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76
제갈운은 무작정 내달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은 이미 많이 겪어 본 일이다. 무림맹 총사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사마의 인재들과 부딪치다 보면 암살 위기 정도는 수도 없이 겪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시시한 자객이 아니라 백대고수에 들어가는 구검(九劍) 황해염 일당들에게 쫓기고 있으니 말이다.
“연아야, 괜찮은 것이냐?”
“아버님!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앞을 보세요!”
제갈운의 물음에 제갈연이 크게 소리쳤다.
제갈연은 그저 피신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제갈세가는 본디 무공이 특출한 집안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은 이들 부녀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위기라 할 수 있었다.
“어째서 저자가!”
구검 황해염은 낭인으로서 그 이름을 올린 자였다.
정사마, 그 어느 한쪽에도 서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칼을 드는 사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갈세가와 황해염 사이에는 상당한 악연이 있었다.
제갈운이 막 무림맹 총사가 되었던 시절, 범죄를 저지른 낭인들을 토벌하다 그의 동생을 죽인 것이 악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제갈운은 내달리면서도 크게 소리쳤다.
지금은 사퇴했다고는 하지만, 무림맹 총사직에 머물렀던 제갈운이다. 그런 이를 죽인다면 황해염은 즉시 무림공적으로 선포될 터였다.
무림맹의 모든 전력들이 황해염을 죽이기 위해 움직일 것이고, 그리되면 그는 더 이상 중원에 발을 디밀지 못할 것이다.
“하하! 네놈과 곁에 있는 계집을 죽이면 누가 죽였는지 어찌 알겠느냐!”
황해염은 자신이 있었다. 고작해야 힘없는 제갈세가의 인물 둘. 그런 이들을 죽이는 일 따위는 황해염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뒤탈이 생길 염려도 없었다.
‘네놈들 따위는 죽여 버려도 상관없다. 이미 모용세가의 보증을 받았으니.’
황해염이 씩 웃었다.
제갈운을 처치하는 데 받기로 한 비용은 금 오백 냥.
그 정도 돈이라면 어디를 간다 해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더욱이 여지껏 묵혀 놓은 동생의 복수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하여 황해염은 이 일을 맡았다.
황해염이 가늘게 눈을 떴다. 그러고는 도를 쥐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싣고 강하게 휘둘렀다.
사아악-!
도는 제갈운의 몸을 갈라 버릴 듯 거침없이 날아갔다.
저리 빠른 기세로 날아가는 도를 제갈운이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버님!”
그때 제갈연이 급하게 발을 뻗어 제갈운을 걷어찼다.
촤악!
비스듬히 튕긴 제갈운의 몸에 도기(刀氣)가 스치고 지나갔다.
“큭!”
다행히 급소는 피해 지나갔지만, 제갈운은 신음을 삼키며 주저앉았다.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검을 쥐고 있던 제갈운은 크게 심호흡을 삼키며 이를 갈았다.
이대로 또다시 도망친다 해도 끝내 저자에게 붙잡히고 말 터였다.
궁지에 몰린 제갈운은 목숨을 내놓고 부딪쳐 보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제갈운이 재빠르게 등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캉-!
제갈운의 검은 순식간에 치고 들어온 흑의인의 검을 튕겨 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팔대세가 중 무공이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갈세가이지만, 일개 졸개의 검에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카카캉-!
한순간에 뻗어진 검날이 수차례 빛을 발하더니, 상대의 칼날을 쳐 내고 조금씩 몰아쳤다.
느닷없이 빨라지는 제갈운의 검로를 받아 내는 것이 다소 버거웠는지, 흑의인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나 제갈운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빠르게 흑의인의 품을 파고들며 일검을 그었다.
서걱-!
“컥!”
제갈운은 상대의 목을 그어 냄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칼날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행동은 자못 수상쩍었다.
하나, 앞서 다가오던 다른 흑의인은 깜짝 놀랐다.
제갈운의 뒤에 있던 제갈연으로부터 작은 소검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푹!
“크악!”
상대의 가슴을 꿰뚫은 칼날은 제갈연이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회수되어 날아갔다.
고작해야 스물 초반의 여인이 허공섭물을 쓸 리 만무했다.
실상은 검 자루 끝에 자그마한 구멍을 내어, 보이지 않는 실을 연결해 두고 그것을 당긴 것이다.
황해염은 제갈연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계집이 제갈세가의 숨은 칼이라 불리는 제갈연인가?’
제갈연은 대체로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소문으로는 제갈운보다 더한 천재이며, 그 무예 또한 남궁소혜 못지않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을 직접 겪어 본 이들이 몇 되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황해염은 지금 본 한 수만으로 제갈연의 존재가 상당히 위협적일 것이라 예상했다.
‘싹이 트기 전에…… 밟아 놔야지!’
타타탁!
황해염이 달려 나갔다.
죽어 가는 수하들의 목숨 따위는 일말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저 앞을 보고 내달리며 크게 도를 휘둘렀다.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도법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격한 한 수였다.
쾅-!
“윽?!”
한순간 제갈연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바닥이 부서지며 흙먼지가 잔뜩 튀어 올랐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자그마한 파편들에 온몸을 두들겨 맞는 고통을 느끼며, 그녀는 재빠르게 뒤로 고개를 틀었다.
사악-!
황해염의 도가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 순간.
캉!
제갈운의 칼날이 황해염의 도를 쳐 냈다.
하나 제갈운의 검이 묵직한 황해염의 도를 그리 쉽게 밀어 낼 수는 없었다.
황해염은 힘으로 제갈운의 칼날을 다시금 밀어내 빈틈을 만듦과 동시에 세로로 격하게 휘둘렀다.
서걱!
“큭!”
“아버님!”
제갈운은 피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또다시 날아 들어오는 황해염은 도는 거침없이 제갈운의 전신을 갈라 버릴 것 같았다.
“천하의 무림맹 총사도 이리 가는구나! 하하하!”
황해염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나 그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갈연의 품에서 한 자루의 비도가 날아들었다.
단순한 비도술이라면 콧방귀조차 뀌지 않을 황해염이지만, 지금 날아드는 것은 제법 위험해 보였다.
캉!
황해염이 칼날의 궤도를 틀어 암기를 쳐 냈다.
고작해야 작은 암기인데 쳐 내는 느낌이 사뭇 달랐고, 심지어 칼날 끝에는 독이 발려 있었다.
‘당가의 암기술?’
틀림없이 당가의 암기술이었다.
‘당가와 제갈세가가 친분이 두텁다 하더니, 무공까지 나누는 정도인가?’
황해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제갈연을 바라보았다.
암기술까지 펼칠 수 있는 여인.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황해염은 그녀의 뒤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제갈운보다 제갈연이 더 성가시다.
먼저 보내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촤아악!
“아아악!”
“연아야!”
황해염의 도가 제갈연의 등을 파고들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다.
제갈연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중상을 피해 낸 것이다. 또한 그냥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이, 그대로 손을 뻗어 또 하나의 암기를 날렸다.
“큭!”
황해염이 몸을 움직였다.
비틀어, 제갈연이 던진 암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낼 수 있었다.
독이 발려 있을 테니 스치기만 해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안타깝구나.”
“윽……!”
“연아야! 괜찮으냐?”
황해염은 씩 웃음을 지으며 쓰러진 두 부녀 앞으로 다가섰다.
더 이상 제갈연에게는 비장의 수가 남아 있지 않는 듯 보였으며, 제갈운 또한 제대로 된 운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로서는 거칠 게 없었다.
사사삭-!
그사이, 남아 있는 흑의인들이 황해염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두 부녀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도주로를 차단하듯 서 있었으며, 언제라도 검을 휘두를 수 있게 손에 꾹 쥐고 있었다.
황해염은 더욱 가까이 다가서며 호통하게 말했다.
“실로 멋졌다. 제갈세가의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하! 하지만 이제 끝이로구나.”
황해염이 도를 들어 올렸다.
사람을 죽일 때는 망설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특히 이런 상황일수록 여유를 부려서도, 시간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무인으로 살며 지켜 온 황해염의 철칙이었다.
망설일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은 모용세가가 해결해 줄 테니.
히죽 웃음을 지은 황해염이 그대로 도를 내려치려는 순간.
빠각-!
콰다다당-!
어디선가 날아든 주먹이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그에 황해염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아가더니, 무수히 많은 나무들을 때려 부수며 십여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저 멀리, 쓰러진 채 온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황해염이 보였다.
“시끄럽군.”
슥슥-
낯선 목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주…… 주군, 지금 건 완전 화풀이 같았습니다만…….”
“아니다.”
“…….”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단우현과 권무진이었다.
단우현은 피 묻은 손을 털어 내며 인상을 썼고,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권무진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권무진이 다시 생각해도 지금 건 화풀이였다.
단우현이 금왕수에게 당한 분노를 낯선 자들에게 푼 것이 분명했다.
“뭐…… 뭐냐, 네노……!”
콰콰쾅!
정신을 차린 흑의인들이 기겁을 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느닷없이 날아든 단우현의 주먹이 그들의 안면을 후려쳤다.
연이어 단우현은 폭풍처럼 주변을 휩쓸었고, 흑의인들은 처참하게 주변으로 날아가 여기저기 떨어졌다.
“아…….”
“헉……!”
제갈운과 제갈연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작해야 일격으로 황해염을 때려잡은 것도 모자라, 흑의인들까지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도대체 이런 이가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단우현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너희들…….”
“에……?”
“금왕수라는 놈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모…… 모릅니다…….”
제갈연이 얼떨결에 고개를 젓자, 단우현은 인상을 썼다.
그 장원에서부터 호남으로 내려온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금왕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빠득-!
단우현이 권무진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저기 보이는 게 제갈운 같은데, 구해 주면 금왕수의 소재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던 그의 말과는 다르게, 소재는커녕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괜한 시간을 낭비했다.
“가자.”
“가, 갑니다!”
단우현은 화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덕분에 권무진은 칼날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