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81
“에이, 시벌 것들! 장주님, 이참에 확 다 뒤집어엎어 버립시다!”
장삼태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풍검문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제는 현승의 권력까지 이용하여 장원에서 쫓아내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자신들과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가!
장삼태는 치솟는 울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진정하게나. 화를 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으냐.”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남궁천 또한 한숨을 쉬었다.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 장원만큼 좋은 곳이 없었으며,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갈 곳이 없어져 버린다.
그렇다고 혈혈단신으로 산속에 들어가 은거기인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막막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집에는 애까지 있지 않은가. 단소미만큼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고 싶었다.
“장주께선 어찌할 생각이신가?”
“어찌할 게 있나?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고요? 나, 나가지 않는 겁니까?”
권무진의 말에 단우현이 그를 힐끗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는 장원 밖에 나와 있지 않으냐.”
“에?”
“어?”
한순간 세 사람의 정신이 멍해졌다.
확실히 대문 밖에 나와 있으니 장원 밖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승이 한 말은 이러한 뜻이 아니다.
지금 농담을 할 때인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것인가?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고개를 갸웃할 때, 단우현이 또다시 웃었다.
“약속은 지켰다. 이제 다시 장원 안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구나.”
장삼태는 아연실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 표정으로 보아 틀림없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단우현은 지금 장원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 약속을 지켰다 생각을 하고 있고, 이제 현승의 입에서 다시 장원을 써도 된다는 말을 들으려 하는 참이다.
장삼태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크게 웃어 젖혔다.
그럼 이래야지!
이래야 우리 장주지!
당한 것이 있다면 배로 갚아 주면 그만이다.
“맞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현승을 조져 놓기만 하면 됩니다!”
“조져 놓다니? 말에 어폐가 있구나. 그저 장원으로 다시 들어가도 된다는 한 마디만 들으면 그만인 것이다.”
단우현은 나긋나긋하게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내뱉는 말투 또한 부드러운 탓에, 마치 부처가 강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내 장삼태가 또다시 웃었다. 두 사람이 하하 작은 웃음소리를 내니, 너무나도 죽이 잘 맞아 보였다.
권무진과 남궁천은 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인지.
현승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현승은 어디까지나 현령의 대리다.
그러나 현령이 없는 순간부터 그 현은 현승의 것이나 다름없기도 하다. 그렇기에 현승 유약중은, 현재 자신만의 권력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
심지어 뒤에는 든든하게도 풍검문이 버티고 있다.
무호동중이작호(無虎洞中狸作虎),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하하하-!”
장원에서 돌아온 현승은 곧장 홍등가를 찾았다.
풍검문주 후자령에게 받은 돈으로 양옆에 기녀를 끼고 술을 마시니, 마치 세상이 내 것만 같고 황제도 부럽지 않았다.
“현승께선 오늘 무척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호호.”
“그래, 그래, 물론이지. 돈도 생겼겠다, 이제 뒷배도 튼튼하겠다, 걱정거리가 무에 있겠느냐?”
크게 웃음을 지은 유약중은 생각했다.
예로부터 권력이란 치고 올라가야 하는 법이다.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멈춰 선 채 남에게 떠밀리기 마련이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손에 넣어야 한다.
현재 그는 현령 자리를 원한다.
부임한 지 고작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나, 이렇게까지 빠르게 그 방법을 찾게 될 줄은 스스로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왕부에 간 현령은 돌아자마자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풍검문과 그러한 약조를 하였으니까.
자연스럽게 현령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물론 황실의 재가가 있어야 하지만, 윗줄에 돈을 좀 쓴다면 그 정도 일은 문제될 것이 하나 없었다.
“호호, 그런데 아시나요?”
“무엇을 말이냐?”
“사람들은 대부분 쉬쉬하는데, 이곳 서쪽에 있는 동정호 근처에 장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렇지?”
“예, 그곳이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합니다.”
“……뭐?”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원이 하루 만에 지어졌다는 소문이 있어요. 더군다나 장백산이니 흑도회니 하는 이들도 그 장원이 생긴 뒤로 해결되었다고도 하고요. 호호호,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지 않나요?”
“하…… 하하, 그, 그렇군.”
유약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선이라?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그가 보았던 장주의 모습은 신선과는 지나치게 멀어 보였다.
추레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물론이고, 말투 또한 일개 양민 같지 않았던가.
어디 그런 이를 신선에 비교하는가?
현승은 술잔을 넘기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그곳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하죠. 현령께서도 보름에 한 번 찾아가 공물을 바친다 들었습니다. 이 악양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전-부, 그 신선분들 덕분이라 해요.”
“하하하,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여인은 교태 섞인 손짓으로 유약중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눈빛이 지그시 시선을 압박하더니, 길게 늘어선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곧 앵두 같은 붉은 입술이 들썩이며 가느다란 미성이 들렸다.
“농담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 렇, 구나, 어?”
유약중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순간 머리가 핑 돌더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던 여인들마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억지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모든 것들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약중이 눈을 떴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
달이 있어야 할 하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있고, 땅이 보여야 할 아래는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억?!”
온몸은 포승줄로 꽁꽁 묶여 있고 절벽 끝의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미세한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
우지직-!
기이한 소리가 나며 나무가 부러지려 했다.
유약종은 순간 시퍼런 안색을 보이며 몸을 굳혔다.
“깨어났군.”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또르르-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매달려 있는 유약중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네 명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들의 정체는 단박에 추측해 낼 수 있었다.
“네, 네 이놈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우리는 네놈 따위 모른다.”
“이, 마, 말 같지도 않은……!”
목소리와 말투, 체구로 보아 저자는 틀림없이 그 장원의 장주다. 옆에 서 있는 이들도 아무리 복면을 쓰고 있다 한들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저런 놈을 신선에 비교하다니! 그 기녀가 미쳤구나!’
사람을 이리 핍박하는 자들이 어떻게 신선이란 말인가.
“당장 풀지 못하겠느냐?”
단우현은 가만히 유약중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아직 누가 위고 아래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아직 기세가 살았구나. 삼태야.”
“예!”
장삼태가 히죽 웃음을 지으며 도끼를 쥐었다. 이윽고 천천히 나무를 향해 다가섰다.
그러자 유약중의 얼굴은 점점 더 사색이 되어 갔다.
“뭐, 뭐 하는……!”
퍽-!
장삼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끼로 나무를 후려쳤다. 그러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나무 줄기가 한껏 파이며 크게 흔들렸다.
“으아아악! 네놈들! 다 죽여 버릴 테다! 다 죽여 버릴 거야!”
“흠…….”
단우현은 생각했다.
제법 강단이 있는 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언성을 높이는 걸 보면 말이다. 보통 무서워서 실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힐끗 장삼태를 바라보자 그가 또 한 번 도끼를 휘둘렀다.
퍽!
우지직!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말이 짧구나.”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대롱대롱 흔들리는 그의 모습이 제법 재미있는지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무림인이 아닌 자는 건드려 본 적이 없는 단우현이었다. 죽는 순간에도 고고한 척하는 무림인들의 습성에 익숙한 그는 유약종의 반응이 제법 우스웠다.
퍽-!
장삼태가 또다시 나무를 찍자 이번에는 나무가 넘어갈 듯 반쯤 기울어졌다. 살짝 무게가 아래로 쏠린 탓에 한 번이라도 더 충격을 가한다면, 끝도 없이 아래로 추락할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유약중이 울고불며 매달렸다.
“으허허헝-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고, 공자! 부탁드립니다!”
“할 말은 그게 다인가?”
“허헝…… 저, 전부 후, 후자령 그놈이 꾸민 일입니다. 저, 저는 장원 따위는 신경도 안 썼습니다. 자, 장원은 원래 고, 공자의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쓰시든 그, 그것은 고, 공자의 마음입니다!”
“흠, 무슨 장원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고맙구나.”
권무진과 남궁천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가 했더니 이런 식이었다니…….
무림고수라 불리는 자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남궁천은 신음을 삼켰다.
‘뭘까, 이 기분은…….’
분명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였는데, 기이하게도 속이 후련했다. 그놈들에게 당한 울분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거…… 기분이 좋군.’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에 남궁천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좋아, 풀어 주거라.”
“에? 벌써 말입니까?”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유약중을 바라보며 장삼태가 인상을 썼다. 조금 더 괴롭혀 주고 싶은데 벌써 풀어 주라 하니, 영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내키지 않았으나 단우현의 명령이다. 짧은 한숨과 함께 포승줄을 끌어내기 위해 나무를 슬쩍 건드리는 순간.
와지지직!
나무가 부러지며 유약중이 거침없이 추락했다.
“끄아아아악!”
잡아 볼 새도 없이 찰나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윽고 ‘퍽’ 하는 묘한 소리가 귀를 자극하자, 장삼태는 몸을 움찔했다.
“…….”
“…….”
“…….”
“어……?”
네 사람은 그 광경을 가만 바라봤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장삼태가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듯 입을 열었다.
“뭐…… 천운이 다했나 봅니다.”
“……그렇군.”
단우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