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0
“그런 일이 있었군.”
단우현은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는 단소미를 끌어안았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평소 싱글싱글 웃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상처 받지 않으려 하는 단소미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단우현은 잘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단소미가 품에서 그의 옷깃을 꾹 잡았다.
“에잇! 시벌!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그때, 벌컥 대문을 열고 들어온 장삼태가 거칠게 입을 입을 열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데다 얼굴마저 한껏 붉어진 채 씩씩거렸다.
곁에 있는 권무진 또한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아니, 그게 말입니다. 필요한 것들 좀 사려고 악양 저잣거리에 갔는데, 하나같이 물건이 없다, 이미 누가 구입해 놓고 맡겨 놓은 거다, 하면서 팔지를 않습니다.”
그 많은 상인들 중 한두 명이 그랬다면 수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상인들이 그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다.
장삼태는 마치 누군가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그놈들이 장난질 친 거 아닙니까?”
장삼태는 씩씩거리며 팔을 걷어 붙였다. 만약 그렇다면 당장 쫓아가 한바탕할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이곳에 살면서 친해진 상점 주인들까지 그러니 열불이 치솟았다.
“허,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을 것일세. 명색이 정파가 아닌가?”
“흥. 검황께선 아직도 꿈에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
권무진이 피식 웃었다.
장태삼의 말에 권무진이 피식 웃었다.
사파에 적을 두었던 그는, 정파라 불리는 이들의 행실이 어떠한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정사마, 혹은 새외 어느 곳을 가도 그러하겠지만, 본디 힘이 있는 자는 약한 자를 깔보고 짓누르려는 법이다.
지금이 그렇다.
앞서 장삼태가 언급을 했던 것처럼, 저잣거리에 있는 힘 약한 상인들은 필시 풍검문의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건 틀림없이 풍검문의 짓입니다.”
“그곳은 무림맹 소속에 정도문파일세.”
“정파든 사파든 마교든, 곪아 터진 부분이 있는 법이죠.”
남궁천이 신음을 삼켰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마냥 부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임을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단우현을 돌아봤다.
이야기를 듣고도 단우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표정 또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갈피도 잡을 수가 없었다.
화가 났나?
아니면 슬픈가?
혹은 아무렇지 않은가?
그 고요한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음일까?
이내 단우현은 품에 안겨 있는 단소미를 안아 올리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친구들은 밖에서 보면 되는 것이고, 학당 같은 곳에 다니지 않아도 공부는 배울 수 있다. 좋은 스승을 찾아 주마.”
“……정말요?”
“그래.”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남궁천과 권무진, 장삼태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에게 물건과 먹을 것들을 팔지 않는 상태다.
이것은 실로 큰일이라 할 수 있었다.
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아직 작물이 다 자라지 않았다. 먹으려면 최소 한두 달은 넘게 있어야 하니, 당장 식량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단우현은 이들을 슥 둘러보고는 피식 웃었다.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니, 저잣거리에서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식재들도 있고, 옷도 그렇고, 아무튼 이건 큰일입니다!”
단우현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처음 이 장원을 지었을 때를 떠올렸다.
사실 주위에 악양이 있다고는 하지만 한 시진 정도나 되는 거리였다. 그곳을 오가며 식재나 물품을 사다 나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저 조용히 이곳에서 지내려 했던 것이 단우현의 목적이었다.
물론 그것이 단소미 탓에 많이 바뀌어 버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괜찮아요. 옷은 만들어 입으면 되고, 먹을 건 예전처럼 사냥을 하면 되죠. 소미는 사냥에 자신 있어요. 조만간 호랑이도 잡을걸요?”
‘어흥-!’ 하며 양손을 들어 올려 호랑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단소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상황을 조금 파악한 것인지 지금 이 현실에 익숙해지려는 모습 같아 보였다.
단우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소리다.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것은 없다.”
“허…… 지, 진심입니까?”
“진심이다.”
“자, 장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술도 못 마시는뎁쇼?”
“만들면 그만이다. 네놈은 손재주가 좋지 않으냐.”
“그리…… 생각해 주신다면야 고맙지만서도…….”
장삼태는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산에서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구해다 음식을 만들 수는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료에 들어갈 양념은 어디서 살 것이며, 곧 겨울이 오는데 따뜻한 이불과 옷들은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간 누렸던 것들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장삼태는 자신의 고생문이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풍검문의 집무실에 앉아 있는 후자령은 입술을 곱씹었다.
벌써 반응이 와도 한참 전에 왔어야 했다.
청송학당에 손을 써서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쫓아냈고, 인근에 있는 상인은 물론이고 그들과 거래를 했던 모든 이들을 잡아 족쳤다.
근래 놈들이 악양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어느 정도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데 풍검문을 찾아오지 않다니?
‘이상해……. 정말이지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집무실의 문이 활짝 열리며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풍검문의 제일제자 역도강이라는 사내로, 후자령의 오른팔이었다.
그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 어찌 되었어? 슬슬 짐을 챙기고 있을 테지?”
“그…… 그게 말입니다…….”
역도강은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분명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장원은 너무나도 태평스러웠다.
돈을 쓰지 않아도 사람이 살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배가 고프면 동정호에서 낚시를 하고 산에서 사냥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산짐승의 가죽을 이용해 옷과 이불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작물을 키워 모자란 식재료를 보충하는 치밀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역도강은, 자신들이 한 짓이 저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뭐야? 그게 참이렷다?”
“사, 사실입니다.”
“뭐 그런 이상한 놈들이 있단 말이냐…….”
허, 하고 후자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이렇게까지 하면 울고불고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국이다. 한데도, 그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빠져나가니 그 장주라는 놈은 아마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
“현승은? 현승은 어찌하고 있느냐?”
“조, 조금 전 가 보았는데 말입니다…… 포졸들을 설득하는 데 꽤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득하는 데 애를 먹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그 장원에 있는 장주 놈이 포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온 놈들은 현승의 말을 고분고분 따릅니다만, 그 전에 있던 포졸들은 그 장원은 건드리면 안 된다며 대들더랍니다.”
“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현령의 부재시 현승이 모든 권리를 이어받는다. 하여 그 권력 또한 막강하다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한데, 포졸들이 대들면서까지 거부를 한다는 것이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후자령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현승에게 아이들을 보내거라. 포졸로 위장시켜 당장 그놈들을 쫓아내!”
“아, 알겠습니다!”
“하여 이 장원에서 나가 주어야겠네.”
현승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임을 한 지 이제 곧 한 달이 되어 가는 그에게 있어 이번 일은 상당히 중요했다. 악양을 장악하는 무림문파 풍검문과의 연결고리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들에게 받은 돈이 상당한 만큼 이 일을 잘 해결하기만 한다면 든든한 후원자를 얻어 악양의 현령이 될지도 모른다.
현승은 그런 음흉한 생각을 하며 이곳으로 왔다.
“…….”
“뭐라?”
“이런 미친놈이…….”
한데 반응이 영 이상했다.
현령을 모시는 자리이긴 하지만, 현승이라는 직위 또한 일반인들은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이다.
그런데도 이놈들은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홍원창은 어디에 있느냐?”
“네놈! 감히 현령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네놈들이 알 필요가 없으며 알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단우현을 향해 소리를 치는 그 모습에 장삼태와 권무진이 기겁을 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하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언성까지 높였으니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군. 하면 어찌하라고?”
“장원을 비우라 했다.”
“갈 곳이 없는데?”
“그건 네놈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감히 황실의 땅에 장원을 세우고, 함부로 사냥을 한 것만으로도 목이 잘릴 일이다.”
“아니에요! 이 장원은 아빠가 지은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때, 단소미가 튀어나오며 반박했다.
나름 억울했는지 언성을 높이더니 단우현을 쳐다봤다. ‘제 말이 맞죠? 아빠는 잘못 없죠?’ 하는 시선이었다.
“……어…… 그, 그렇군.”
다소 더듬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니 단소미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그러고는 집을 지었다는 죄를 단우현에게 덮어씌우려는 현승을 똑바로 응시했다.
“거봐요.”
‘거보긴 뭘 봐. 딱 봐도 지었구먼.’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곳인데…….’
‘허허, 도대체 어찌 이걸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권무진과 장삼태, 그리고 남궁천까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장원은 몇 번을 살펴도 이미 지어져 있는 집을 보수했다는 흔적은 단 한 곳도 찾을 수 없다.
더군다나 단우현의 저 표정으로 보아 이 장원은 틀림없이 지은 것이다.
“크큼! 지었든 보수를 했든 간에! 이 장원에서 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 당장 짐을 챙겨 나가도록!”
현승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겁날 것이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의 옆에는 자신을 따르는 포졸들과, 풍검문에서 나온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떠한 사태가 일어난다 해도 이들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현승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자…… 장주님?!”
“주군!”
너무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장삼태와 권무진이 깜짝 놀라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곳은 자신들의 터전이거늘, 왜 이런 억지를 들어줘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단우현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나가도록 하지.”
“흥! 진작 그럴 것이지.”
현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의 여유는 줄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풍검문과의 약조는 지키게 되는 셈이다.
“그럼 내일 다시 확인해 보겠네. 그때까지도 나가지 않았다면 모조리 추포하여 죄를 물을 것이야.”
그의 한마디에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사라져 가는 그를 가만 바라보다, 천천히 등을 돌려 장원을 향해 걸었다. 당황하는 남궁천과 권무진이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괘…… 괜찮겠는가? 지금 이곳을 나가면 갈 곳이…….”
“아…… 걱정할 필요 없다.”
단우현이 피식, 진득한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