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7
호남의 골칫거리 장백산이 붙잡혔다.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호남 전체가 크게 들썩였다. 그간 비적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수많은 백성들이 축배를 든 것이다.
현령 홍원창의 이름이 호남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는 왕부의 큰 신임을 얻었으며 백성들에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아이고, 현령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마을 저잣거리를 걷고 있는 홍원창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는 청렴결백한 관리가 아니었고, 사람들 또한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그만큼 비적들과 장백산을 붙잡은 것에 수많은 이들이 두터운 신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홍원창은 사람들의 인사를 어색하게 받아 주며 관아로 돌아갔다.
집무실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으아아아악!”
홍원창은 괴성을 내질렀다.
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계속…… 생각이 나.”
홍원창은 눈물을 찔끔 삼켰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바로 단우현이라는 논리를 벗어난 존재가 보여 주었던 무시무시한 힘이 뇌리에 깊숙하게 박힌 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거리를 걷다가도, 송사를 보다가도, 잠을 자면서도 시시때때로 떠올랐다.
쇳조각에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는 자들, 도망가는 장백산을 단 일격에 제압해 버리는 그 신위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왕부의 신임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터워졌다는 것.
“금불상이라니…….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왕부를 턴 거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최근 왕부가 털렸다. 경계가 삼엄한 그곳을 털려면 보통 은신 실력 가지고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무공을 익힌 무림인일 터, 그런 이를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멍청한 도둑놈 같으니라고 훔쳤으면 끝까지 숨길 것이지…….”
장백산을 잡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왕부의 신임이 두터워졌으니, 왕야 또한 현령을 믿고 어렵게 도둑에 대해 입을 연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부담으로 변하여 현령의 두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후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 * *
그 시각, 단우현과 화소미는 저잣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장원을 벗어나 번화한 곳에 와 있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실 단우현이 일부러 데려온 것이었다.
본인이야 그렇다 쳐도 화소미는 어렸다. 더 많은 이들과 부딪치고 만나 봐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은 그저 거리를 걸었다.
무언가를 할 것도 아니고 어딘가를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화소미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그런 꿈을 갖게 하고 싶었다.
훗날 자신이 곁을 떠날 때를 대비하여 말이다.
“우음…….”
저잣거리를 걷고 있는 내내 화소미는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봤다.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기도 하고, 때론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표정이 매우 다채로웠다.
단우현 또한 가볍게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과거의 그 허름한 풍경은 이미 사라져 존재하지 않았으나, 단우현의 눈에는 마치 과거의 모든 것들이 현재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
동정호가 있는 이 악양은 단우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특별한 곳이다.
어린 시절 버려졌던 곳이며,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을 계기로, 강해지겠다는 결심을 하였으니까.
때문에 처음 눈을 떴을 때, 이곳을 찾아와 떠나지 않은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이 아닐까.
눈을 자극하는 과거의 편린에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아직까지도 그런 것들을 쫓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우습게 여겨졌기에.
과거와 현재가 겹쳐 보이는 이 공간에서, 오로지 한 사람만이 단우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따스함에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다 무언가를 깨달았다.
화소미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갔다.
자그마한 어린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화소미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다소 쓸쓸한 느낌이 있었다.
단우현이 손을 뻗어 자그마한 화소미의 손을 붙잡았다.
“응?”
갑작스러운 온기에 놀란 화소미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단우현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조차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단우현이었다.
하지만 그 따스한 마음만큼은 확실히 느껴졌다.
“헤헤헤.”
이 아이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자그마한 두 손으로 단우현의 큰 손을 쥐고 흔들며 방실방실 웃었다.
‘그러고 보니…….’
팔이 흔들거리는 것을 느끼며 단우현은 주변을 살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아이의 칭얼거림을 이기지 못해 무언가를 사 주곤 했다.
당과를 먹거나 그밖에 주전부리들을 입에 집어넣으며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화소미는 일절 칭얼거리지 않는다.
분명 저들처럼 군것질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나, 돈이 없다는 걸 아는지, 보채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성숙한 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먹고 싶다 칭얼거리는 쪽이 더 곤란하지.’
단우현은 볼을 긁적였다.
사실 돈만 있다면 뭐든 다 사 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좋은 옷을 입히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이고 싶었다.
그는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며 돈이라는 것에 크게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잠자리는 그저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되었고, 배가 고프면 산에서 사냥을 하면 그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고, 무공을 익히고 난 뒤에는 쫓기며 사느라 바빴던 나머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리 불편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책임지고,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니, 결과적으로 돈이라는 것이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흠…… 일단 돌아가도록 하자.”
“네에!”
그렇게 이들은 저잣거리를 빠져나와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장원으로 가는 길은 다소 험한 편이라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때문에 조용히 살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었다.
‘나 혼자였다면 그렇지.’
단우현 혼자라면 어느 곳이든 조용하기만 하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화소미에겐 그리 좋지 않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손에서 느껴지던 화소미의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아이가 쪼르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단우현은 눈썹을 들썩이며 가만히 주위를 살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발자국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것.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단우현은 일부러 무시하고 있던 기감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화소미를 쫓았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이 꽃을 가져가려고요!”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화소미는 어느새 꽃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자그마한 돌 하나를 들고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들꽃치고는 상당히 아름다운 데다 향도 제법 좋았다.
아마도 마당에 심어 놓을 생각인가 보다.
이상한 것은 꽃이 있는 그 땅이 너무나도 쉽게 파헤쳐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한 번 파 놓은 것처럼.
그리고 꽃도 작위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주변이 텅 빈 공간 안에 우두커니 피어 있다.
마치 일종의 표시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응?”
그때였다.
열심히 땅을 파고 있던 화소미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며 손을 뻗었지만, 제법 무게가 있는 듯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느냐?”
“으윽! 괘, 괜찮아요! 소미는 히…… 힘이 세거든요!”
안간힘을 쓰며 그것을 끄집어냈다.
결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주머니였다.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인지 상당히 묵직해 보였다.
“헤헤, 할 수 있죠?”
“그래, 잘했다.”
화소미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 빛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단우현은 웃었다. 정말로 이 아이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뭐가 들었을까.”
“소미가 열어 볼게요!”
파낸 것은 화소미였으니 열어 보는 것 또한 이 아이의 권한이다.
단우현은 그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고, 화소미는 신이 난 표정으로 천천히 그 주머니를 열어 보려 했다.
그 순간.
“이것들이 감히 누구 것을 건드려!”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단우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치 누가 소리를 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한 사내가 미친 듯이 성이 난 표정을 지으며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쥐고 있는 손에는 한 자루의 단검까지 들려 있다.
그 끝이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화소미였다.
“엑?”
깜짝 놀란 화소미가 경악하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빠르게 다가온 사내가 위협하듯 단검을 휘둘렀다.
빠각-!
“컥!”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마치 쇠몽둥이를 휘둘러 수박을 깨트리는 것 같은 엄청난 소리였다.
화소미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사내의 몸이 허공에서 수차례 회전했다.
쿵-!
땅으로 떨어지는 그 울림 또한 격렬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놀란 화소미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쓰러지려는 것을 단우현이 조심스레 받아 내며 바닥에 얌전히 눕혔다.
이내 그의 시선이 사내에게 향했다.
사내는 혼절하였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입에서는 게거품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나왔고, 눈은 이미 뒤집혀 흰자만 보였다.
제대로 얻어맞은 얼굴도 서서히 부어올랐다.
하나, 그 사내를 노려보는 단우현의 눈빛이 매서웠다. 마음속 한편에 가둬 두었던 살심(殺心)이 치솟은 탓이다.
쩌저적-!
땅이 갈라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저 뿜어져 나오는 기세 하나만으로 천재지변을 만들어 내는 무위.
이미 단우현의 힘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걸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빌어먹을…….”
단우현은 욕을 뱉었다. 천 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뱉는 욕이었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설마 어린아이인 화소미를 노리고 달려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발을 뻗어 사내의 머리를 밟았다.
이대로 힘을 주면 이 백번 죽어 마땅한 놈의 목숨도 끝이 날 것이다.
하지만 꾹 참아 냈다. 이 녀석이 아이를 놀래키려 한 게 아니라 해치려 했다면 참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정신머리는 있는 놈 같았으니…….’
살심을 억누르고 호흡을 다듬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화소미가 곁에 있는 상황에서 살인을 하는 건, 웬만해선 피하고 싶었다.
단우현이 한숨을 쉬곤 애써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뭐가 들었기에 칼까지 들고 덤볐는지 알아볼 차례였다.
단우현이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