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69
남궁천은 단소미의 손을 잡고 악양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갓을 쓰고 있는 탓에, 누구도 그가 검황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왜 내가?’
남궁천은 짧은 신음을 흘렸다.
단소미를 학당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은 평소 단우현의 역할이었다.
한데, 오늘 아침 느닷없이 이 일을 하라고 시키니, 식객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단소미는 손녀딸과 같은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사실 남궁소혜가 어렸을 적보다 몇 배 이상 잘해 주고 있었다.
그만큼 정이 가고 귀여운 아이였고, 하는 행동 또한 어찌나 예쁜지 평소엔 하지도 않은 뽀뽀까지 해 주는 남궁천이었다.
다만 단우현이 시킨 일을 하는 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허, 어떠냐? 좋으냐?”
“네! 할아버지랑 같이 나와서 정말 좋아요!”
단소미는 방긋방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현과 악양 구경을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는 하나, 남궁천과는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단소미는 매우 들뜬 기분이었다.
두 노소는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소 당과를 사 먹는 곳에도 가 보고, 늘어져 있는 노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점심 삼아 입에 가져갔다.
배가 빵빵해질 정도가 돼서야 두 사람은 무언가를 먹는 걸 그만두었다.
“어…… 엄청 배부르구나.”
“……소미도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주저앉아 배를 문질렀다. 이것저것 먹은 것이 많은 탓에 배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더 이상 무언가가 들어갈 것 같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저기 재미있는 게 있어요.”
그때, 벌떡 일어난 단소미가 남궁천을 이끌고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힘차게 달려가는 소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가면을 파는 집이었다.
기이한 가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것이 재미있는 것이냐?”
단소미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의 형상을 따 만든 가면을 쓰더니 어흥! 하며 소리를 냈다.
조금도 무섭지 않고 귀엽기만 한 그 모습에 남궁천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이거 써 봐요!”
이윽고 단소미가 하나의 가면을 건네주었다.
전체적으로 백색으로 칠해져 있고 어떤 문양조차 그려져 있지 않은 가면은 다소 날카롭게 생겼다.
한데 가격이 상당했다.
무려 은자 한 냥.
고작 문양조차 들어가지 않은 것치고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것이 뭔가 싶었다.
“이것은 무엇을 본떠 만든 것인가?”
남궁천이 점주에게 물었다.
점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십니까? 인형극을 하는 곳이온데…….”
“그래 보이는군.”
“저곳에 나오는 주인공의 가면입니다. 아이들에겐 굉장히 유명합지요. 군자검이라 불리는 영웅입니다.”
“군자…… 검?”
그런 대단한 별호가 고작 인형극에 쓰이다니? 남궁천은 제법 재미가 있어 웃음을 머금더니 가면을 써 봤다.
가면은 외견과는 다르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착용감도 제법 괜찮았다.
한 아이가 가면을 쓴 남궁천을 바라보며, ‘군자검이다!’라고 소리를 치자, 사방의 아이들이 그를 쳐다보는 신기한 일까지 벌어졌다.
남궁천이 슬쩍 가면을 벗어 내려놓으려는 순간, 곁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단소미의 얼굴이 보였다.
은자 한 냥, 그 정도 돈이야 단우현에게 받은 것이 있으니 문제 될 게 없지만, 고작 가면 하나에 너무 비싼 것 아닌가?
“할아버지, 잘 어울려요! 엄청!”
그 기대감 가득한 소리에 남궁천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래서 애들 장사가 남는 장사라고 하는 거로군. 허허.’
남궁천은 처음으로 장사치들에게 치를 떨었다.
* * *
장원으로 돌아온 남궁천은 단우현의 시선을 느꼈다. 마당에 있는 전각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남궁천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사 주었군.”
“알고 있었는가?”
“소미가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 정도는 말이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표정에는 드러났다.
인형극을 하는 장소를 지나갈 때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파는 가면 노점을 스칠 때마다 시선은 언제나 그 가면에게로 갔으니까.
하지만 일부러 사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장난감이란 본디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바뀌는 법이고, 더군다나 싸구려 재질로 만든 물건을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게 내키지 않았으니까.
그 돈이라면 단소미에게 더 맛있는 음식들을 사 줄 수 있었으며, 더 좋은 옷을 입힐 수도 있었다.
물론, 딱히 은자 한 냥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싶은 걸 얻어서 좋겠구나.”
“아…… 아니에요! 소미는 이런 거 별로예요! 이건 할아버지 거예요.”
허둥지둥 소미가 손사래를 치며 가면을 남궁천에게 건네주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였지만, 악양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실컷 얼굴에 쓰고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가면을 쓴다고 군자검처럼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가면을 산 지 고작해야 한 시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단우현이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남궁천이 헛기침을 했다. 확실히 이제 가면을 가지고 노는 것이 질렸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 그럼 소미는 안에 들어가서 공부할게요.”
쪼르르-
어색한 표정을 지은 단소미가 방으로 들어갔다.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면서 잠시 가면에 대한 미련을 가져 보기는 했지만, 막상 손에 넣고 보니 쓸모없음을 깨달았기에 쉽게 미련을 끓어 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네그려. 허허허.”
남궁천은 너털너털 웃음을 지으며 단우현의 옆에 앉았다.
자식을 키워 보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보모가 아이를 봐 왔으며, 조금씩 커 가면서는 호되게 훈련을 시키기만 하였지, 단소미와 같이 놀아 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남궁천에게 단소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제법 색다른 일이었으며, 처음 겪는 것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애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불평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궁천은 그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산공독에 대해 조금 아는가?”
남궁천은 지금까지 애써 묻지 않았던 것을 입에 담았다. 지난번 초식 승부에서 지고 난 뒤부터 단우현을 대하는 것에 다소 껄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제대로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단소미 덕분에 분위기가 다소 편해졌으므로 진작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단우현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면이 있다 보니, 산공독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검황 정도나 되는 사람이 그걸 나에게 묻는가?”
“허허, 이 노부도 웬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네만…… 막상 일이 닥쳐 보니 그것이 아니더군. 그리고 자네도 말하지 않았는가. 가르침에는 남녀노소가 없다고. 이 노부가 모르것을 자네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하하.”
단우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번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써 먹다니, 과연 능구렁 같은 노인네였다.
실력은 보잘것없으나 그간 지내 온 세월이 허튼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단우현은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산공독이라…… 알기는 잘 알지.”
이내 피식 웃었다.
산공독이라는 것이 처음 이 중원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천 년 전.
그가 무수히 많은 무림인들을 베며 천살성의 힘을 과시하고 다니던 그 당시였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저 무시무시한 공력만 흩트려 놓는다면 단우현을 죽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산공독이었다.
“그것에 대해 잘 안단 말인가?”
“물론이다. 몇 번 겪어 봤거든.”
“……?!”
남궁천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산공독에 당하면 단 한 점의 공력조차 남지 않아야 함이 정상이었다.
지금의 남궁천처럼 말이다. 한데, 단우현은 아직까지도 공력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을 지닌 것 같았다.
돌연 남궁천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온전한 힘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꺽-!
그가 마른침을 집어 삼키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뻗어 단우현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단우현을 응시하며 절실한 눈빛을 보냈다.
“알려 주게! 해독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말이야!”
“해독제라?”
단우현은 잠시 생각했다.
산공독의 제조법은 실로 어려웠다.
사실, 어떻게 만드는지는 단우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극비였으며, 만든 자들을 차례차례 잡아 아작을 내 보았지만, 모두 그 방법을 일부분만 알고 있었던 탓에 전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본디 해독제란 그 독의 성분을 파악하거나 제조법을 알아내어 그것을 이겨 내는 성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산공독에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공력을 흐트러트린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독이다.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력을 없애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만들어 낸 놈들의 머리가 아주 비상했다.
‘하긴, 혈마 쪽 놈들이었으니 그럴 만했지.’
산공독을 탄생시킨 것은 혈마신교였다.
그 당시, 단우현과 혈마신교는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도중이었고, 혈마신교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무신을 막아 내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태어난 것이 바로 산공독
그것에 중독된 단우현은 두 달이 넘도록 놈들에게 쫓기며, 수차례 죽을 위기를 넘겼다.
태어나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처럼 죽음을 코앞에 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산공독을 이겨 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은 약점이라는 것이 있었다.
“산공독이라는 것이 실제로 모든 공력들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실로 그러네만.”
“아니지. 산공독은 공력의 흐름을 틀어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거다.”
“……!”
“즉, 네 몸에는 아직 네가 가진 공력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흐름을 틀어막은 산공독이 너무 강하기에 공력이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는 거지.”
“그…… 그럼 고칠 수 있단 말인가?”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럴 만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깔리기는 하지만, 검황 정도라면 몇 달 혹은 몇 년 만에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흘러야 하는 길을 막아 놓았다면 그곳에 구멍을 내는 것이 제일이지. 바늘구멍 하나라도 생긴다면 안에 있는 것들이 막아 놓은 것을 무너트리고 쏟아져 나올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남궁천은 이해를 못했다.
산공독과 공력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구멍을 내라는 것은 칼로 단전을 쑤시라는 뜻인가?
그랬다간 공력은커녕 단전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선문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남궁천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미를 모르겠다면 잘 생각해 보아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단우현을 빤히 바라봤다. 해답을 주지않고 오히려 머리만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직접 산공독을 겪어 봤다는 사람의 말이니 허투루 들을 수도 없는 노릇.
남궁천이 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콰당-!
그때, 거침없이 대문이 열렸다.
“자…… 장주님-!”
장삼태가 헐레벌떡 숨을 내쉬며 달려오고 있었다.
한 손에 무언가를 쥔 채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소란에 남궁천과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