다 이긴 것처럼 말하는 단우현의 말투가 남궁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다.
그가 더욱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탁탁탁-!
목검이 연이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하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화려함과 간결함이 담겨 있는 검로가 춤을 추며 뻗어졌다.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장삼태나 권무진의 눈에는, 몇 번의 부딪침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초식 승부라 하여도, 이 정도 고수들이 붙는다면, 이처럼 대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데…… 검황의 검보다…….’
권무진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검황의 검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었다. 반대로 단우현의 검은 간결하지만 계속 무언갈 얻어냈다.
한 수 한 수가 정확하게 상대의 몸에 닿았으며, 어느새 검황은 그것을 막아 내기 급급했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화려함은 사라졌고, 단우현의 간결한 검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확실히 검황이 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장삼태의 눈에도 그리 보이리라.
그때, 오른손에 든 검을 내지른 남궁천이 돌연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몸을 비튼 순간 잽싸게 날아든 단우현의 목검이 그의 턱을 후려쳤다.
퍼걱!
“크악!”
남궁천이 괴성을 내지르며 어이없게 나뒹굴었다.
저자가 정녕 검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
분명 내공을 쓰지 않는 초식 대결이지만, 검황의 검은 단우현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뭐여, 나도 이기겠는데?”
“…….”
장삼태는 반 시진 동안 대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만큼 남궁천은 힘없이 나뒹굴었고, 그것은 결코 검황이라는 인물이 보여 줄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은 수준이 낮았기에 장삼태의 눈에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검황의 모습이 그저 우습게만 보이는 듯했다.
“쿨럭쿨럭…… 자네, 굉장하군.”
주륵-
흥건하게 땀을 흘린 남궁천이 중얼거렸다.
단우현의 검은 무척 간결했다.
단순하지만 막을 수 없는 기세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력을 쓰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상황은 명백한 실력의 차이라 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 남궁천이…….’
남궁천은 허망함을 느꼈다. 오른손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벌인 대련.
그렇다고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고 실력을 믿었으니까.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눈앞에 있는 이자는 강했다.
단순한 강함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흡사, 남궁천이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벽마저 뛰어넘은 것 같은 느낌.
‘저 나이에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았지만, 그래도 이 묘한 감각은 그를 더욱 구덩이 속으로 내던지는 것 같았다.
“남궁세가는 하나같이 자만심이 대단하군. 그 녀석도 그랬지만 특히 네놈은 더 심해.”
“…….”
“겉멋만 든 검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는 법이지. 그렇기에 아무리 살(殺)을 담고 활(活)을 담아도 나에게 닿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말조차 하지 못하는 남궁천을 가만 바라보며 단우현은 목검을 집어 던졌다.
이미 싸울 의욕을 잃은 이를 상대할 만큼 단우현은 여유롭지 않았다.
“자만심을 버리고 그 검에 진심을 담을 수 있다면 다시 칼을 들고 찾아와라. 지금의 너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구나.”
남궁천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직 오른팔이 적응되지 않아 당하고 있다고 믿었다.
천재적인 무공에 대한 재능과 뛰어난 신체 능력이라면 곧 단우현을 제압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꾸우욱-!
남궁천은 으스러지도록 목검을 쥐었다.
천하의 검황이란 이름이.
그 드높았던 자존심이.
한순간에 조각 난 채 사라졌다.
“영감, 너무 허탈해 하지 마쇼. 저 인간을 상대하고 멀쩡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일이니.”
“여…… 영감?”
“그럼 영감이지! 다 늙어서 대접받고 싶소?”
장삼태는 투덜거리면서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큰 기대를 했다.
절대고수들의 싸움이라길래 천지가 개벽할 힘이 주변을 떨쳐 울리고, 전율이 이는 싸움을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이건 뭐 아무것도 없었다.
‘어른이 어린애를 상대로 두들겨 팬 느낌이잖아.’
장삼태의 눈빛에 경멸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이 검황, 검황하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는데, 자신이 덤벼도 이길 것 같지 않은가?
그만큼 단우현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인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삼류 장삼태였다.
남궁천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장삼태의 불온한 눈빛을 받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뒤틀렸다.
“자네…… 검 좀 쓰는가?”
“하하! 나 말이요? 예끼! 나랑 싸울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쇼. 난 우리 장주님처럼 안 봐주니까.”
말리러 다가왔던 권무진이 그 말을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남궁천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변하는 것을 보며 등을 돌렸다. 마음속으로 장삼태의 명복을 빌며 천천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자칫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미는 뭐 하고 있으려나.”
단소미의 이름을 핑계 삼아 재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호탕하게 웃고 있는 장삼태의 머리를 향해 남궁천의 목검이 힘차게 내리꽂히는 장면이었다.
“으아아악! 사…… 사람 쿠웩!”
* * *
그날 저녁, 식당에서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살펴보는 단소미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다가 한 곳에 고정됐다.
장삼태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오른쪽 눈은 웅묘(雄猫)의 그것처럼 물들어 버렸고 얼굴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게다가 행동도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남궁천을 대하는 장삼태의 태도였다.
남궁천이 물을 마시기 위해 슬쩍 손을 뻗으면, 움찔 놀란 그가 재빠르게 물을 그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헤헤헤, 여…… 여기 있습니다.”
“고맙구나.”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단소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삼태가 본래 저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왜 저럴까 싶었다.
얼굴에 나 있는 상처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설마 한쪽 팔밖에 없는 남궁천에게 두들겨 맞았을까?
붕붕 고개를 내저었다.
“장 아저씨, 얼굴이 왜 그래요?”
“아…… 하하! 이, 이것 말이냐? 이것은 그…….”
장삼태가 뭐라 설명하려는 순간, 남궁천이 날카롭게 그를 쏘아봤다.
마치 한 자루의 칼날과도 같은 눈빛에 장삼태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 곰과 싸웠다.”
“에엑?! 곰이요? 여…… 여기 곰도 나와요?”
그러자 단우현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단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저놈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곰 따위는 없다.”
“하지만 얼굴이…….”
“넘어졌다. 돌에 얼굴을 제대로 부딪쳤지.”
“아…… 괜찮아요, 아저씨? 소미가 ‘호오’해 줄까요?”
“……고맙구나.”
장삼태가 속으로 툴툴거렸다.
기왕 거짓말할 거면 곰이랑 싸웠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창피하게 넘어졌다고 하면 애 앞에서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냔 말이냐.
인상을 쓰며 자리에 앉아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났군. 기운도 차린 것 같은데 슬슬 나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들려오는 소리에 남궁천은 신음을 흘렸다.
남궁소혜는 물론이고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당장 세가로 돌아가도 이상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공력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힘도 약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돌아가 봐야, 가족들에게 짐만 될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남궁천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단우현을 지그시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이 사내를 이길 때까지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십존 수준이지 않을까 짐작만 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모든 생각이 뒤바뀌었다.
‘강하다, 나보다 더.’
그를 가볍게 가지고 놀 정도의 수준이라면, 응당 삼천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력을 가지고 제대로 된 승부를 벌인 것은 아닌지라 그보다 낮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남궁천에게 있어서는 뛰어넘어야 할 산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나갈 수 없었다.
저자를 넘어설 때까지.
그리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되찾을 때까지.
눈앞에 있는 단우현이라면 그러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들었다.
그만큼 단우현이라는 존재가 제법 신비롭고 기이한 힘을 품고 있었으니까.
“당분간 더 신세를 지겠네.”
“그러도록.”
단우현은 너무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사정이 딱해서?
아니면 한때 그가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이 장원 북적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소미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 이외에는 어떠한 이유조차 없었다.
단우현은 살짝 웃으며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