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78
풍검문은 현재 악양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다.
중소문파이지만 꽤 고강한 무예를 가지고 있는 데다, 순식간에 악양 일대를 장악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코지할 수 없었다.
본래 풍검문은 호북에 위치했던 문파였다.
호북은 무당과 제갈세가의 명성과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중소문파들은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기가 힘들었다.
하여 풍검문의 문주 후자령은 호북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선택한 곳이 바로 악양이었다.
최근 악양 인근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데다, 군자도에서는 무신의 비동마저 나타났다. 무언가를 제대로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었으나, 아직도 많은 비밀이 숨어 있는 곳이 바로 이 호남이다.
또한 이러한 전설도 있지 않은가?
[동정호 가장 깊숙한 곳에 무신을 봉하다.]이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다.
어디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혹은 누구의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전설이라 생각했던 무신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무신을 봉인했다는 말 또한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군자도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할 무렵, 풍검문주 후자령은 빠르게 문파를 정리하고 악양으로 왔다.
무신에 대한 전설은 이제 결코 전설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그의 흔적을 찾을 수만 있다면 풍검문은 단숨에 구파일방이나 팔대세가,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렇기에 문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결국 악양 인근을 장악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후자령이었다.
그는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래, 알아는 보았느냐?”
“근방 뱃사공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근방이 가장 깊다 합니다. 물론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수하의 말에 후자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리킨 곳은 동정호 지도의 한 지점이었다.
수하는 몇 군데 지점을 더 짚었지만, 모두 처음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대부분 이 근방이구나.”
“동정호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 바로 이 물줄기라 그런 것 같습니다. 뱃사공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이 근방을 말했습니다.”
흠- 하며 후자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동정호에 들어갈 생각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은 만큼, 그는 준비를 이미 끝내 놓았다.
배 또한 준비되어 있으니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일뿐이었다.
“꽤 먼 거리군.”
“예, 본 문에서 가는 데만 한 시진 정도 걸리니 악양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후자령은 안다.
무신의 전설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달려오는 자들이 있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오가는 것에 두 시진.
후자령은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근처에 묵을 만한 곳은?”
“한 군데 있기는 합니다만…….”
“있기는 있다? 이 근처에 말인가? 뱃사공의 집 같은 것이야?”
“아, 아닙니다. 그…… 장원이 한 채…….”
“장원?”
후자령은 휘둥그레 눈을 떴다.
동정호 주변은 황실의 땅이라 사고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도 동정호 인근이 아닌, 악양에 자리를 잡지 않았던가. 한데 그런 곳에 장원이 있다 하니 후자령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현령과 연줄이 있는 자 같습니다.”
“조사는 해 보았느냐?”
“해 보긴 했습니다만…… 누구인지 정보는 나오지 않고, 그저 몇 달 전에 갑자기 나타났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렇군…….”
후자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령과 연줄이 있다면 응당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본래 법이란 알 게 모르게 수혜자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피식 웃음을 지은 후자령이 등을 돌렸다.
“채비를 하거라. 내 직접 이곳에 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크으으윽-! 사…… 살려 주십쇼.”
“뭐 하느냐? 계속하거라.”
단우현은 툇마루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기이하게도 장삼태만큼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장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간에 쭈그려 앉은 채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끼니를 챙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상태로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했다.
장삼태는 쭈그려 앉거나 땅을 기어 다닐 수는 있었지만 일어서서 걸을 수는 없었다.
단우현의 명이었다.
그의 시야를 벗어나면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뒷간을 갈 때도 따라붙는 권무진 탓에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그나마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장삼태는 주륵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동굴의 생김새야 그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지도를 만들어 내고 동굴 내부에 진흙을 뿌렸으니 결과적으로 단우현의 화를 돋운 장본인은 장삼태였다.
단우현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이었다.
‘누가 걸릴 줄 알았나?’
그러나 장삼태 딴에도 할 말은 있다.
중원천지에 널린 것이 사람이다.
쓸면 쓸려 갈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있는데, 거기에 하필 단우현이 걸려들 것이라곤 단 일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재보를 바라고 간 것만 보아도, 단우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은가.
딴에는 많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죽을까 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때, 누군가 대문을 두들겼다.
장삼태는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 장원에는 드나드는 손님이 없다.
가끔 홍원창이 이것저것 들고 찾아와 헤헤거리고, 또 어쩔 때는 단소미가 악양에서 남궁소혜를 데려오는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대문을 두들기지 않으니, 지금은 처음으로 오는 손님 같았다.
“저…… 장주님, 손님이…….”
“가 보거라.”
“가…… 감사합니다!”
장삼태는 벌떡 일어서려 했다. 장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까지 쭈그려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데 일어서려 하는 순간, 단우현이 살벌하게 눈을 빛냈다. 결국 어정쩡하게 서려 했던 장삼태는 다시 주저앉아 대문을 향해 걸었다.
이윽고 대문 앞에 선 장삼태가 곁에 있는 권무진을 바라봤다.
“그…….”
“뭐냐?”
“손이 문에 안 닿는데?”
“흥…….”
권무진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문을 열었다.
밖에는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권무진은 문을 여는 순간 저도 모르게 검파에 손을 얹었다.
“안녕하신가? 이 장원의 사람이신가?”
대문 밖에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서 있었다.
주홍색 도복을 입은 그들 중심으로는 날카롭게 생긴 한 사내가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권무진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그대들은?”
“아, 우리는 풍검문의 사람들이네. 나는 문주인 후자령이라 한다네.”
“풍검문?”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애초에 구파일방, 팔대세가 정도가 아니라면 그 이름을 기억할 만한 가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온 권무진이기에, 그저 어중이떠중이라 생각했다.
“내 소개는 이제 되었고……. 이 장원의 주인을 만나고 싶은데?”
“기다리시오.”
심상치 않은 사내의 표정에 권무진은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며 등을 돌렸다.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기분이 나빴다.
반면,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후자령 또한 기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커다란 장원이니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막상 보니 몇 되지도 않은 게 수상쩍었다.
심지어…….
“…….”
“…….”
그의 눈앞에는 한 사내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종놈 같기는 한데, 주저앉아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으니 괜스레 기분이 나빴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가?”
“아니, 땅만 쳐다보고 있자니 고개가 떨어질 것 같아 올려다본 거니 신경 쓰지 마쇼.”
“마…… 마쇼?”
“그래, 신경 쓰지 마쇼.”
부들부들-
후자령은 몸을 떨었다.
같잖은 녀석이 반말을 찍찍 해 댄다. 심지어 그 표정은 얼마나 재수가 없는지, 마음 같아선 그냥 밟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장원의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하는 시기니, 괜한 일로 피를 불러 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다.
자신은 정파, 심지어 무림맹 소속의 풍검문주이니, 점잖게 행동하리라 마음을 다잡은 후자령이었다.
“그래, 나를 보자 했다고?”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후자령이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기척조차 없었는데, 어느새 그는 코앞에 있었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제법 놀란 기색들이 역력했다.
후자령은 이내 표정을 수습하며 헛기침을 했다.
“커컴! 나는 풍검문의 무…….”
“이미 이야기는 들었다. 되도록 간단히 용건만 이야기하도록.”
순간 후자령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 대접을 받아 본 기억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내는, 마치 온 세상이 다 제 것이라는 듯, 오만한 시선을 보내며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까득-
이를 갈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 장원을 나에게 팔지 않겠는가?”
후자령은 용건을 꺼내며 전낭 주머니를 내던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그것에서는 무수히 많은 은자들이 튀어나와 땅을 굴렀다. 척 보아도 은자 이백 냥 가까이는 될 법했다.
단우현은 그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슬쩍 발을 움직여 전낭 주머니를 후자령 앞으로 밀었다.
그 행동이 자못 후자령 일행의 성질을 건드렸다.
“이…… 이자가 진정 미친 것이 아닌가! 감히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뒤에 서 있던 풍검문의 문도들이 언성을 높였다.
악양을 장악한 풍검문은 거칠 것이 없었다. 설령 현령이라 하여도 자신들의 앞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신들에게 이런 행동을 보인다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자란다.”
“……얼마면 되겠는가?”
“금자 천만 냥 정도면 수지에 맞겠군.”
“……장난이 심하구먼그래.”
“글쎄, 장난으로 들리나?”
후자령은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장원을 팔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후자령은 피식 웃었다.
“이것 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군.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네. 생각이 바뀌면 나를 찾아오게.”
후자령은 너무나도 순순히 등을 돌렸다.
이럴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못 했을 터인데도,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장원을 떠나갔다.
오히려 그 문도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웠다.
“어쩌실 겁니까?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습니다만…….”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은 이 장원을 원한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장원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했을 테니, 현령인 홍원창이 뒷줄에 있음 또한 알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조금 전 후자령의 모습으로 보아 벌써 칼을 뽑아 들었을 테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단우현이 웃었다.
“늙은이를 불러와라.”
“존명!”
권무진이 황급히 악양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