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72
다그닥, 다그닥-
마차를 타고 호북으로 이동하고 있는 단우현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몇 시진 동안 말이 없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명상을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운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곳에서 운공을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호북은 왜 간다는 거야?’
권무진은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남궁천과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지도에 시선이 빼앗긴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것도 있었다.
권무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주군…….”
“말해 보거라.”
역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 있던 단우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영롱하게 빛나는 그 눈빛이 한 차례 빛을 내며 사라졌으나 권무진은 그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호북에는 도대체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거리도 거리이고…….”
이렇게까지 멀리 나온 적은 없지 않던가.
단우현은 마치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처럼 장원 인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 일이 있어 먼 곳까지 간 적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빠른 시일 내에 돌아왔고 그것도 호남 지역에서는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호남에서 호북으로.
상당히 먼 여정이다.
적게 잡아도 한 달 보름 정도는 있어야 하고, 당연하게도 그곳에서 뭘 하느냐에 따라 그 이상의 시간을 소요할 수도 있었다.
단소미를 떼어 놓고 그런 시간을 허비할 만큼 중대한 일인가 싶었다.
“금왕수라는 자를 아느냐?”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
권무진은 금왕수라는 이름을 몇 번 곱씹었다. 이 중원에서 제법 날다 긴다 하는 이들이라면 그 이름을 들어 보지 않은 자는 없을 거다.
“몇 대에 걸쳐 내려오는 별호이지 않습니까?”
“응?”
“……그건 모르셨습니까?”
권무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금왕수라는 별호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처음 나타난 것은 약 이백 년 전이었고, 그 당시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도둑이 자칭했던 이름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제자들이 금왕수의 별호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왔다.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정도는 알 것이다.
“그렇군. 스승에서 제자에서 물려 가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소문에는 도둑 기술을 일인전승하여 물려준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 별호는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모파기 자체가 소용이 없다.
금왕수라면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려 있는 자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하였지만 지금까지 잡힌 적이 없었다.
중원 최고의 경공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몫하지만 잡을 법하면 용모파기가 달라지고 본래 그 용모를 가진 자는 홀연히 사라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원에는 워낙 많은 기인이사들이 있으니 그런 자들이 있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호북행이 설마…… 금왕수와 관계되어 있습니까?”
“그래.”
“하…… 이거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몇 년 전에 죽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그것과 이것은 관계없다. 있다면 좋은 것이고 없다면 유람하는 셈 치면 그만이니.”
단우현이 슬쩍 지도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것을 가만 바라보던 권무진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휘둥그레 눈을 떴다. 금왕수와 관련되어 있는 지도.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움직일 정도라면……
‘재보!’
저것이 소문만 듣던 금왕수의 재보가 그려진 보물지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무진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치켜떴다.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그…….”
“소문이 뭔지 모르겠지만 남궁천은 이것이 금왕수가 재보를 숨겨 놓은 지도라 하더군.”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천의 보증이라면 틀림없는 진실일 거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그 지도.
성도 살 수 있을 만큼의 재보가 가득하다는 지도이니 단우현이 직접 나서는 것 또한 납득이 갔다.
권무진은 또 한 번 침을 삼켰다.
단우현이 그것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만약 재보를 찾는다면…… 네 공도 있으니 원하는 것을 사 주마.”
“가…… 감사합니다, 주군!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아직 찾은 것이 아니지 않으냐.”
“이 소인, 죽을힘을 다해 찾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을 반드시 찾아 한평생 떵떵거리며 살겠다는, 혹은 중원 모두가 부러워하는 보물을 손에 넣겠다는 그런 의지가 가득했다.
은근히 이런 면에서 쿵짝이 잘 맞았다.
“그건 그렇고 소미가 잘 있으려나 모르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가뜩이나 넓은 곳에 저희들까지 없으니 휑할 텐데…….”
재보는 재보고 걱정은 걱정이다.
팔짱을 낀 단우현은 작게 신음을 삼켰다. 그 넓은 장원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쓸모없는 하인 한 명과 쓸데없는 노인 한 명이다.
그나마 그들 중 단소미가 제일 제대로 되기는 하였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심히 걱정이다. 자신이 없다고 울먹이거나 찾지는 않을까, 혹은 내심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쓸쓸해하지는 않을까 싶었다.
며칠 떨어져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만큼 긴 시간을 떨어진 적은 없으니까.
단우현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더니 마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더 빨리 갔으면 좋겠군.”
이럇!
마차가 세차게 내달렸다.
* * *
단우현이 장원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고작해야 두 사람이 사라진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른 공기가 장원을 휘감았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몇 되지 않아도 그 웃음소리는 정말로 컸다.
“헤헤헤! 제가 이겼어요!”
“아니라니까?”
“허허허! 아직 이 노부가 죽지 않았느리라.”
“틀렸어요, 두 분 다! 이 소미가 이긴 걸요?”
세 사람은 마당에 도란도란 앉아 자그마한 돌을 이용해 놀고 있다. 여기저기 선이 그려진 것이 보였고, 커다란 원 안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단소미의 원이 가장 크고 장삼태의 원이 가장 작다.
그때 소미가 다시 한번 돌을 튕기더니 장삼태와 남궁천의 원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순간 장삼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벌써 몇 판째 지고 있는 건지.
“이 땅따먹기는 소미에게 이길 수가 없구나.”
“학당에서도 소미는 이걸로 맛있는 걸 많이 얻어먹어요.”
단소미는 싱긋 웃었다.
학당에서 심심할 때 하는 놀이다.
처음에는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이니 지약은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로 시작한 단소미 탓에 어느새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
이윽고 아이들 사이에 점점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유행이 되어 버려 많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땅따먹기다.
“마, 맛있는 걸 어…… 얻어먹느냐?”
“네! 그냥 하면 재미없다고 아이들이 이것저것 걸어요. 가끔 용돈도 벌어 오는 걸요.”
남궁천은 식은땀을 흘렸다.
고작해야 땅따먹기다.
주륵-
하지만 단소미의 말을 들어 보니 단순한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간식을 거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고, 가끔 돈을 거는 멍청이들도 있는 것 같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단소미는 해맑다.
저런 얼굴로 사행성을 조장하고 그걸로 벌어먹다니.
남궁천은 단소미의 뒷면을 본 것 같았다.
저런 해맑은 얼굴로 웃음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음흉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남궁천은 애써 생각을 지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소미야, 이런 것 말고 이 할아비가 좋은 것들을 가르쳐 줄까?”
“……좋은 거요?”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거? 좋은 거라.
땅따먹기는 상당히 좋고 재미있는 놀이다.
일단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고, 간식은 물론이고 가끔 용돈 벌이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놀이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아한 시선을 돌리자 남궁천이 헛기침했다.
“무공.”
“싫어요.”
단소미가 고개를 픽 돌리고 고개를 저었다.
무공이라는 걸 배워 보기는 했다.
삼재검법인지 뭔지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도 지치고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작고 여린 그 몸에 근육통까지 생겼으니 평범하고 어린 여아라면 응당 피할 수밖에 없을 거다.
반면 남궁천은 당황했다.
천하의 검황이 가르쳐 준다고 말하는 거다.
어떤 아이든지 기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 부모들은 남궁천에게 수백 번 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검황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무림인들에게는 한평생 얻을 수도 없는 기연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도, 도대체 왜 싫은 것이야? 생각도 안 해 보고…….”
“싸우는 게 싫은걸요.”
초롱초롱-
고개를 돌렸던 단소미가 눈을 빛내며 남궁천을 쳐다봤다. 그 귀여운 외모와 더불어 눈빛마저 반짝였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느 때보다 부드러우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남궁천은 한순간 아찔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차마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로 빛이 났다.
하지만 이런 귀여움 정도로 굴할 소냐?
천하의 검황을 얕보지 마라.
남궁천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수습했다.
“소, 소미야. 무공을 익힌다 하여 전부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란다. 정신수양을 하는 이도 있고 몸을 튼튼히 하고자 하는 것도 있지.”
“소미는 튼튼한데요?”
“아니…… 그 정도보다 더 튼튼해지게…….”
단소미는 가만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튼튼해지게?
머릿속에 한 사람을 떠올렸다.
홍진랑.
분명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무공을 익혔다고 들었다.
남궁천은 틀림없이 튼튼해질 것이라 말했으니 단소미의 머릿속에 우락부락한 근육과 넓어진 어깨를 가진 자신의 형상이 그려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순간 단소미의 얼굴이 시퍼렇게 죽었다.
“시, 싫어요. 절대 싫어요.”
순간 남궁천은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린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 문득 좋은 것이 생각났다.
“그래! 소혜! 소혜를 잘 알지?”
“네, 언니라면 당연히 알죠.”
“엄청 예쁘지? 그 아이가.”
“음…… 그렇죠.”
단소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궁소혜는 굉장히 예쁘다. 함께 악양 거리를 걷고 있다 보면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있음을 깨달을 정도이니까.
나름 부럽기도 했다. 어리기는 하지만 단소미 또한 여자이니까.
“무공을 익히면 그렇게 될 수 있단다, 허허허!”
“정말요?!”
단소미가 화들짝 놀라 남궁천을 바라봤다.
정말로 그렇게 예뻐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었다. 분명 단우현도 자신을 지금보다 더 아껴 주게 될 것이다.
단소미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묻자 남궁천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헤헤헤.”
단소미가 배시시 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이제 넘어왔음을 느낀 남궁천은 쾌재를 불렀다.
남궁소혜를 가르칠 때는 엄하게 하였으나 이 아이에게만큼은 할아비로서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
“역시 됐어요.”
“뭐……?”
활짝 웃음을 지은 단소미가 남궁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소미는 크면 그 언니보다 더 예쁠 거니까요.”
그 화사한 미소에 남궁천은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단소미는 그것을 바라보며 쿡쿡 웃더니 나지막하게 작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는 거니 소미 힘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